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15화 (115/182)

115화

제닉스 본부 지역대.

“어? 세아 씨 지금 퇴근해?”

“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무슨 일은. 오늘 우리 팀 회식하려고 하는데, 괜찮으면 같이 가자고 하려 그랬지. 어때? 시간 돼?”

인사팀장의 말에 박세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기색을 알아챘는지 팀장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 같이해.”

“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치 빠른 팀장 덕에 사무실을 빠져나온 박세아는 셔틀을 타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가 내려선 곳은 민간 구역에 있는 한 대형 종합 쇼핑몰이었다.

지난 몇 년간 오고 가며 구경만 해야 했던 곳.

건물을 바라보며 잠깐의 감회에 젖어 있던 박세아는 이내 내부로 들어섰다.

“옷이… 3층이구나.”

안내판을 보던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그리해서 도착한 곳은 한 명품관의 의류 매장이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네.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그럼요. 천천히 보세요.”

매장 직원의 친절한 말에 박세아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괜찮은 것이 있나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름이 나 있는 명품관답게 모든 아이템은 그녀의 눈에 예쁘게만 들어왔고, 계속해 둘러보기만 하던 그녀의 곁으로 다시 직원이 다가왔다.

“혹시 찾으시는 상품이 있으신가요?”

“아. 남자… 옷을 좀 사려구요.”

“선물하시게요? 누구? 남자 친구?”

“아뇨. 그건 아니고 음… 진급 축하 선물을 하려고 하거든요.”

“직장 상사시구나. 그럼 보통 셔츠랑 타이를 많이 하거든요. 여기 이 제품이 잘나가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직원의 추천에 박세아가 옷을 받아 들었다.

깔끔한 화이트 컬러에 어느 옷에 받쳐 입든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의 셔츠.

명품 로고까지 박혀 있어 한층 더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잘 어울릴 거 같아.’

태정을 떠올려 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로 할게요.”

“사이즈는 아세요?”

“네. 100이요. 그런데 얼마 정도나 해요?”

“이 제품은 지금… 259만 원이네요, 고객님.”

“259만 원이요?”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이번에 들어온 활동비가 200만 원인데, 그 금액를 한참 오버한 스펙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 혹시 조금 더 저렴한 건 없을까요?”

“으음. 사실 저희 매장에서 이 라인이 그나마 저렴한 편이라.”

“그럼… 죄송한데 조금 더 둘러보고 다시 들릴게요.”

민망한듯 서둘러 매장을 빠져나온 박세아는 뒤돌아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명품은 비싸구나. 딱 보스 꺼였는데.”

왠지 처량해진 기분이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받은 급여가 고작 셔츠 하나를 사지 못할 정도라니.

하지만 이곳의 명품은 그리 비싸다고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쇼핑몰은 헌터들의 가족이 이용을 하는 곳이고, 하루 수입이 천 단위를 우습게 오가는 그들에게 몇백만 원은 일반인들이 치킨을 사 먹는 것처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찾아보면 분명히 더 저렴한 게 있을 거야.”

발품을 팔아 보기로 한 박세아는 그때부터 온 명품관을 훑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녀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옷은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들어갔던 곳이 그나마 저렴한 편이었다고 할까.

사실 명품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아래층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브랜드가 많았다.

문제는 자신의 보스가 보통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드 유일의 히든 클래스이자 지역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중진급의 간부.

본인은 상관없다고 해도 다른 이들의 시선도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급은 맞춰야 하는 것이 조직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을 논외로 친다 할지라도 그녀 자신이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간 받은 배려가 얼마던가.

하나,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좋은 거로 해 드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매장에서까지 금액을 맞추지 못한 그녀는 결국 일반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매장을 골라 들어간 박세아는 직원을 불러 물었다.

“남자 선물할 건데. 추천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연령대가 어떻게 되세요?”

“20대 후반인데. 동안이라 중반 정도로 봐도 될 것 같아요.”

“20대 중반이라. 여기 이건 어떠세요? 고급 캐시미어가 아주 살짝 섞인 후드 티인데. 바지랑 세트로 나와 있거든요. 저희 주력 상품이기도 하고요.”

“깔끔한 셔츠 종류는 없나요?”

“음. 셔츠는 요즘 잘 안 입잖아요. 서울이나 길드 밖에서 활동하신다 하면 모를까. 내부에서는 사실 올드 하죠. 활동적인 분이 대부분이시니까요. 저 믿고 이걸로 해 보세요. 이제 가을인데 이런 후드 티 하나 있으면 데일리로 입기 정말 좋거든요. 바지랑 세트로 하시면 완전 꾸안꾸인데.”

“꾸안꾸가 뭐예요?”

“아. 이건 저도 할아버지께 들은 말인데. 정말 옛날에 사용했던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패션이라나? 이런 스타일이 요새는 먹히죠. 명품 쪼가리 걸치고 ‘나 명품 걸쳤소’ 하고 다니는 거 사실 꼴볼견이잖아요? 이곳에서 명품 누가 못 사요. 하나를 입더라도 대충 걸친 것 같은데? 이 뭐랄까. 날것의 갬성과 프레쉬 한 갠지가 느껴지는 저희 브랜드가 패피들 사이에선 훨씬 알아 주죠.”

“아…….”

직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한 얘기였다.

사실 쇼핑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이런 곳에 있어선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설득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계속 보고 있으니 확실히 뭔가 예뻐 보이기도 했다.

진짜 날것의 갬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럼 이거로 할게요. 100으로 주세요. 바지도요.”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159만 원이고 결제는 뭐로 도와 드릴까요?”

“체크카드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저희가 이벤트로 이름 각인도 해 드리고 있거든요. 어떻게 이것도 도와드릴까요? 비용은 10만 원인데.”

“하는 게 좋을까요?”

“아무래도 선물이시면 어디 가져다 파실 것도 아니니, 해서 드리면 더 특별하지 않으실까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옷이 되는 거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렇게 해 주세요.”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유태정 님이요.”

“유태정 님이라. 제가 보니까 이니셜은 갠지가 없을 것 같고. 한글로 새기면 좀 더 스포티하면서 와우 포인트가 딱 살 것 같은데. 고객님 생각은 어떠세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여기 소파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20분 정도가 지나자 직원이 다시 옷을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옷을 본 박세아가 당황스럽다는 듯 직원을 바라봤다.

“이… 이렇게 크게 새기는 건가요?”

“요즘 트렌드가 큼직큼직한 게 대세거든요. 아까보다 훨씬 영 해 보이지 않나요? 제가 또 디자인학과 졸업생이라. 감이 좋거든요.”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얘기를 하는 직원을 보며 박세아는 앞판에 대자로 적힌 유태정이란 글자를 바라봤다.

무려 정중앙에 세로 배열.

이게 정말 멋이 맞는 걸까?

“그런데 바지는 왜 이름이 뒤쪽에…….”

“패션 쪽에선 이걸 언발란스 기법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뒤에서도 볼 수 있고 앞에서도 볼 수 있고 여러 장점이 있으니까요. 일단 선물해 보세요. 분명 받으시는 분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아… 네.”

“그럼 살펴 가시고 다음에 또 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를 배웅한 뒤 뿌듯한 마음으로 매장 정문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매서운 살기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사장으로 보이는 한 중년인이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아? 야. 김다올, 너 미쳤냐? 이미 결제돼서 말은 안 했지만 손님 옷을 저렇게 조져 놓으면 어떻게 해?”

“조져 놓다뇨. 그래도 제 첫 작품인데. 말씀이 좀…….”

“야. 네 첫 작품을 왜 내 가게에서 하냐고. 정신 나갔냐? 레터링 각인을 누가 저렇게 해.”

“다른 가게에서도 하는 걸 똑같이 하면 저희 브랜드가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저 패션 디자인학과 졸업생입니다.”

“디자인학과고 지랄이고, 저 손님 다시 와서 환불 얘기 나오면 네가 알아서 해라. 난 모른다.”

“아, 글쎄. 제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말씀드리는 건데, 절대 그럴 리가…….”

“시끄럽고 바닥이나 닦아. 그놈의 크리스천은. 이건 청소를 한 거야 만 거야.”

씩씩대며 멀어지는 사장을 보며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참 한국에서 패션 해 먹기 더럽게 힘드네. 나 같은 인재는 외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니까. 재능이 아깝다, 아까워.”

* * *

[석화의 요정 아르쿤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540만을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오픈되었습니다.]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세요.]

“드디어. 레벨 업인가.”

돌산을 종횡무진하며 요정들을 학살하던 태정은 어느덧 550레벨을 돌파했다.

이곳에 들어와 사냥을 한 지 일곱 시간 만에 이룬 일이었다.

“어디 보자. 뭐가 나왔나 볼까.”

[메카닉의 길 1-6]

지구의 최남단 남극대륙엔 우주연합방위군의 로봇 기지가 있습니다.

이 기지는 외계 종족의 침략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로봇 기지로 가장 은밀한 곳엔 지구의 비밀 병기라 불리는 바실리스크의 천신장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를 깨워 회수하십시오.

로봇 기지는 남극점 지하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임무 : 바실리스크의 천신장 회수 0/1

보상 - 전방위 감응식 로드워커팩 (회피 기동)

“바실리스크의 천신장? 게다가 극지라. 뭔가 엄청난 게 숨겨져 있는 모양인데.”

이번엔 무려 남극이었다.

지구 최남단이자 혹한의 날씨를 자랑하는 곳.

이곳이야말로 진짜 사람의 발길이 뚝 끊긴 미지의 영역이었다.

“제라드, 듣고 있냐.”

-예, 주인님.

“바실리스크의 천신장이 뭐지?”

-한때 지구의 최종 비밀 병기라 불리던 무기입니다.

“최종 비밀 병기라. 그럼 거의 끝판왕이라는 소리네.”

-한때는 그랬습니다. 그 이후 과학은 계속 진보해 왔으니까요.

“그래? 그럼 내가 가진 순항미사일이랑 비교하면?”

-둘의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가지고 계신 순항 핵미사일 정도로는 천신장에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오호. 방어력이 그렇게 좋다고?”

여기까지만 듣고도 벌써 그의 마음은 남극에 가 있었다.

미니 전술 핵폭탄이라지만 그래도 핵은 핵.

그 폭발의 위력을 직접 본 그였기에,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바실리스크의 천신장이라. 이거 또 잔뜩 기대가 되는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