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32화 (132/182)

132화

“뭐야 이건?”

충격에 몸을 비틀거리던 태정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식에 불과하던 로봇 서너 기가 총을 겨눈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제라드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곳이 붕괴되기 전에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게이트는 기지의 최상층부에 있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은 2시간 59분으로…….

제라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정의 신형이 앞을 치고 나갔다.

지금은 놈들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보이는 로봇은 넷.

순식간에 지근거리까지 도달한 태정의 손에 스피어 블레이드가 소환됐다.

그대로 들어가 양단을 하려는데, 어느덧 또 다른 로봇 하나가 들어와 자색의 광선 검을 들이밀었다.

지이잉-!

치치- 칙!

플라즈마와 플라즈마가 부딪히며 빛이 요란하게 일렁였다.

하지만 태정의 플라즈마가 파괴력에선 한 수 위였다.

검과 함께 그대로 쪼개지는 로봇 하나.

[마르시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360만을 획득합니다.]

[탈출 시간이 1분 추가됩니다.]

알림음을 들을 새도 없이 그의 검이 어지럽게 허공을 휘어 갈랐다.

서걱-!

슥! 석-!

순식간에 총을 들고 있던 4기의 로봇이 고철이 되어 흩어졌다.

[에르1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280만을 획득합니다.]

[탈출 시간이 30초 추가됩니다.]

“별것도 아닌 게 사람 놀래키긴. 이제 설명해 봐. 뭐야?”

-현재 이곳엔 전투 준비 태세가 발동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로봇이 소집되기 전에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나 하나 잡겠다고? 전부?”

-그렇습니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다, 몬스터 한 마리 보지 않고 클리어 한 게.”

중얼거리던 그는 전력을 다해 문으로 쏘아졌다.

제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당장 오면서 본 것들만 해도 깨어난다면 엄청난 괴물이 될 터.

잘못하면 나가는 것은커녕 뼈도 추리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렇게 쏘아지던 태정의 뒤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타타탕! 타탕! 타타탕!

좌우 바닥으로 빗발치는 총알들.

순간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문이 바로 코앞이었다.

그대로 진입을 하려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허공에서 로봇 2기가 떨어져 내렸다.

들어오기만 하면 쪼개 버리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광선 검을 뽐내는 휴먼형 로봇.

하지만 이미 상대해 본 태정에겐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

“피라미는 꺼져.”

서걱-!

가볍게 휘두른 검에 놈들이 가로세로로 분리됐다.

그렇게 입구로 들어선 태정은 슬쩍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층별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수백 기의 로봇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런 놈들을 뒤로하고 문밖을 나선 태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굉장한 충격과 함께 그의 신형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쾅!

“이건 또 뭐…….”

확인할 새도 없이 날아드는 시커먼 그림자.

본능적으로 그가 몸을 굴렀다.

쾅!

무엇인지도 모를 공격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 났다.

그사이 역추진을 이용해 빠르게 후방으로 물러선 태정은 그제야 그것의 정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로봇이라 하기엔 매우 투박한 거대 기체.

개구리의 뒷다리를 연상케 하는 두 다리와 양손에 들린 두 개의 포신이 한눈에 봐도 굉장히 강력해 보이는 놈이었다.

“이놈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들어올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조심하십시오.

“보고 있다.”

거대 기체의 양 포신에 새하얀 빛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2개의 구체를 만들어 냈고, 이내 스파크가 튀며 전방을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슈아악-!

콰콰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그의 후방에 있던 벽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됐다.

뿐만 아니라 날아간 방향의 대지가 움푹 패어 하나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

움직임이 조금만 늦었어도 휩쓸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워커팩이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일.

오랜만에 느껴 보는 쫄깃함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태정은 클로킹을 전개하며 곧장 놈을 향해 쏘아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코앞까지 도달한 그가 양손에 든 플라즈마를 그대로 내리그었다.

치이이-!

치지직!

쿵!

[마르23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500만을 획득합니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공격력 몰빵인가.”

너무 손쉽게 해치워 의아해하기도 잠시.

곧이어 그의 눈앞이 번쩍이며 수백 발에 달하는 탄이 온몸을 강타했다.

타타탕! 타탕!

“이런… 윽.”

화력은 문 앞에 있던 태정을 반대편 벽까지 밀어 버렸다.

단단한 장갑 덕에 데미지는 입지 않았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스피어 블레이드도 손상돼,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상황.

골이 띵할 정도의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그가 양팔로 가드를 치며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나 보이는 거야, 지금?”

-생체 감지 시스템이 있어 로봇에겐 클로킹이 의미가 없습니다. 조심하십시오! e레이저는 맞으…….

제라드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태정의 신형이 좌측으로 튀어나갔다.

그 역시 날아드는 새빨간 무언가를 본 것이다.

핑! 피잉-!

“이 새끼들 레이저까지 쏘네.”

태정은 문을 타고 쏟아지는 수백의 로봇들을 보며 일반적인 무기론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물량을 한 번에 보내려면 굉장히 범위가 큰 공격이 필요하다.

그에 걸맞은 무기는 천무밖에 없었다.

생각과 동시에 태정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올라가지도 못해 다시 처박히는 그의 신형.

분당 천 발 이상에 달하는 집중사격은 아무리 데미지가 적다 해도 그 충격까지 상쇄를 시켜 주지 못했다.

-주인님, 태극 1호의 내구도가 85%까지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85%나 남았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정은 이에 대한 심각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몇 분 사이 15%가 떨어졌다.

그 말은 앞으로 길어 봐야 30분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앞으로 가드를 친 그가 전방을 주시하며 물었다.

“지금 기체 소환하면 얼마나 버틸 거 같냐.”

-순식간에 망가질 겁니다. 게다가 기체의 기동력으론 e레이저에 반응을 하실 수 없습니다.

“천룡은 사용할 수 없고… 이걸 어떻게 한다.”

쉼 없이 쏘아지는 공격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b6-1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던전에서는 제한이 걸려 있는 상황.

mk4를 소환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기체도 버티지 못하는 걸 총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스피어 블레이드 복구까지 얼마나 남았지?”

-곧 복구됩니다. 지금 재소환 가능하십니다.

“좋아. 이걸로 해 보자.”

손상된 검을 다시 재소환한 태정은 하나를 버리고 나머지 하나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완전히 감쌌다.

검의 손상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상태로 영역을 최대치로 개방하자 둥근 막대기 형태의 플라즈마가 넓은 도 형태로 변신했다.

동시에 몸을 웅크린 상태로 그의 신형이 다시 한번 솟구쳤다.

비틀.

최대한 플라즈마 뒤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휘청거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며 균형을 잡아 갔고, 곧이어 준비가 됐다는 듯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각도 나옵니다.

“쏴.”

-좌표…….

“그냥 쏴.”

재차 내린 명령에 독수리처럼 펼쳐진 그의 양 날개에서 집속탄이 쏘아졌다.

슈우우-!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십 미터에 달하는 분진이 일시에 공간을 뒤덮었다.

동시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경험치 알림음이 들려왔다.

[경험치…….]

[레벨 업…….]

[새로운 스킬…….]

레벨 업도 하고 스킬도 들어왔지만 그런 것 따윈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오직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날아오른 그가 처음 들어왔던 굴로 진입했다.

동시에 승강기에 올라탄 태정이 초록색 버튼을 쉼 없이 눌러 댔다.

끼이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것조차 불안했는지 승강기의 뚜껑을 잘라 버린 그가 블라스터를 이용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금세 바닥으로 내려앉은 그의 신형.

재차 상승하려는데,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좌측 엔진부 손상되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복구는?”

-완전 손상을 입지 않으면 복구가 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까다롭네.”

애매하게 망가진 것이 문제였다.

완전 손상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써야 한다는 것.

결국 그는 조심스레 광선 검을 가져가 블라스터를 스스로 망가뜨렸다.

-3분 후 재소환 가능하십니다.

“오케이. 후우. 이제 한숨 돌리겠네. 저런 거 b6-1만 있었어도 아무것도 아닌데… 참 아까 스킬이…….”

뒤늦게 무언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은 태정은 스킬 창을 확인하려다, 이내 아래에서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로봇들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이것들은 고도 제한도 없나.”

두고만 볼 수 없었기에, 그는 즉각 mk4를 소환했다.

“이거나 처먹고 떨어져라.”

타타타탕! 타타탕! 타탕!

분당 수백 발에 달하는 강화 에너지 탄이 솟구치는 놈들을 뒤덮었다.

데미지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충격파로 인해 나가떨어지는 놈들.

그 모습에 통쾌해하기도 잠시.

철컹!

사격을 뚫고 난간 위로 올라선 로봇이 있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등에 검을 맨, 그 모습이 마치 닌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쪼그려 앉아 있던 놈이 손을 슬며시 검으로 가져갔다.

바로 그때.

쉬익!

서걱-!

두 동강이 나며 추락하는 로봇.

먼저 손을 쓴 태정이 어둠으로 사라진 놈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개폼을. 이게 지금 장난이야?”

이후로도 몇몇 로봇이 승강기에 올라탔고, 그는 그때마다 놈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간혹 한 번에 두세 마리가 달라붙어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휘된 워커팩의 기가막힌 보조 능력은 그를 위험에서 구해 냈고, 좁은 공간에서 어지럽게 날아드는 공격을 단 한 번도 허용치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올라오는 로봇들을 처리하던 태정은 더 이상 아래로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다 올라왔나? 더럽게 많네, 진짜. 그건 그렇고 이 로드 워커팩이란 장비는 역대급이네. 이거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어떻게 싸웠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걸 이겨 내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그가 혀를 내두르며 문명이기(文明利器)에 감탄을 하고 있는데, 돌연 승강기가 멈춰 섰다.

철컹!

그렇게 문이 열리자.

척!

눈에 들어온 것은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의 로봇이었다.

그 모습에 태정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쉽게 가는 법이 없다니까.”

양손에 들고 있던 스피어 블레이드를 교차시킨 그가 제라드를 향해 명령했다.

“부스터 온.”

-준비됐습니다.

“풀 출력이다. 최대로 땡겨.”

그의 신형이 무섭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