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35화 (135/182)

135화

크레바스를 빠져나와 태정이 본 것은 몬스터들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장비는커녕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이들.

그들은 그가 시선을 둔 지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포위됐다.

한눈에 봐도 위급한 상황이었다.

즉각 움직여 그들에게로 날아간 태정은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로봇 기지를 탈출할 때 사용했던 새 기술(?)을 쓰니, 몇 초 걸리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놈들을 작살 낸 태정은 뒤돌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의 잔뜩 긴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밀착해 슬금슬금 발을 빼고 있는 사람들.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날 몬스터로 보는 건가.’

충분히 의심을 할 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본 여러 사람 역시 그렇게 착각을 했을 정도니까.

그만큼 태정이 쓰고 있는 슈트와 장비들은 이 세계의 것과 이질감이 심했다.

같은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그가 일정 거리를 둔 채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태정의 말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한 명이 나와 그를 향해 되물었다.

“하, 한국인? 한국인입니까?”

“우리말을 알아요?”

“몇 년 전에 서울로 교환 헌터를 4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이곳엔 한국 기지가 없을 텐데요.”

“아. 저는 사냥차 잠시 들린 겁니다. 볼일 보고 막 돌아가려는데, 상황이 심각해 보여서…….”

“그럼 중국 기지와는 상관이 없으신 겁니까.”

“중국 기지요? 저는 살면서 중국은커녕, 중국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뭐 오고 가며 스쳐 지나갔을 수는 있겠지만… 대화를 해 봤다거나 그런 일은 제 기억에 없었던 것 같군요.”

태정의 말에 그가 영어로 사람들을 향해 속삭였다.

“우릴 추격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볼일을 보러 온 한국인이라는 군요.”

“진짜 한국인이 맞아요? 이 오지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혹시 놈들이…….”

“제가 꽤 오래 있었는데, 본토 한국 발음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니얼의 말에 리나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아요. 저도 한국에 친구들이 좀 있는데, 어색함을 못 느끼겠어요.”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을 때, 태정은 그들의 말을 제라드를 통해 전부 듣고 있었다.

‘추격? 혹시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곳에 와서 본 각 나라의 망가진 기지들.

행색을 보니, 무언가 접점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1급 위험지역인 이 레드 존에서 장비 하나 없이 돌아다닐 리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이곳이 어디 그냥 레드 존인가.

지구에서 가장 혹한의 환경에 놓인 오지 중의 오지였다.

솔직히 말해 저 누더기들을 본다면, 몬스터가 아니라 얼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태정이 대충 유추를 해 보고 있는데, 다시 대니얼이 와서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금 사정이 있어서. 참,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독일 기지의 부팀장을 맡고 있는 대니얼입니다. 조금 늦었지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독일이면 저희와 교류가 없는 나라도 아닌데 못 본 것도 아니고 돕고 살아야죠. 그런데 다들 장비도 없이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아, 저희는…….”

대니얼이 말을 우물거리자 태정이 먼저 선수를 쳤다.

“오면서 보니, 기지들이 망가져 있더군요. 독일 기지는 보지 못했지만, 다른 몇몇 기지를 봤습니다.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까?”

“벌써 보셨군요.”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한 건 아닌 것 같던데.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럼 보셨다고 하니 말씀을…….”

막 대니얼이 상황 설명을 하려 할 때였다.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 * *

서울 한산도 본청.

“우리 쪽 인원들의 철수는 다 된 건가.”

길드 서열 1위이자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을 운영해 나가고 있는 대원수 정도진이 물은 말이었다.

그 물음에 비서실장인 김태현이 대답했다.

“예. 화랑을 포함한 10대 길드 모두 철수 완료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피해 상황은?”

“철수 과정에서 약간의 무력 충돌이 있긴 했지만, 저희 쪽 피해는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서쪽 항과 기지들은 모두 봉쇄됐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수복지가 남아 있어, 재편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화랑이 추천해서 들어갔던 인천의 한 길드가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김태현이 그리 말하자 정도진이 영 못마땅하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

“그건 나도 들었어. 내 그렇게 뒤를 봐주지 말라 했거늘. 하여간 화랑 놈들 욕심은.”

“어떻게 할까요? 거의 삼백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규칙을 어기고 들어간 놈들이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이대로 그냥 두기엔…….”

“알아. 내 말은 현 상황에 팀을 파견하기는 어렵다는 거야. 이미 화산이 뒤집혔는데, 중국으로 대규모 수색 병력을 파견하는 건 위험해.”

“그럼…….”

“훈련이 잘된 자들로 몇 명 뽑아서 은밀히 한번 알아봐. 서울에 화산의 헌터들이 들어와 있으니, 그들과 연계를 하면 좀 더 진행을 하기가 수월할 거야. 일단은 생사를 확인한 후에 다시 논의해 보자고.”

“역시. 그냥 지나치시면 대장님이 아니시죠. 알겠습니다.”

“대장이라고 하니 정말 대장일 때가 그립군. 무슨 바람이 불어 대원수를 자청했는지.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그놈의 정이란 게 뭔지. 아주 악질인 놈이야.”

“그래도 대장님께서 그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나라가 운영이 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었다면 벌써 이 나라는 무력으로 쪼개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뭐 그렇게까지나. 참, 그때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사할린 말이야.”

“아. 경황이 없어 보고드리지 못했는데, 알아냈습니다.”

“그래? 대체 어디야?”

“제닉스 길드입니다.”

“제닉스? 제닉스라…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얼마 전에 금사자와 분쟁이 있던 곳입니다. 예전에 클럽에서…….”

클럽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아. 창립식 때 서진이 직접 가서 축사를 섰던?”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도 됐군. 그 작은 길드가…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곳이 그 정도 저력이 되는 길드였나?”

“최근에 스폐셜리스트에 들기도 했고, 정보에 의하면 새로운 히든이 그곳에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히든?”

“예. 얼마 전 금사자도 그를 강제로 영입하려다, 여제에게 개망신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나. 한데, 왜 나에겐 보고가 되지 않은 거지?”

“중재를 갔던 최무혁 대장 선에서 정리를 한 듯싶습니다. 저도 정보를 수집하다 우연히 알게 된 내용입니다.”

“그렇군. 여제가 개입을 했다니. 하여간 한설아 그 여자는 너무 천방지축이란 말이야. 벌써 룰을 몇 번이나 깨고 있는지.”

“딱히 유혈 사태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랬다면 최무혁이 입을 닫았을 리 없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 새로운 히든에 대한 정보는?”

“금사자 최철호에게 들은 말로는 기계를 사용하는 클래스라 하더군요. 한데, 본인도 직접 보지 못해서 아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해서 조만간 제가 제닉스 길드 마스터를 한번 만나 볼 생각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겠어.”

“예?”

“조금 있으면 월드 워 예비 소집이 있을 텐데, 제닉스가 스페셜리스트에 들었다면 그들 역시 참가를 할 터. 그때 보고 내가 직접 물어봐야겠어.”

“대장님께서요?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양새가 그게 더 나아. 서진 그놈에게 껄떡대는 인상을 심어 줄 순 없으니까. 그보다 중국 쪽 동향 잘 살피고 미수복지 일부터 빨리 마무리 짓도록 해. 지금은 그게 가장 시급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 * *

화르륵-!

마법으로 만들어진 화염구를 기준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며칠은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욱여넣고 있는 이들.

그것은 나이 불문,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태정이 보온 박스를 내려다 놓으며 말했다.

“여기 아직 많으니까. 맘껏 드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그들을 뒤로한 태정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헌터들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이게.”

잠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본 태정은 그들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사람이 쓰러져 더 묻지는 못했지만, 대충 대화의 맥락을 짚어 보면 그랬다.

쓰러진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 잠깐 혼절을 한 것.

그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사정을 알아챈 태정은 인벤토리를 열어 자신의 양식을 나눠 줬다.

한 달치 식량을 가져온 데다, 돌아가는 데 이틀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전부를 퍼 줘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사건의 전말을 듣고 싶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머나먼 곳에서의 일이지만, 그래도 들어 봐서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퀘스트가 너무 일찍 끝나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스킬이 몇 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정신없이 탈출을 하느라 뭐가 들어왔는 지 기억이 나지 않던 태정은 이내 스킬 창을 오픈했다.

전투 준비 태세 [3급]

전투력 30% 상승.

개체 수 50% 증가.

대상: AI가 탑재 된 기체 및 로봇.

지속 시간: 60분

소비 마나 1만.

“이게 아까 나올 때 얻은 그거구나. 전투력 30%에 개체 수 50%? 이건 뭐지?”

전투력까지는 이해를 했지만 개체 수에서 막힌 태정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능력인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더 아래로 시선을 가져갔다.

[마르시-1] [휴머노이드]

특성 [MK-22 자동소총]

AI 레벨 [강]

버전: 1세대 군사로봇

공격력 1,500-2,200

기동력 [80] 업그레이드 [1]

제작 시간 1기당 10분.

지속 시간 [반영구적]

소비 마나 8천.

스킬의 내용을 확인하던 태정이 제라드를 불렀다.

“이거 뭐야? 설명 좀 해 봐.”

-기지에서 잡았던 로봇 중 하나입니다.

“그건 나도 아는데. 그럼 그 로봇이 나온다는 거야, 지금?”

-그렇습니다.

“부하… 같은 개념인가?”

-레벨 강의 AI는 기본적으로 주인에게 절대복종을 하니, 그리 보셔도 무방합니다.

“햐. 이제 별게 다 나오네. 잠깐, 그보다 10분당 1기에 반영구적이면 무한대로 뽑아낼 수 있는 거 아냐?”

-이론적으론 그렇습니다.

“오. 그런데 능력치가 좀 많이 아쉽다. 공격력 2,200에 마나 8천을 태우기는 좀 애매하단 말이야.”

-업그레이드로 능력치 및 버전 업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어? 어떻게 하는데.”

-관련 스킬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제작 시간 역시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거 엄청 좋은 거 아냐? 잘만 하면 내 군대가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

당장 보이는 능력치는 보잘것없었지만, 제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생각보다 더 괜찮은 스킬일지도 모른다.

왕창 뽑아내 사용한다면 말 그대로 자신만의 군대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맞아. 근데 이놈은 왜 말이 없냐. 탈출한 지 옛날인데. 어이, 병. 이제 말을 좀 해 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