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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37화 (137/182)

137화

“사람? 얼마나?”

-백한 명입니다.

“수준은?”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장비로 볼 때 최소 750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이한 점은 모두 가슴에 삼각형의 빨간 휘장을 달고 있습니다.

“부대인가.”

뜬금없는 태정의 혼잣말에 대니얼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병력이 접근 중인 것 같습니다. 한 백 명 정도…….”

“병력이요? 어디서…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방법이 있습니다. 혹시 삼각형의 빨간 휘장을 알고 계십니까.”

“서, 설마, 그들이 그 휘장을 달고 있습니까?”

“네. 혹시 아시는 것…….”

태정이 재차 물으려 하자 대니얼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곤 그를 향해 다급히 말을 이었다.

“피하십시오. 당장 피하십시오. 그들입니다. 그들이 저희를 쫓아온 겁니다.”

“그들이라면 아까 말씀하신 봉신방인지 뭔지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간색 휘장은 남부 기지에서도 정예를 뜻하는 표식입니다. 그런 이들이 백 명이면 부대장이 붙어 있을 확률이 큽니다. 부대장의 레벨은…….”

“진정하세요.”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다 공포에 질린 얼굴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태정이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얼마나 남았냐.”

-2km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2km라… 제라드.”

-예. 주인님.

“지금 오고 있는 병력과 맞붙으면 나한테 승률이 얼마나 되지?”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습니다.

“음. 별수 없나.”

중얼거리던 태정은 잠깐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인벤토리를 오픈해 그들에게 포션을 건넸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을 것 같군요. 2km 정도 남았다고 하니, 얼른 도망을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포션까지…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떴다면 도망을 가는 건 무리입니다. 가지고 그냥 가십시오.”

“그래도 해 보는 데까진 해 보셔야…….”

“저희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피하세요. 더 이상 지체하시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니얼의 채근에 태정은 별수 없이 포션을 바닥에 둔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솔직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러 문제가 걸려 있었다.

첫째, 그들의 말이 진짜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검증이 되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편을 들 수는 없는 일.

둘째, 상대의 전력을 100% 알지 못한 다는 것이다.

괜히 끼어들었다 감당 못 할 일이 생겨 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한 수였다.

물론, 드러난 전력만 봐선 충분히 잡을 자신이 있었다.

750에 S급이 붙었다 해 봐야 사할린 작전에 투입됐던 특공대 전력 정도니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몬스터야 수도 없이 아작을 내 봤지만, 아직까지 사람에겐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

만에 하나라도 잘못 판단해 애꿎은 사람이 죽어 버린다면?

그 죄책감은 평생 그가 안고 가야 할 짐이었다.

해서 그는 중립을 지키고 이 상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별수 없어,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니.’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리를 뜨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도와 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상황에, 왜 그들은 본인들의 안위보다 자신을 먼저 챙긴 것일까.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프리지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 안 가? 마나 닳잖아.]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제라드의 말대로 놈들이 750 언저리면 S급이 하나 붙어도 내가 충분히 제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화학탄도 있잖아. 그러고 나서 얘기를 좀 들어 보면…….”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 가기엔 너무 찝찝해서. 이 사람들 말이 진짜 사실이면… 다 죽을 텐데.”

[인생은 원래 가진 만큼 사는 거야. 힘이 없으면 짓밟히고 죽는 게 당연한 거지.]

“말 한번 예쁘게 한다.”

태정이 비아냥거리며 중얼거리자, 이번엔 천신병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이 망령의 말이 맞다.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쓸데없이 일을 키우지 마라. 넌 지금 너 혼자의 몸이 아니다.]

[오호. 너도 바른 말을 할 줄 아는군. 이번 건 좀 괜찮았어, 큰 고철.]

[착각하지 마라. 네년 따위에게 칭찬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니니까.]

“다들 가만 좀 있어 봐. 생각 좀 하자.”

[생각은 무슨…….]

이후에도 둘은 재잘거리며 그를 괴롭혔지만, 태정은 꿋꿋하게 무시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가고.

그의 시야에도 병력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끼어들지 않는 게 맞나.”

태정이 자리에서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니얼의 눈앞으로 일단의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이놈들 분명 살아 있을 거라 했지.”

선두에 선 검은 갑옷의 사내가 중얼거리자,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갈색 머리 사내가 말을 받아넘겼다.

“정말이군. 이 혹한에서 하루를 버티다니. 역시 생명력 하난 질기단 말이야. 이러면 사령관도 할 말이 없겠는데? 죽었을 거라며 놔두라고 하더니. 이렇게 버젓이 살아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걸 알면 말이야.”

“그래도 모른다. 그 꼰대는 성격이 지랄 맞아서. 근무지 이탈한 거 알면 노발대발할 거야. 카메라는 들고 왔지?

“당연하지. 증거는 남겨야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갈색 머리가 싱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거 다시 보게 돼서 반갑군. 난 네놈들이 정말로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사내가 그리 말하자 선두에 있던 대니얼이 입을 열었다.

“그냥 보내 줄 순 없나. 내버려 둬도 살기 힘든 건 너희들이 더 잘 알 텐데.”

“그럴 수야 있나. 네놈들 하나하나가 다 우리 자원인데.”

“우릴 어떻게 할 셈이지?”

“글쎄, 어떻게 할까? 데려다가 몬스터의 먹이로 던져 줄까. 아니면 다시 고기 방패로 쓰일 기회를 줄까. 그도 아니면 여기서 그냥 죽여 버릴까. 고민이 좀 되는군.”

“하나만 묻자. 대체 무엇을 얻자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그건 우리도 모르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니까.”

“이 일이 알려지면 아무리 너희들이라도 뒷감당이 되지 않을 텐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세계를 상대로 이길 순 없어.”

“그거야 네 생각이지. 너흰 우릴 몰라. 기껏해야 중국 변방의 작은 단체 정도로만 알겠지, 화산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아닌가?”

“그럼 다른 무엇이 또 있나.”

“있지. 머리가 있다면 잘 생각을 해 봐라. 우리가 화산을 접수했다고는 하나, 전력의 반이 소실됐다. 우두머리인 장벽거는 죽었고 주축이 되는 수호대 역시 절반이 사라졌지. 여기에 기존에 있던 봉신방이 더해져 봐야 큰 전력이 되지도 않아. 그런데 왜 우리가 네놈들을 건드렸을까. 너희가 모르는, 아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기 때문이다.”

“그게 뭐지?”

“곧 죽을지도 놈이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는군.”

사내의 말에 대니얼의 뒤에 있던 리나가 앞으로 나서며 그를 쏘아붙였다.

“너흰 인간도 아니야.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어.”

“오. 장벽거의 외손녀도 살아 있었나. 하여간 저런 년들이 능력은 없는데 목숨 하나는 질기단 말이야. 하여간 대단해. 제 할애비가 눈앞에서 죽었는데도, 목숨을 구걸해 여기까지 오다니. 나 같으면 그리는 못 하지. 도망을 간 네 아비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나쁜 놈들. 너흰 천벌을 받을 거야. 아니, 세상이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건 그때 가서 보면 알 일이고. 그렇지 않아도 잘됐군. 사령관이 건드리지 말라고 해서 그간 봐줬는데 이곳이라면 보는 눈도 없을 테니,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어.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가지고 놀아 주지.”

사내의 능글거리는 미소에 그녀가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했다.

“마음대로 해 봐. 네놈 따위에게 굴복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원한다면야. 자, 잘 들어라. 이 벌레 새끼들. 죽어 마땅한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저년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게 만드는 놈은 특별히 내 재량으로 살려서 데려가 주겠다. 뭐 가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루 정도는 더 목숨을 연명할 수가 있는 거지. 자, 선착순 3명이다.”

사내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헌터들이 이를 악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닥쳐라. 그런 짓을 할 바엔 자살을 하고 말겠다.”

“악마 같은 새끼. 내게 힘이 없는 게 비통할 따름이다.”

“네놈들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반드시.”

여기저기서 욕이 난무하자, 사내가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역시, 만만하지 않아. 까짓것 좋다. 그럼 유리하게 룰을 변경해 주지. 누구든 저년의 목을 치면 여기 있는 이들을 모두 살려서 데리고 가겠다. 한 명. 단 한 명만 결단을 내리면 되는 거야. 그 한 명이 여기 있는 이들을 모두 살리는 거지.”

“이 개자식이…….”

대니얼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몸을 들썩이자, 리나가 제지하며 그를 붙잡았다.

“개죽음일 뿐이에요.”

“아니, 저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 가만있습니까.”

“냉정하게 생각하자구요.”

“뭘 냉정… 설마? 미쳤습니까?”

리나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은 대니얼이 흥분했다.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 죽을 거라면…….”

“안 됩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그런 것은 원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십시오. 저놈들이 약속을 지킬 것 같습니까?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겁니다. 설령 저 말이 진짜라 해도 그렇게 살아남을 바엔 죽는 게 낫습니다. 다들 안 그렇습니까?”

대니얼의 말에 한 명의 헌터도 빠짐없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갈색 머리의 사내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갈채를 보냈다

“역시, 눈물겨운 동료애야. 목숨을 담보로 남을 생각하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국 놈들도 그랬었지. 제 나라 사람도 아닌데, 무슨 놈의 오지랖인지. 그놈들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

“팔은 F 구역으로, 다리는 빙하 지대로, 몸통은 아타산 동굴로, 머리통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아주 골고루 분배돼 사냥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

“이런 천하의 죽일 놈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네놈들에겐 최소한의 동정이라는 것도 없나.”

“이봐, 말은 똑바로 하자고. 너흰 사람이 아니야, 그냥 벌레지. 자, 이 정도면 충분한 기회를 준 것 같으니, 이제 슬슬 끝내도록 하지. 이봐, 영상 잘 담았지?”

갈색 머리의 말에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수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좋아. 저기 저년 숨만 붙여 놓고, 나머진 다 없애 버려.”

“예! 부대장님.”

갈색 머리의 명령에 대검을 뽑은 사내하나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상황을 즐기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대니얼 등을 향해 다가갔다.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것인지 자리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가지만, 제라드 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알려 주실 겁니다. 다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리나 역시 작은 몸을 포개 그들과 한 몸이 됐다.

그렇게 다가온 사내의 대검에서 붉은빛 오라가 피어올랐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죽거리고 있는 사내.

“우선 네놈부터.”

사내의 검이 가장 선두에 있는 대니얼의 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지이잉-!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서 자색 빛이 치솟으며 사내의 대검을 정면으로 막아섰다.

“아니!?”

놀라기도 잠시.

어디선가 날아든 공격에 울대를 가격당한 사내가 목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동시에 복부로부터 강한 충격이 전해졌고, 사내의 신형이 수 미터를 날아 원래 있던 자리에 널브러졌다.

“큭. 이게 뭔… 쿨럭!”

사내는 피를 한번 토한 뒤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갈 때와 다르게 그의 몸은 이미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동강이 나 널브러진 사내.

하지만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대니얼을 향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정체불명의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놈들, 인간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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