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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49화 (149/182)

149화

한서연을 부축해 나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태정은 1901호를 눌렀다.

잔뜩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

넘어지지 않게 단단히 허리를 감아 고정시킨 태정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좌측에 있는 1901호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서 침대에 그녀를 눕힌 태정은 이불을 반쯤 덮어 준 뒤, 소파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긴 비싼 이유가 있구나. 명도 못지않게 잘돼 있네.”

한동안 주변을 구경을 하던 그가 시간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한서연의 앞으로 가 말했다.

“저 갑니다.”

태정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 하자, 그녀가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흐응.”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태정의 팔을 붙잡았다.

“가지 마, 오빠.”

“흠.”

“흐응. 나 혼자 무서워.”

“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뿌리치자니 너무 매정한 것 같고, 있자니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그때, 프리지아의 조언이 들려왔다.

=합체다, 합체.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이걸 보고도 몰라? 저 여자가 단추 3개 왜 풀었겠어?

“단추라니?”

그러고 보니 분명 눕힐 때까지 채워져 있던 블라우스의 단추가 3개나 풀어져 있었다.

하지만 태정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답답하니까 풀었겠지.”

=와… 할 말이 없네. 큰 고철 말 좀 해 봐. 이럴 땐 왜 아무 말도 없냐.

[이걸 꼭 말로 해야 아는 건가.]

“말로 해 봐, 뭔데?”

[내 데이터에 의하면 이건 같이 밤을 보내자는 시그널일 확률이 98.5%다. 그 증거로 저 여자는 지금 정신이 아주 멀쩡한 상태지. 심박수와 뇌파만 봐도 알 수 있어. 저건 취한 게 아니다.]

=내 말이.

“그러니까 너희 말은 지금 고작 두 번 본 나한테, 호감을 표시한다? 그것도 정식으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

=호감이 아니라 이 정도면 구애다, 구애.

“에라이, 너희가 그래서 하나는 망령이고, 하나는 고철인 거야. 내가 말해 줄까? 이건 그냥 잠꼬대 같은 거야.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겪어 온 내 실전 데이터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 그리고 하나 더. 사람에겐 너희들은 알 수 없는 감이란 게 있다. 특히 연애에 대한 건 극도로 예민해서 누가 말을 해 주지 않아도 몸이 본능적으로 느껴. 근데 여기에선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 왜냐고? 이건 그냥 술에 취해 하는 흔한 인간들의 잠꼬대일 뿐이니까.”

=그냥 네가 여자 인간을 못 만나 봐서 그런 건 아니고?

프리지아의 말에 태정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여자를 중1 때부터 6년을 만났다. 그때 이미 여자에 대한 건 모두 통달했어. 눈빛, 손짓, 발짓 심지어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 상대가 뭘 원하는 지. 그러니 연애도 못 해 본 너희가 하는 말은 내 입장에서 그저 가소로울 뿐이지.”

[글렀다.]

=내가 안 덮쳐진 이유가 있었네.

포기를 한 것인지 더 이상 그들은 말이 없었다.

태정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한서연의 팔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그리고 떼어 내려는데,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클래스가 나이트라고 했던가. 역시 완력이 장난 아니네.”

결국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 겨우 팔을 뺀 그가 이불을 고이 덮어 주곤 객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나가고 얼마 뒤.

취해서 누워 있던 한서연이 슬며시 일어났다.

몽롱하던 눈은 온데간데없고 또렷하게 빛을 내고 있는 생기 있는 눈.

그런 그녀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나?”

나름 신호를 보낸다고 보낸 것인데, 그는 넘어오질 않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단추 3개로는 부족했을까.

한서연은 식당에서부터 객실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해 봤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어. 그런 분이 쉽게 넘어올 리가 없지.”

한서연은 유태정이란 인간의 반쪽이 되고 싶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정에서 돌아오던 날.

영지전에서의 활약을 들은 그녀는 복귀를 하면 꼭 한번 그를 만나 보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아버지가 극찬을 하며 통신까지 보내온 것일까.

처음엔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배가 좌초되면서 문제가 생겨 버렸고,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그 생각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만이 가득했던 상황.

그때, 거짓말처럼 그가 나타났다.

당시에 본 태정의 모습은 가히 영웅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길드 1군들이 모두 나와 있는 상황에, 주도적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그녀의 눈엔 참으로 멋있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겨 살피는 그의 세심함과 넘치는 배려는 그런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능력도 좋은데 사람 자체도 괜찮으니,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신랑감의 표본이 아닐까.

“꼭 마음에 들어서 그를 차지하고 말겠어.”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을 하는 그녀였다.

* * *

다음 날 오전.

훈련소에 들러 검술 교육을 받은 태정은 점심을 먹고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지하 3층의 연무장.

텅 빈 훈련장을 한번 훑은 그가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며 착석했다.

“그럼 어디 그 잠재의식이란 걸 한번 깨워 볼까.”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눈을 감고 스킬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 관자놀이 부근에 작은 칩 2개가 생겨나더니 이내 흡수하듯 사라졌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그의 내면에 실 낱같은 기운 하나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로봇 기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겨우 인지만 할 수 있을 정도.

그것은 시커먼 바탕에 시커먼 선 같은 것이었는데, 그 경계가 뚜렷이 보이진 않고 왠지 검은 바탕에 선이 보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지금 보고 있는 이 시커먼 바탕이 바로 무의식의 구조였다.

자각 칩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드러낸 잠재의식의 배경.

이 어둠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비로소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며, 천신병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중이란 말이 너무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해서 태정은 일단 뚫어지게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될 것이란 생각은 없었기에, 우선은 보일 듯 말 듯 한 선부터 잡으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갖 잡생각이 의지에 상관없이 계속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걸 끊어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걸 의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하나도 안 보이네. 뭐야? 벌써 2시간이나 지났어?”

시계를 보니 무려 2시간이나 흐른 상태였다.

상당한 시간 동안 집중했다는 뜻.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 배경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생각보다 막연하네. 무의식의 집중이라. 의식이 없는 상태여야 하는데 집중을 해야 한다… 참 복잡하다 복잡해.”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지만, 태정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첫날.

카이저와 약속한 날이 89일이나 남아 있었다.

다시 눈을 감은 그가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수련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역시, 쉽지 않아. 윤곽조차 안 잡혀. 방법이 이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태정이 오늘 수련의 소감을 중얼거리자, 비아냥대는 카이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넌 벌써 특이점을 맞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게 그거랑 관련이 있나 보지?”

[아주 상관이 없진 않지.]

“그래? 그럼 더 노력을 해야겠는데. 우선은 저것부터 마무리를 좀 짓고.”

훈련장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들어온 태정은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했다.

비밀리에 로봇 군단을 양성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거의 대부분의 스킬이 오픈되어 있는 상황에, 비밀 전력 하나 정도는 숨겨 놓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

돈은 제주도에서 번 것으로 충분했다.

“가평이나 양평 정도가 괜찮을 것 같은데. 여긴 오만 곳이 다 들어서 있으니 어려울 것 같고, 원주 정도가 적당하려나.”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하니 길드 본부가 있는 남양주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

가평과 양평이 딱이었지만 이곳은 이미 많은 길드가 들어와 있어 은밀한 장소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여건들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나온 것은 원주와 제천이었다.

주변에 길드가 적으면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만한 곳.

당장 그의 눈에 2개의 매물이 들어왔다.

원주에 있는 의류 공장과 제천에 있는 헌터 교육 시설.

서울권이 아니라 가격도 450억과 380억으로 저렴한 편에 속했다.

“둘 다 부지도 넓고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가 볼까.”

모처럼 차를 타고 외출을 한 태정은 부동산을 찾았다.

먼저 간 곳은 제천에 있는 2개짜리 건물이었다.

랭킹 100위권 밖의 길드가 사용했던 시설로 지금은 본부를 이전해 방치가 된지 오래된 곳.

그만큼 건물의 내‧외관은 그리 좋지 못했다.

부동산에서도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 것인지, 그가 갔을 때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대부분은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헌터들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인데, 부동산 업자를 보고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자신들의 할 일을 하기에 바빴다.

‘여긴 좀 그러네.’

대충 한번 훑고 나온 그는 다음으로 원주 공장을 찾았다.

넓은 부지에 얼마 전까지도 돌아가고 있던 의류 공장.

두 곳을 모두 돌아본 태정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의류 공장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천에 있는 건물의 경우 방치된 지가 오래라, 주인이 들어서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사용을 하자니, 보안이 좋지 않았다.

그가 건물을 둘러볼 때만 해도 이미 수십 명의 헌터가 그곳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게다가 주변 환경도 그리 좋지 못했다.

가까이 붙어 있는 길드는 몇 없지만, 사냥터가 있어 오고 가며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반면 의류 공장은 산업 단지에 있어 주변으로 공장이 수백 개가 존재했다.

매물로 나와 있는 곳만 해도 수십 곳.

그중 저렴한 편에 속하는 의류 공장은 주변 환경에 조용히 묻어가기 좋았다.

“여기로 하자. 지상은 그대로 두고 지하에선 로봇 공장을 차리는 거지.”

태정은 제주도에서 얻은 마정석을 처분해 450억에 공장을 인수했다.

그런 그에게 공장의 전 주인이 물었다.

“그런데 무슨 사업을 하시려고 공장을 인수하신 겁니까?”

“사업 안 합니다.”

“그럼……?”

“묵혀서 나중에 땅값 오르면 더 비싸게 팔려고요. 한 700억 정도?”

“아. 예…….”

전 주인은 태정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450억도 내리고 내려 겨우 팔린 것인데, 700억이라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없나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태정이 바라는 생각이었다.

단순히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공장을 인수한 전형적인 부동산 투자자.

지금 그에겐 그런 인식이 필요했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아도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이제 나만의 군대를 한번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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