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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152화 (152/182)

152화

제라드의 말에 따르면 무의식의 구조는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넓다고 했다.

그 안에서 천신병이 잠들어 있는 방을 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부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잠재의식을 개방해야 했다.

어젯밤 그가 본 것은 그 구조의 일부분이었다.

천신병인 카이저가 잠들어 있기도 한 곳.

구조는 들여다봤으니, 이제는 돌아다니며 찾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어제와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

카이저가 말하길 3년.

제라드는 2년이라 했다.

카이저야 워낙 무시를 하니 거르고 듣는다 해도, 제라드의 말은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시리우스가 설계해 놓은 인공지능.

그가 2년이라 하면 정말 2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어젯밤 일어났다.

조금 꺼리는 일이긴 해도 시간을 10배 이상 단축시킬 수 있다면, 그까짓 거야 몇 번이고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박세아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서 도와 달라 해야 하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 말했다간 변태 취급이나 당하겠지.’

헌터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구조란 것을 일반인인 그녀가 받아들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사 이해를 한다 해도 문제였다.

이걸 해야 하니 당분간 같이 잠을 좀 자자.

이 무슨 되도 않는 소리란 말인가.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다면 모를까.

있는 대로 이미지 구축은 다 해 놨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던지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태정이었다.

“하아. 난감하네.”

사무실에 앉아 한숨을 쉬는 그를 향해 프리지아가 조언했다.

=걔는 네 종이나 다름없는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냐.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종이라니, 말 좀 가려서 해라. 넌 너무 말을 생각 없이 해.”

=생각은 네가 없는 거고. 그냥 당분간 같이 자자 그래. 돈은 두둑이 챙겨 준다 하고. 공짜도 아니고 대가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돈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거야. 그리고 걔한테 그러기 싫어.”

=아주 성인 나셨네. 그러면 어쩔 건데? 정말 2년간 버티려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생각 중이다.”

어젯밤 일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태정이었다.

2년. 정석으로 가면 최소 2년이었다.

그사이 감당 못 할 적이라도 만난다면, 스킬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못한 후회가 천추의 한이 되어 남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있는 스킬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건 심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카이저를 얻은 지도 벌써 20여 일.

로봇 기지에서 봤던 그 전율이 일던 놈의 모습을 2년간 참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2년도 죽어라 수련에 매달렸을 때의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냥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에, 그 기간의 성장도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척 말이나 한번 꺼내 볼까.”

태정이 그냥 해 본 말에 프리지아가 반응했다.

=잘 생각했어. 안 되면 마는 거지.

“안 되면 마는 거라…….”

=그래. 강제도 아닌데 뭐가 문제야. 넌 너무 생각이 많은 게 탈이야. 누가 너한테 같이 자자면 어쩔 거야?

“거절하거나 마음에 들면 승낙하겠지.”

=기분 나빠?

“아니?”

=그거야. 그냥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고.

“그러고 보니…….”

프리지아의 논리에 설득당한 태정은 어느새 박세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근데 네 도움이 좀 필요해서.”

“제 도움이요? 뭐든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이게, 네가 듣기엔 황당한 얘기일 수도 있어서. 약간 정신 나간 소리 같기도 하고. 말을 꺼내기가 민망하네.”

“어떤 건데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랑 가구 하나를 공유해서 같이 좀 쓰면 어떨까 하는데.”

“가구를 공유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

그 시선을 피한 태정이 입을 달싹이다 대답했다.

“그러니까 가구를 같이 쓰자는 거지.”

“음. 집에 있는 게 다 보스 소유인데, 왜 저한테 허락을 구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집에 새로 가구가 들어오나요?”

“그니까 내 말은… 그게 그러니까…….”

말을 질질 끌던 태정이 눈을 질끈 감으며 결국 핵심을 내뱉었다.

“한 침대를 쓰자는 얘기야.”

“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 침대를 쓰자는 말.

그것은 같이 잠을 자자는 뜻이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태정이 바로 뒷말을 이었다.

“물론, 거절해도 돼.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부탁이니까. 단칼에 잘라도 상관없어.”

“갑자기 왜 그런…….”

“이게 설명하기가 좀 곤란한 문제라. 무의식의 스킬이라는… 하. 역시 무리겠지? 미안하다. 내가 아무리 눈이 멀었다지만 이런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자. 내가 잠깐 미쳤었나 보다.”

태정은 괜히 말을 꺼냈다 싶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소환에 눈이 돌아도 정도가 있는 거지.

좀 더 일찍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 태정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박세아의 대답은 그의 귀를 의심케 할 만했다.

“그렇게 할게요.”

“뭐?”

“같이 쓸게요.”

전혀 예기치 못한 그녀의 대답.

욕을 퍼먹어도 할 말이 없다 생각했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인사고과 때문이면 그럴 필요 없어. 이건 그거하곤 전혀…….”

“할게요.”

“정말 괜찮겠어?”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요하신 일이잖아요.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지 표정에서부터 다 보여요. 그게 꼭 필요하신 거면 전 기꺼이 도와드릴 수 있어요.”

“하. 이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막상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니 말이 나오질 않는 태정이었다.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

그런 그를 향해 그녀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그럼 안방으로 이사하면 되는 거죠?”

“어? 어. 뭐… 그렇게 하면 되긴 한데. 진짜 괜찮아?”

“설마 보스가 절 잡아먹기야 하겠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절대 없지.”

“그럼 저는 마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어. 그래… 일 봐.”

박세아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그가 이마를 짚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그런 그를 프리지아가 비웃었다.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꼴값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괜히 옆에서 긁어 가지고. 이제 쟤가 나를 뭐로 보겠냐.”

=뭐로 보긴. 비서나 따먹으려는 속이 시커먼 상관으로 보겠지.

“당장 꺼져.”

=갈 때 되면 알아서 가. 근데 그 말은 왜 안 했어? 그게 핵심인데.

“또 뭐?”

=좀 만져야 집중이 잘되잖아.

프리지아의 말에 태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럼 내가 쟤한테, ‘근데 사실 내가 널 좀 만져야 집중이 잘될 거 같아서’ 이딴 되도 않는 개소리를 내 입으로 하라고? 그리고 만진 게 아니라, 그냥 끌어안은 것뿐이었어. 말은 똑바로 해야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걔가 날 끌어안은 거고.”

=그게 그거지. 그래서 안고 잘 자신은 있고?

“몰라. 일단 보일러를 꺼 볼 생각이다.”

그날 저녁.

같은 시간 퇴근을 해 집에 들어온 박세아와 태정은 밥을 먹고 각자의 공간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태정은 사냥터에 대한 정보를.

박세아는 오늘 일에 대한 마무리를.

하지만 둘 모두 그런 것 따위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잠시 후 있을 합방 때문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걸까.’

앞에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현재 박세아의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말은 스킬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이런 것이 스킬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헌터가 아닌 일반인의 신분이라지만, 취급 등급이 높아 어지간한 헌터들조차 모르는 정보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잠을 자 얻어지는 스킬에 대한 것은 듣도 보도 못한 박세아였다.

‘설마 몸을 원하시는 건가.’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려 왔다.

사실 비서가 되면서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대부분 그렇게 살고들 있으니까.

그것이 다른 이들보단 조금 늦게 온 것뿐이었다.

생각을 하던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상관없어. 보스가 원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이렇게라도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방 안에선 태정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건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못할 짓이야.”

=그럼 들어오자마자 보일러는 왜 껐냐.

“좀 조용히 해 봐라,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으니까.”

=어차피 합체를 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고민해? 이건 너한테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라고. 2년이면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시간이야.

그녀의 말에 제라드가 처음으로 거들고 나섰다.

-그건 프리지아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2년은 이 시스템 안에서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주인님께서 어떤 것을 우려하고 계신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그건 내 입장에서지. 쟤는…….”

태정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때.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저 박세아인데요. 들어가도 될까요?”

“어. 괜찮아.”

문이 열리자 생전 처음 보는 옷을 입은 박세아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원피스인지 뭔지 모를 굉장히 얇은 소재의 잠옷.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가여워 보였다.

“그 옷은 뭐야? 못 보던 건데.”

“이건 교육대 졸업할 때 받은 잠옷… 이에요.”

“…그래? 불편해 보이는데. 그냥 티에 바지가 낫지 않겠어?”

“이상해요?”

“그런 건 아닌데. 너 편한 대로 해.”

“그런데 방이 좀 추운 것 같아요. 분명 오자마자 돌렸는데. 보일러 좀 올릴까요?”

“이불 덮으면 괜찮… 을 거 같은데.”

“아. 네…….”

그 대화를 끝으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한 얼굴의 두 사람.

그런 태정을 향해 프리지아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뭐 해? 무슨 신혼 첫날밤 보내냐?

가볍게 무시한 태정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었다.

“그럼 이제 잘까?”

“네.”

“네가 안 쪽에서 자.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딸각.

불이 꺼지고 그녀와 태정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방 안.

어제와 다르게 박세아가 깨어 있다고 생각하니, 더 긴장이 되는 태정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심장은 또 왜 이렇게 뛰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긴장이 되는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고나 할까.

바로 그때.

그의 내면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사각형 안에 놓인 미로였다.

무의식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인다. 그냥 이렇게만 있어도 보이잖아?’

기쁨도 잠시.

미로는 마지막으로 봤던 그 모습에서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색이 옅어져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 그의 품으로 불쑥 들어왔다.

좋은 샴푸 향과 살 내음.

박세아였다.

“…….”

태정에게로 몸을 밀착시킨 그녀는 떨고 있었다.

지금쯤 박세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손이 심하게 떨고 있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미안.”

“아녜요. 처음이라서…….”

“역시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도저히 못할 짓이다 싶은 그가 그녀를 돌려보내려는데.

일어나려는 그를 박세아가 꼭 끌어안았다.

이후 그의 상식을 뒤엎는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입술을 포개며 입안을 휘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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