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야. 정신 차려, 인마.”
때리고 흔들고 아무리 불러 봐도 감긴 그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이러려고 데리고 온 것이 아닌데.
그의 눈이 금세라도 터질 듯 글썽였다.
“아… x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오지 말라고 말 한마디만 했으면, 이 꼴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순간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태정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최다솜이 달려왔다.
“잠깐만.”
망연자실해 있는 그를 뒤로하고 그녀가 한상진의 맥을 짚었다.
‘아직 살아 있어.’
손에 든 무언가를 한상진의 입으로 집어넣는 그녀.
“뭐야?”
“가지고 있던 회복약이야. 일단 죽진 않았어.”
“그럼……?”
“어떻게 될진 나도 몰라, 워낙 상처가 깊어서. 그보다 이제 그만하자. 내가 어떻게든 잘 말해 볼게. 이 사람 살려야 될 거 아냐.”
최다솜의 말에 태정은 대답 대신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자신이 너무 한심했기 때문이다.
약해서 한심했고, 계획도 없이 들어온 것이 한심했다.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것일까.
한설아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역시도 금사자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을 했던 것일까.
자만심이 문제였다.
그사이 총대장 이기영이 김용진을 힐끗 바라봤다.
마무리를 지어도 되겠냐는 눈빛.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기영의 신형이 천천히 하강했다.
그렇게 지상에서 마주하게 된 그들.
먼저 입을 연 건 최다솜이었다.
“대장님, 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끌어들인 것이니, 그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2공대 부대장,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네?”
“마스터에게 문제가 생겼을 시, 그 전권을 위임받게 되는 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잘 알고 있겠지? 길드 1호 규칙이니까. 애석하게도 그 대리인 부단장은 널 더 이상 금사자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인즉, 너 또한 이들과 같은 운명이라는 얘기지.”
“하지만 한 번만 더…….”
“고통 없이 보내 주겠다. 그게 한때 상관이었던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다.”
“지랄하고 자빠졌군.”
묵묵히 듣고 있던 태정의 대답이었다.
찌이익-!
거적을 찢어 한상진의 상처 부위를 압박한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사람 죽이는 데도 예우가 있나?”
“호오. 전의를 상실한 줄 알았는데. 아직 할 생각이 남아 있나 보지?”
“내 수하가 당하고 친구가 죽게 생겼는데, 병신처럼 찌그러져 있을 순 없지. 마지막 전투가 될 것 같은데 공중전으로 하지. 어떤가.”
태정의 제안에 이기영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곧 죽게 될 테니, 미리 작별 인사나 나누고 올라오라고.”
그의 신형이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태정이 최다솜을 향해 말했다.
“그 사람을 부탁할게.”
그 말을 끝으로 태정은 곧장 기체와 아이언 스피어를 동시에 소환했다.
순식간에 거대 기체가 드러나자, 떠오르고 있던 이기영도, 내려다보고 있던 김용진도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희한한 물체군.”
“저게 비밀 병기인가.”
문제는 그것에 대한 호기심만 생겼을 뿐, 전혀 걱정 따위를 하지 않고 있단 것이었다.
“제라드, 좌표 반반씩 나눈다.”
-설정 완료되었습니다.
발사대가 각도를 잡고 있을 때까지도 김용진 등은 흥미롭단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총대장 이기영의 머릿속에 하나의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대공미사일을 쓴다고 하더군요.]
“부단장님! 피하십시오!”
“……?”
“쏴.”
태정의 명령에 발사대에서 유도 미사일이 출격하기 시작했다.
총대장과 다르게 태정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김용진은 그제야 그것이 공격임을 인지했다.
어떻게 저 덩치가 하늘로 솟을까만 생각하고 있던 그에겐 전혀 뜻밖의 상황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미사일을 보며 둘 모두 동시에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아이언 스피어는 요격 유도 미사일.
방향을 바꿔 곧장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먼저 위기가 온 것은 이기영이었다.
미사일의 속도가 워낙 빨라 순식간에 잡혀 버린 것이다.
“이, 이런 치사한…….”
공중전을 하잔 말에 방심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쾅! 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여러 발의 미사일이 연이어 폭발을 일으켰다.
동시에 좌측 하늘에서도 굉장한 폭음이 들리며 거대한 폭운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정은 즉각 기체를 해제하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시커먼 연기를 물고 하나의 물체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기영이었다.
너무 찰나의 순간에 당해 제때 방어기를 전개하지 못한 것이다.
“됐다. 한 놈은 처리했고. 나머지 한 놈은…….”
좌측 하늘 폭발의 진원지를 바라보고 있던 태정은 시커먼 연기를 뚫고 튀어나온 금빛 광채를 볼 수 있었다.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기영과는 다르게 매우 멀쩡한 상태였다.
역시 히든은 히든이었다.
“괴물 같은 새끼.”
그런 그를 향해 김용진이 재미있다는 듯 다가왔다.
“설마 지상에서 공격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군. 총대장과 얘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방금은 너무 비열한 것 같은데.”
“이 대 일인데 비열이 문젤까. 더한 것도 할 수 있지.”
“그래. 네 말도 맞아. 한데, 그게 회심의 공격이었던 것 같은데, 날 못 잡아서 어떡하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나 보군. 방금 그건 인사였다.”
“인사?”
“내 수하를 저 꼴로 만든 놈을 미사일 따위로 편하게 보내 줄 순 없지. 넌 내 손으로 박살 낸다.”
“입만 살았군.”
김용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태정을 향해 날아들었다.
탕! 타탕!
검과 검이 사선에서 맞부딪쳤다.
이미 그와의 전투로 인해 현격한 차이를 체감한 태정은 스피어 블레이드를 2개로 나눠 사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공격을, 하나는 방어를.
하지만 아무리 열을 내고 정신을 집중해도 실력차를 극복하기엔 둘 사이의 레벨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한상진은 700이라도 됐지, 그는 600레벨대.
거기다 원거리 특성인 그가 근접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소드 마스터를 검으로 상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크윽.”
몇 번의 합을 주고받던 태정의 신형이 허공에 나동그라졌다.
그런 그를 향해 날아드는 회심의 일격.
서걱-!
“윽.”
태극 1호의 장갑이 찢어지며 그의 좌측 어깨가 훤히 드러났다.
안까지 베인 것인지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상태.
하지만 그는 고통조차도 느낄 새가 없었다.
재차 날아든 공격이 그의 머리를 향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슉!
겨우 몸을 틀어 피한 태정의 가슴이 찢어지며 벌어진 틈새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만신창이가 된 태극 1호.
제라드의 경고가 울려 퍼졌다.
-태극 1호의 내구도가 6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공격을 허용할 시 비활성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태정은 이를 악물고 김용진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슴이 턱 막히며 답답함이 밀려들었다.
이기고 싶었다.
아니,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최다솜과 한상진의 목숨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현재 자신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그들을 구할 힘이 없었다.
모두를 구할 힘이.
“으아아! x발.”
갑자기 분노가 차오르며 그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그의 마구잡이식 공격이 시작된 것은.
어차피 질 것이라면 방어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한 방. 단 한 방이라도 놈의 몸에 상처를 내고 싶었다.
휙! 휘익! 휙!
태정의 쌍검이 사방을 어지럽히며 김용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절박한 모습에 그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마지막 발악인가.”
가볍게 모든 공격을 차단한 김용진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공격에 들어갔던 태정의 블레이드가 만세를 부르고,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가슴이 드러났다.
정확히 그곳을 노리고 들어오는 김용진의 금빛 오라.
태정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피어났다.
‘이렇게 끝인가. 이렇게 병신처럼…….’
순간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포터에서 헌터가 되기까지.
동생과 친구, 길드와 클럽.
최다솜과 수하 한상진까지.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보스.’
박세아가 있었다.
그때였다.
지잉-!
그의 뇌에 심어진 자각 칩이 무언가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세 존재가 입을 열었다.
=이거 설마.
[막아.]
-위험합니다.
그 말은 태정에게 닿지 않았다.
‘이게 뭐지?’
태정은 눈부시게 새하얀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금사자 본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그가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오게 된 것일까.
의문은 잠깐이었다.
사방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기계들.
마치 군사 창고에 들어온 듯 온갖 것들이 죄다 나열되어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 테고. 너무 생생하잖아.”
뭔가 싶어 몸을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그의 전방으로 거대한 스크린이 오픈됐다.
영상은 어느 지점의 상공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사내 둘.
놀랍게도 그것은 조금 전까지 사투를 벌이던 자신과 김용진이었다.
“저게 왜… 아니, 내가 왜 여기…….”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저 영상은 대체 누가 찍어 놓은 것일까.
영상 속 자신은 비명을 지르며 김용진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미 봤던 모습.
당연히 김용진은 그것을 가볍게 막아 냈고, 쳐 내진 스피어 블레이드가 들리며 가슴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그 틈을 완벽하게 노리고 들어오는 김용진의 일격.
저기까지가 자신의 기억이었다.
‘저렇게 맞고 죽은 건가, 피했어야 되는 건데.’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데, 영상은 검이 가슴을 가르기 직전에 멈췄다.
동시에 그의 앞으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이건 또 뭐야?”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팔찌였다.
무엇인가 싶어 손을 가져가자.
지이익-! 칙!
“뭐, 뭐야?”
마치 살아 있는 듯 팔찌가 자동으로 그의 팔에 채워졌다.
이게 뭔가 싶기도 잠시.
멈춰 있던 영상이 다시 시작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상 속 자신이 김용진의 일격을 피해 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뒤까지 점해 버린 것이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난 저렇게 움직이는 기술이 없는데?”
태정이 의문에 젖어 있을 때.
한쪽에서는 프리지아 등이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일 났다. 이 꼬마, 벌써 가져다 쓰기 시작했어.
[거길 어떻게 찾아 들어간 거지?]
-뭔가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시리우스 이 바보 같은 놈. 이리도 허술할 줄이야. 옛 성도 72좌였던 타이틀이 아깝군.
-시리우스 님의 설계는 완벽했습니다.
=완벽한데 이따위 오류가 생겨? 원인이 뭐야?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무의식을 개방하는 데 사용한 편법이…….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3년짜리가 두 번 만에 되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닐 텐데? 진즉에 나가서 도왔다면 여기까지 오는 일도 없었잖아.
[내가 몇 번을 불렀다. 근데 갑자기 폭주해 날뛰느라 듣지 못한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지금 누구 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대로 둔다면 특이점을 맞지 못한 주인님의 신체로는 얼마 버티지 못해 죽고 말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놈이 죽으면 다 끝나는 건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
=멍청한 놈아, 이놈은 지금 시스템상 없는 기술을 쓰고 있는 거야. 시리우스의 설계를 벗어난 상태란 말이지. 이 말이 뭔지 몰라? 빨리 막지 않으면 성도에 있는 놈들이 이 일을 알아차릴 거란 말이다. 벌써 가드에 걸렸을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