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빠르게 남양주를 벗어나 포천에 이른 태정은 레드 게이트가 있는 해당 장소에 도달했다.
타오를 듯 이글거리고 있는 새빨간 포털.
무려 3,500억 원을 들여 매입한 고가의 게이트였다.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들어간다.”
자신감 있게 내부로 들어선 태정은 자료에 나온 대로 거대한 산을 기대했다.
하지만 드러난 배경은 숲속 어딘가였다.
좌우 사방 어딜 봐도 나무와 풀이 빼곡히 늘어진 울창한 밀림.
아무래도 들어가는 게이트에 따라 위치 차이가 있는 듯해 보였다.
“자료가 다 맞진 않네. 뭐 어디서 시작하든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태정은 일단 이곳이 어디쯤인지 살피기로 했다.
우선 그전에.
“제라드, 입구 좌표 찍어 놔. 나중에 못 찾을라.”
-입력 완료했습니다.
좌표를 저장한 태정은 바로 블라스터를 이용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후방으론 얕은 내리막이, 전방으론 끝없이 솟은 숲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크긴 크구나. 정상이 아예 안 보여.”
상당한 고도까지 올라가 너머를 보던 그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그렇게 현 위치를 확인한 태정이 더 높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b6-1이 떠 있는 자리.
그가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거긴 뭐 좀 보이냐?”
-숲이 너무 울창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특이 사항이나 몬스터 따위가 보이면 바로 얘기해 줘.”
-알겠습니다.
제라드의 대답과 동시에 다시 대지를 밟은 태정은 저공비행을 하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앞을 치고 나가며 몬스터들을 찾고 있는 그의 계획은 간단했다.
최대한 많이 모아 한 방에 정리하는 것.
일단 소이탄부터 쓰고 볼 생각이었다.
이미 이전 사냥터에서 그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역시 자신이 있었다.
아마 준보스 이상 되는 놈들을 제외하면, 깡그리 잡아 족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나아가기도 잠시.
그의 눈에 첫 번째 몬스터가 포착됐다.
양손에 낫 같은 발톱이 인상적인 뱀 대가리.
흡사 히드라와 같이 생긴 녀석은 생각보다 덩치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약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저게 피리아란 놈인가. 겉보기에는 블루도 안 될 것 같은데.”
한눈에 보기에 검으로도 썰 수 있을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일단 한 놈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는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좌앙-!
자색의 빛이 솟아나고.
이내 그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반월형의 플라즈마가 놈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그것은 그대로 직격을 하며 놈의 몸통을 가르는 듯했다.
하지만.
펑!
한차례 소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플라즈마.
당연히 놈은 멀쩡했다.
“역시 예상한 대로야. 파괴력 1만은 티도 안 나지. 그럼 이건 어떠냐.”
이번엔 그의 신형이 쏘아졌다.
방출된 플라즈마는 블레이드 파워의 절반.
애초에 태정 역시 먹힐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한 마리밖에 없기에 잠깐 놀아 보려는 것.
빠르게 거리를 좁힌 그가 놈의 코앞에 도달했을 때, 피리아의 낫 같은 발톱이 태정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샥!
가볍게 피한 뒤 일 검.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이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그 순간 들어오는 놈의 발톱.
몸을 물리며 공격을 피한 그가 다시 일 검을 내질렀다.
탁!
이번 역시도 검은 목도로 바위를 내리친 것처럼 무력하게 튕겨져 나왔다.
‘방어력이 무슨…….’
솔직히 상처 정도는 줄 수 있을 줄 알았던 태정이었다.
블레이드가 보통 무기도 아니고, 무려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검.
오러와도 맞먹는 공격이었다.
한데 기스조차 낼 수 없을 줄이야.
하지만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늘은 근접전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 일단 이놈을 데리고 다니자. 달고 다니면, 하나둘 기어 나오겠지.”
놈과 속도를 맞추며 숲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둘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놈의 가족들.
이곳은 피리아의 영역인 듯했다.
다른 놈들은 보이지가 않는 상황.
벌써 그의 후방으론 수백에 달하는 뱀 대가리가 그를 맹렬한 속도로 쫓고 있었다.
하나 태정은 아직도 사냥을 할 생각이 없었다.
더, 더 많은 놈이 필요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모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
이래 가지곤 5급보다 효율이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최소 5천 마리는 모아야 하는데…….’
최소가 5천이었다.
12시간 쿨이면 한 번의 사냥에 한 번을 사용하는 것이 고작.
그 기회를 살리려면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불어나는 숫자를 보니,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아 보였다.
자료에 나와 있던 그 많은 몬스터는 대체 어디로 다 숨어 버렸단 말인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태정은 mk4를 소환했다.
총이라도 난사해 어그로 범위라도 늘려 보려는 것.
그때부터 사방에 빛의 탄환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타타탕! 타탕! 타타타탕! 탕!
엄청난 연사로 뿜어지는 빛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몬스터들.
대성공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할 만하지. 쑥쑥 불어나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하던 몰이가 다시 활기를 찾고, 어느덧 그의 후방엔 천 마리 이상 되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참을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어그로를 끌던 태정은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가 늘어나질 않자,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제라드, 숫자 늘어나고 있는 거 맞아?”
-몰이의 규모가 너무 커 가장 후열부터 흩어지고 있습니다. 숲의 특성도 고려를 하셔야 합니다.
“대충 몇 마리 정도야 지금?”
-3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3천이라, 3천이면 좀 아까운데… 그래도 6급이니까. 오늘은 이 정도에서 스타트를 끊어 볼까? 제라드, 주변에 봉우리나 바위 언덕 따위가 있으면 얘기해 줘. 기체 하나 정도는 고정시킬 수 있는 곳이어야 해.”
-알겠습니다.
직접 올라가 찾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올라가는 순간 어그로는 풀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아 놓은 몬스터는 모조리 흩어질 테니까.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제라드로부터 보고가 들려왔다.
-이곳으로부터 전방 1.5km 부근에 작은 석벽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튀어나온 턱이 하나 있습니다. b6-1을 통해 내려다본 결과, 충분히 기체와 대형 무기를 소환하고도 남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좋아. 난 이놈들 계속 끌어야 되니까, 네가 됐다 싶으면 신호 줘. 바로 올라갈게.”
제라드와 분업을 하며 몬스터 군단을 이끌고 나아가던 태정이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싶을 무렵.
-지금입니다.
제라드의 신호에 곧장 그가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정말 그의 말대로 턱이 하나 튀어나와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내려선 태정은 바로 기체로 갈아타 소이탄을 장착했다.
“좌표는 요 앞 300미터. 고도는 최대한 넓게 퍼트릴 수 있게 잡아 줘.”
-그 거리는 주인님까지 휘말리실 수 있습니다.
“걱정 마. 쏘고 바로 뜰 거니까. 좌표 설정해.”
-설정 완료했습니다.
“쏴.”
슈아아악!
태정이 명령하자, 등에 장착된 단 한 발의 로켓이 연기를 뿜으며 허공으로 발사됐다.
그와 동시에 다시 태극 1호로 갈아탄 태정은 블라스터의 출력을 최대로 살려 벽을 우회에 반대편 하늘로 솟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쏘아 보냈던 로켓이 섬광을 비추며 폭발을 일으켰다.
쾅!
굉음과 함께 터진 로켓은 이내 빛의 눈송이가 되어 수백 미터를 장악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전에 봤던 그 로맨틱한 광경이 또다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태정은 저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게 여기서 볼 땐 진짜 멋진데. 지상에 떨어지는 순간, 지옥이 열리는 거지.”
느릿하게만 보이던 수천수만 개의 빛이 땅에 발을 딛자,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거대한 산불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불이 아니었다.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열화 에너지.
그 범위 안에 들어와 있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산 채로 연소되기 시작했다.
화르륵!
쉬이이이익!
블레이드에도 끄떡없던 놈들이 하나둘 반죽이 되어 흘러내린다.
아마 지금 저곳의 중심 온도는 최소 2만 이상은 되지 않을까.
열화 소이탄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온도에 있었다.
빛 자체만으로도 들러붙으면 답이 없는데, 연소되며 올라가는 온도가 제라드의 말을 빌리면 최대 3만 도까지도 오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게 얼마나 높은 온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던 그는 태양 표면의 온도가 6천 도라는 얘기를 듣고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표면 온도라고는 하지만 태양보다 높다니.
물론 중심지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 온도는 2천 도까지도 떨어지는데.
이것만 해도 마그마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즉 저곳은 지금 지옥 그 이상의 현장이었다.
[피리아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8,800만을 획득합니다.]
[피리아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8,800만을 획득합니다.]
[재래식 무기 상점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에릭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억을 획득합니다.]
[재래식 무기 상점…….]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효과만큼이나 엄청난 경험치가 연이어 들어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알림에 귀가 다 아플 지경.
그에 따라 레벨 업도 척척 진행됐다.
“경험치가 무슨 1억이냐, 등급 하나 올렸을 뿐인데. 잔바리가 이 정도야?”
피리아나 그 외 지금 죽어 나가고 있는 놈들은 이곳에서 그리 강한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한데, 들어오는 경험치는 5급 협곡의 2.5배. 비동 초입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럼 대체 깊숙한 곳에 있는 놈들은 얼마를 준다는 것일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구경을 하고 있던 태정의 귀로 제라드의 음성이 들려왔다.
-곧 700레벨입니다.
“뭐야? 벌써?”
그의 대답과 동시에 또 한 번의 레벨 업 알림음이 들려왔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B급 기체 피닉스 스킬이 오픈됩니다.]
[플라즈마 증폭 스킬이 오픈됩니다.]
“오. 스킬도 차근차근… 잠깐, 피닉스면 그 우리가 로봇 기지에서 봤던 그거 아냐? 8미터짜리.”
-맞습니다.
“햐. 이게 여기서 나오네. A급에 오픈되는 거였구나. 진즉에 레벨 업이나 할걸. 좋은 거 많이 나오네.”
태정이 그러는 와중에도 경험치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레벨 업 역시 한계가 없다는 듯 쭉쭉 오르고 있는 상황.
그 즈음,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근데 3천 마리는 이미 다 잡은 것 같은데, 왜 계속 들어 오냐.”
주변에 숨어 있던 놈들까지 잡았다 해도 이건 너무 과한 경험치였다.
쉬지도 않고 들려오는 수많은 알림음.
새로 들어온 스킬을 확인하려던 태정은 다시 저 멀리 지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제야 하나 달라진 점을 파악했다.
산불이 처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정도는 그도 예상을 하고 있던 바였다.
문제는 그게 데미지로 이어질 수 있냐는 것.
“번진 불만으로도 죽는다고? 제라드, 이게 가능한 거야?”
-단순히 불이 번진 것이 아닙니다. 피해를 입은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도망을 가는 바람에 열화로 이루어진 에너지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뭐야, 그럼? 꺼질 때까지 계속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완전 꿀인데,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