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환생
깊게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수면 위로 깨어날 무렵이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할퀴었다. 천근만근. 무겁디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하늘이 보였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숨이 턱턱 막혀오는 도심의 하늘과는 달리 청량감마저 감도는 하늘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렸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다름 아닌 들판이었다. 잘 익어 고개를 숙인 벼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솨아아!
때마침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황금빛 바다가 파도처럼 들썩였다.
“와······.”
아름답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뒤늦게나마 내게 닥쳤던 사고가 떠올랐다.
맞다.
나는 트럭에 치였다. 아직까지도 공중에 붕 떠오른 감각이 선명하다.
설령 하늘이 굽어살펴 목숨을 건졌더라면, 병원에서 눈을 뜨는 게 정상일 터. 아무리 봐도 병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대체······.”
뒷머리를 긁적이려던 나는 무심코 손을 쳐다봤다. 손바닥 너머로 하늘이 비쳐보였다. 비단 손만이 아니었다. 전신이 반투명했다.
“결국 죽은 거구나.”
하기야. 집채만 한 트럭에 다이렉트로 치였다. 짧은 순간 하늘과 땅이 수십 차례는 뒤바뀌었다. 터미네이터처럼 강철로 만들어진 몸이 아니고서야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허무하네.”
의외로 목소리는 덤덤했다.
사고를 당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막상 죽었다는 걸 깨닫자 이렇다 할 감정의 동요는 일지 않았다.
“휴우.”
참으로 너절하고도 보잘것없는 인생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사고를 당하기 전의 복장 그대로라는 것이다.
언제였던가. 귀신은 죽었을 때 모습 그대로 귀신이 된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진짜였더라면······어우,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지네.
이미 죽은 마당에 뭐가 그리 대수겠냐만, 적어도 밟힌 지렁이처럼 흉측해진 몰골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나저나 여긴 대체 어딜까.
왕왕!
또다시 들려온 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내 시선이 닿자 녀석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내 고막을 할퀴었던 장본인인 듯했다.
왕!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 녀석이 내게 달려들었다. 얼떨결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야야야.”
작은 몸집에 비해 과격한 인사였다. 가까스로 녀석을 떼어냈다.
“어어어.”
이번에는 내 바짓가랑이를 물어 당겼다. 힘이 어찌나 셌던지. 버티긴커녕 속절없이 끌려만 갔다. 영혼인데도 강아지한테 물릴 수 있구나, 라는 시답잖은 생각도 잠시였다.
보아하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은 눈치였다.
“따라오라는 거야?”
왕!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강아지라니.
신통방통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뭐, 여기 가만히 있어봐야 의미는 없겠지. 그래, 가자.”
사박사박.
발목까지 자란 풀을 헤치며 강아지를 따라갔다. 시야 끝자락에 우람한 나무가 걸쳤다. 밑에는 나무를 통으로 잘라 만든 테이블이 있었고,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저승사자······같지는 않은데.
무표정이라서 다소 엄해보일 뿐이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신선을 연상케하는 분위기였다. 배경도 광활한 들판이라서 사후세계라기보다는 기묘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토록 담담한 건 이렇듯 평화로운 분위기가 원인이겠지.
부지런히 걸어 노인의 앞에 도착했다.
“저······안녕하세요.”
들판을 응시하던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허어, 망자가 안부를 묻기는 또 처음이로구나.”
“아하하.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나야 되도록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넬 요량이었지만, 안녕이 지닌 의미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긴 했다.
내가 멋쩍게 웃고 있자 노인이 손가락을 퉁겼다.
땅에서 나무가 솟아오르더니 금세 멋드러진 의자로 변모했다.
이야, 신기하네.
“앉게나.”
“아, 예.”
자리에 앉았다.
노인이 내 눈을 응시했다.
마치 내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에 자꾸만 고개가 내려간다. 어째선지 시선을 피하거나 소리를 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금니에 힘을 주고 버텼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을 깬 쪽은 노인이었다.
“성실하게 살았구만.”
“예? 아, 네.”
“흐음? 성실하다는 말을 싫어하는가?”
성실하다.
살면서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 외에는 독하다. 일에 미친 것 같다. 사회생활 참 열심히다. 등등이 있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칭찬이지만, 내게는 그다지 와닿는 말이 아니었다.
“성실하고 싶어서 성실했던 게 아니라서요.”
그저 해야 되니까 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화제를 돌릴 겸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네의 삶은 보았네.”
“그렇군요.”
어쩐지 성실하다는 말을 할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노인은 내 인생을 되짚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네를 원망하는 이들도 많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받는 걸 싫어한다. 따라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어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삶이란 곧 경쟁이다.
올챙이었던 시절부터 목숨을 건 레이스에 던져졌다. 나는 이겨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게 미덕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남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하물며 하루 세끼 밥보다 눈칫밥으로 배를 불려온 삶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별수 있나.
열심히 살아야지.
“지옥에 갈 만한 인물상은 아니네. 그래, 자네는 다음 생에도 인간으로 환생할 게야.”
“다행이네요.”
“허어, 지옥에 가고 싶은 겐가?”
시원찮은 반응에 노인이 물었다.
“아뇨아뇨!”
세상천지에 지옥을 자처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단지······. 그 환생을 하면 제 기억은 다 지워지는 거겠죠?”
“물론이네. 자네가 살면서 쌓아온 업보는 모두 내려놓게 될 게야.”
“역시······.”
환생을 한다는 건 기쁜 소식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하지만 내 기억은 지워진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단숨에 잃는 것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캐릭터 삭제쯤 되려나.
하하.
“시간이 필요한가?”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시야가 뿌옇다. 눈가를 비볐다. 뜨뜻미지근한 물기가 손등을 적셨다.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딱히 슬프진 않은데, 이상하네요.”
이제껏 살면서 각양각색의 인물을 만났고, 그만큼 다양한 일을 겪었다. 개중에는 잊고 싶었던 기억도 적지 않다. 한사코 떠올리기 싫어서 이기지도 못할 술을 퍼마셨던 적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다.
나에게는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었다. 새롭게 태어날지언정, 모든 걸 잃어버린 내가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바쁘실 텐데.”
애써 마음을 추스른 나는 노인에게 사과했다.
“아닐세. 자네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네.”
“선택권이요?”
“악인이 아닌 자에 한해서는 내세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네. 자네가 원하는 삶은 뭔가?”
“원하는 삶······.”
그러고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술을 줄이겠다.
담배를 끊겠다.
운동을 시작하겠다.
저축을 늘리겠다.
신년이 다가올 때면 늘 떠올리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마저도 계획만 세울 뿐이지, 정작 실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지.
나는 황금빛 바다를 눈에 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나름 여러 명승을 돌아다니고 또 접해봤지만, 이렇듯 가슴이 웅장해지는 강산풍월은 처음이었다.
문득 내가 입버릇처럼 떠들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이런 곳? 여기는 아무것도 없네만?”
노인의 말에 콧잔등을 긁었다.
“자연에 둘러싸인 환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복잡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삶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나네요.”
무엇보다.
지난 내 삶이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글쎄올시다.
나는 선뜻 대답하진 못할 것 같다.
“별난 친구로군.”
줄곧 무표정을 고수하던 노인이 허허 웃었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고들 하잖아요. 죽어 보니까 알겠네요. 저는 물질적인 만족보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원했어요.”
“호오.”
“저는요. 오로지 모으기만 했거든요. 주야장천 모으고 또 모으고. 덕분에 배는 부르고 등은 따셨지만, 덩달아 스트레스도 엄청 쌓이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건강도 나빠지고.”
애써 외면했지만, 나도 내 몸 상태가 어땠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트럭에 치이지 않았더라도 그리 오래 살진 못했으리라.
잠깐 말을 멈춘 나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을 떴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 매료됐다. 나아가 노인이 던진 질문을 통해 내가 진짜로 원했던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뺏고 빼앗기는데 급급하는 삶이 아니라. 넘치면 나눌 줄도 알고, 부족하면 채워주기도 하고. 그런 여유로운 삶이요. 뭐, 환생하면 기억이고 뭐고 다 없어진다고는 해도······. 제 속에 쌓여있던 응어리는 줄어들지 않을까요?”
“허허헛!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그동안 내가 만난 망자들은 보상을 원하던데.”
“보상이요?”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 내세에는 금수저로 태어나고 싶다던가. 내 살다살다 수저로 태어나고 싶다는 망자는 처음이더군.”
“듣고 보니 웃기긴 하네요.”
현대에서야 수저가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지만, 정작 이를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땐 얼마나 황당할까.
사실 나도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긴 했다.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내 기억은 말끔하게 지워진다. 내세에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자한 미소를 짓던 노인이 처음의 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방금 자네는 자유롭고, 서로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대체 뭘 책임지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방금 내가 뱉은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예.”
“좋네. 그 외에 다른 건 없는가?”
다른 거라.
“내세에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잘생기고 똑똑하고, 운동신경도 좋았으면 하네요. 아, 머리숱도 풍성하면 금상첨화구요. 하하.”
“그 정도는 쉬운 일이지.”
그 정도로 쉬운 일이 내게는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서라.
이제 와서 투덜거린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제 그만 헤어질 시간이네.”
나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속이 좀 후련해졌네요.”
노인이 내게 손을 뻗었다.
“단명하면 안 되니 가호 정도는 내려줘야겠구만.”
“네?”
내가 무어라 반문하기 전이었다. 원인 모를 부유감이 내 전신을 감쌌다.
"허허, 오랜만에 잔소리 좀 듣겠어."
어렴풋이 들려오는 노인의 속삭임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