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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3화 (13/159)

13. 유년기(12) - #헥토파스칼 킥

하이톤의 기합성과 함께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얘, 또 시작이네.

대관절. 물 대신 에너지드링크라도 들이켰는지, 아까부터 지치지도 않는다.

이런 시답잖은 생각과는 달리 내 다리는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윽, 한 발을 뒤로 빼고 살짝 몸을 틀었다.

그와 동시에 빨간 털실 같은 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아앗!”

날 기습한 범인이 당혹성을 터트리더니 이윽고 철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소리만 들어보면 꽤나 아프게 넘어진 것 같은데.

“우하하! 파멜라 누나 바보! 또 넘어졌어!”

언제 왔는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오렌지 빛 머리카락에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었다. 이름은 테트였고, 나와 동갑이었다.

테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나무 밑 풀숲에 얼굴을 처박은 소녀가 있었다. 방금 전 내게 달려들었던 범인이었다.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나자빠졌는지 적잖이 우스꽝스러운 자세였다.

“파멜라 누나는 바보래요!”

빨간 머리카락의 소녀는 파멜라였다.

테트가 놀리자, 볼썽사납게 나자빠진 파멜라가 벌떡 일어났다. 그나마 넘어진 곳이 푹신해서 별다른 상처는 나지 않은 듯했다.

“풰! 풰!”

파멜라가 입술을 붙였다 떼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바닥을 구르면서 입에 흙이 들어간 모양이다. 이내 입에 있던 흙을 모두 뱉어낸 파멜라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씨, 너 왜 자꾸 피하는 거야!”

파멜라가 내게 불만읕 터뜨렸다.

“뛰어오니까 피하지.”

아니, 내 손톱보다 작은 벌레가 와도 피하는 게 사람이다. 살짝 부딪히는 것도 아니라 저 멀리서부터 전력으로 달려오는데, 그걸 안 피하고 배기겠나.

지극히 상식적인 대꾸에도 불구하고 파멜라가 버럭 외쳤다.

“그럼 피하지 마!”

얼씨구.

그럼 나더러 헥토파스칼 킥의 제물이 되라는 이야기야?

세상에 이런 막무가내가 따로 없었다.

“그럼 다칠 수도 있잖아.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나쁜 거야.”

엄한 표정으로 훈계하자 파멜라가 볼을 부풀렸다. 할 말이 없을 때면 짓는 표정이었다.

고양이 같은 눈매 덕분인지 언뜻 표독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밑에 통통하게 오른 볼살 덕분에 오히려 귀여웠다.

슬슬 그 대사가 나올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어······. 이씨! 내가 누나거든!”

이런 내 예상에 호응이라도 하듯, 파멜라는 자신이 누나임을 강조했다.

말문이 막히거나 뜻대로 안 될 때면 나이로 밀어붙이는 게 영락없는 꼬맹이였다.

근데, 파멜라는 올해 7살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누나가 맞긴 하지.

언행만 놓고 보자면 막내인 르네보다 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산만했지만 말이야.

“흥, 두고 바! 성공할꺼니까!”

“그래, 열심히 해.”

나야 맞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지만 말이야.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대꾸하자 파멜라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내 내 앞에서 멈춘 파멜라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더니 한 손은 허리에 척, 얹고 다른 한손은 내게 뻗었다.

킬링 포인트는 고개를 치켜든 게 단순히 무섭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나보다 키가 작아서였다.

그마저도 눈을 위로 치켜뜨고 있다는 게 여러모로 안쓰러웠다. 사실 예전에는 비교대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내가 또래에 비해서 키가 크긴 크더라.

“나두 그거 줘!”

두서는 가져다 엿이라도 바꿔 먹었는지, 그냥 달라고 하면 내가 뭔 줄 알고 주겠니.

“어떤 거?”

“호오미!”

아하.

아까 엄마랑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는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호오미가 아니라, 호미.”

“호오미?”

“호미!”

발음이 조금 어려운가 싶어 정정해줬다. 이게 또 파멜라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씨이······. 호······미, 호미, 호미! 대찌? 알았으니까아! 그거 나두 줘!”

뭐, 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어차피 남는 게 호미거니와, 1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으니까.

“그거는 이거, 엄마가 카무챠 캘 때 쓰는 거야.”

어디까지나 그 용도에 맞게 쓸 경우에나 주는 거지, 딱 봐도 장난감이랍시고 갖고 놀다가 버릴 게 뻔했다. 차라리 필요한 사람에게 여분으로 주는 게 훨씬 나으리라.

“할 거야! 할 거야!”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했음에도 파멜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거기다 혼자 떼를 써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깨달았는지, 멍하니 서 있던 테트마저 끌어들였다.

“웅? 아이넬 말이 맞는 것 같은데? 파멜라 누나는 안 하자나. 저번에두 막 내 꺼 뺏어가서 버렸자나.”

뿌린 만큼 거둔다고 했던가.

역으로 날아온 테트의 묵직한 팩트폭격에 파멜라의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거리는 파멜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야!”

파멜라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액션을 취했다.

“······왜?”

이런 내 표정에 파멜라가 멈칫했다.

“머리에 벌레 붙었어.”

“······어?”

“벌레. 여기에 벌레 있어. 움직이면 벌레가 물 수도 있어.”

“버, 벌레?”

“응.”

내 말이 끝나자 파멜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내가 떼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알겠지?”

침착하게 묻자 파멜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빠, 빨리이······.”

내 태도가 여유로웠기 때문인지, 파멜라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자신이 누나라면서 콧대를 세울 때와는 상반된 태도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쉿. 자꾸 하면 입에 벌레가 들어갈 수도 있어.”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얹었다.

“웃!”

벌레가 입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파멜라가 자그마한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어찌나 세게 힘을 줬는지 라즈페리처럼 빨갛건 입술이 새하얘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둘까.

심각한 척을 했을 뿐이지 머리에 붙은 건 그냥 평범한 날벌레였다. 심지어 방금 전 입에 들어간다는 말에 흠칫하는 순간 지레 겁을 먹고 날아갔다. 즉 지금 파멜라의 머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걸 그대로 말했다가는 그대로 주먹이 날아올 게 뻔했으니, 나는 벌레를 내쫓는 척 시늉을 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파멜라 누나는 바보! 벌레 없는데! 바보, 바보!”

테트는 벌레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킥킥거리며 놀렸다.

놀리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이럴 눈치껏 넘어가주는 게 좋았을 텐데.

“너어!”

뒤늦게야 내 장난을 알아차린 파멜라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제아무리 고사리 같은 손이라고 한들, 맞으면 꽤나 아플 터.

“짜잔!”

나는 파멜라의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재빨리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내가 장난감 가져왔는데!”

“어, 장난감?”

장난감이라는 말에 혹했는지 파멜라가 주먹을 쥔 채로 멈춰 섰다.

“응, 장난감! 엄청 재미있어!”

“재미있어?”

“나도, 나도 할래! 나도!”

어느새 테트마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왔다.

심심하긴 했나 보네.

지구라면야 사방에 널린 게 게임기요, 놀이도구였으니 지루할 틈이나 있을까. 하물며 식당이나 카페만 가더라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태블릿 PC를 꽉 쥐고 있는 아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마을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기껏 해봐야 막대기를 들고 칼싸움하는 게 고작이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장난감이라는 말에 크게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자, 그럼 다 같이 할까? 르네도 이리 와.”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르네에게 손짓했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 르네다. 갑작스럽게 인원이 늘어났으니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겠지.

나만 하더라도 아직은 이 분위기가 조금 낯설었다.

그도 그럴게, 본래 채집을 할 때는 이렇듯 아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나야 내가 원해서 따라왔건 거고, 르네도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어서 찾아왔을 뿐,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도 대다수의 아이들은 마을에서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근데, 오늘 왜 파멜라와 테트가 이곳에 있는 거냐면······.

“어머나, 르네는 아이넬을 잘 따르네요. 어떻게 보면, 엄마인 우리보다 아이들을 더 잘 돌보는 것 같아요.”

“맞아요. 대체 뭘 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던데요? 어쩜 저렇게 똑부러지는지!”

“이럴 게 아니라 우리 테트랑 같이 놀아주면 안 될까? 넬이랑 동갑인데, 맨날 혼자 있거든. 혼자 두려니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넬이 같이 놀아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페드릭 씨의 딸도 늘 혼자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 두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럼 제가, 따로 페드릭 씨한테 여쭤볼게요.”

발 없는 말이라도 천리를 달리면 없던 발도 생겨난다고 했던가. 마을의 규모가 작은 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소문도 덩달아 빨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혼자 심심해하는 르네와 놀아줬을 뿐인데, 어느 순간 아이돌보기 마스터라는 별명이 붙어버렸으니 말 다했지.

이러다가는 “아이넬이 사실은 전생에 지구에서 살던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사고를 당한 뒤 노인을 만나서 여차저차 환생을 했대요.”라고 말해도 덜컥 믿을 것 같다니까.

이유야 가부간.

나를 곧잘 봤고 또 친분이 있되, 슬하에 내 또래를 둔 엄마들이 함께 놀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하더라.

여기에는 호미라는 혁신적인 도구로 말미암아 채집의 능률이 대폭 상승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었다.

어차피 르네랑 놀아주는 것도 여러모로 즐거웠고, 기왕이면 다른 아이들도 함께 노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덜컥 수락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파멜라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을에서 제일가는 악동이라나. 지구로 치면 골목대장쯤 되는 듯했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때마침 나는 르네를 위해 몇 가지 장난감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르네야 얌전한 문학소녀 같은 타입이라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게다가 세라 누나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없을 때 르네가 되게 외로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뭔가 좋은 게 없을까 생각하던 중.

내가 없더라도 혼자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한 놀이도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중에서도 르네가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놀이들을 추렸고, 비교적 간단한 장난감을 만들었다.

그렇게 르네한테 주려고 챙겨온 게 장난감이 바로,

“짜잔!”

세 아이의 기대 어린 눈길에 호응하듯 쫙, 손바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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