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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7화 (17/159)

17. 유년기(16) - #알까기

“할아버지!”

나는 유유자적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데커드 할아버지께 달려갔다.

“으음? 무슨 일이냐?”

“이리 오세여! 빨리여!”

“허어, 대체 뭔 일인데 그리 소란인 게냐? 에잉!”

데커드 할아버지는 투덜거리면서도 못내 궁금했던지 순순히 날 따라왔다.

“호오? 완성한 모양이구나. 그래서, 이건 대체 뭐냐?”

할아버지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보며 물었다.

“이거, 놀이도구여!”

사실은 바둑판이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전무했거니와, 데커드 할아버지의 지루함을 달래줄 겸 만들었으니 놀이도구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내가 바둑판과 바둑돌을 만든 이유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위해서였다. 매일 내게 핀잔을 날리시지만, 정작 혼자 계실 땐 외롭고 심심해보여서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거기다 이것저것 가르침도 받고, 적지 않은 도움도 받는지라 무언가 선물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기왕이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쪽으로.

“뭐? 놀이도구? 맨날 붙잡고 있더니, 만든다는 게 놀이도구였던 게냐?”

“네!”

“허참······그래서 그건 또 뭐냐?”

누가 얼리어답터 아니랄까봐, 신상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면 항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백문이불여일견!

나는 의자를 탁탁, 쳤다.

“자, 여기 앉아보세여!”

데커드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맞은 편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검은돌이고, 이건 흰돌이에여!

“검은돌, 흰돌이라. 참 명쾌한 이름이로군. 그래서 이걸로 대체 뭘 어떻게 논다는 게냐?”

“알까기여!”

내가 만든 게 바둑판이었으니, 당연히 바둑을 알려드릴 생각이었다.

근데, 바둑이라는 게 워낙 복잡한지라 설명할 엄두도 나질 않더라.

거기다 바둑의 특성상 몇 시간을 앉아있어야 하거니와 초심자라면 흥미가 생기기 어렵다. 달리 말해서 시작도 전에 질릴 여지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한때 전국민을 들었다놨던 게임이자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게임인 알까기였다.

일단은 바둑판과 돌에 익숙해지고 또 어느 정도 흥미가 생기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 알까기를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없잖아······솔직히 9할은 내가 하고싶어서였다.

“알······까기? 기묘한 이름이구나.”

“네! 알처럼 생겼자나요!”

대충 둘러대고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앞에 검은돌 5개를 올렸다. 마찬가지로 내 앞에도 같은 간격과 넓이로 흰돌을 깔았다.

이게 얼마만에 하는 알까기냐.

호롱!

내가 신났다는 걸 알았는지, 품에서 곤히 자고 있던 반디가 바둑판을 기웃거렸다.

야야, 거기서 그러면 안 보이잖아.

“자, 이건요! 이렇게 손가락을 튕겨서!”

나는 설명하는 척 손을 움직여 반디를 밀어냈다.

호롱!

미안하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될 타이밍이란다.

나는 불만스레 내 뺨을 치는 반디를 뒤로한 채 흰돌을 때렸다.

팅!

손톱과 부딪힌 바둑돌이 맑은 소리를 내며 쏘아졌다.

우르시오르의 코팅 덕분에 바둑돌이 빠른 속도로 바둑판을 가로지른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의 앞에 있던 검은돌과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앗!”

나는 아쉬움에 주먹을 쥐었다.

검은돌을 때린 것까진 좋았으나, 내가 날린 흰돌도 함께 추락한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알까기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과도한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오호라. 흰돌을 쳐서 검은돌을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로구나. 그럼 나는 검은돌은 쳐서 흰돌을 떨어트리면 되는 거로군. 반응을 보아하니, 함께 떨어지면 안 되는 거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돌을 남기는 자가 승리······인 겐가.”

누가 똑똑한 사람 아니랄까봐, 데커드 할아버지는 단번에 알까기 규칙을 이해했다.

“흐음, 간단하면서도 집중력을 요하는 놀이로군.”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이 빨라지고 눈매는 가늘어졌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거나 집중력을 끌어올릴 때 나오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바둑판이나 바둑돌에 대해 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체 이런 걸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캐묻질 않으신다.

이게 참 좋은 게 내가 호미를 만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엄마나 마을 사람들은 나더러 천재라느니, 엄청나게 똑똑하다느니······.

아주 칭찬을 뭇매처럼 맞기 일쑤였다.

뭐, 일평생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입장인지라 기분이 좋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거기까진 괜찮은데,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툭 터놓고 말해서 최초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혁신적인, 말 그대로 시대를 한참은 앞서 나간 도구처럼 보인다는 건 알고 있지만······이게 또 지구인의 감각에서 보자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어딜 가더라도 흔히 볼 수 있고 또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대다수기도 했고.

까짓 내가 성인이라면야 대충 둘러대고 넘길 수 있겠는데, 내 나이 곧 6살이다.

시골에서는 옆집의 철수가 입신양명이라고 할라치면 마을의 자랑이니, 금의환향이라느니하면서 대형 플랜카드를 걸어놓곤 했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런 느낌이라고하면 적절하려나.

호미랑 지게 하나 만들고 천재 소리를 듣는 마당이니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아주 그냥······. 내가 신이 보낸 사자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어휴, 상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네.

반면에 데커드 할아버지는 괴짜답게 시각이 조금 남달랐다.

그냥 내가 뭔가를 만들면 그 기능이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물어보지, 이걸 무슨 생각으로 또 누구에게 배워서 만들었느냐고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아예 그 개념조차도 없는 걸 떡하니 만들어놓고 대뜸 놀이도구라고 얘기했다. 근데, 그저 “그래서 이걸로 대체 뭘 어떻게 논다는 게냐?”고 묻는 게 전부였으니까.

데커드 할아버지의 배려일지, 아니면 진짜로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묻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시간을 들여서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내 입장에서는 편할 따름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여기서 무언가를 만들 경우에는 곧잘 데커드 할아버지의 이름을 팔 수 있다는 아주 커다란 장점도 있었다.

“자, 이번에는 할아버지 차례에여! 이거 생각보다 어려워여!”

“흥, 이런 게 무어 어렵다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더니 톡, 검은돌을 때렸다. 그러나 힘이 너무 약했는지 검은돌은 중간지점도 채 넘지 못하고는 멈췄다.

“이번에는 제 차례에여!”

목표는 중간지점에 멈춘 검은돌이었다.

나는 자세를 낮췄다. 내가 쏠 하얀색 바둑돌과 목표물과의 직선거리를 정한 뒤,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타악!

손톱과 바둑돌이 부딪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내가 쏜 바둑돌이 데커드 할아버지의 바둑돌과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검은 바둑돌이 바둑판 밑으로 떨어졌다.

“아자!”

첫타에 비해 힘조절에 신경을 쓴 덕분인지, 내가 쏜 바둑돌은 중간지점에 멈춰있었다.

“스토······아니, 잠깐만여!”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제지했다.

“음?”

“성공하면 한 번 더 하는 거예여! 제가 실패하면 그때가 할아버지 차례!”

“허?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내 말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항의했지만,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여!”

“끄응. 알았다, 어서 하거라!”

“알았어여!”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공격했다.

“아!”

검은돌을 맞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힘이 모자란 탓에 밀어내긴커녕 두 돌이 딱 붙어버렸다.

에이, 아까워라!

“허허허!”

돌연 데커드 할아버지가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으시는지, 수염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와······. 데커드 할아버지도 웃을 줄 아시는구나. 비록 긴 시간을 함께 한 건 아니었지만, 늘 표정이 어둡고 탁했지 이렇듯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데커드 할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그게 조금은 이상해서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데커드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섞이기를 싫어하신다나.

하물며 엄마가 어릴 때부터 데커드 할아버지를 봤다고 했으니, 최소 20년은 이곳에 살았을 터. 그럼에도 마을에 찾아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세라 누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더라.

그냥 웃은 것 뿐이지만, 어쩐지 데커드 할아버지와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커험!”

이런 내 시선에 신경쓰였던 것인지, 데커드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자, 이제 내 차례로구나.”

“네? 아, 네!”

내가 퍼뜩 대답하며 살짝 물러나자, 갑자기 데커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둑판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푸핫!

방금 전 내가 공격을 했을 때와 똑같은 자세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데커드 할아버지의 신장이 워낙 크다 보니 보기에 썩 멋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흐음.”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커드 할아버지는 마치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고민하던 햄릿처럼 갈등했다.

이내 데커드 할아버지가 손을 뻗었다.

목표는 방금 내가 쐈던 돌이었다. 간격이 조금 아슬아슬해서 자칫 내 돌을 건드릴 위험성이 있었다.

데커드 할아버지 또한 그 점을 상기했는지 미세하게 움직이며 위치를 조정했다.

이윽고 데커드 할아버지의 손가락이 채찍처럼 휘어졌다.

탁!

그와 동시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쏜 검은돌은 흰돌과 부딪히더니, 마치 방지턱처럼 타고 넘어갔다. 게다가 각도도 각도지만, 힘조절에도 실패한 탓에 그대로 장외로 떨어졌다.

“푸헤헷!”

데커드 할아버지를 대할 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내가 배꼽을 잡고 웃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쯧. 웃지 말고 얼른 하거라!”

“네에!”

아, 재미있다.

아이들이랑 놀 때도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참 행복했었지. 이렇게 데커드 할아버지와 함께 알까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또 다른 행복감을 불러왔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면서 진짜로 해보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온가족이 함께 모여서 노는 거였다.

막 거창하게 파티를 여는 게 아니다.

그냥 모두가 함께 거실에 둘러 앉아서 잡담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하하호호 웃는 화목한 가족을 늘 꿈꾸고 또 바라왔다.

그래, 다음에는 엄마랑, 아빠랑, 데커드 할아버지랑, 미슐레 아주머니랑, 세라 누나······. 아니, 그냥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서 즐길 수 있는 놀이도 꼭 만들어봐야지.

“허어, 알까기 하다 말고 뭘 그리 히죽거리고 있느냐? 그래, 시간을 오래 끌면 차레가 넘어가는 규칙은 없느냐?”

“에이, 그런 규칙은 없는데요? 어어, 알았어요! 할게요,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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