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소년기(6) - #큐우!
데미르 드라고스를 데려온 지 며칠이 흘렀다.
나는 잠들어 있는 데미르 드라고스 아니, 큐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데커드 할아버지의 해독제와 나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카치 사르모스의 독은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굶어 가죽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몸에 조금씩 살이 붙어가기 시작했고, 큐우에 맞춰서 따로 만든 약으로 말미암아 상처들도 아물어갔다. 어디까지나 아물고 있을 뿐이지, 아직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고,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비늘이 있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
한 가지 웃긴 건 그거다.
분명히 데려올 때만 하더라도 탁한 검은색이었다. 근데, 막상 녀석의 때를 벗겨내자 검었던 비늘이 회색으로 변하더라.
원래 회색이었구나, 라는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째선지 3시간에 걸쳐서 밀어도 밀어도, 씻겨도, 씻겨도 땟국물이 멈출 생각을 않는 게 아닌가.
나는 아예 빨래를 불리듯 따뜻한 물에 큐우를 담그고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겹겹이 눌러붙은 때가 물을 머금으며 떨어져 나갔고, 광택으로 반짝이는 은색 비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얼마나 굴러야 때가 가죽처럼 붙어있을 수 있는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였다.
그래봐야 지금은 온몸에 약을 바르고, 그 위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어서 검은색인지 은색인지 티도 나질 않지만 말이야.
큐우······?
곤히 자고 있는 큐우가 기지개를 켜더니 슬그머니 눈을 떴다.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가 좌로 갔다가 우로 가기를 반복한다. 이윽고 그 시선이 멈춘 곳은 내 얼굴이었다. 꿈뻑꿈뻑, 아직 잠이 덜 깼는지 큐우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다.
“일어났어?”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큐우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더니, 퍼뜩 고개를 들었다.
큐우!
큐우가 내게 양팔을 버둥거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아하핫! 반가운 건 알겠는데, 그래도 조심해야지.”
여차저차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다.
그도 그럴게 데려올 때부터 알았지만, 큐우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였다. 카치 사르모스의 독을 떠나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것이다.
데커드 할아버지도 꽤 오랫동안 굶주리며 숲을 떠돌아다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자, 일단 밥부터 먹자.”
나는 미리 준비해온 바구니를 테이블에 올렸다. 맛있는 냄새를 맡은 큐우가 냉큼 바구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슬금슬금 밀려나는 바구니를 손으로 눌렀다.
“자자, 침착하시고요.”
나는 한 손으로는 큐우의 머리를 밀며 진정시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구니 든 그릇을 꺼냈다. 안에는 내가 일찍부터 쑨 영양죽이 담겨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살짝 떠서 호호, 불었다. 적당하게 식은 영양죽을 큐우에게 내밀었다.
바구니에서 시선을 뗀 큐우가 숟가락을 향해 걸어왔다. 아직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힘겨워 보였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다리를 움직여 숟가락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큐하압!
큐우가 입을 크게 벌렸다.
숟가락이 닿는 타이밍에 맞춰 살짝 손을 뒤로 뺐다.
큐우가 힘차게 입을 닫았지만, 애먼 바람만 양껏 머금었다.
큐웃!
아니나 다를까. 분명히 먹었는데, 아무런 맛이 나질 않자 큐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훗.”
그 모습에 무심코 웃으니 큐우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내 손에 숟가락이 있다는 걸 확인한 큐우가 항의하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큐우! 큐우!
“알았어, 알았어.”
나는 큐우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큐우가 슬쩍 내 눈을 쳐다보더니 스윽 고개를 뻗어 입을 벌렸다. 마치 먹이를 떨어지길 기다리는 아기새 같았다.
이번에도 내가 숟가락을 빼며 장난을 칠 거라 생각했는지, 아예 떠다 먹여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이런 걸 보면 은근히 똑똑하단 말이지.
거기다 내가 큐우라고 부르자 자신의 이름이라는 걸 인식하고는 곧잘 반응했다. 하물며 이따금씩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똑한 면모도 보여줬다.
“자, 그러지 말고 직접 와서 먹어야지?”
나는 유혹하듯 숟가락을 흔들었다.
마음 같아서야 순순히 입에 넣어주고 싶지만 지금 큐우는 엄연한 환자였으며, 한창 자라나야 할 시기다. 오랜 시간을 굶으니 자연히 성장에도 제동이 걸렸을 터.
무리한 운동까지는 지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쉬기보다는 이렇듯 조금씩 근육을 써 버릇해야 그 회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귀여워서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9할이라는 건 비밀이었다.
큐우······.
자고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다.
내가 먹여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큐우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자.”
여기서 또 숟가락을 뺐다가는 제대로 삐치겠는데. 나는 나도 한발 양보하며 숟가락을 내밀었다. 큐우는 힐끗 내 눈을 쳐다보다 그대로 숟가락을 입에 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숟가락에서 빠직 소리가 났다.
“야야, 숟가락은 먹는 거 아니야.”
내가 말렸지만, 큐우는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숟가락을 씹었고, 나는 아니 땐 힘겨루기를 이어나간 뒤에서야 가까스로 회수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이미 숟가락에는 이빨차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맛있지?”
큐우!
큐우가 작게 포효했다. 그 모습에 또다시 웃어버렸다. 행여나 얹히기라도 할까, 충분한 텀을 두면서 영양죽을 먹였다.
“어이구, 이걸 다 먹었네.”
습관처럼 많은 양을 만들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큐우는 작은 몸집과는 달리 대식가였는지 한 그릇을 싹 비웠다.
포만감에 잠이 쏟아지는지 큐우가 녹은 슬라임처럼 스르륵, 늘어지며 테이블에 누웠다. 그래봐야 빵빵하게 솟은 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이 뒤집히며 대大자로 뻗었다.
그 모습이 꼭 인형 같아서 손가락으로 배를 콕콕 찔렀다.
큐우우우.
큐우가 귀찮다는 듯 짤막한 팔을 흔들었지만, 내가 요리조리 피하면서 계속 배를 찌르자 이번에는 기다란 꼬리를 휘둘렀다. 그마저도 피하자 결국 포기했는지 팩 고개를 돌렸다.
“너 그렇게 먹고 자면 나중에 소 된다. 아, 여기만 있으면 답답하지?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오늘은 마당에 나가볼까?”
큐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큐우를 안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녀석은 바깥으로 나오자 기분이 좋았는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푹신한 풀 위에 큐우를 내려놨다. 녀석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을 보더니 냉큼 뛰어갔다.
그러나 이내 길게 자란 잡초에 다리가 걸린 나머지 중심을 잃는다.
풀썩!
졸지에 완벽한 터닝을 선보인 큐우가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파묻혀 버둥거렸다.
아아, 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라는 건 큐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큐우!
정작 녀석은 까칠까칠한 풀의 감촉이 좋았는지 모래목욕에 심취한 고양이처럼 등을 부볐다.
호롱!
어느샌가 내 품에서 빠져나온 반디가 큐우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큐우의 고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시선은 정확하게 반디를 쫓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게 큐우에게는 반디가 보이는 듯했다.
호롱!
큐우!
반디도, 큐우도 서로가 싫지 않았는지 곧잘 장난을 치며 놀았다. 이렇게 종족을 초월하여 노는 두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하단 말이지.
반디의 장난 겸 응원에 꺼져가던 의욕에 불이 붙었는지, 큐우가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재활훈련을 시작해봅시다.”
나는 큐우에게서 살짝 떨어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손뼉을 쳤다.
“컴온!”
내 신호에 큐우가 짤막한 뒷다리를 움직이며 아장아장 걸어왔다. 한 발, 한 발, 내딛던 큐우가 내 앞에 도착했다. 고작 10m를 걸었을 뿐인데도 꽤나 힘들었는지 큐우가 그대로 내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칭얼거렸다.
“자자, 힘들어도 꾸준하게 움직여야 돼. 그래야 빨리 낫고 뛰어다니지.”
나는 큐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우면서도 매끄러운 비늘은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자, 다시 이쪽으로.”
큐우의 재활을 도울 겸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잠깐 외출하셨던 데커드 할아버지가 돌아왔다.
“상태는 좀 어떤 것 같으냐?”
“일단 상처는 많이 아문 것 같아요. 근데······.”
“음?”
“왠지 기운이 조금 없는 것 같아요.”
“기운이 없다?”
데커드 할아버지가 큐우를 힐끗 쳐다봤다. 큐우는 잠시 쉴 겸 내가 준 간식인 꿀절임을 먹고 있었다. 말이 먹는 거지, 거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흐음, 어디가 기운이 없다는 게지?”
“아핫.”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처럼 큐우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붕대에 감겨있어서 그렇지, 이렇듯 마당에 나와서 걷는 것만 보더라도 크게 아파 보이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뭐라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질 않아서 무어라 설명하긴 어려웠는데, 어딘가 기운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 걱정되느냐?”
“네? 아, 네! 솔직히 걱정은 돼요.”
함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지만, 이미 큐우는 반디 다음으로 생긴 친구다.
나아가 몸이 다 낫는다면 엄마랑 아빠한테 얘기해서 함께 지내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라도 큐우의 건강은 내가 잘 챙겨야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데커드 할아버지가 침음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데미르 드라고스에 대해서 잘 모른다.”
“네.”
데커드 할아버지도 데미르 드라고스를 처음으로 봤다고 하셨거니와, 애당초 그 습성이나 생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제아무리 박식한 데커드 할아버지라고 한들 정보가 부족할 수밖엔 없엇다.
“대신.”
“대신?”
“나보다 더 잘 아는 녀석이라면 알고 있지.”
“어, 아는 사람이요?”
데커드 할아버지는 숲으로 들어가는 때를 제외하면 항시 오두막에 있었다.
달리 말해서 아예 마을 근처로는 가질 않는다. 근데, 아는 사람이라니 조금 의외였다.
“흥, 왜 내게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느냐?”
“네. 이상해요.”
내가 장난스레 대꾸하자 데커드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쯧. 그래서 어쩔 테냐? 안 그래도 녀석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같이 가 볼 테냐?”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뭐가 있느냐? 대신 길이 조금 머니, 혹여 가려거든 네 부모한테 말해두는 게 좋을 게다.”
데커드 할아버지와 같이 가는 거라면야 엄마와 아빠는 더 볼 것도 없이 승낙하시겠지.
“알겠어요!”
“흥, 그럼 내일 해가 뜨기 전에 이곳으로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