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소년기(12) - #무한한 신뢰
“······뭐?”
레비아 씨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이요! 배우고 싶어요!”
나는 보다 목청을 높여 마법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아니,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네!”
레비아 씨가 떨떠름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너는 마나에 민감한 체질이라고 했잖아. 그 말은 마나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조금 더 쉽게 얘기해서······ 죽을 수도 있는 이야기야.”
레비아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죽음을 언급했다. 보아하니 내게 겁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근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레비아 씨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마법을 배우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니, 굳이 죽음이라는 단어까지 입에 담으면서 나를 말리고 싶은 거고.
그러나 내가 누군가.
사회에서 20년을 넘게 굴러온 베테랑 사회인이다. 그동안 쌓인 것은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눈치와 그 어떤 상황이라도 타파해낼 수 있는 잔머리다.
17:1로 싸워도 승리할 수 있는 입담은 덤이었다.
더군다나 나라고 일주일 동안 멍만 때렸던 게 아니다.
나는 처음 레비아 씨를 만났을 때부터 어떻게든 마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즉 레비아 씨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대처할 플랜 정도는 짜놓은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건 데커드 할아버지였다.
내가 마나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데커드 할아버지는 굉장히 화가 나셨다.
어쩌면 내가 마법을 익히는데 가장 큰 벽이 되리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데커드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좋아.
데커드 할아버지가 가만히 계신다면 더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그러니까, 마법을 배워야죠!”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걸까.
레비아 씨가 눈을 꿈뻑거렸다.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군. 위험하니까, 마법을 배워야 한다니. 대체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옛 성인께서 말씀하셨다.
“마나가 위험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몇 번을 얘기했지만, 너는 마나와 접촉하는 것 자체가 위험해.”
“그럼, 마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되는 거 하는 거 아닐까요?”
“어······?”
“제가 마나 때문에 위험했잖아요.”
“어, 응.”
“만약에 그때 두 분이 안 계셨으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거야······.”
“죽었겠죠?”
내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재차 쓰자 레비아 씨가 흠칫했다.
“그, 그래.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렇죠? 근데요, 만약 제가 마나를 알고, 또 마나가 치명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요! 그럼 위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정론을 무기로 삼아 요점을 찌르자 레비아 씨가 크게 당황했다.
이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데커드 할아버지가 비웃음을 날렸다.
“클클클. 레비아 놈, 당황하는 꼴 좀 보게나. 내 말 하지 않았나, 이 꼬맹이는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
레비아 씨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자신을 비웃는 데커드 할아버지한테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차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나도 아이넬의 말에 동의한다. 녀석에게 마나가 위험한 건 맞지만, 언제까지고 우리가 지켜볼 수 있는 건 아니야. 적어도 스스로 위험을 벗어날 수 있게끔 지식을 전수하는 게 좋지. 거기다 아이넬이라면 별로 걱정할 건 없다.”
데커드 할아버지의 마지막 중얼거림에는 나를 향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아니,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마법은······.”
나이스 샷!
데커드 할아버지의 느닷없는 어시스트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 레비아 씨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레비아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불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굳었던 표정을 풀며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내참. 저 까다로운 노인네랑 날 찾아왔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만, 역시 네 녀석은 보통이 아니구나. 좋아, 대신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방금 전 마나 어쩌고 했지만, 너 솔직히 마법이 배우고 싶은 거지?”
“헤헤.”
눈치가 빠르시네.
나는 멋쩍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후우······. 그래서,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라······.
가장 먼저 마법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는 신기해서였다. 나는 과학이 발전한 세계에서 살았거니와 늘 판타지에 동경을 품고 있었다.
근데, 이렇듯 이세계에 환생을 한 것도 모자라 떡 하니 마법이라는 신비로운 능력이 나타났다.
이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만, 이건 내 흥미가 생긴 이유일 뿐이지 정작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뻔했다.
“편하잖아요!”
“뭐?”
내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레비아 씨가 벙찐 얼굴이 되었다.
“저는 마법이 뭔지 잘 몰라요. 근데, 막 불을 피우거나 물을 만들 수 있는 거죠?”
“어······. 뭐, 그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지.”
“그럼 굳이 부싯돌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물을 긷지 않아도 되잖아요!”
뿐만 아니다.
마법을 익혀 내 생각대로 아니, 그 반의반이라도 활용할 수 있다면 진짜 혁신적인 물건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고, 고작 그런 이유로?”
아아.
이제야 나는 레비아 씨가 왜 마법을 가르쳐주기 꺼려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기야. 내가 읽었던 판타지 소설만 보더라도 마법은 편리를 위해서가 아닌 전쟁을 위한 도구로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마법을 이용해 싸우거나 전쟁의 도구로 쓴다고 한들 별로 새삼스러울 건 없는 것이다.
근데,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지.
내게 있어서 마법이란 DIY에 쓰이는 도구. 이른바 맥가이버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맥가이버 칼로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그걸 그렇게 악용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거지, 그 도구가 나쁜 게 아닌 것이다.
“푸하하하핫! 그랬구나. 그랬어. 큭큭큭. 마법을 그런 곳에 쓴단 말이지······. 이거, 크게 한 방 먹었구만.”
별안간 호탕하게 웃던 레비아 씨가 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좋다. 마법, 까짓거 가르쳐 주지. 대신 그만큼 해야 할 것도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 그리고 나는 가르칠 땐 꽤나 엄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다. 제아무리 도구로 쓰겠다고 한들, 그게 나와 내 주변을 위험에 빠트린다면 본말전도였으니까.
나아가 기왕 배우는 마법이다. 가능한 안전을 우선으로 두되 레비아 씨가 지닌 모든 마법적 지식을 습득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노라 각오를 다졌다.
“아, 그리고 나는 몇 가지 챙겨올 게 있으니 본격적인 수업은 내일 오후부터 시작할 거야. 그렇게 알고, 준비하고 있으면 돼.”
“네!”
* * *
저녁 무렵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으음······.”
내가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침음을 흘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 엄마!”
“호호, 우리 아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역시나 엄마는 내게 고민이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그러나 내가 선뜻 입을 열지 않자, 엄마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니? 엄마한테 말하기 힘든 거야?”
“그게······.”
내가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큐우 때문이었다.
현재 큐우는 레비아 씨의 치료에 이어 나와 데커드 할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완전히 회복된 상태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긴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안 그래도 큐우는 날 굉장히 잘 따른다.
문제는 내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탓에 일주일 이상을 놀아주지 못했다.
그게 원인이 되었는지, 큐우는 껌이라도 된 듯 내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떼 놓고 오자니 자꾸만 애처롭게 울어서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더라. 안 그래도 엄마나 아빠한테 큐우를 소개해 줄 예정이긴 했다.
다만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했다.
그도 그럴 게, 큐우는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엄연한 마수다.
그것도 데미르 드라고스라는, 그 정체도 위험성도 알려지지 않은 마수였으니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웠다.
그래, 언제까지고 큐우를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괜히 나 혼자 끙끙거려봐야 직접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속단할 수 없다.
나는 애써 잡념을 털어내고 엄마와 눈을 맞췄다.
“있잖아요.”
“응.”
“마수요······.”
“마수? 마수가 왜? 혹시 마수라도 본 거야?”
본 걸 넘어서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현관 앞으로 향했다.
“넬?”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엄마가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실은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었는데요.”
“보여주고 싶은 거?”
“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냅다 현관문을 열었다.
큐웃!
그와 동시에 큐우가 짤막한 팔을 허우적거리더니 털푸턱, 나자빠지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사이에 문에 딱 달라붙었던 모양이다.
“어머, 그건 뭐니?”
“큐우예요!”
“큐우? 이름이 큐우야?”
“네!”
엄마가 신기하다는 듯 쿠유를 쳐다보더니 조심스레 다가가 자세를 낮췄다.
큐우?
갑자기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큐우가 눈동자를 치켜올렸다.
“귀엽게 생겼네.”
엄마가 손을 뻗어 큐우의 머리를 살짝 만졌다.
큐우······.
그러자 큐우가 길게 하품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머, 얌전하기도 하지. 그나저나, 대체 이건 무슨 마수니?”
“데미르 드라고스라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요!”
“스승님이? 아, 그럼 스승님은 큐우를 알고 계신 거야?”
“네. 사실은······.”
나는 큐우를 큐우와 만났던 일화를 얘기했다.
엄마가 걱정할 수도 있기에 호수는 언급하지 않았고, 대충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 근처에서 발견한 것으로 돌려 말했다.
“그랬구나.”
내 설명을 들은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데커드 할아버지가 허락해주셔서 그곳에서 돌보고 있었어요.”
“호호, 넬한테 무슨 고민이 있나 했더니. 이 작은 마수 때문이었구나. 넬은 큐우를 키우고 싶은 거지?”
“네. 제가 키우면 안 될까요?”
“엄마가 키우지 말라고 하면 안 키울 거니?”
“싫다고 하시면 안 키울래요.”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기도 하지. 음······ 넬.”
“네?”
“엄마가 늘 말했지만,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고, 넬은 넬이야. 모든 것을 엄마나 아빠에게 맞출 필요는 없단다. 설령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돼.”
날 향한 엄마의 눈빛은 ‘네가 무엇을 하더라도 엄마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진짜 괜한 걸 고민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이상한 건 기분이 나쁘긴커녕······ 가끔은 바보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담긴 시선에 활짝 웃었다.
“저, 큐우 키울래요.”
“그래, 넬이 키우고 싶다면 엄마는 찬성.”
“나도 찬성이다.”
“아빠?”
“어머, 당신 언제 왔어요?”
“크흥! 아까부터 있었는데?”
어째선지 아빠는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당신 울어요?”
“울긴 뭘. 보나 마나 큐우의 털이 눈에 들어간 거겠지.”
아빠의 너스레에 나와 엄마가 웃었다.
“하핫. 그건 그렇고, 앞으로 잡아야 할 사냥감을 늘려야겠는데.”
“아, 그러네. 큐우는 뭘 먹니?”
“어······ 이것저것 다 먹어요!”
그리하여 큐우는 정식으로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