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소년기(13) - #마을의 아이돌과 마스코트
늘 그렇듯 일찌감치 집을 나왔다. 마당에 서서 새벽 공기를 음미하던 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굳었던 근육을 풀어줬다.
적당하게 몸이 달아오를 무렵이 되자, 슬그머니 문이 열리며 작은 그림자가 나왔다.
큐우였다.
“자, 오늘도 같이 갈까?”
큐우!
“하나, 둘, 하나, 둘!”
큐우, 쿳! 큐우, 쿳!
내가 구보를 시작하자 큐우 또한 내 박자에 맞춰 짤막한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뱁새가 황새를 쫓을 수 있으랴. 큐유의 오동통한 육체와 짤뚱한 다리는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큐웃!
그럼에도 큐우는 제 등에 달린 날개를 팔락이며 열심히 날 따라왔다.
행여나 큐우가 삐칠 새라, 속도를 조절하며 나만의 산책 코스를 달렸다.
“넬 안녕! 큐우도 안녕!”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큐우!
큐우도 늘 인사를 건넨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큰 소리로 울며 알은체를 했다.
“아, 귀여워라.”
“나도 저런 마수 한 마리 키우고 싶네.”
큐우가 귀엽긴 하지.
만약 귀여움에도 대미지라는 게 있었더라면 나와 우리 가족은 물론, 큐우를 본 대다수의 HP는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를 향해 치닫고 있으리라.
“훗.”
자식이 칭찬받는 모습을 본 부모의 심정이 이러할까.
비록 큐우가 내 자식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다들 큐우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사실 큐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마을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개중에는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렴,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 내 옆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었으니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게 당연했다.
하물며 몇몇 채집꾼이나 사냥꾼을 제외한다면 다들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뿐더러, 살아있는 마수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고.
즉 인간만이 존재하는 마을에 큐우라는 존재는 주목을 끌었다. 지구인의 감각으로 보자면 소위 외계에서 온 생명체와 비슷한 취급을 받은 셈이다.
그것도 다 옛일이다.
큐우를 본 사람들은 금세 그 매력에 빠지기 일쑤였다.
작금에는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듯 다들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는 것이다.
게다가 이따금씩은 용기를 내어 다가오거나, 아예 간식을 챙겨서 건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큐우는 특유의 귀여움 덕분에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무는 걸 넘어 어느덧 마을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큐우가 떴다 하면 난리가 나는 그룹이 있었다.
“아, 왔다!”
“아, 아이넬이랑 큐우!”
“형아! 나, 큐우!”
바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마을의 아침은 빠르다.
그러나 자신의 업에 충실한 사람들에 한해서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완전히 밝아지기 전까지는 꿈나라를 여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큐우가 등장하면서 아이들의 패턴에도 크나큰 변화가 생겼다.
큐우에 대한 소문을 접하거나 한 번씩 본 아이들은 어떻게든 큐우를 보기 위해 안달이 난 것이다.
심지어 혼자 오기는 민망했던지 아예 떼거리로 뭉쳐서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한창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으나 큐우를 보기 위해서 다들 바깥에 나와있었다.
뭔가 동경하는 아이돌을 만나고자 목 빠지게 기다리는 열성 팬 같단 말이지.
그래, 다들 이렇게나 큐우를 좋아해주는데 화답해주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겠지.
내 이럴 줄 알고 나름 서비스도 준비했다, 이 말이야.
나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아이들의 근처에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아이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큐우야, 우리 연습했던 거 보여줄까?”
큐우!
좋은 대답이다.
나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게끔 쭈그리고 앉았다.
“큐우, 앉아!”
척!
내 말에 큐유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자, 이번엔 손!”
척!
이번에도 큐우가 턱,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고로치!”
그 뒤로도 점프, 하이파이브, 돌아 등등.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한 번쯤 가르쳤을 만한 동작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팬 서비스를 마쳤다.
“우와아!
“귀엽다아!”
“어쩜 저렇게 귀여운 마수가 다 있담.”
“그러게 말이야. 이름이 큐우였던가? 마수는 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귀엽고 착한 마수도 있구나.”
큐우의 애교에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자, 가자!”
큣!
휴식을 취할 겸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나는 사람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작업대로 향했다. 작업대 위에는 금속으로 만든 상자 두 개가 있었다.
왼쪽에 놓인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레비아 씨가 새긴 마법진이 있었고, 그 마법진 위에는 투명한 보석 몇 알이 놓여있었다.
이 보석은 다름 아닌 내 로켓 펜던트에 들어있는 것과 동일한 보석이었다.
정정한다.
사실 이게 생김새는 이렇지만 보석이 아니라 마나스냇츠라는 나무의 열매였다.
마나스냇츠의 의미는 마나를 약탈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레비아 씨는 이를 마법사의 절망이라고 불렀다.
나무의 열매에 붙이기에는 어딘가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나스냇츠의 열매가 마나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즉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스냇츠의 열매란 슈퍼맨이 가장 두려워하는 물질인 크립토나이트와 동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웠다.
나아가 이 열매를 땅에 심으면 나무가 자라나는데, 그 한 그루가 잡아먹는 마나의 양이 무지막지하다나.
단순히 마법사에게만 무서운 게 아니라 한 지역의 마나를 흡수하여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며,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큰 피해를 준다고 한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생태계 자체를 학살하는 식물인 것이다.
“뭐, 나한테는 오히려 약이지만 말이야.”
나는 마나에 민감한 체질이다. 근데, 이게 단순히 알러지처럼 닿으면 증상이 발현되는 게 아니라 나에게는 주변의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즉 내가 레비아 씨의 마나에 접촉했을 때 느꼈던 감각은 농도가 짙은 마나를 끌어당겼고, 그 영향으로 인해 내 육체가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나는 마나를 끌어당기는 체질이고, 이 마나스냇츠는 마나를 흡수하여 성장하는 나무.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나는 늘 항시 차고 다니는 로켓 펜던트를 열었다.
이는 레비아 씨가 처음으로 내게 줬던 열매였다.
이 또한 원래 반투명했으나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여 은은한 보라색으로 변했던 것이다.
지금은 아예 검은색으로 변해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나를 흡수했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나는 시커먼 열매를 조심스레 꺼내 오른쪽의 상자에 담았다. 행여나 실수로라도 땅에 떨어트렸다가는 그 즉시 나무가 자라며 이 근방은 초토화가 되리라.
“어우, 어지러.”
마나스냇츠의 열매를 빼기가 무섭게 눈앞이 핑 돌았다.
“후웁.”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하루라도 빨리 마나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마나와 소리 없는 사투를 벌이길 30여 분. 이윽고 한계에 다다른 나는 새로운 열매를 로켓 펜던트에 넣었다.
“휴우, 그래도 꽤 많이 늘었네.”
이 훈련을 시작한 날에는 3분도 채 버티지 못했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주무시나?”
이 시간이면 바깥에 나와 계셨는데, 어쩐지 오늘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일찍부터 어딜 가신 건가?
“클클클,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떤가?”
“젠장! 내가 순순히 포기할 것 같아? 잠깐 기다려 보라고!”
“호오, 기다리면 마땅한 수가 떠오르기라도 할 것 같으냐? 에잉, 쯧쯧쯧. 순순히 인정할 줄을 알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좀 하지?”
작게 열린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대화에 뒷골이 찌르르 울렸다.
설마······.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슬쩍 문을 열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씨가 마주 앉은 채 오목을 두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밤새 두고 있었는지, 주변에는 먹다 남은 간식들이 쌓여있었고,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순간 데커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커험.”
불시에 들이닥친 경찰관과 마주친 도박중독자의 표정이 저러할까. 날 발견한 데커드 할아버지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비단 데커드 할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바둑돌을 쥔 채 고심하던 레비아 씨 또한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일어나면서 테이블을 쳤고 바둑판을 가득 채우고 있던 돌들이 팝콘처럼 튀었다.
내참.
내가 살면서 도박중독자 내지 알콜중독자는 본 적이 있었지만, 오목중독자는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하하. 일찍 왔군. 그래, 마나스냇츠의 열매는 확인했고?”
레비아 씨가 민망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방금 바꾸고 왔어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며,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뭐, 두 분이 오목을 두는 게 딱히 나쁜 것도 아니거니와.
늘 심심해하는 데커드 할아버지에게 적당한 상대가 생겼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해진다면야 바둑판 압수도 염두에 둬야겠지만 말이야.
“데커드, 아쉽지만 이번 승부는 무효로군.”
레비아 씨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씨익 웃었고, 데커드 할아버지가 미간을 구겼다.
“노, 놈······.”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추가타를 날린 레비아 씨가 내 등을 떠밀었다.
“자자, 얼른 여기 앉아라.”
“네? 아, 네!”
얼떨결에 자리에 앉은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두근두근.
드디어 진짜로 마법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이런 내 기대감 어린 눈빛에 레비아 씨 아니, 레비아 선생님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하긴 미안한데. 아이넬 너는 지금 당장 마법을 배울 순 없어. 왜 그러지 알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는 마나가 독이니까요.”
“맞아.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해. 모든 마법을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솔직히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당장 마법을 배울 수 없으리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실망했어?”
“솔직히 많이 실망했어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이렇듯 레비아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씁쓸했다.
“놈, 장난은 거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게다.”
응?
장난?
데커드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하핫! 미안, 미안. 아,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야. 지금의 너는 마법을 쓸 수 없어. 정확히는 나와 같은 마법을.”
나와 같은 마법이라······.
그럼 혹시?
“마법에도 종류가 있는 거예요?”
“호오? 용케 알아차렸구나. 맞아. 마법을 발현시키는 방식에도 종류가 있어. 주문, 수인, 진이지. 뭐, 전설에 의하면 언령이라는 마법이 존재한다고 전해지긴 하는데, 그건 드라고스나 쓸 법한 마법이지.”
잠시 말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넬, 너는 앞으로 진을 이용한 마법을 배우게 될 거야. 그리고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마나에 적응하고, 또 다룰 수 있게 되면 다른 방식의 마법도 배울 수 있어. 어때, 의욕이 좀 생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