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36화 (36/159)

36. 소년기(18) - #장터 가는 날!

날이 밝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터에 방문하는 날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레비아 선생님께 가고 싶었으나, 출발은 정오 무렵이라서 아직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게다가 내 일이 바쁘다고 큐우와의 산책까지 빼먹을 순 없는 노릇.

더군다나 장터는 다른 종족들이 모이는지라, 큐우를 데려갈 수 없었다.

더불어 오늘은 아침에 들러야 할 곳도 있었다.

평소보다 긴 코스를 돌며 큐우가 만족할 때까지 산책을 즐긴 나는 미리 준비했던 물건들을 챙긴 뒤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윽고 내가 도착한 곳은 미슐레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저 왔어요!”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마당에서 작물을 손질하던 미슐레 아주머니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넬 왔구나? 어머, 큐우 같이 왔네?”

역시나 마을의 마스코트답게 미슐레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바닥에 큐우를 내려놓고는 옆에 있는 또 다른 손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르네, 안녕!”

“······안녕.”

미슐레 아주머니의 일을 돕던 르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내 인사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을 르네였지만, 자주 놀다 보니 거리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더불어 르네와의 거리감이 줄어드는 데에는 큐우가 아주 커다란 공헌을 세웠다.

내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던 큐우가 르네를 보더니, 뽈뽈뽈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큐웃!

큐우의 짧은 다리가 잡초에 걸렸고, 그대로 엎어지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아!”

이에 르네가 벌떡 일어나더니 재빨리 큐우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르네가 큐우의 상태를 살폈다.

큐우!

큐우는 르네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몸을 꼬며 애교를 부렸다.

소녀와 드래곤.

동화 속에 나오는 장면과 겹쳐 보인다. 멀찍이 서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금세 손질을 마친 미슐레 아주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자, 아이넬이랑 르네는 이쪽으로 오렴.”

“네! 르네야 가자!”

“으응.”

르네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큐우가 짧은 손을 들어 자신의 손을 잡자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이내 나와 르네는 미슐레 아주머니의 주방으로 향했다.

미슐레 아주머니의 주방도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집의 뒤에 있었다.

“우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널따란 테이블이었다.

그 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작물을 비롯하여, 미슐레 아주머니가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양념과 소스들도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시선을 잡아 끄는 게 있었다.

화로였다.

아니, 저건 화로라고 부르기엔 조금 애매하려나.

엄마가 쓰는 화로는 작게 뚫린 구멍에서 나오는 불을 이용해서 요리를 한다.

반면에 미슐레 아주머니의 화로는 그 주변에 돌을 쌓아올려 불에서 나오는 열기를 가둘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흡사 피자 구울 때 쓰는 화덕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였다.

누가 요리 전문가 아니랄까봐, 미슐레 아주머니의 주방은 그 규모부터가 남달랐다.

“자, 그럼 오늘은 작물을 손질하는 방법부터 가르쳐줄게.”

미슐레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요리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지금이야 이곳에 완전히 적응을 했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

바로 음식이었다.

우리가 주로 먹는 작물은 카무챠다.

식사 대용은 물론 간식으로도 곧잘 먹는데, 거의 대다수는 굽거나 쪄서 먹는다.

카무챠는 맛있는 작물이지만 커다란 단점이 하나 있었다.

퍽퍽함이다.

그리고 이렇듯 퍽퍽한 음식을 먹을 때면 늘 땡기는 게 하나 있었다.

시원한 탄산음료와 동치미!

사이다나 동치미를 벌컥벌컥 들이켰을 때의 그 느낌.

막혀있던 속이 뻥 뚫리는 그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마저 동반한다.

사이다야 탄산이 없었으니 그렇다 쳐도 동치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할머니의 요리 솜씨는 진짜 알아줬는데 말이야.

할머니의 반찬은 동네에서도 가장 맛있다고 소문이 났으며, 아예 재료비랑 수고비를 넉넉하게 챙겨주며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옆집에 살던 할머니의 자식들마저도 우리 할머니의 반찬을 찾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나도 할머니표 반찬만 있었으면 비행기 타고 떠났던 입맛도 곧장 회항하곤 했으니까.

어쩌면 시골을 떠날 게 아니라 할머니표 김치로 장사를 했더라면 단숨에 백만장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고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먹거리다.

엄마의 음식도 충분히 맛있다. 아니, 맛을 떠나서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먹고 살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주 가끔씩은 지구의 음식.

그중에서도 MSG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시즈닝이긴 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고.

이참에 요리를 배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엄마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엄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호호호, 요리라면 미슐레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

나야 엄마의 음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지만, 정작 요리에 자신이 없었는지 은근슬쩍 미슐레 아주머니를 언급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마을에서 제일가는 요리사라면 으레 등장하는 사람이 미슐레 아주머니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은지라, 채집을 갔던 날 미슐레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이게 웬걸.

미슐레 아주머니는 이미 진작부터 르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며 함께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고, 오늘부터 배우는 것으로 얼렁뚱땅 결정이 나버렸다.

아, 맞다.

“미슐레 아주머니! 이거요!”

“응?”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챙겨뒀던 가죽케이스를 내밀었다.

“이건 뭐니?”

“선물이요!”

“선물?”

“네! 저번에 필요하시다구 하는 걸 들어서 만들었어요!”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미슐레 아주머니가 끈을 풀어 케이스를 열었다.

“어머나! 이게 다 뭐야? 어머어머!”

내용물을 본 미슐레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선물로 준비한 건 다름 아닌 칼이었다.

안 그래도 미슐레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신다. 게다가 내 간식을 비롯하여 큐우가 먹을 것도 챙겨주시곤 했다.

이에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가 필요한 작물을 드리곤 했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그저 내가 먹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다고 하며 돌려주셨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냥 받기만 해서 될까.

적어도 미슐레 아주머니께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드리고 싶었는데, 때마침 미슐레 아주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칼이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질 좋은 마수의 뼈를 골라서 식칼을 만들었다.

“어머나, 식칼이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지? 이 무늬는 또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이걸 전부 직접 새긴 거니?”

미슐레 아주머니가 식칼을 만지면서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헤헤. 네! 제가 직접 새겼어요! 그리고 이건 르네 거!”

“······응?”

나는 르네에게도 식칼 세트를 건넸다.

아무래도 나와 르네는 손이 작은지라, 일반적으로 쓰이는 식칼은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요리를 할 생각이거니와 만드는 게 크게 어렵지도 않아서 넉넉하게 만들었다.

르네는 예상치 못한 선물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뭘. 아, 그거 날카로우니까 조심해야 돼.”

“응.”

“아참,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네!”

“······응.”

미슐레 아주머니는 내 선물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 채 요리 수업을 시작하셨다.

“자,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작물의 손질이야.”

미슐레 아주머니가 나와 르네에게 잘 씻은 캐로트를 건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전이란다. 예쁘고 잘 써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수하면 다칠 수 있어. 그러니까, 손 모양은 이렇게 하면 돼.”

미슐레 아주머니가 캐트처럼 손을 오므렸다.

나도 나름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 정도는 간단했다.

돌연 르네가 내게 손을 뻗더니 손을 오므렸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어, 지금 나한테 알려주려고 하는 거구나!

하기야. 따지고 보면 나보다 먼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진작 이 과정은 거쳤겠지.

그건 그렇고.

손을 저렇게 오므렸다 펴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울까.

그래서일까. 괜스레 장난이 치고 싶어진단 말이지.

“이렇게?”

나는 짐짓 모르겠다는 듯 어색하게 손을 오므렸다.

그러자 르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다시금 손을 쥐었다가 폈다.

“이렇게?”

내가 또 실수를 하자, 르네가 멀거니 내 손을 쳐다봤다.

장난이 조금 심했나.

그때였다.

대뜸 르네가 내 손을 잡더니 직접 손가락을 굽혀줬다.

“그렇지! 르네가 잘 알려주네.”

미슐레 아주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칭찬했다.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구나. 고마워!”

“아!”

뒤늦게서야 부끄러움이 몰려왔는지 르네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호호, 사이가 좋기도 하지. 자, 그럼 조심히 칼을 잡으렴.”

“네!”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의 지도를 받아 캐로트를 썰었다.

사악, 사악.

예리한 칼날이 부드럽게 파고들며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역시, 내가 만들었지만 성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어머, 이게 뭐야?”

미슐레 아주머니 또한 곧바로 내가 준 칼을 사용하더니 깜짝 놀랐다.

놀라는 게 당연하겠지.

이곳에서 쓰는 식칼은 그 모양새가 무척이나 단조롭다. 그냥 마수의 뼈를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게 고작.

생김새야 얼추 식칼이랑 비슷했지만, 실상은 석기시대에서 쓰던 짜르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능이었다.

곧잘 가죽을 손질하는 아빠만 하더라도, 자른다기 보다는 찢는다는 느낌이 강했고.

반면에 내가 만든 칼은 지구에서도 제법 유명한 식칼의 모양을 그대로 본 따서 만들었다.

이름하야 장미칼!

꼼꼼하게 연마작업을 마쳐서 평소 사람들이 쓰는 식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날카로움을 지녔다.

게다가 두껍고 질긴 고기라도 쉽게 자를 수 있게끔 칼등을 넓혔고, 손잡이도 적당한 두께로 만들어서 비교적 적은 힘으로도 숭덩숭덩 썰린다.

특히 검증을 위해서 아빠에게 성능 시험을 부탁했었는데, 마수의 가죽도 쉽게 잘려나가더라.

“저 다 했어요!”

별안간 식칼의 성능에 놀라워하던 미슐레 아주머니가 내 앞에 놓인 캐로트를 살펴봤다.

“어머, 간격이 일정하네. 어쩜, 아이넬은 요리에도 소질이 있구나.”

“헤헤.”

“음음, 르네도 잘했어. 자, 그럼 다음으로······.”

그 후로도 나는 미슐레 아주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충실한 오전을 보냈다.

* * *

요리 수업을 마친 뒤 나는 곧바로 집에 큐우를 데려다줬다.

당연하게도 큐우는 나와 떨어지기 싫다며 칭얼거렸지만 별 수 있나.

행여나 다른 종족들에게 보였다가 납치를 당할 수도 있는지라, 한참을 어르고 달랜 뒤에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뭐, 큐우야 똑똑한데다가 엄마를 잘 따르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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