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1화 (41/159)

41. 소년기(23) - #첫 물물교환!

“씨앗이네요?”

가죽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다름 아닌 씨앗이었다.

“췩, 알아보는군! 맞네, 그건 내가 드라고스 산맥을 돌아다니던 중 발견한 씨앗이라네!”

내가 알아본 게 기뻤는지, 젠트리 씨가 기꺼워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 작은 씨앗은 췩, 뮐이라고 부른다네.”

뮐이라 불린 씨앗은 크기가 무척이나 작았고, 단단한 껍질로 감싸져 있었다.

“뮐이요?”

“췩, 이 껍질을 까면······ 보게나.”

젠트리 씨가 씨앗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겼다. 그러자 누런빛을 띠는 알맹이가 톡, 튀어나왔다.

“이게 뮐알일세.”

내가 농사 전문가도 아니거니와, 심어보기 전이라서 정확한 품종까지는 알 수 없을지언정 시골에서 흔히 보던 밀알과 똑 닮아있었다.

그리고 만약 이게 진짜로 내가 아는 그 밀이랑 똑같은 거라면······ 대박이잖아!

그도 그럴게, 밀가루만 있으면 튀김이나 면은 물론, 빵도 만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오만가지였으니 그야말로 만능 곡물이 바로 밀이었다.

“혹시 마음에 안 췩, 드는가?”

내가 말없이 뮐알을 보고 있자 젠트리 씨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뇨, 아뇨! 근데, 이걸 전부 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보아하니 어렵게 구한 것 같은데, 홀랑 다 가져가도 되는지 모르겠네.

“괜찮다네. 어차피 그 정도의 양으로는 배를 채울 수도 없으니까.”

젠트리 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다 줘도 괜찮겠냐고 물었던 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걸 심는 게 아니라 드신다고요?”

지금 내 손에 들린 뮐알은 성인의 한주먹도 되질 않는다. 젠트리 씨의 몸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를 먹어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터.

나는 당연히 이걸 심어서 농사라도 지으려나 싶었는데, 혹시 내가 잘못 생각했나?

내가 확인차 묻자 젠트리 씨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뮐알을 췩, 심는다고?”

목이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오뚝이 같아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나저나 이곳에는 아예 농사라는 개념이 없는 건가?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에서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긴 하지. 그리고 농사를 짓지 않는 이유라면······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이전에 데커드 할아버지가 말했듯 우리 마을이 생겨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정착하지 않았으니 농사를 지을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두 번째 이유로는 채집을 꼽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마을은 사방이 숲이다. 하물며 고개를 들면 높은 산맥이 보이니 사방을 넘어 팔방이 숲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먹을 것은 넘쳐났다. 즉 굳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는 셈이다.

그래봐야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지, 최근에 에프렐과 다른 종족들의 다툼으로 인해 사냥 및 채집에 큰 애로사항이 생겼다는 건 마을 사람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이 촌장님과 도리아 아주머니였고.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물물교환부터 해야겠지.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젠트리 씨에게서 받은 가죽 주머니를 챙긴 뒤 가방을 뒤져 도마와 식칼, 가위, 집게, 불판을 꺼냈다.

“여기요!”

“췩, 이걸 다 주겠다는 게요?”

얼떨결에 내가 건넨 조리도구 세트를 받아든 젠트리 씨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보아하니 이 모든 것들을 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젠트리 씨가 내게 물물교환을 신청한 이유는 삼겹살 때문이다.

그리고 삼겹살을 굽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

내가 무슨 사기꾼도 아니고. 직접 사용했던 모든 도구들을 주는 게 이치에 맞았으니까.

무엇보다.

“넵! 이거 전부 다 가져가셔도 돼요! 대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췩, 부, 부탁이라면?”

젠트리 씨가 흠칫했다. 아무래도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었다.

“네! 이걸 직접 사용해보시고, 나중에 저한테 어땠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는데. 어려울까요?”

“췩? 그러니까, 어땠는지 말을 해달라는 췩, 이야기인 게요?”

아, 내 설명이 너무 두루뭉술했나.

“네. 직접 사용해보고 어떤 점이 좋았고, 또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 그리고 만약에 젠트리 씨라면 어떻게 만들었을지. 이런 감상평을 듣고 싶어서요.”

내가 이번에 장터를 오게 된 건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일종의 리뷰였다.

나는 앞으로도 쭉 도구를 만들 예정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도구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모든 도구들은 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조금 더 폭넓게 얘기하자면, 처음부터 인간에 맞게끔 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당장 젠트리 씨만 하더라도 손가락이 짧고 두툼하다.

그나마 인간과 구조가 비슷해서 여차저차 도구를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종족들도 많았으니까. 내가 봤던 레자드만 하더라도 손에 물갈퀴가 달려있었고.

이렇듯 각 종족마다 외형적인 특징이 있었으니, 정작 도구가 생겨도 사용하지 못하리라.

만약 장터의 존재를 몰랐다면 별로 상관이 없겠으나, 나는 이미 장터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풀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쉽게 말해서 내 도구를 사용할 이른바 고객들이 늘어난 셈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제작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피드백이다.

사람들이 직접 도구를 사용해보고, 그에 대한 장점 및 단점을 말해주는 것만큼 정확하고 확실한 피드백은 없었으니까. 더불어 한 사람 한 사람의 평가와 리뷰가 모이면 곧 소문이 되고, 그 소문에 따라서 내 이미지는 물론 도구의 가치가 결정된다.

뿐만 아니다.

지구였더라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홍보가 가능하다. 반면에 이곳은 아니다. 오로지 소문에 의지해야 했다.

기왕 만드는 도구였으니 드라고스 산맥을 대표하는, 소위 명품 소리 한 번쯤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들이켜는 꼴이지만, 솔직히 나는 내 도구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즉 젠트리 씨의 입장에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그건 이런 내 생각을 모르기 때문일 뿐.

내 입장에서는 엄연한 투자다.

그마저도 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들이니 조금도 손해 볼 게 없는 투자였다.

알음알음 주워들은 전문용어를 곁들여보자면, 제로리스크 하이리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췩, 진짜로 그거로 된다는 거요?”

“아,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요. 젠트리 씨는 이런 씨앗을 모으고 다니시는 거죠?”

“췩, 그렇소이다. 내 자세한 건 이야기할 수 없으나, 틈틈이 산맥을 돌아다니며 씨앗을 모으지.”

“그럼, 그 씨앗을 저한테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가져다주시면 언제든지 필요한 도구랑 바꿔드릴게요.”

“췩, 그, 그게 진짜요?”

“진짜입니다!”

반신반의하는 젠트리 씨에게 딱 잘라 말하자 젠트리 씨의 입가가 재차 씰룩였다.

“좋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단순히 감상평에 씨앗을 모아주는 거라면야 췩, 전혀 문제 될 것 없지!”

마침내 젠트리 씨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

이로써 계약은 성립됐다.

나는 젠트리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췩?”

“저는 서로를 신뢰하겠다는 의미로 손을 잡고 흔들어요. 이걸 악수라고 합니다.”

“췩, 악수라!”

젠트리 씨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까칠까칠한 털에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나는 젠트리 씨와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췩, 나야말로 잘 부탁하오! 아, 그리고 나는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췩, 항상 있소이다!”

“그럼 저도 다음 장이 열릴 때 올 테니 그때 뵙죠!”

“좋소!”

다음 약속까지 잡았다.

이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젠트리 씨는 입가에 이어 큼지막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자리를 떠났다. 모쪼록 다음에 만날 때 젠트리 씨의 감상평을 들었으면 좋겠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물물교환을 해볼까.

아니나 다를까.

마수걸이에 성공하자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멜롱이라는 겁니다! 이거랑 저거랑 교환하고 싶습니다!”

“호구마요! 갓 따서 아주 맛이 좋다오! 이걸 다 드리겠소!”

이제는 굳이 내가 영업멘트를 날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와 온갖 물건을 내밀며 물물교환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작물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약 7할은 오늘 처음으로 보는 것들이었다.

“케륵, 싱싱한 프로기다. 맛있다! 2마리 다 준다. 케륵!”

이따금씩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40분에 걸쳐 물물교환을 하고 나자 내가 가져온 물건의 대부분이 동이 났다.

이야, 첫날인데도 거의 완판이라니······. 이제 보니 나한테는 쇼호스트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이거, 이렇게 가다가는 아예 방문판매까지 손을 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마지막 손님까지 보낸 뒤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레비아 선생님이 픽 웃었다.

“너란 녀석도 참 어지간하구나.”

“아, 맞다!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레비아 선생님을 깜빡하고 있었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처럼, 갑작스럽게 장사진이 펼쳐졌으니 레비아 선생님도 당황했으리라.

“죄송할 거 없다. 오히려 미안해야 할 건 나지.”

“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레비아 선생님이 불판을 가리켰다. 어느샌가 불판에 올려져 있던 음식은 싹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바구니에 있던 식재료도 반 이상은 비운 상태였다. 내가 장사에 열중하는 사이 홀로 구워드신 모양이다.

다행이네.

“뭘요, 어차피 같이 먹으려고 한 건데요. 그리고 저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아빠가 사냥꾼인데다가, 집에는 피기 고기가 꽤 많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부위인 목살과 항정살은 물론 특수부위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거 참 부럽네.”

“헤헤, 데커드 할아버지한테도 대접할 생각이니까 그때 또 드시면 돼죠!”

“호오, 그럼 그때만 기다리고 있어야겠네.”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자신 있게 대답한 뒤 짐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시야에 자그마한 인영이 들어왔다.

나나 레비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걸로 봐선,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는 종족인 것 같은데······. 그럼 저걸 얘기해줘야 하나.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은데, 날 찾아온 사람은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그것은 꼬리였다.

몸에 비해서 큰 로브 밑으로 복슬복슬한 꼬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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