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48화 (48/159)

48. 소년기(30) - #내가 잡는다고 했지!

어린 캣시는 물었다.

그럼 우리를 옭아맨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만약 있다면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이에 늙은 캣시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내려진 저주는 스스로 풀 수 없다.”

더 이상의 이견은 없다는 듯 단호한 대답이었다.

‘그럼 나는 왜······.’

어린 캣시는 며칠 전의 밤을 떠올렸다.

사실 어린 캣시는 그 사람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치게 하기 싫다.’

어린 캣시는 그동안 숲을 전전하며 여러 종족들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무서워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마따나, 아직 성장하지 않은 캣시라도 무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린 캣시는 그들을 해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비스테르는 모두가 기피하는 종족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실이니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자신들에게 내려진 저주가 풀리지 않는 이상 위험한 존재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면에 저 사람은 달랐다.

자신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꿍꿍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당초 록시가 순순히 따르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다.

어린 캣시가 헌트렛트의 달을 언급한 건 어디까지나 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아예 자신들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어디까지나 겁을 주기 위함인지라 어린 캣시는 먼 길을 달려 즈넬바인까지 챙겨왔다.

그리고 헌트렛트의 달이 뜨는 당일. 어김없이 그 소리가 들렸다.

헌트렛트의 달이 뜨는 날이면 들려오는 기괴한 속삭임이었다.

귀를 막아도, 설령 귀를 잘라내도 정체 모를 속삭임은 멈추지 않는다. 그저 계속 귓속을, 머릿속을 파고들며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자신들을 이끈다.

‘그 사람이 오고 난 뒤로는 들리지 않았어.’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확실하다.

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자신들의 귀에 들려오던 속삭임이 뚝, 멎었다.

‘늙은 캣시가······.’

어린 캣시에게 있어서 늙은 캣시는 부모였으며, 선생이었으며, 길잡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늙은 캣시로부터 나왔고,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것 또한 늙은 캣시에게 배운 지식 덕분이다.

‘틀린 거야······?’

어린 캣시가 고개를 내려 호수를 쳐다봤다.

그 앞에는 한 사람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개꿀!”

이따금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뱉으며 희희낙락 웃거나 대뜸 엉덩이를 씰룩이면서 이상한 몸짓을 하곤 했다.

뿐만 아니었다.

숲을 돌아다니며 바위를 들추더니, 치렝이라 불리는 벌레를 잡으며 좋아하더니, 부랴부랴 호숫가로 달려가 아까 만든 이상한 막대기에 치렝이를 끼웠다.

그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서는,

“내흐가 나를 모르는데흐, 넌 들 나를 알겠느냐흐!”

갑자기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이상한 사람.’

이 이상 저 사람에게 들어맞는 표현은 없었다.

‘저 사람이 있으면 저주가 발동하지 않아.’

문득 어린 캣시는 록시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하늘이 우리 불쌍하게 생각한다. 누가 온다고 했다! 그럼 변신 안 한다! 그러니까 기다려야 한다! 늙은 록시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두서가 없는 말이었지만, 록시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요컨대,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기어 저주를 풀어줄 자를 보내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린 캣시가 록시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네가 말했던, 비스테르가 기다렸던 그 존재냐고.

이에 록시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그럼 왜 저 사람을 따라다니는 거야?”

이 대답에 록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은 상냥하다! 록시는 대장이 좋다!”

결국 원하는 대답은커녕 머릿속만 더 복잡해졌다. 이유야 가부간 어린 캣시는 록시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기어코 저 사람을 찾아 이곳까지 왔으며, 결과적으로 록시의 말은 옳았다. 그렇다고 마냥 믿을 순 없는 노릇.

어린 캣시는 비록 짧은 시간이라고 한들 일거수일투족을 보았다.

역시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도리어 궁금증만 커져갔다.

딱 하나 명확한 것은 있었다.

‘좋은 사람.’

더불어 저 사람의 곁에 있으면 친구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아도 되고, 헌트렛트의 달이 뜨는 날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 * *

과거에는 말의 갈기나 꼬리털로 낚시를 했더랬지.

록시의 머리카락은 가위로도 잘리지 않는 강도를 자랑하거니와 물에 닿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달리 말해서 록시의 머리카락은 낚싯줄에만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 대신 활용할 수 있는 건 기본이요.

여러 가닥을 엮으면 와이어 대용으로도 쓸 수 있었으니 DIY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재료였다.

록시도 내가 머리를 빗어주는 걸 즐기는 것 같던데, 주기적으로 빗질을 해주면서 모아놓는 게 좋겠지.

나는 뱀푸나무의 끝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아까 록시에게서 얻어온 머리카락을 꼬으고 이어서 낚싯줄을 만들어, 구멍 안에 넣고 단단하게 묶었다. 그 끝에는 마수의 뼈로 만든 바늘과 추, 나무를 깎아서 만든 수제 찌를 달았다.

“좋아!”

드디어 낚싯대가 완성됐다.

나는 곧장 호숫가로 향해 낚싯대를 휘둘렀다.

퐁, 소리를 내며 호수를 때린 찌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낚싯대를 꺼내 확인해보니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추를 깎아 무게를 조절했다.

같은 작업은 반복하며 찌를 조절했다. 같은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하자 찌가 똑바로 서며 낚시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제 남은 건 미끼인데······.”

나는 근처에 있는 바위를 들춰 습기를 머금은 흙을 헤집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치렝이들이 몸을 베베 꼬며 흙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녀석들을 골라잡았다.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는 본격적인 낚시를 시작했다.

잔잔한 물 위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찌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 2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록시가 왔나 싶어 고개륻 돌렸다.

“응?”

어린 캣시였다.

그녀는 나무 위에 앉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대?”

“아까부터.”

내가 알은체를 하자 어린 캣시가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어린 캣시가 터벅터벅 걸어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별안간 침묵이 이어지던 침묵을 먼저 깬 쪽은 어린 캣시였다.

“저건 뭐야?”

“저건 찌라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건 낚시라는 거고.”

“낚시?”

“응. 이 막대기 보이지? 그리고 이 막대기 끝에 달린 낚싯줄에는 미끼가 달려있거든. 물고기가 그걸 먹으면 저 찌가 움직여. 그때 이걸 확, 낚아채면!”

나는 챔질하는 시늉을 했다. 캣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거야?”

“응. 그런 셈이지.”

“정말로 이런 걸로 물고기가 잡히는 거야?”

어린 캣시의 질문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방금 미끼를 던졌으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물고기들이 몰려들 거야. 그때부터는 엄청나게 잡을 수 있다고.”

“음······.”

하지만 이런 내 자신감과는 별개로 찌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히 물고기는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씨알이 굵은 녀석이 여 보란 듯 뛰어오르며 자신의 싱싱함을 어필했으니까.

괜스레 민망해진 나는 헛기침을 했다.

“······원래 낚시는 세월을 낚는 거야.”

“세월을 낚아?”

“그럼! 물고기를 잡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게 낚시의 참맛이라는 거지.”

어린 캣시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와 낚싯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빠의 변명을 납득해주는 착한 딸 같은 모습이었다.

어린 캣시가 넌지시 물었다.

“너는 하늘에서 온 사람이야?”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늘에서 온 사람이냐고? 내가?”

“응.”

보아하니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글쎄, 나는 하늘에서 온 사람은 아닌데?”

정확하게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었으며, 하늘이 아닌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

내 대답에 어린 캣시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너는 누구야?"

얘는 왜 자꾸 이런 심오한 걸 물어보는 걸까. 그래도 질문을 받았으면 답을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그야 아이넬이지.”

“아이넬······ 이름?”

“응. 내 이름은 아이넬이야.”

“아이넬······. 아이넬은 누구야?”

그나저나 아이넬이 누구냐라······.

마을에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천차만별이다.

아일라 내지 넬슨의 아들부터 시작해서 특이한 꼬마아이, 유별난 아이, 기특한 아이, 똑똑한 아이, 손재주가 좋은 아이, 아이를 잘 돌보는 아이 등등.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인 개구장이 꼬맹이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다양한 별명을 지닌 게 나였다.

이렇듯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 대한 호칭을 하나씩은 갖고 있지만, 결국 그 모든 별명들은 아이넬인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이넬은 아이넬이야.”

그래, 나는 아이넬이다.

비록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나는 아이넬이다.

그게 전부다.

“하핫.”

“왜 웃어?”

“그냥 기분이 좋아서.”

나는 환생을 했고, 머지않아 9살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을 지구에서 살았으며, 그 기억 또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혀 다른 세계를 경함했고, 이렇듯 경험하고 있다.

몸은 하나인데, 두 가지의 삶.

가끔씩은 과연 진짜 나는 누구냐는, 철학자들이나 할 법한 사유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있었다.

오늘 이렇게 낚시를 나온 것 건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차분하게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테스형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그래, 나는 테스형처럼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고,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

나도 모르는 걸 가지고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름이 바뀌었을 뿐 전생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듯,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아이넬이 아이넬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하는 걸까.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 사이에 파여있던 간극이 메워지며, 진정한 나로 거듭나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느닷없는 감사에 이은 제안에 캣시가 눈을 꿈뻑였다.

“아, 그리고 이름 말인데. 그래서 말인데 루나 어때?”

“루나?”

“응. 저 멀리서는 달을 루나라고 부르거든.”

“달······ 루나······.”

어린 캣시가 작게 중얼거리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싶었으나,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린 캣시의 꼬리가 꼿꼿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록시도 꼬리로 감정을 표현하던데.

어쩌면 이는 비스테르라면 공통적으로 지닌,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띠우고 있자니, 루나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거, 움직이는데?”

“뭐?”

어린 캣시의 말에 서둘러 찌를 쳐다봤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아주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찌가 쑤우욱, 올라오고 있었다.

“핫!”

나는 다급하게 낚싯대를 챘다.

낚싯대가 둥글게 휘며, 느슨했던 낚싯줄이 팽팽해졌다.

걸렸다!

묵직한 무언가가 딸려 올라오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으랏차!”

나는 힘껏 낚싯대를 당겼다.

푸확, 물보라가 치솟으며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공중을 날아 내 발치에 떨어졌다.

졸지에 뭍으로 나와 입을 뻐끔이는 물고기를 보며 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봤지! 내가 잡는다고 했지!”

나는 처음으로 잡은 물고기를 확인했다. 언뜻 붕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눈짐작으로만 봐도 50cm는 넘어보였다.

첫 물고기부터 대물이었다.

내게 잡힌 게 분하다는 듯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망에 집어 넣었다.

“좋아, 탄력받았어!”

낚시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곧바로 다음 미끼를 달았다.

그렇게 낚시 삼매경에 빠진 나는 오늘만 총 4마리의 물고기를 낚았고, 생선구이에 이어 매운탕 재료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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