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55화 (54/159)

55. 소년기(37) - #이런 걸로 놀라긴 이르지!

장터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스테인 씨와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저 멀리 스테인 씨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눈은 퀭했고, 그 밑에는 시커먼 다크서클이 드리워진 게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았다. 더불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새가 결과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몹시도 초조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 왔는가!”

내가 인사하자 스테인 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드러나듯, 스테인 씨의 표정이 환해졌다.

설마하니 내가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여간 걱정도 팔자라니까.

“네! 기다리고 계셨어요?”

나도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은 일찍 왔는데, 벌써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내 말에 스테인 씨가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나도 금방 왔네! 그나저나, 오늘은 그 작은 친구들이 없군.”

“네.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

록시나 루나는 나와 함께 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오늘은 놀러 가는 게 아니라서 그냥 혼자 오기로 했다.

게다가 스테인 씨의 말을 들어봤을 때 그곳의 환경은 두 비스테르에게 썩 좋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럼 바로 갈까요?”

“그러지! 가세.”

나는 곧바로 몸을 돌리는 스테인 씨를 말렸다.

“잠깐만요,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요.”

“응?”

나는 벙찐 표정을 짓는 스테인 씨를 데리고 장터 외곽으로 이동했다.

“로토, 나 왔어!”

내 목소리에 숨어있던 로토가 쭈욱 얼굴을 내밀었다.

꾸룩!

“이, 이건 뭔가?”

“로토라고 해요. 스테인 씨가 사는 곳까지 데려다 줄 친구요.”

“이, 이 새를 타고 간다고?”

“네! 전에 스테인 씨가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요. 로토라면 길어도 30분 안에는 도착할 것 같은데····· ·혹시 높은 곳을 싫어하세요?”

만약에 고소공포증이 심하다면야 억지로 로토에 태우기보다는 그냥 걸어가는 쪽이 낫겠지.

한동안 갈등하던 스테인 씨가 결심을 굳혔는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겠네.”

“괜찮겠어요? 싫으면 그냥 걸어가도 괜찮은데.”

“아니네! 나도 거기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어. 그걸 아낄 수 있다면야 당연히 타야지!”

“그러시다면야, 그럼 바로 출발하죠!”

* * *

“우웨에엑!”

스테인 씨가 바닥에 엎드린 채 연신 속을 게워냈다.

아침에 먹은 게 없었는지 나오는 건 없었지만,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괜찮아요?”

“으으으······ 괘, 괜찮네. 이 정도는 우욱!”

애써 건재함을 과시하려던 스테인 씨가 다시금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하기야.

나야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높은 건물은 자주 오고 다녀서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은 적은 편이다.

록시나 루나도 비행은 처음일지언정 곧잘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보면 고소공포증은 없는 것 같았고.

그러나 이 둘도 비행은 처음이며, 산맥 높은 곳에 사는 종족을 제외한 절대다수가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

만약 나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스테인 씨는 언제까지고 비행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으리라.

“그나저나 여기가 하티르구나.”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푸르른 녹음으로 짙은 숲과는 달리 날카로운 바위가 가득했다.

“여긴 조금 덥네.”

환경 또한 선선한 게 아니라 열대지방처럼 덥고 습했다.

과연 이곳에는 어떤 마수들이 살아갈지, 또 작물들이 자라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문득 예전에 내가 산맥을 보며 홀로 중얼거렸던 게 떠오른다.

당시의 나는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산맥을 응시하면서 언젠가는 꼭 저곳에 가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기약이라고는 없는 그저 나 혼자만의 다짐이었는데, 오늘 그것이 실현됐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끄응. 미안하네.”

내가 하티르를 구경하고 있는 동안 진정이 됐는지, 스테인 씨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뭘요. 저는 괜찮으니까 조금 더 쉬셔도 돼요.”

본래의 예정이라면 4시간을 걸었어야 할 거리다. 행여나 중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로토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얼추 3시간 30분이라는 여유가 생겼다.

까짓 조금 더 쉰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아니야. 어서 빨리 도구를 만들어야지. 자, 어서 가세!”

기어코 의욕이 멀미조차 이겨냈는지, 스테인 씨가 길을 안내했다.

스테인 씨를 따라가자 금세 커다란 동굴이 나왔다.

두 비스테르의 은신처와는 다르게 입구부터가 엄청 커다랬다.

“여기서부터는 엄청 더울 걸세. 솔직히 나도 10년을 넘게 지냈지만, 아직까지도 힘들지. 괜찮겠는가?”

확실히 스테인 씨의 말대로 동굴 근처에 오자 체감기온이 확 급격하게 상승했다.

더불어 바위산이라는 특성상 돌가루나 흙먼지도 둥둥 떠 다니는 게 눈에 보인다. 기관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역시 록시랑 루나를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래도 민감한 두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고생했으리라.

나도 목구멍이 칼칼한 게 슬슬 그걸 꺼낼 때가 됐나.

“그때 스테인 씨가 말씀하신 걸 듣고 미리 준비한 게 있죠.”

“음?”

나는 스테인 씨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가방을 열어 준비해왔던 장비를 꺼냈다.

“그건 뭔가?”

“이건, 방독면이라는 거예요.”

공사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방독마스크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물론 시중에서 파는 방독마스크랑은 그 생김새도 원리도 사뭇 다르다. 그래도 효과만큼은 방독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났다.

본래는 군대에서 쓰는 방독면처럼 얼굴을 비롯하여 머리 전체를 감싸게 만들고자 했다. 아무래도 눈까지 보호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당장은 유리나 아크릴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급하게 방독마스크로 노선을 변경했다.

“방독마스크?”

“쉽게 말해서 숨 쉬는 걸 도와주는 도구예요.”

“허? 숨 쉬는 걸 도와준다고? 대체 그게 무슨······.”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혹시 몰라서 여분을 챙겨왔는데, 한번 써보실래요?”

“그, 그래도 되겠는가?”

스테인 씨가 내게 물었다. 눈빛이 이글거리는 게 엄청나게 궁금한 모양이다.

“물론이죠!”

나는 스테인 씨에게 방독면을 건넸다.

“신기하게 생겼군. 이걸 쓰면 숨 쉬는 게 편해진단 말인가.”

“네.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자면 여기 이 안쪽에 이거 보이죠? 저는 이걸 거름망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숨을 쉴 때면 따라 들어오는 불순물들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죠.”

설명을 쉽게 하려고 거름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이 안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자체적으로 정화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숯이었다.

“호오! 호오!”

나는 방독면을 살펴보는 스테인 씨에게 착용 방법을 알려줬다. 이내 방독면을 쓴 스테인 씨가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혹시 사이즈가 작지 않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잘 맞는 모양이다.

“진짜로군. 숨을 쉬는 게 한결 편해졌어!”

스테인 씨는 방독마스크가 신기했는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좋아했다.

방독마스크로 저런 반응이라니.

오늘 내가 준비한 것들, 나아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것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지도 모르겠어.

그나저나 저렇게 기뻐하니 보는 내가 다 뿌듯해졌다.

“그건 스테인 씨 드릴게요.”

“이, 이걸 준다고?”

“원래 도구라는 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그 값어치가 있는 거잖아요? 도구 입장에서도 그게 더 기쁘겠죠.”

뭐, 도구가 생물도 아닌지라 감정을 느낄 리는 만무하다.

단지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전생의 나는 툭 하면 구박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내 가슴을 가장 후벼팠던 말이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는 건 나도 안다. 나아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도 그저 홧김에 내뱉은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오죽했으면 나란 존재는 남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마저도 불량품이라고 자책하며 이기지도 못할 술을 퍼마신 적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만든 도구가 구석에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가는 게 안쓰러웠다.

그냥 하루라도 빨리 좋은 주인을 만나 사용되는 쪽이 기쁘지 않을까, 라는 정말로 중학교 2학년이나 할 법한 생각들도 들었다.

“자, 자네는······. 자네는 진정 그리 생각하는 건가!”

스테인 씨가 바들바들 떨며 날 쳐다봤다. 눈시울이 붉어진 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당연하죠.”

내가 힘차게 답하자 스테인 씨의 눈빛이 한층 촉촉해지더니, 코를 훌쩍거렸다.

다 큰 아저씨가, 그것도 소위 근육 돼지라는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날 쳐다보니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다행이로군. 자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야. 그래, 도구라는 건 무릇 주인이 있어야 해. 제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든다고 그것이 쓰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스테인 씨가 설움을 토해냈다.

보아하니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다행이네.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기왕 함께 도구를 만들기로 했다.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거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아니, 의견 충돌이야말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 외에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사상에서 비롯된 충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칫 협업을 넘어 아예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으니, 그것만큼 힘들고 어려운 게 없었다.

보아하니 스테인 씨 또한 자신의 만든 도구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 작업 외적인 것으로 충돌할 걱정은 접어둬도 되겠어.

“자, 언제까지고 이럴 순 없으니까 얼른 들어가요! 스테인 씨가 작업하는 곳부터 보고 싶어요.”

“크흥! 실례했네. 자, 그럼 어서 들어가지!”

스테인 씨가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앞장섰다.

“엄청 크네요.”

“후후, 이걸 파는데 꽤 고생했다네.”

“네? 이걸 파는데 고생했다고요? 그, 그럼 이걸 스테인 씨가 직접 판 거예요?”

“맞네.”

규모만 보고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하니 이걸 직접 팠을 줄이야.

“자네는 우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군. 듀로프는 본래 성년이 되면 그때부터 자신만의 굴을 판다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에야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지.”

굴을 판다는 표현 때문에 그런지, 나도 모르게 두더지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성년부터 이걸 파셨다니 엄청 오래 걸렸겠네요.”

만약 내가 포크레인이나 굴삭기처럼 중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나 혼자의 힘으로 이런 동굴을 만든다면 족히 20년은 걸릴 것 같았다.

“음? 아, 오래 걸렸지. 아마 3년쯤 걸렸을 거야.”

“······3년이요?”

잠깐만. 방금 스테인 씨는 성년부터 동굴을 팠다고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듀로프는 몇 살부터 성년으로 쳐요?”

“아아. 보통 15살부터 성년으로 치지.”

그 말은 스테인 씨의 나이가 얼추 18살쯤 된다는 이야기잖아?

데커드 할아버지도 그렇고 레비아 선생님도 그렇고.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 나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스테인 씨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실제 나이가 다르리라고는 예상을 했었다.

다만 나이에 비해 어릴 거라고 예상을 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쩌면 저 수염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걸 수도 있겠네.

그나저나 안타깝네.

“음? 왜 그런 표정으로 내 머리를 보는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나이 18살.

꽃다운 청춘임에도 탈모를 피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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