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2화 (61/159)

62. 소년기(44) - #냉장고 완성!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어, 잠깐만요. 먼저 마법진부터 새겨야 하거든요.”

나는 가방을 열어 도구를 꺼냈다.

“마법진! 내, 내가 봐도 괜찮은 건가?”

“물론이죠. 어디 보자……아, 여기 있네요.”

나는 스테인 씨가 만들어둔 부품 중 하나를 집었다. 언뜻 송곳처럼 보였지만 그 끝은 살짝 뭉툭했으며 미세한 홈들이 파여있었다.

“안 그래도 그 부품이 궁금했었다네. 가장 단단한 금속으로 해달라기에, 만들었네만. 막상 설계도를 찾아봐도 없던데……대체 어디에 쓰이는 건가?”

“이거요? 여기에 끼우는 거예요.”

나는 손에 들린 도구를 보여줬다.

“음? 그게 대체 뭐지?”

“이거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마나 조각기?”

“마나 조각기?”

그냥 늘 재료로 썼던 나무는 조각칼로도 충분했지만, 지금부터 내가 마법진을 새길 곳은 다름 아닌 철판이다.

내 근력이라면야 늘 쓰던 조각칼로 마법진을 새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정작 조각칼이 버티질 못할 것 같아서 이참에 마나로 작동하는 조각기를 제작했다.

나는 마나 조각기에 조각용 비트를 끼우고 전원 버튼을 돌렸다.

휘이이이이잉!

“헉!”

조각용 비트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자 스테인 씨가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내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되더니 마나 조각기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것도 마법으로 움직이는 겐가?”

“맞아요. 아,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나는 바닥에 놓인 철판에 마나 조각기를 가져다 댔다.

그그그그그그그!

“어우.”

역시나 나무와는 다르게 그 반탄력부터 남다르다.

나는 덜덜, 떨리는 마나 조각기를 꽉 쥐고는 차근차근 마법진을 그렸다.

이미 수십, 수백 번을 연습한 덕분에 마법진을 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냉장실과 냉동실에 각각의 마법진을 새겼다.

“휴우, 이제 냉장고의 틀부터 조립하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 잡아주실래요?”

“알겠네!”

스테인 씨는 내 지시에 따라 직사각형의 철판을 들어 뼈대에 가져다 댔다.

“잠깐만 그대로 계세요!”

나는 골자와 철판 사이에 나사못을 끼웠다. 드라이버로 홈을 맞추고 돌렸다.

스륵, 스륵.

“이야.”

나는 드라이버를 돌리면서 감탄했다.

나사못을 처음으로 만들어봤을 텐데도 그 형태나 마감이 완벽했다.

크기 또한 구멍에 딱 맞아서 아무런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돌아갔다.

금세 한쪽 면의 조립을 끝낸 나는 철판을 당겨봤다. 철판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남은 철판도 제 위치에 조립하고 경첩과 손잡이까지 달았다. 냉장고의 문 사이에는 가죽을 덧대어 냉기가 새어 나오는 걸 방지했다.

“와, 완성인 겐가?”

스테인 씨가 냉장고를 보며 물었다.

“아직 제일 중요한 게 남았어요!”

“중요한 거?”

“마나 배터…….”

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스테인! 이놈!”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방을 울렸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이었다.

손님이라도 온 건가?

무심코 스테인 씨의 얼굴을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테인 씨?”

“이, 이런!”

스테인 씨가 대경실색했다.

방금까지는 기대감과 흥분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스테인 씨의 이름을 부르는 걸 봐서는 아는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분위기를 봐서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것 같았다.

스테인 씨는 마치 빚쟁이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 공방의 입구를 흘깃거렸다.

이윽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방문자인지 불청객인지 모를 인물 또한 스테인 씨와 같은 듀로프였다.

다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듀로프의 얼굴이었다.

어째 스테인 씨랑 똑 닮은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아, 아버지!”

스테인 씨는 방문객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썼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얼굴도 얼굴이지만, 유난히도 반짝이는 두피는 두 사람이 혈연관계임을 알려주는 아주 올바른 예였다.

역시 지구든 이곳이든 유전보다 강한 건 없다니까.

“스테인, 이놈! 아들이라는 놈이 와서 인사도 안 하는 거냐!”

스테인 씨의 아버지가 버럭 호통을 쳤다.

언뜻 스테인 씨처럼 작은 몸이었지만 뿜어내는 박력 하나는 자얀트 못지않았다.

“여, 여긴 어쩐 일로 오신겁니까?”

“어쩐 일로 왔냐고? 네 놈 잡으러 왔다, 이놈아!”

스테인 씨의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냅다 스테인 씨의 멱살을 잡았다.

“언제까지 이 아비의 이름을 욕보일 생각인 거냐!”

“저는…….”

스테인 씨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아서라.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엄연히 부자간의 이야기다. 외부인인 내가 끼어 들어봐야 오지랖 넓다는 소리나 듣겠지.

나는 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냉장고 조립을 이어갔다.

“변명이라도 해 보란 말이다! 네놈, 성년이 됐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말해 보거라, 듀로프의 자격시험을 보지 않을 생각인 거냐?”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귓속을 파고들었다.

뭐, 조립하면서 귀를 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쩔 수 없겠지.

그나저나 듀로프의 자격시험이라.

그게 대체 뭔데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

“아버지, 저는…….”

마른침을 삼킨 스테인 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는 무구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뭐라고?”

스테인 씨의 아버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스테인 씨가 찔끔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미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음인지, 스테인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이참에 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무구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뭐, 뭐라?”

스테인 씨의 아버지는 흡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채 뒷걸음질 쳤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무구를 만들지 않겠다니? 지금 듀로프의 숙명을 거스르겠다는 게냐?”

“숙명이요? 아버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만드는 무구는 대체 누굴 위한 무구입니까!”

“뭐, 뭐라?”

스테인 씨가 강한 어조에 스테인 씨의 아버지가 흠칫했다.

하기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마따나.

내가 평소 보아온 스테인 씨는 온화한 타입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근육이나 술을 좋아하는 것만 보면 굉장히 호탕하고 야성적인 것 같지만, 정작 남들에게 싫은 소리는 못하고 그저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즉 평소 스테인 씨의 언행.

나아가 스테인 씨의 아버지가 보이는 반응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렇듯 자신의 주장을 떳떳하게 밝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리라.

“무릇 도구라는 건 쓰여야 그 값어치가 있는 겁니다!”

“웃기는 소리! 듀로프는 대대로 무구를 만들었다. 네 놈은 조상님의 얼과 혼을 무시할 생각인 게냐!”

“무시가 아니잖습니까! 저는 그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두 사람의 입씨름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자꾸만 웃음이 나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서는 아니었다.

그저 어딘가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내 눈에 드라고스의 피가 들어가기 전까진 허락 못……이, 이놈이 얘기하다가 말고 어딜 가는 게냐!”

“드라고스의 피라면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잠시 거기서 기다리시면 떠 오겠습니다!”

“뭐? 이놈아!”

비록 종족도 그 원인도 다를지언정, 부자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다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야 두 사람의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니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려웠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싫어했더라면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는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두 사람은 그저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납득 시키고 싶은 거겠지.

그나저나 참 애매한 문제네.

3자의 입장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 어느 쪽도 틀렸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저 스테인 씨는 실용적인 도구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스테인 씨의 아버지는 과거의 조상들이 이룩했던 것들을 다시금 세우고 싶어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립이었고, 소위 세대 차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았다.

그나저나 냉장고는 이미 완성이 됐는데……저래서는 온종일 입씨름만 할 것 같단 말이지.

아, 이럴 게 아니라 미리 좀 넣어두는 것도 괜찮겠네.

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이전에 갔던 응접실로 향해 술과 물을 가져왔다.

술은 컵에 담아 냉장실에 넣고, 따로 만들어 온 물을 채운 얼음 틀은 냉동실에 넣었다.

뒤이어 냉장고의 스위치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마나 배터리가 작동하며 냉장고에 마나를 전달하는 게 감각됐다.

“네놈이 오르크와 어울릴 때부터 알아봤다!”

하물며 본래의 주제는 어디로 갖다 버렸는지 스테인 씨의 아버지는 엄한 걸 걸고넘어졌다.

저건 좀 위험한 발언 아닌가.

“젠트리는 제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습니까!”

역시나 자신의 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스테인 씨가 불같이 화를 냈다.

“친구라. 네 놈은 이 아비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제 친구를 나쁘게 말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당장 짐 싸서……. 음? 자네는 누군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지?”

스테인 씨의 아버지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근데,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냐고 물어본 건가?

“아까부터 계속 있었는데요.”

“그, 그랬나?”

“네.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아이넬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나는 올룸스라고 하네. 그래서, 자네는 이곳에 왜 있는 겐가?”

“설명하기가 조금 복잡하긴 한데……. 쉽게 말하자면 스테인 씨랑 협업하고 있거든요.”

“협업이라고?”

“네!”

올룸스 씨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슬쩍 스테인 씨를 쳐다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돌연 스테인 씨가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불끈, 주먹을 쥐었다.

“아이넬 씨는……제 스승입니다.”

“뭐?”

느닷없는 선언에 올룸스 씨가 벙찐얼굴로 스테인 씨를 쳐다봤다. 나 또한 당황한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드라이버를 놓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스승이라니? 이런 호룬스의 뼈다귀……크흠. 저 아이넬이라는 자가 스승이라고?”

호룬스라면 그 말이랑 비슷하게 생긴 마수를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좀 마르긴 했지만, 호룬스의 뼈다귀는 좀 심하시네!

“예. 아이넬 님은 제 스승입니다!”

“그,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너는……. 헤파이토 님의 제자로 들어가기로 되어있었거늘! 설마, 헤파이토 님의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더냐!”

“헤파이토 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무구를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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