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64화 (63/159)

64. 소년기(46) - #오늘은 영업 사원!

“설명할 거?”

“아, 별건 아니고. 냉장고 사용법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함께 만든 사람이거니와 이제부터 직접 실생활에서 사용해야 하니 설명해주는 게 도리리라.

나아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꼭 알려야 할 주의사항도 있었고,

“아아, 그런 건가! 그렇다면 당장 들어야지!”

나는 두 듀로프를 끌고 냉장고 앞으로 이동했다.

“먼저…….”

내가 냉장고의 기능을 설명하려던 차였다.

“자, 잠깐!”

조용히 있던 스테인 씨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아직 Q&A 시간은 멀었는데, 벌써 질문이 생긴 건가?

“네, 말씀하세요.”

“그……다름이 아니라.”

스테인 씨는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다.

“괜찮으니까……아하! 마시고 싶으셨던 거죠?”

그러고 보니 올룸스 씨만 마셨구나.

하기야.

술이라면 환장한다는 듀로프다.

바로 옆에서 차갑게 식힌 술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으니 내심 얼마나 부러웠을까.

어쩐지 스테인 씨가 아까부터 줄곧 텅 빈 컵만 힐끗거리더라니.

“그, 그렇소! 실은 나, 나도 한 잔 먹고 싶어서…….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소!”

스테인 씨는 말을 하면서도 민망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아예 시범을 보이는 쪽이 익히기도 쉽겠네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듀로프가 몸을 돌리더니, 각각 술통을 들고 왔다.

딱 봐도 들어갈 사이즈가 아닌데 말이야.

하여간 욕심도 많다니까.

“그럼 시범부터 보여드릴게요.”

나는 집중하는 두 듀로프에게 잘 보이게끔 냉장고의 스위치를 건드렸다.

“먼저, 이쪽에 이건 스위치라고 하는 거거든요?”

“오오.”

“스위치라…….”

“여기에 보면 작게 글씨를 새겼어요.”

“일반, 휴식, 급속이라고 적혀 있군.”

“맞아요. 그냥 평상시에는 일반으로 설정하면 되고, 혹시 장시간 자리를 비운다고 하면 휴식. 만약 급하게 식혀야 할 게 있다면 급속으로 하면 돼요.”

저번에는 쇼호스트라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가전 코너의 영업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냉장실을 열어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넣었다. 뒤이어 스위치를 급속으로 돌리자 다량의 마나가 냉장고로 이동했다.

“스위치는 이렇게 돌리면 되니까, 별로 어려운 건 없죠?”

두 듀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사용법은 끝이에요.”

지구에서 쓰는 냉장고였다면야 부가적인 기능이 많아서 1시간을 설명해도 시간이 부족할 터.

반면에 내가 설계한 마나 냉장고는 기본적인 기능만 넣었다.

최신 기술이랍시고 이것저것 넣어 봐야 배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3살짜리 아이라도 쉽게 사용법을 익힐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혹시 궁금한 거 있으세요?”

Q&A 시간을 주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올룸스 씨가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네만…….”

“네.”

“냉장고 말일세. 마법……인 겐가?”

“맞아요. 마법진을 새겨 넣었어요.”

“마, 마법진!”

내가 긍정하자 올룸스 씨의 안색이 변했다.

그래도 스테인 씨보다 연륜이 쌓인 덕분인지 금세 침착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러니까. 이 냉장고가 마도구라는 말인가?”

“맞아요.”

정확한 명칭은 아티펙트였지만, 결국 그 또한 마도구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으니 맞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재차 이어진 긍정에 올룸스 씨의 신형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마도구……. 정말로 마도구라고……?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마도구가…….”

올룸스 씨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면목이 없네. 아니, 면목이 없습니다. 이 올룸스, 평생을 망치만 잡아 귀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당황한 쪽은 나와 스테인 씨였다.

스테인 씨도 처음 날 봤을 때 무릎부터 꿇으려고 했다. 물론 그게 오해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는 걸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조차 내게 똑같은 행동을 하니 심히 당혹스러웠다.

“아, 아버지? 마도구가 대체 뭐길래…….”

“스테인! 이놈! 너는 네 스승이 만드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냐!”

느닷없는 호통에 스테인 씨가 찔끔했다.

“마, 마도구가 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시끄럽다! 후우, 자식 놈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올룸스 씨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과거 듀로프가 왜 그리 뛰어난 무구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아느냐?”

“그거야 선조께서 쌓아온 기술 덕분이 아닙니까?”

“맞다. 선조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그러한 영광도 없었겠지.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만든 무구가 더욱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올룸스 씨는 어딘가 애잔한 눈빛으로 냉장고를 바라봤다.

“마도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

“그럼 듀로프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는 건가요?”

다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올룸스 씨는 개의치 않았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드라고스가 지상의 종족들에게 마법을 전파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거기다 분위기도 싹 바뀌어 존댓말까지 썼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패스다.

“네. 알고는 있어요.”

전설 속의 드라고스야말로 마법의 시조라는 건 이미 레비아 선생님께 들었다.

“그때 듀로프의 선조는 드라고스에게 마법진을 배웠습니다.”

“그럼, 진을 이용한 마법은 본래…….”

“예. 우리 듀로프들이 사용하던 마법입니다.”

“아!”

처음 내가 마법을 접했을 때 레비아 선생님은 진을 이용한 마법이 유독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타 마법과는 달리 손재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문을 이용한 마법이나 수인을 이용하는 마법도 어려운 건 맞다.

그러나 앞선 두 마법은 말과 손짓으로 마법을 발현시키지만, 마법진은 본인이 직접 새겨야 한다. 그마저도 그 많고도 복잡한 룬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겨야만 했다.

머리도 머리지만 육체적인 능력이 바탕에 깔려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랬기에 마법을 잘 다루는 종족인 데바조차도 마법진을 쉽게 배우지 못한다고 하셨던 거고.

나도 진 마법을 배우는 입장이기에 레비아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마법진이 듀로프의 기술이었구나.”

이렇게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과거 암운이 드리워졌을 때 듀로프는 대부분의 기술을 잃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소실한 게 가장 큰 죄지요.”

“음…….”

보아하니 올룸스 씨가 되찾고 싶어 하는 것 중에는 마도구도 포함되는 것 같은데.

이거 내가 마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듀로프 사이에 알려지면 곤란해지는 거 아닌가?

“잃어버린 기술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저, 올룸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런 내 걱정과는 달리 도리어 올룸스 씨는 기쁜 눈치였다.

이상하네.

이럴 땐 자신들의 기술이니 당장 내놓으라고 역정을 내는 게 일반적인 반응 아니었나?

“진짜로 돌아가시면 제가 난감해서요. 근데……진짜 그걸로 괜찮으세요?”

“어떤 게 괜찮냐는 말씀이신지……?”

“마법진이 듀로프의 기술이잖아요. 근데, 이렇게 아티펙트를 만들면 기분이 나쁘거나 그런 거 아닐까, 해서요.”

올룸스 씨가 벌떡 일어났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기분이 나쁠 게 어디 있단 말입니까? 솔직히 헤파이토 님……. 아, 아이넬 님은 모르시겠지만 헤파이토 님은 우리 듀로프를 이끄시는 대장인이십니다.”

듀로프를 이끄는 대장인이라.

그럼 스테인 씨는 그런 대장인의 제자로 들어가려고 했었던 거구나.

그런 자리를 걷어찼다는 건 말 그대로 세계 최고 명문대학교에서 날아온 합격통지서를 찢어버릴 격일 터.

결단을 내린 스테인 씨도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올룸스 씨가 저렇게 화를 냈던 게 조금은 이해가 가네.

“헤파이토 님은 늘 마도구를 제작하는 기술을 찾으시겠다고 드라고스 산맥 곳곳을 돌아다니신 분입니다. 아마 헤파이토 님도 지금 이 소식을 들으시면 엄청나게 기뻐하실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헤파이토 님께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말하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게 있나요? 정 원하시면 마법진을 알려드릴 수도 있어요.”

내 말에 올룸스 씨가 반색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처음부터 듀로프의 기술이었잖아요. 다른 곳도 아니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거라면 저도 환영이죠.”

마법진을 알려준다고 한들 내 기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듀로프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지름길이다.

어쩌면 듀로프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여지가 생겼으니,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그리고 그냥 아까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렇게 정중한 쪽이 더 불편하거든요.”

“그……. 그러지! 그쪽이 더 편하다고 하면, 내 그리하지! 아, 근데 방금 생각난 건데 이 마도구 말이야.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겐가?”

“마도구 중에서도 아티펙트거든요.”

“아티펙트! 그랬군!”

“네. 안 그래도 설명드리려고 했는데, 이게 마나 배터리라는 건데요.”

나는 여분의 마나 배터리를 들어 둘에게 보여줬다.

“마나 배터리라. 그럼 이게 있어야만 냉장고가……?”

“맞아요. 이게 없으면 냉장고는 작동하지 않아요.”

“호오, 대체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윽!”

스테인 씨가 질문을 하던 차였다.

올룸스 씨가 스테인 팔꿈치로 스테인 씨의 옆구리를 때렸다. 부지불식간에 엘보우를 맞은 스테인 씨가 털썩, 쓰러지더니 바들바들 떨었다.

“이놈! 어찌 스승이 만든 작품을 함부로 캐내려고 하는 것이냐! 네놈이 그러고도 자랑스러운 듀로…….”

“저기, 그건 제가 알려주겠다고 해서 그래요.”

“프……그, 그랬나?”

올룸스 씨는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다는 걸 깨닫고는 허둥지둥 아들을 부축했다.

“크윽!”

“괜찮아요?”

“괘, 괜찮소. 그, 그래서 그 마나 배터리는?”

누가 듀로프 아니랄까 봐.

그는 치미는 고통을 다스리는 것보다 당장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듯했다.

“안에는 마나스냇치의 열매가 들어있어요.”

“마, 마나스냇치!”

“죽음의 나무!”

마법사의 절망에 이어서 죽음의 나무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이 배터리 안에 들어있는 이상 안전해요.”

“혹여 배터리가 부서지면 큰일이 아닙니까?”

나는 말 대신 마나배터리를 내밀었다. 이에 올룸스 씨가 주저하더니, 조심스레 마나배터리를 받아들었다.

“한번 열어보세요.”

“열어도 괜찮은 겐가?”

“괜찮으니까, 열어보세요.”

내 말에 올룸스 씨가 마나 배터리의 뚜껑을 잡아당겼다.

두둑,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뚜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푸쉬이이이이!

돌연 마나 배터리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헛! 이게 왜?”

올룸스 씨는 혹시나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정상이에요. 그 안에는 따로 안전장치가 있어서요. 만약 강제로 열거나, 배터리에 손상이 가면 안에 있는 마나스냇치는…….”

나는 당황한 올룸스 씨에게서 마나 배터리를 받아 뒤집었다. 그러자 열린 뚜껑을 통해 새하얀 잿가루가 푸스스, 쏟아졌다.

“이렇게 잿더미가 되게끔 안전장치를 추가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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