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82화 (80/159)

82. 소년기(64) - #작전 개시!

초유의 사태에 공터가 술렁거렸다.

“뭐, 뭐야? 저게 왜 풀리는 거지?”

“말도 안 돼······.”

“지금까지 아무도 푼 사람이 없었잖아?”

저마다 다른 말을 할지언정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인물은 청년 펜서였다.

“어, 어떻게?”

넋이 나간 듯한 그의 혼잣말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혹시 저 목걸이가 잘못된 건 아닐까?”

보아하니 저 목걸이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 만했다. 앞서 대다수의 비스테르처럼 목걸이를 풀고자 했던 이들은 많았으나, 정작 푼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다.

처음 이곳으로 잡혀 온 이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방법을 찾아보아도 풀리질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즉 아이넬이 목걸이를 풀었다고 한들.

설령 그 장면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봤다고 한들.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그, 그래. 저 목걸이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어.”

“······그렇겠지?”

그래서일까.

처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비스테르들도 목걸이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 듯했다.

이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청년 카제르가 입을 열었다.

“아니다. 저건 진짜다. 우리가 찬 것과 똑같은 목걸이가 맞아.”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담담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담담하게 들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청년 카제르의 눈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는 시뻘건 핏발이 서다 못해 터져버려, 흡사 폭주한 비스테르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동료 카제르가 질문을 던진 비스테르를 보며 동조했다.

“저건 진짜가 맞다.”

동료 카제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또한 청년 카제르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 거냐?”

“어떻게 확신하냐고?”

청년 카제르가 터벅터벅, 걷더니 아이넬에게 향했다. 이에 아이넬은 자연스럽게 청년 카제르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목걸이를 받아든 청년 카제르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후우······. 이게 보이나?”

“뭐가······ 음?”

목걸이를 뚫어지라 쳐다보던 한 비스테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집?”

그렇다.

목걸이에는 이상하리만치 흠집이 많았다. 마치 날카롭고 단단한 무언가로 찍거나 긁은 듯한 모양새였다.

이에 청년 카제르가 고개를 숙였다.

“이 목걸이에 생긴 흠집은 내가 만든 거다.”

“뭐?”

“내 친구가 쓰고 있던 목걸이라는 말이다.”

청년 카제르의 말이 끝나자 삽시간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너······.”

“그래. 내 친구는 이 목걸이를 끊겠다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설령 목걸이가 조이더라도 멈추지 말라고 했어.”

“그, 그럼······ 친구는······.”

“살아있다. 아니,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야.”

“도, 동굴로 끌려갔다는 얘기냐?”

청년 카제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동굴로 끌려갔지. 나는······ 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모른다.”

늘 마음속에 묻어만 뒀던,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끝나자 공터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안하다.”

청년 펜서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청년 펜서가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했다.

진심이 전해졌음일까.

청년 카제르가 조금은 차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도 너무 흥분한 것 같다. 미안하다. 한 가지만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결코 어린 캣시를 위험에 빠트리려고 한 게 아니야.”

오해 아닌 오해가 풀리고 나자 좌중을 짓누르던 분위기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자, 주목!”

잠자코 둘을 지켜보던 아이넬이 손뼉을 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요. 우리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민망했던 아이넬이 웃으며 헛기침을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러분들이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잘 알겠어요. 그리고 이 목걸이가 가짜가 아닌지 의심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사실 청년 펜서가 주장했던 가짜 목걸이에 대한 의심을 단박에 해결할 방법은 있었다.

그냥 가서 청년 펜서가 찬 목걸이를 해제해주면 된다.

그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굳이 아이넬이 나서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결과를 중요시하겠다고 과정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

조금 전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고 싸웠던 이유는 오해가 원인이었다.

사실 아이넬은 청년 카제르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다는 걸 들었다.

나아가 이곳에 사정이 없는 비스테르는 없다는 것 또한 눈치채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을 잃고, 친구를 떠나보냈으며, 보금자리를 빼앗겼다.

당장 공터만 봐도 그렇다.

얼추 30명이 넘는 비스테르가 모여있다. 비록 본의 아닌 공동생활이라고는 하지만 매일 보는 사이다.

그마저도 벽이나 경계선도 없이 그냥 탁 트인 방에 모여있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모든 비스테르들은 다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어지간하면 대화를 나누질 않는다.

실제도 몇몇 비스테르 그중에서도 소녀 라핀과 소녀 베아드를 제외하면 아예 시선을 마주치려고도 하질 않는다.

단순한 영역 다툼이 아니었다.

서로가 싫어서는 더욱더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혹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상에 지친 것이 첫 번째요.

그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 것에 두려워진 게 두 번째다.

아파지고 싶지 않기에 아픔을 참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떠나보냄으로 말미암아 슬퍼하느니 그저 홀로 고독을 씹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감정을 표출해야지.’

설령 이곳에서 탈출한다고 한들 마음에 앙금이 남아있다면 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지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랬기에 아이넬은 굳이 나서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면, 저렇게 싸울 일도 없을 터.

저렇게 화를 내고 충돌한다는 건 그래도 동료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만큼 순수한 거고.’

애당초 아이넬은 자신의 능력을 밝히지 않고 가능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실제로도 모두가 목걸이가 해제됐다는 것도 모르게끔 해결하고 조용하게 떠날 계획이기도 했고. 이를 위해서 모두를 비몽사몽으로 만들 마법진도 미리 짜둔 상태였다.

근데, 막상 비스테르를 본 아이넬은 급히 계획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뿔뿔이 흩어지느니, 내가 데리고 가는 게 훨씬 안전하겠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저주.

목걸이는 푸는 즉시 그들을 옭아맨 천형 또한 다시 돌아온다.

‘차라리 록시와 루나처럼 내 근처에 두는 게 안전할 테니까.’

물론 아이넬의 근처에 있는 이상 저주가 발동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아직까지도 그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도 어째서 록시와 루나가 변신을 하지 않는 것인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뭐, 알면 더 좋겠지만 당장 알아낼 방법은 없으니, 패스.’

적어도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저주가 발동하지 않는다.

비스테르에게 있어서 이게 제일 중요했다.

그 외에도 여러 정황을 종합했을 때, 아이넬은 일련의 계획을 수정하는 쪽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잠깐의 생각을 정리한 아이넬이 입을 열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자유를 되찾아드릴 수 있어요.”

“오오오······.”

아이넬의 확신에 비스테르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대신, 무작정 빠져나갈 순 없어요. 당장이라도 목걸이를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다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잠시 말을 멈춘 아이넬이 좌중을 훑어봤다.

“작전 개시는 오늘 밤입니다.”

“작전? 그, 그게 뭐지?”

청년 펜서의 질문에 아이넬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짜야죠.”

* * *

야심한 시각이었다.

바닥에 누운 나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스테르가 저마다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게 보였다.

언뜻 보면 모두 잠든 것 같았으나 실상은 내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따금씩 실눈을 뜨거나 괜스레 뒤척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다들 잘하리라 믿지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애당초 내가 본래 내가 세웠던 계획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했던 것은 비스테르였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마따나.

내가 목걸이를 풀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반응을 비롯하여 괜히 계획을 들었다가 감시자들에게 의심을 살 행동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데, 막상 비스테르들은 그 어떤 군말도 없이 따르겠다고 나섰고, 지금처럼 내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비스테르가 원래 그런 종족인지는 몰라도 단합력 하나는 끝내줬다.

뭐, 행여나 감시자들에게 들킬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를 짜두긴 했지만, 비스테르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아하니 플랜 A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방심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모두 안전하게 탈출하는 그 순간 아니, 탈출에 성공한 후에도 당분간은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와요.”

소녀 라핀의 속삭임에 슬쩍 옆을 쳐다봤다.

쫑긋거리며 바삐 움직이는 귀 너머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까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오가른이었다.

녀석은 배려심도 없는지, 쿵쾅거리며 공터에 진입했다.

심지어 손에 든 횃불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소리로 외쳤다.

“어이! 카제르, 어디 있나!”

안 그래도 적막한 공터다.

오가른의 쩌렁쩌렁한 소리에 꿈나라를 여행 중이던 마수들이 부산스럽게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청년 카제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 여기 있습니다.”

“자고 있었나? 태평한 놈이군.”

잠에서 금방 깬 사람처럼 눈을 비비자 오가른이 조소했다.

“예? 아, 죄송합니다.”

“됐다. 아까, 네 녀석이 데려온 고브는 어디에 있지? 그분께서 찾으신다.”

그분이라.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내가 그분을 만나는 건 작전의 일환이었다.

근데, 작전도 작전이지만 저들이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저, 저는 여, 여기 있습니다.”

겁에 잔뜩 질린 척 말을 더듬으며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쯧, 아무튼 그분께서 널 찾으신다. 네가 들고 도망갔다는 물건은 어디에 있지?”

오가른의 질문에 나는 퍼뜩 주변을 살피는 척하며, 바닥에 놓아둔 물건을 집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오가른이 내 품에 안긴 물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여기!”

내가 물건을 내밀자 오가른이 화들짝 놀라며 횃불을 휘둘렀다.

“그만! 거기서 멈춰라.”

역시, 이상해.

감시자라면 직접 이 물건을 확인해보는 게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일 터.

하지만 방금 전 오가른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 멀찍이서 보기만 할 뿐. 직접 만지려고 들진 않았다.

“잘 챙겨서 따라와라.”

오가른이 몸을 돌렸다.

“루나야, 잘 부탁할게.”

“응.”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한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청년 카제르와 함께 오가른을 따라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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