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소년기(70) - #학교를 짓자!
나는 조용하게 레비아 선생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응? 아, 그걸 말하면 되는 거야?”
작게 들려온 레비아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알았다.”
레비아 선생님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걸 하나 말씀드릴까 합니다.”
비스테르들을 보며 연신 훌쩍이던 도리아 아주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 내 정신 좀 봐.”
그녀는 서둘러 눈물을 지우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평소의 언행을 보면 참 무뚝뚝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데, 알고 보면 마음이 여린 분이란 말이지.
“중요한 거라면······?”
“음······. 다름이 아니라. 저는 파메르 님은 산맥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죠. 파메르 님은 조화의 신이니까요.”
도리아 아주머니가 양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크흠. 예. 파메르 님이 말씀하신 행복하고 보람찬 삶은 그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닙니다.”
“그럼······?”
“파메르 님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이시지만, 엄격한 부모이기도 합니다. 파메르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레비아 선생님이 슬그머니 하늘을 쳐다봤다.
“아이에게는 고기를 줄 게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오오오!”
“윽.”
레비아 선생님의 멋들어진 말에 도리아 아주머니는 감동하셨고, 나는 남몰래 허벅지를 긁었다.
어우, 괜스레 온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네.
그도 그럴 게, 저 말을 한 사람은 파메르가 아니라 나였으니까.
어쩐지 레비아 선생님도 그 말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더라니, 여기서 써먹으실 줄은 몰랐네.
“도리아 씨도 알고 계시듯, 파메르 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걸 직접 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을 만드는 방법과 쓰임을 알려주실 뿐이지요.”
정답이었다.
내가 만드는 건 도구다.
도구는 어디까지나 편의를 위해서 생겨난 이기다.
“도구는 도구일 뿐. 우리는 직접 농사를 짓고 있지요.”
레비아 선생님의 의견처럼 갖고 있어서 배가 부른 게 아니라 직접 움직여 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농사든, 낚시든 결국 본인 스스로 손을 움직여 쟁취해야만 한다.
옛말에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파메르는 진짜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이다. 단순히 그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던진 일종의 가림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게 이렇게까지 유용하게 쓰이는 것도 내심 신기할진대, 상황에 딱딱 들어맞으니 당사자인 나조차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기분도 든단 말이지.
이거 거짓말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게······ 좋아해도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도리아 아주머니는 기꺼운 얼굴로 손뼉을 치셨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파메르 님의 아이이고, 저는 파메르 님의 신도. 그러니, 모두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는구나.
“알려줘야 할 의무? 그건 어떤······.”
도리아 아주머니의 질문에 레비아 선생님이 운을 뗐다.
“저는 앞으로 이 마을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지식이라면······. 호, 혹시 레비아 선생님께서 직접 가르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도리아 아주머니가 깜짝 놀랐다.
“그렇습니다. 저는 마을에 학교를 짓고 싶습니다. 마을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비스테르도 가르치고자 합니다.”
이 또한 내가 예전부터 생각해둔 아이디어였다.
내가 학교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업을 갖고 있다.
일례로 엄마는 채집꾼이고, 아빠는 사냥꾼이다.
두 분 모두 자신의 업에 충실했고, 별다른 불만을 갖진 않았다.
왜냐면 그게 당연했으니까.
나는 그게 아쉬웠다.
엄마는 채집꾼이지만, 약초에 관심이 많고 또 제조에 능하다.
아빠는 사냥꾼이지만 막상 보면 마수를 다루는 특기가 있다.
당장 큐우만 보더라도 아빠를 잘 따르니까.
이렇듯 모두가 자신의 업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저마다 관심 분야도 다르고 특기도 다르다.
이게 너무나도 아쉬웠던 차에 우리는 농사를 짓기로 했다.
이제는 안정적인 먹거리가 생길 테니, 우리의 생활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될 터.
그렇다면 이걸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중 나는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학교를 떠올렸다.
거기다 나에게는 지구의 지식이 있으니, 까짓 모두 다 풀어버려도 무방했고.
물론 전문가처럼 깊게 아는 건 아니다.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이른바 얕고 넓은 지식이다.
아무렴 어떠랴.
여기서 말하는 학교는 지구의 것처럼 전문적인 무언가를 배우는 기관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혹은 상식.
알아두면 편리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알려줄 예정이다.
원한다면 더 전문적인 걸 배울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모두가 함께 즐겁게 배울 수 있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도리아 씨, 그리고 촌장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레비아 선생님의 정중한 말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냉큼 양손을 저으셨다.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신지요! 레비아 선생님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신다니. 그건 제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랍니다!”
“그럼······?”
“허락하고 말 것도 있나요? 부디 원하시는 대로 해주시길. 촌장님한테는 제가 잘 설명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도리아 아주머니의 화통함에 레비아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안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녜. 말씀하세요!”
“학교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저 혼자 모두를 가르칠 순 없으니, 선생님이 될 분들을 모집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요?”
“예. 도리아 씨도 부디 선생님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레비아 선생님의 제안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당황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 저는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레비아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리아 씨는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십니까?”
“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돌연 도리아 아주머니가 날 쳐다보셨다.
“착한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날 보고 말씀하시니 괜히 민망해지네.
“착한 아이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 아닐까요?”
“배려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니, 도리아 씨가 선생님으로서 모범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갈등하던 도리아 아주머니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더 모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아, 선생님에 관한 건 정기회의 때 전달하는 건 어떨까요?”
도리아 아주머니의 제안이 레비아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군요. 어차피 학교에 대한 것도 알려야 할 테니, 그때 선생님도 같이 모집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서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어봤으면 합니다.”
하기야.
학교를 짓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어떻게 교육을 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선생님은 누가하고, 커리큘럼이나 스케쥴은 어떻게 짜고, 시간은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등등.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맡아야 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을 터.
그건 다음 회의까지 잘 정리하면 되겠지.
* * *
짧다면 짧은 회의를 마친 나는 비스테르들을 이끌고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허어······. 네 녀석은 툭 하면 뭘 주워오는구나.”
데커드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셨다.
나는 뒤에 나란히 선 비스테르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오와 열을 맞춘 채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귀여웠다.
거기다 비스테르의 특징인 짐승 귀와 꼬리 덕분인지, 다들 인형 옷을 입은 아이들 같다고 해야 할까.
거기다 비스테르의 상당수는 록시, 루나의 또래였다.
진짜 저 옆에다가 해바라기반이라고 적힌 팻말만 놓으면 체험학습 온 아이들이라고 해도 믿으리라.
“헤헤. 매번 죄송해요.”
무언가 일이 있을 때면 늘 데커드 할아버지를 찾아오니, 내심 미안했다.
“흥, 됐다.”
데커드 할아버지는 늘 그렇듯 퉁명스럽게 대꾸하시곤, 어슬렁어슬렁 해먹으로 향하셨다.
자, 이제부터 해볼까.
나는 작업대로 향해 큼지막한 가죽을 꺼냈다.
서걱, 서걱.
작두를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 위에 옷핀을 꼈다.
“좋아.”
뒤이어 필기도구를 챙겨 공터에 자리를 만들었다.
“줄을 서시오!”
장난스레 말하며 비스테르들을 일렬로 세운 나는 의자에 앉아 가장 앞에 선 비스테르에게 손짓했다. 얼떨결에 지목을 당한 소녀 레서드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적잖이 긴장했는지 하얗고 둥글납작한 귀가 반으로 접혔고, 줄무늬가 그려진 두툼한 꼬리는 빳빳하게 서 있었다.
“간단한 소개 부탁해요.”
“저, 저는 레서드 부족이에요!”
“레서드 부족이고······. 다음으로 취미는 있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고민하던 소녀 레서드가 입을 열었다.
“누, 누워있는 거요.”
“누워있는 게 취미구나.”
나는 그 밖에도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가 갑작스럽게 개인정보를 묻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앞으로 함께 살아야 할 가족이었으니 많은 걸 알고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름을 지어줘도 괜찮을까요?”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주고 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앞으로 이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름은 필수 불가결했다.
그랬기에 때아닌 작명소를 열었고.
“이름······.”
소녀 레서드가 힐끗 옆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해맑게 웃으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록시와 이를 지켜보며 한 마디씩 보태는 루나가 있었다.
안 그래도 모든 비스테르들은 록시와 루나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신기해하는 한편, 부러워하는 눈치였지.
“지, 지어주세요!”
나는 가만히 소녀 레서드를 응시했다. 전체적인 이미지와 그녀에게 들은 답변을 상기하며 적당한 이름을 떠올렸다.
“레아.”
“레아!”
“네, 앞으로 레아라고 부를게요.”
나는 조금 전에 잘라둔 가죽에 레아라고 적었다.
“자, 이걸 왼쪽 가슴에 달면 돼요.”
“이건······.”
“레아. 레아의 이름을 적은 거예요.”
아무렴.
인원이 66명이다.
본인의 이름이야 쉽게 외우겠지만, 정작 이름을 부르는 건 타인이다. 즉 이렇게 이름표를 달아둔다면 한 번이라도 더 이름을 보고 부를 테니, 보다 빠르게 익숙해지겠지.
“레아······.”
소녀 레서드 아니, 레아는 자신의 이름을 곱씹더니 내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자, 다음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소녀 라핀이었다. 나는 마찬가지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라피. 어때요?”
“라피! 좋아요!”
그 이후로도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자, 이제 다들 밥 먹죠!”
사실 다들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상당히 오랫동안 굶었을 터.
작명소의 업무도 끝났으니 오늘은 내가 짜파 아니, 주방장이 될 시간이었다.
“밥이다! 대장이 한 밥이 제일 맛있다!”
누가 먹보 아니랄까 봐.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록시가 방방 뛰며 기뻐했다.
“오늘은 뭐 만들 거야?”
루나도 배가 고팠는지, 은근슬쩍 메뉴를 물었다.
“비밀. 오늘은 조금 특별한 걸 만들 생각이거든.”
“특별한 거?”
“응. 기대해도 좋을 거야.”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나는 곧장 작업대로 향해 조리도구를 챙겼다.
“끙차!”
그중에서도 대형 프라이팬을 공터 중앙에 설치했다.
언뜻 그냥 엄청 거대한 프라이팬처럼 보이지만, 자체적으로 열이 나는 아티펙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