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소년기(73) - #달걀귀신의 정체
나는 접시에 부침개를 담아 오두막 문을 두드렸다.
“뭐냐?”
“배고프시죠! 이것 좀 드세요!”
“흠? 그건 뭐냐?”
데커드 할아버지가 짐짓 모르겠다는 듯 말씀하셨다.
에이, 아까 창문 너머로 훔쳐보는 거 내가 다 봤는데, 또 모른 척하시네.
“부침개라는 거예요!”
“부침개?”
“네! 식기 전에 드세요! 참고로 이거 술이랑 되게 잘 어울려요.”
“호? 이게 네가 말했던 안주라는 게냐?”
데커드 할아버지는 그새 안주라는 단어를 외우셨는지, 자연스럽게 사용하셨다.
“맞아요! 안주로도 자주 먹어요!”
“커험, 잘 먹으마.”
“네!”
수염을 만지시며 진열대에 놓인 술을 꺼내시는 데커드 할아버지를 뒤로한 나는 그 즉시 공터를 빠져나왔다.
그런 내가 향한 곳은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터였다.
공터에는 내가 캠핑 때 쓰려고 제작한 텐트를 비롯하여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챙겨온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똑똑, 계세요?”
내가 인기척을 내자 텐트 속에서 작은 인영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이내 텐트 입구가 열리며 작은 인영이 퍼뜩 고개를 내밀었다.
“아! 비스테르의 대장?”
작은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브였다.
고브는 내 얼굴을 보자 안심했는지, 속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쭉 안에 있었던 거야?”
“으응.”
“답답하지 않았어?”
“괘, 괜찮아.”
어린 고브가 불안한 눈으로 숲을 힐끗거렸다.
아무래도 비스테르들에게 쫓긴 기억 때문인지, 선뜻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마을로 함께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고브의 심리상태가 불안한 것 같아서 일단은 이곳에 임시로 거처를 만들었다.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표정이 부드러워진 걸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준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여긴 안전하니까 걱정할 거 없어. 배고프지?”
“나, 나는 괜찮······.”
허둥지둥 손을 휘젓던 고브가 멈칫하더니 유난히도 큰 코를 벌름거렸다. 그와 동시에 위장이 꼬르르르륵, 하고 굶주림을 호소했다.
“사양할 건 없다니까 그러네. 자, 너무 움츠리고 있으면 안 좋아. 나와서 밥 먹자.”
“으응.”
내 격려에 이어 부침개의 매혹적인 냄새를 견디지 못한 고브가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이내 고브가 의자에 앉았고, 이번에도 젓가락의 사용법을 알려줬다.
역시나 고브 또한 젓가락질이 쉽지 않았는지 애꿎은 접시만 쿡쿡 찔렀다.
“으으으!”
“적응하기 어렵지? 그럴 땐 그냥 이렇게 쓰면 돼.”
나는 젓가락 끝으로 부침개를 쿡 찔러 고브에게 건넸다.
“고, 고맙다.”
“뭘. 그나저나, 달걀귀신은 어때?”
나는 공터 끝자락을 쳐다봤다.
그곳에도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문제의 달걀귀신은 그 안에 고이 모셔뒀다.
“으응. 계속 안에 있다.”
“그래? 편하게 먹고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겁지겁 부침개를 먹는 고브를 두고 텐트로 향해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달걀귀신은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여간 팔자도 좋아요.
“웃차!”
곤히 잠든 달걀귀신을 질질 끌고 공터에 눕혔다.
* * *
“후욱, 후욱······.”
달조차 구름에 가려져 유난히도 어두운 밤이었다.
한 남자가 적막한 숲을 헤매고 있었다.
키는 약 1미터 70센티쯤 되었으며 피부는 짙은 녹색이었다.
게다가 거의 발가벗다시피 한 전신은 근육질이었으며, 유난히도 커다란 코에서는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으윽.”
묵묵하게 숲을 걷던 남자가 털썩, 쓰러졌다.
“······빌어먹을 에프렐 놈들. 내가 여기서 물러설 것 같으냐!”
남자가 거칠게 외치더니,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육체는 꿈쩍도 하질 않았다.
“끄으으으.”
결국 일어나기를 포기한 남자가 그대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울창한 숲에 가려져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남자의 시선은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 매서웠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브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는 평범한 고브가 아니었다.
그렇다.
남자는 하플링이었다.
정확히는 하플링의 피를 이어받은, 소위 하플링 2세였다.
산맥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살아가는 만큼 하플링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물며 몇몇 종족.
그중에서도 비교적 약한 종족의 경우는 하플링이 귀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일례로 고브의 경우 산맥에서 가장 약한 종족이다.
그들은 데바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에프렐처럼 정령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헤파이토처럼 손재주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인간처럼 지혜가 뛰어난 종족도 아니다.
이렇듯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고브를 지켜낸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지금 숲을 헤매다 쓰러진 청년 고브의 아버지였다.
청년 고브의 아버지는 오가른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다.
따라서 평범한 고브에 비해 월등하게 커다란 몸집을 지녔으며 타고난 힘 또한 남달랐다.
심지어 머리 회전도 빨랐던 그는 앞장서서 고브를 지휘했다.
이렇듯 에프렐은 천박하다 손가락질하고 또 그들을 멸시하는 것이 하플링이었지만, 고브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귀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 증거로 하플링이었던 청년 고브의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모든 고브들을 지휘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청년 고브의 아버지는 고브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약하디약한 종족이었던 고브들에게 터전을 만들어주었다.
고브에게 있어 아버지는 고브의 희망이자 빛이었다.
‘이제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오가른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반쪽이다.
하물며 그들의 상대는 산맥에서도 가장 강한 종족인 에프렐이다. 근데, 따지고 보면 고브와 에프렐 간의 다툼은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
그들은 고브를 맹목적으로 혐오했으며, 어떻게든 숲에서 내쫓으려고 했다.
이에 고브들도 어떻게든 대항했다.
중요한 건 단순한 다툼이었지, 전쟁은 아니었다.
에프렐이 고브를 혐오하고 또 싸움을 걸어왔지만, 제 나름의 선은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점점 다툼의 주기가 짧아지는가 싶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다툼이 아닌 전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전쟁을 시작한 쪽은 에프렐이 아니었다.
그렇다.
고브. 정확히는 청년 고브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전쟁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라면 짐작 가는 게 있었다.
“그 돌이 문제였어.”
언제였던가.
남자의 아버지는 어느 날 무언가를 발견했다며 다수의 고브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당시 청년 고브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가 향한 곳은 드라고스의 머리. 즉 헤디아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폭포였다.
놀랍게도 폭포에는 숨겨진 동굴이 있었다.
동굴로 들어간 청년 고브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상하리만치 추웠으며, 기괴한 석상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특이하게 생긴 돌을 발견했다.
“확실해.”
그 돌을 가져온 뒤로 무언가가 달라졌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변화를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뒤늦게나마 그 돌이 대체 물어보아도 아버지는 그저 지켜야 할 물건이라는 말만 했을 뿐, 당최 알려주질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설령 목숨을 걸더라도 지켜야만 한다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아무리 일당백이라고 한들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끝끝내 에프렐에게 패배한 청년 고브의 아버지는 포로로 끌려가고야 말았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에프렐 사이에도 아버지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마을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청년 고브는 그 돌을 몰래 빼돌렸다.
“······막내.”
그렇다.
청년 고브는 자신의 동생에게 돌을 맡겼고, 조용하게 마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 후 청년 고브는 다시금 자신들의 마을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남자 또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평범한 고브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청년 고브의 아버지로 말미암아 에프렐의 간섭과 위협은 심해졌다.
아직 어렸으며, 배워야 할 게 많은 시기다.
비록 남다른 능력을 타고났다고 한들 갑작스럽게 고브의 우두머리를 맡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나도 많았고,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었다.
“빌어먹을!”
원망이 담긴 혼잣말이 고요한 숲을 울렸다.
그때였다.
돌연 숲이 들썩거렸다.
“서, 설마!”
남자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시선에 들어온 건 시뻘건 불길이었다.
“화, 화염의 정령······!”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저건 틀림없는 정령이었다. 불길에 휩싸인 화염의 정령이 청년을 응시했다.
어두운 숲속에 홀로 떠 있던 화염의 정령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청년 고브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의 불길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시시각각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감지됐다.
“끝이다······.”
이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청년 고브가 고개를 떨궜다.
절망도 잠시였다.
“화염의 정령이라. 잔재주로군.”
“누, 누구?”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청년 고브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워낙 어두워 희끄무레한 실루엣만 보였지만, 딱 하나 청년 고브의 눈에 때려 박힌 게 있었다.
“가면······?”
어둠 속에서도 새하얀 가면만은 확실하게 보였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청년 고브를 쳐다봤다.
“선택지를 주마.”
“선택······지?”
“나와 함께 데모스 님을 따르겠나?”
“데모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데모스 님이다. 네가 오가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한들, 고브라는 건 변하지 않지.”
“그, 그걸 어떻게?”
청년 고브가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평범한 고브와 궤가 다르다. 즉 본인이 직접 밝히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고브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이 고브라는 것. 심지어 하플링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자세한 건 알 것 없다. 선택해라. 데모스 님을 따른다면 내 너에게 새로운 삶을 내려줄 수 있지. 네가 그토록 원망하는 에프렐을 멸망시킬 힘을 주마.”
“새로운 삶······. 에프렐······.”
청년 고브가 중얼거리자, 가면의 남자가 무언가를 건넸다.
“가면······?”
그것은 새하얀 가면이었다.
“받아라. 그리고 얼굴에 써라. 그리하면 데모스 님이 너에게 강력한 힘을 주실 것이다.”
그 유혹적인 말에 홀려버리기라도 한 걸까.
청년 고브가 손을 내밀어 가면을 잡았다. 가면은 매끄러웠으며 차가웠다.
“이걸 쓰면······. 에프렐 놈들을······.”
“그래. 그 가면을 쓰고 데모스 님을 받아들인다면, 그깟 에프렐 따윈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 네가 원했던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어.”
“평등한 세상······.”
“그래. 데모스 님을 받아들인다면 핍박받을 일도 무시당할 일도. 이렇게 도망다니는 삶도 끝이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청년 고브가 가면을 자신의 얼굴에 덮었다.
“으으으윽!”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감각됐다.
“이, 이건!”
어딘가 끈적하면서도 불길한 느낌.
이것은 청년 고브의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그 돌에서 느껴지던 것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가면은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너, 너! 나를 속였구나!”
“속였다라.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 그게 무슨······.”
“내가 말했잖나? 새로운 삶. 그리고 에프렐의 멸망. 그리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 너는 앞으로 데모스 님의 종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 것이며, 에프렐을 포함한 모든 종족은 멸망할 것이며, 데모스 님의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살아갈 것이다.”
가면의 남자가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청년 고브의 눈에 보였던 화염의 정령이 몸을 돌리더니, 숲 너머로 사라졌다.
“자, 말해라. 네 녀석이 빼돌린 데모스 님의 영혼은 어디에 있지?”
“크으으으으······. 아······. 마, 막······.”
* * *
“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