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2화 (90/159)

92. 소년기(74) - #가족 상봉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어난 달걀귀신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는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어우, 놀라라.”

조금만 늦었으면 그대로 박치기를 할 뻔했다.

그나저나 내 생각대로네.

가면에서도 짙은 마기가 감각됐기에 혹시나 싶었는데 말이야.

“으으으으으으······.”

달걀귀신은 무슨 악몽이라도 꿨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괜찮아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달걀귀신이 기겁하더니, 곧장 나에게 달려들었다.

“너, 너! 나를 속였구나아아아아!”

녀석은 아직도 잠에서 덜 깼는지, 어눌한 발음으로 소리치며 내 멱살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지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수면 마취에서 막 깨어난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약에 취한 탓에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속에 감춰져 있던 말과 행동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달걀귀신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오랜 세월을 억압받았다는 방증이리라.

나는 조금 떨어져 달걀귀신을 살펴봤다.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봤다.

지금이야 기억력이 워낙 좋아서 헷갈릴 일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구분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물론 데바나 레자드, 자얀트처럼 아예 자신의 종족을 대놓고 드러내는 이들도 있지만, 그게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데바라고 다 똑같은 뿔을 지닌 것도 아니거니와 오르크라고 모두가 다 갈색 털에 뒤덮인 것도 아니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들 머리 색깔도, 눈동자 색깔도, 체형도, 겉에서 드러나는 분위기도.

전부 다 다르다.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하더라도 외국 사람을 보면 다 똑같이 생겼다 하셨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당연하게도 달걀귀신은 인간인 나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녹색 빛이 도는 피부와 큼지막한 주먹코였다.

“흐음······. 왠지 고브랑 비슷하단 말이지.”

지금도 저 멀리서 부침개를 흡입하고 있을 고브랑 무척이나 흡사하게 생겼다.

물론 지금까지 만난 고브는 딱 한 명밖에 없다.

나아가 고브라는 종족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으리라는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리만치 닮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쩐다.”

달걀귀신은 좀처럼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증세가 점점 심각해져만 갔다.

이대로 두자니 하루 이틀로는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럴 때 쓰기에 좋은 게 있었지.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는 법이라니까.”

나는 가방을 뒤졌다.

내가 꺼낸 것은 비스테르들이 갇혀있던 동굴에서 발견한 향이었다.

화륵!

라이터를 켜 향에 붙을 붙였다.

금세 녹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달걀귀신의 콧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달걀귀신은 연기를 들이쉬기가 무섭게 거칠었던 숨결이 한결 차분해졌고, 구겨진 종잇장 같았던 얼굴도 차츰 펴지기 시작했다.

“으으음······?”

마음이 차분해진 덕분인지, 달걀귀신의 흐릿했던 초점이 또렷해졌다. 이윽고 달걀귀신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 여기는······?”

“정신이 좀 들어요?”

“다, 당신은 누구?”

이제야 내 존재를 눈치챈 달걀귀신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아이넬······? 어?”

돌연 달걀귀신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가, 가면이 없어?”

“가면이라면 여기 있어요.”

나는 달걀귀신의 얼굴에서 벗겨낸 가면을 흔들었다.

“히익!”

가면을 보자 식겁하더니,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났다.

“진정하세요. 이건 그냥 평범한 가면이니까요.”

“그, 그럴 리가! 그건 평범한 가면이 아니야. 그, 그건 저주받은······.”

달걀귀신은 무언가 무서운 걸 떠올렸는지 녹색 피부가 파랗게 질렸다.

“자, 보세요.”

나는 달걀귀신에게 보란 듯 가면을 얼굴로 가져갔다.

“아, 안 돼! 그걸 쓰면 안 돼!”

달걀귀신이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이미 가면은 내 얼굴에 닿았다. 매끄러우면서도 차가운 감촉에 소름이 돋는다.

“자, 보세요.”

얼굴에 가면 쓴 채 양손을 들어 보였다.

가면은 내 얼굴에 밀착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

“괜찮죠?”

나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거나, 때아닌 헤드뱅잉을 선보이며 가면을 착용했다는 걸 확인시켰다.

“어떻게 그걸······.”

마른침을 삼킨 달걀귀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제 얼굴에 씌운 가면을 벗긴 건 당신이······ 입니까?”

난데없는 존댓말을 귓등으로 흘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벗기는 데 고생을 좀 했지만요.”

가면의 구조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정말로 딱 그냥 얼굴을 가리게끔 만들어져있었다.

심지어 고정하는 끈조차 없었으니 말 다 했지.

그렇다고 벗기는 게 쉬웠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강력접착제로 붙여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힘으로 떼어내려고 했다가는······ 어우,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네.

비위가 좋기로 소문난 나라도 대번에 헛구역질할 만큼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리라.

그래도 나는 이미 마기를 품은 목걸이를 해제해봤다.

비록 마기의 흐름은 다를지언정 경험을 토대로 가면을 해제할 수 있었다.

“시간을 좀 드릴까요?”

“시, 시간 말입니까?”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보여서요.”

내 말에 달걀귀신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달걀귀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고브입니다. 오가른과의 하플링이셨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습니다.”

“역시.”

겉으로 보이는 특징은 고브에 가깝다.

물론 내가 직접 만난 고브는 한 명밖에 없었지만, 그동안 들은 게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종합했을 때 고브의 키는 무척이나 작으며, 지능이 높은 편은 아니다.

반면에 앞에 있는 고브는 유달리 몸이 컸으며, 두뇌회전 또한 상당히 빨라 보였다.

돌연변이 혹은 하플링이 아닐까, 했는데 그게 정답이었네.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예. 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고브의 우두머리이신 누런 송곳니의 자식인 가슴 흉터입니다.”

“예?”

달걀귀신. 아니, 고브의 소개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러니까, 누런 송곳니의 자식인 가슴 흉터······시군요?”

“예.”

이름이 누렁 송곳니에 가슴 흉터라니.

이걸 이름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고브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슴 흉터 씨가 말을 이었다.

“고브는 에프렐와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아, 싸웠다고는 해도 그냥 단순한 영역 다툼이었습니다. 그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음.”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이상한 곳을 발견하셨습니다.”

“이상한 곳?”

“예. 드라고스 산맥의 헤디아라는 지역에 있는 폭포였습니다. 폭포의 안쪽에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안에 이상한 석상이 있었습니다.”

“석상이라면······.”

달걀귀신이었을 때의 가슴 흉터 씨를 만났을 당시 내게 달려들었던 그 석상을 말하는 건가?

“예. 기괴하게 생긴 석상이었습니다. 저나 아버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김새였습니다.”

응?

잠깐만.

뭔가 말이 조금 이상한데.

따지고 보면 달걀귀신이 곧 가슴 흉터 씨다.

더군다나 석상에게 날 공격하라고 지시한 것 또한 가슴 흉터 씨다.

근데,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면 그 석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이 사람은 자신이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가슴 흉터 씨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석상을 지나 나온 작은 공간에 돌이 있었습니다.”

“돌.”

“예. 그 돌이······. 원인입니다.”

가슴 흉터 씨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돌을 손에 넣은 뒤로 아버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습니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

“예. 에프렐의 구역을 침범했고,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를······. 파괴했습니다.”

그야말로 선전포고를 한 셈이구나.

그러니 단순한 다툼에 불과했던 두 종족의 사이가 급격하게 험악해지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전쟁으로 번져나간 거겠지.

“그래서 그 돌은······.”

“그,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내 말에 가슴 흉터 씨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걸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돌은······. 그 돌은 절대로 누구에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위험한 물건입······ 컥!”

내게 열변을 토하던 가슴 흉터 씨가 크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 게.

“이거 맞죠?”

가슴 흉터 씨가 말했던 그 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손에 있었으니까.

이 돌은 루나가 따로 챙겨서 땅 깊숙한 곳에 묻어뒀었다.

근데, 막상 달걀귀신을 만난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그 누구도 찾지 못할 장소라고 한들 언젠가는 그 위치가 발각될 터. 괜히 잘 있을지 전전긍긍하느니 내가 보관하는 쪽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그, 그걸 어떻게. 그, 그럼 막내는······. 마, 막내는!”

돌연 가슴 흉터 씨가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막내가······.”

“이런 말이 있어요.”

갑작스럽게 대성통곡을 하는 가슴 흉터 씨의 어깨를 두드린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혀, 형아······?”

아니나 다를까.

작은 고브의 목소리에 가슴 흉터 씨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 이 목소리는······. 서, 설마 막내? 막내냐?”

“형아!”

이에 조금 멀리 있던 어린 고브가 우다다다다, 달려오더니 냅다 가슴 흉터 씨의 품에 안겼다.

“형아!”

“막내야! 너, 너 살아있었구나! 으허어어엉!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너한테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정말로······.”

본의 아니게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두 고브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이래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니까.”

* * *

“제가······. 그, 그런 일을 했다는 말입니까?”

가슴 흉터 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와 막냇동생을 쳐다봤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에요.”

내 확답에 가슴 흉터 씨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내가······.”

“혀, 형아······. 나는 괜찮아.”

막내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가슴 흉터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였다.

가슴 흉터 씨는 가면을 쓴 뒤로의 기억이 없었다.

그가 비스테르들을 한곳에 가두고, 또 자신의 막내를 추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 또한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가장 아끼는 막냇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오라고 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모르리라.

가슴 흉터 씨의 절망하는 모습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가슴 흉터 씨에게 기억이 없다고 해도 그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

설령 그에게 기억이 없다고 한들, 가면을 받은 것은 가슴 흉터 씨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아가 지금 당장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을지라도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가슴 흉터 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과거는 어디까지나 과거예요. 거기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제라도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알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중요해요.”

“저는······.”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슴 흉터 씨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으면 됩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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