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95화 (93/159)

95. 소년기(77) - #정리

“낯선 천장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 나는 멍하니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흔한 판타지 소설의 도입부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지껄인 나는 픽 웃었다.

그야, 어제 이사를 했고 첫날을 보냈으니 낯선 게 당연했지.

그나저나 기분 참 묘하긴 하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구멍이 숭숭 뚫린 천장이 보였는데, 이제는 큼지막한 마법 조명이 달린 천장이 있는 대저택에서 눈을 뜨다니 말이야.

옛말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던데, 집이 이래서 그런가?

왠지 부잣집 도련님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부잣집 도련님이라.

따지고 보면 이곳에는 부동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드라고스 산맥, 나아가 온 세상을 내 것이라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으니 부동산 재벌이 아니고 뭐겠어.

그나저나 진짜 넓긴 넓네.

눈에는 시야각이라는 게 있다.

내가 정면을 쳐다보더라도 부채꼴로 주변이 보인다.

흐릿하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근데, 지금 내 눈에는 오롯이 천장과 마법 조명만 보였다.

그만큼 천장이 넓다는 방증이었다.

시야를 내려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대와 옷장을 제외하면 아직 이렇다 할 가구를 들여놓지 않은 방은 유난히도 넓어 보였다. 정확한 수치를 재보진 않았지만, 얼추 15평은 넘지 않을까, 싶었다.

당장 내가 누워있는 침대만 하더라도 거의 킹 아니, 거의 울트라 킹사이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이 방에 들이니 되게 작아 보이더라.

누가 보면 이곳이 내 방인지 거실인지 구분조차 못 하겠어.

이런 내 시답잖은 생각도 잠시였다.

“후아아아암!”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방바닥이었다. 라빗트의 가죽을 이어 붙여서 만든 카페트 위였다.

그곳에 복슬복슬한 털뭉치가 좌우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록시?”

어째서일까.

자기 방에서 자고 있어야 할 록시가 내 방바닥 위를 뒹굴거리고 있는 걸까.

당혹스러운 나와는 별개로 록시는 무엇이 그리 신났는지 널따란 바닥을 데구르르르르르, 구르고 있었다.

“헤헤. 낯선 천장이다! 낯선 바닥이다! 낯선 방이다! 낯선······으응?”

하물며 내가 일어나자마자 지껄였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니,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보다 못한 내가 묻자, 바닥에 철퍼덕 엎드린 록시가 고개를 들었다.

“데굴데굴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록시 방은 어쩌고?”

“으응. 록시 방은 너무 조용하다.”

“아아.”

하기야.

록시는 늘 루나랑 함께 잠을 잤다. 아마 마을에 오기 전부터 쭉 그래왔을 터.

갑자기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온 것도 모자라,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되었으니 어색할 만도 하지.

“그럼 루나랑 자면······.”

말을 하던 나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감각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내 방의 한쪽 면에 있는 커다란 옷장.

정확히는 살짝 열린 옷장 사이로 샛노란 빛이 보였다.

저건 더 볼 것도 없이 루나의 눈동자였다.

“너는 거기서 뭐 해?”

“여기가 좋아.”

“응. 그 느낌이 뭔지는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주 어릴 땐 곧잘 옷장에 들어가곤 했지.

옷장이라고 해봐야 좁고 어두운 데다가 퀴퀴한 냄새와 함께 진한 나프탈렌 냄새로 가득했지만, 왠지 그 안에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달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옷장에 누워있는 게 좋았다.

아마 루나가 옷장에 숨어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겠지.

“설마, 또 있는 건 아니겠지?”

뭐, 애당초 우리 집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나랑, 부모님, 록시, 루나가 전부다.

이 이상 나를 놀라게 할 사람은 없겠지.

“끄으응!”

나는 힘껏 기지개를 켜며,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확 젖혔다.

옛말에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하였던가.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헛숨을 들이켰다.

창문 밖. 그러니까, 자그마치 3층인 내 방의 창문 바깥에 한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하물며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위즈 씨였다.

나는 행여나 부딪히기라도 할까, 아주 천천히 창문을 열고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내 목소리를 들은 위즈 씨가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초점이 흐릿한 게, 딱 봐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점입가경이라고 했던가.

방 천장이라면 또 모를까.

내 방은 무려 3층이다.

그 높이에서, 그것도 꼬리로 무게를 지탱한 채 매달려 있는 것도 진기명기일진대, 거기서 태연자약하게 잠까지 자다니.

아니, 뭐 기네스 신기록이라도 달성하고 싶은 건가.

자칫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런대.

“아, 이, 일어나셨어요?”

“왠지 다시 자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요.”

“어. 더 주무시게요?”

“농담이에요. 아무튼,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그건······.”

내 질문에 위즈 씨가 우물쭈물했다.

“설마하니 저를 지키려고 한 건 아니죠?”

“그, 그게······.”

전에 비스테르들을 구했을 당시 위즈 씨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때, 날 지켜야 한다니 어쩌니 했었지.

나야 그냥 해본 말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이게 웬걸.

마을에 데려온 후로 내 주변에 몇몇 비스테르들이 따라다녔다.

그야말로 날 지키는 보디가드인 셈이다.

그들은 나름 은폐, 엄폐를 하고 있거니와, 안 그런 척 연기하고 있지만 내 감각에는 모조리 다 잡혔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지.

특히 거짓말에 재능이 없는 록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또 몇이나 숨어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하여간.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건지.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했다.

내게 위험한 일이 닥칠 경우는 별로 없었고, 위즈 씨를 비롯한 모든 비스테르들이 날 지켜주고 싶어 한다는 마음은 알았으니까, 그거로 됐다.

“거기서 그러지 말고 들어오세요.”

안 그래도 위즈 씨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잘 됐네.

내가 슬쩍 비켜서자, 위즈 씨가 집으로 들어왔다.

“록시랑 루나도 뭉그적거리지 말고, 얼른 일어나자.”

“으으응. 록시 여기 좋다. 푹신푹신하다.”

“그거 네 방에도 있는데?”

어디 록시 방에만 있나.

부모님 방에도 있고, 루나 방에도 있고, 거실에도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카페트가 깔려있다.

“그렇게 늑장 부리면 밥 없다?”

“밥! 록시 일어났다!”

밥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록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 가자.”

나는 록시의 손을 잡고 방문으로 향했다.

“아, 루나도 얼른 나와.”

“······윽.”

루나가 작게 침음을 흘렸다.

보아하니 내가 깜빡 잊고 나가는 줄 알았겠지만, 어림도 없지.

* * *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예. 다름이 아니라, 가슴 흉터 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그, 그렇군요.”

위즈 씨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현재 비스테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우리로 치면 도리아 아주머니랑 비슷한 위치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촌장님이 아닌 도리아 아주머니를 빗댄 이유는 그녀가 비스테르와 마을의 중간자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아무렴.

비스테르가 우리 마을에 정식으로 입주했지만, 이제 막 적응하는 단계다.

거기다 비스테르는 자기들만의 생활 양식이 존재한다.

다짜고짜 우리는 가족이라고 외쳤다가는 자칫 종족 간의 갈등 내지 충돌이 생길 우려가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우리의 편이었으니, 차근차근 가까워지는 게 서로에게도 좋을 터.

마을 전체의 일은 촌장님과 도리아 아주머니가 담당하되, 위즈 씨는 그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더불어 비스테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되도록 위즈 씨가 맡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다.

이렇듯 참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 밤새 내 방 창문 앞에 매달려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뒷골이 지끈지끈거리는 기분이다.

일단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가슴 흉터 씨에 대한 걸 논의하는 게 우선이었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슴 흉터 씨는 기억을 못 하고 있어요.”

“예.”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주된 이야기는 죗값을 어떻게 치르냐였다.

사실 지구였더라면야 법이라는 게 존재했으니 그에 응당한 처벌을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아니다.

그 흔한 경찰은 물론 검사도 변호사도 판사도 없다.

달리 말해서 자신이 치른 죄에 대한 벌을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다.

근데, 세상에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

당장 가슴 흉터 씨만 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 눈치였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까지 하더라고요. 차라리,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고 싶다고.”

“······.”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위즈 씨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래서 제가 한 대 쥐어박았죠.”

농담이 아니다.

어찌나 괘씸했던지.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냅다 가슴 흉터 씨의 머리를 후려쳤다.

진심이 담긴 꿀밤을 맞은 가슴 흉터 씨는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는 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는 맞아도 쌌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곧잘 쓴다.

전생의 나만 하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은 죽겠다는 말을 뱉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일이 고되고 힘들어서 뱉은, 정말로 그냥 큰 의미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가슴 흉터 씨가 뱉은 죽음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려 죗값을 치르려고 한다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죽는 걸로 죗값을 치른다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한편으로는 그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것 또한 충분히 전해졌다.

그래서다.

기억을 잃었답시고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는 걸 알기에 비로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잠시 말을 멈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직접 당사자와 얘기하는 쪽이 나을 것 같더라고요.”

이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비스테르였으니, 그에게 내려질 벌 또한 비스테르가 내리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근데, 위즈 씨나 다른 비스테르들이 가슴 흉터 씨를 봐도 괜찮을지. 그게 제일 걱정이네요.”

말을 마친 나는 위즈 씨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고심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만나보고 싶습니다.”

“괜찮겠어요?”

내 걱정 어린 말에 위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솔직히 말해서 가슴 흉터 씨를 만나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정말로 반성하고, 또 뉘우친다면 저는 만나보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들었죠? 나오세요.”

내 말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가슴 흉터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는 동생도 함께였다.

행여나 자신의 모습이 무섭게 보일까 걱정했는지, 가슴 흉터 씨는 아주 천천히 걸어 우리 앞에 섰다.

“······아, 안녕하십, 윽.”

인사를 하던 가슴 흉터 씨가 움찔하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보아하니 긴장한 탓에 혀를 깨문 모양이다.

“흣.”

그 모습이 웃겼던 걸까.

애써 표정을 가다듬던 위즈 씨가 실소했다.

자, 당사자들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낫겠지.

“자, 그럼 저는 저쪽에 가 있을 테니, 얘기 끝나면 불러주세요. 동생도 나랑 같이 가자.”

“으, 응!”

가슴 흉터 씨의 동생과 함께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온 나는 널찍한 바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으응?”

“형 말이야. 잘 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저, 정말?”

“당연하지. 아,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네. 너는 이름이 뭐야?”

“이, 이름? 나, 날쌘 다리.”

“날쌘 다리?

“응. 형아가 지어줬어.”

“날쌘 다리라. 어울리네.”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가슴 흉터 씨가 가면을 받은 건 꽤나 오래전이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족히 2년은 넘은 것 같았다.

즉 이 작은 고브가 마봉석을 들고 도망친 것 또한 2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비록 목걸이로 인해 그 힘을 잃었다고 한들 비스테르를 피해 무려 2년이나 마봉석을 지켰다니, 참 대단하단 말이지.

“아, 아이넬 형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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