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0화 (98/159)

100. 소년기(82) - #록시는 초능력자!?

넓적하면서도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

마찬가지로 끝이 뾰족하면서도 악어를 연상케 하는 주둥이.

배로 추정되는 부분을 감싸고 있는,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갑피.

뒤집혀 있는 탓에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산봉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돌기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등딱지.

이러한 특징들을 가진 동물이라면 딱 하나 있었다.

“거북이?”

그렇다.

지구에서도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수생동물이자 나도 한때는 키워봤던 수생동물.

거북이였다.

아니, 여기서는 토트리라고 해야 하나.

“내 참.”

그럼 낚싯대를 부러뜨린 게 물고기가 아니라 토트리였던 건가.

그나저나 대체 저 토트리는 몇 년을 살았기에 저렇게 큰 거지?

진짜 농담이 아니라 내 옆에 서 있는 훨씬 컸다.

물론 바다에 사는 거북이라면 사람보다 크다고는 알고 있지만, 그건 텔레비전을 통해서 봤을 뿐이지.

나, 그리고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키웠던 거북이는 성인 장정의 손바닥을 넘지 않았으니까.

내가 황당한 눈으로 토트리를 보고 있자니, 돌연 녀석이 주둥이를 벌렸다.

꺼이! 꺼이! 꺼이!

“어우, 귀청이야!”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옆에 서 있던 록시와 루나가 허둥지둥 귀를 틀어막았다.

“시, 시끄럽다!”

“귀가 아파.”

이러다가 진짜 고막이 찢어지겠는데?

나는 서둘러 토트리에게로 다가갔다.

꺼이! 꺼이!

사지를 버둥거리는 거로 봐선 몸을 뒤집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 모양이다.

“읏차!”

나는 토트리의 등껍질에 손을 얹고 힘껏 밀었다. 그러자 토트리의 커다란 동체가 들리며 그대로 넘어갔다.

쿵!

거대한 몸집답게, 엄청난 소리를 내며 뒤집혔다.

“휴우.”

꺼이······?

그제야 토트리가 괴성을 멈췄다.

더불어 뒤늦게나마 내 존재를 눈치챈 토트리가 잽싸게 목을 움츠리며, 거북이 특유의 방어자세를 취했다.

“놀랄 것 없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서둘러 토트리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어디 보자······ 아, 여기에 걸린 거구나.”

진짜 다행이다.

내가 찾았던 건 다름 아닌 낚싯바늘이었다.

행여나 토트리가 삼킨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정작 낚싯바늘은 등껍질에 걸려있었다.

이게 바로 눈먼 고기 아니, 눈먼 토트리라는 거겠지.

근데, 진짜 신기하네.

설마하니 저 호수에 토트리가 살았을 줄이야.

하물며 내가 이곳에서 낚시한 횟수만 수십 차례이며, 낚은 물고기만 수백 마리다.

내심 호수에 사는 물고기란 물고기는 모조리 잡아봤다고 자부하건만, 이렇듯 토트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내가 잡으려던 대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새로운 마수를 보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거, 앞으로 낚시할 때 조심해야겠네. 반가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자, 너도 얼른 호수로 돌아가야지?”

비록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반가웠다는 마음을 담아 인사 아닌 인사를 던진 나는 몸을 돌렸다.

꺼이!

하지만 뒤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에 걸음을 멈췄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토트리가 목을 쭉 내밀어 내 옷깃을 물고 있었다.

“엉?”

꺼이!

토트리는 아까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저기, 미안한데 나는 네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거든?”

꺼이!

반면에 토트리는 내 옷깃을 놔주기는커녕 점점 힘을 주어 당겼다.

낌새를 봐서는 날 먹이로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으니 내심 당황스러웠다.

그때였다.

돌연 록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토트리가 공격하면 다칠 수도 있기에, 서둘러 록시를 부르려던 찰나였다.

“록······시?”

어쩐지 록시의 상태가 이상했다.

초점이 흐리멍덩한 게 꼭 잠이 덜 깬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

정정한다.

단순히 잠이 덜 깬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다리는 휘청거리고, 상체는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얘가 왜 이러는 거지?

이런 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뒤쪽에서 들려왔다.

“폭시 부족의 능력은 진짜였습니다.”

“위즈 씨?”

어느샌가 내 뒤에는 위즈 씨가 서 있었다.

아니, 어느새는 아닌가.

위즈 씨는 내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인물인지라 거의 24시간을 내 곁에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폭시 부족의 능력이라고요?”

“예. 저도 그냥 전해들은 게 전부라서 자세한 건 모릅니다만······ 폭시 부족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능력이라······.”

예전에 루나가 말하길, 폭시 부족은 조금 비스테르의 수많은 부족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고 했었지.

그 외에도 위즈의 부족인 먼키 또한 비스테르에게 존경받는 부족 중 하나라고 최근에 들었다.

“그럼 지금 록시의 상태가 이상해진 건 능력이 발동됐기 때문인 건가?”

그것 외에는 록시의 변화를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느릿느릿 토트리를 향해 다가가는 록시를 바라봤다.

그녀는 평소 우다다다, 가 아닌 사박사박 혹은 사뿐사뿐에 가까운 걸음으로 토트리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녀석은 갑작스러운 록시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으나, 이내 다시금 목을 내밀었다.

이에 록시가 토트리의 반질반질한 머리에 손을 얹고는 살살 쓰다듬었다.

꺼이, 꺼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토트리는 록시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에 록시가 스르르, 눈을 감더니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열었다.

“아파.”

아파?

느닷없는 록시의 혼잣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파. 도움이 필요해.”

잠깐만.

지금 말을 하는 사람이 왠지 록시가 아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게, 지금 록시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이런 내 의구심도 잠시였다.

어째서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록시의 혼잣말은 록시가 하는 게 아니다.

“설마······. 토트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해주는 건가?”

“그렇게 보이네요.”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위즈 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게 진짜로 가능하다고?”

아니,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저렇게 머리에 손을 얹는 걸로 토트리의 마음을 알 수 있다니.

이런 내 놀람과는 별개로 록시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맑게 웃던 록시가 아닌 어딘가 신령스러운 느낌이었다.

더불어 토트리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무섭진 않고 되게 신기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냥 꺼이, 꺼이, 하는 소리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리는 걸 넘어 토트리의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은 내 상식을 아득히도 벗어난 일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저건 마법이 아닌 초능력이라고 봐야겠지.

그중에서도 그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능력인 독심술에 가까웠다.

무슨 궁예도 아니고 말이야.

저러다 나중에 안대를 차고 “록시는 미륵이다!”라고 외치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한편으로는 소문으로만 듣던 초능력자를 이곳에서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했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꺼이, 꺼이.

“아파. 도움이 필요해.”

내 생각이 삼천포로 빠진 사이에도 록시의 독심술 및 번역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록시의 곁으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해?”

“응. 도움이 필요해. 많이 아픈 것 같아. 모두 놀랐고, 당황했어. 빨리 나키아 님을 낫게 해야 해.”

“나키아······.”

물을 다스리는 자 혹은 물을 지배하는 자.

지구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로 대체한다면,

“용왕?”

어디까지나 그 의미가 용왕에 가까웠을 뿐.

록시가 언급한 나키아는 내가 익히 아는 그 용왕은 아니겠지.

토트리와 용왕이라.

예전에 르네한테 얘기해줬던 별주부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안 그래도 별주부전을 들은 르네가 제일 좋아하는 마수가 토트리였는데, 한번 만나게 해주고 싶네.

더불어 다른 비스테르와 함께 열심히 집을 짓고 있을 토끼 소녀인 라피와는 결코 만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록시는 토트리를 대신하여 내게 이것저것 얘기해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것을 번역할 수 있는 건 아니었는지, 중간중간 내용이 많이 빠져있었다.

평범한 대화가 아닌 만큼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도 한계가 있는 거겠지.

“으응?”

돌연 록시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앞에 선 토트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 정신이 든 거야?”

내 말에 록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록시 왜 여기 있다?”

아니나 다를까.

록시는 방금 자신이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응. 록시 안 아프다!”

“다행이네.”

나는 록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까 들었던 내용을 종합했다.

어디 보자.

단편적인 정보지만 어떻게든 정리를 해보자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토트리가 호수에 나타났던 이유.

겁을 먹은 게 여실한데도 불구하고 내 옷깃을 잡아당긴 이유.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던 도중에 이 호수에 왔고, 하필이면 내가 던진 낚싯대에 걸렸다는 건가.”

직접 들은 게 아닌 만큼, 확신할 순 없었지만, 정황상 내 추측이 맞으리라.

“음······.”

이걸 어쩐다.

나는 토트리를 쳐다봤다.

때마침 녀석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아직도 우리에게 겁을 먹은 듯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이야기겠지.

“어쩔 수 없나.”

따지고 보면 나는 의사도 뭣도 아니다.

토트리가 말하는 그 환자가 나와 같은 인간이든, 다른 종족이든, 그게 아니라면 같은 토트리든.

마땅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건 고사하고 아예 그 병명조차 파악하자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아프다고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무시하자니 그건 또 내 성미에 맞질 않는단 말이지.

무엇보다.

뭘 하려거든 말이 통해야 뭘 하더라도 할 텐데.

“에이, 가보면 알겠지.”

그래.

여기서 백날 고민하고 있어 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설령 헛걸음으로 끝날지라도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는 쪽이 마음 편하기도 했고.

특히 나키아라는 자가 몹시도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게, 명색이 용왕으로 해석이 되는 인물이다.

달리 말해서 저 토트리가 지내던 지역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쩌면 데커드 할아버지와 레비아 선생님조차 모르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호기심에 죽고 호기심에 사는 내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근데, 문제는······.”

나는 고개를 돌려 호수를 쳐다봤다.

“토트리가 사는 곳이 물속이라는 건데.”

꺼이! 꺼이!

“응?”

돌연 토트리가 엉금엉금 기어 오더니,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꺼이!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내가 의문 섞은 시선으로 쳐다보자, 토트리가 주둥이를 쫙 벌렸다.

꺼어이!

“······어?”

토트리의 입속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빛나는 물체가 있었다.

꺼어이!

아무리 봐도 나한테 저 빛나는 물건을 꺼내라는 것 같았다.

록시처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토트리가 내 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더니, 아예 꺼내기 편하게끔 살짝 치켜들었다.

“어, 음······.”

이거 왠지 그가 같다.

쫙 벌린 악어의 주둥이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미는 묘기 말이다.

꺼내는 게 맞겠지?

근데,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마따나.

눈먼 낚싯바늘에 걸려 지상에 패대기쳐졌으니, 복수랍시고 내 팔을 무는 건 아닐까?

에이, 설마 내가 손을 넣자마자 콱 닫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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