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3화 (101/159)

103. 소년기(85) - #라프린스

두 번째 이유는 이들과의 관계였다.

이곳에서의 내 나이는 곧 11살.

전생의 나이를 합친다고 한들 내 주변에 계신 어르신들에 비하자면 정말로 짧은 인생이지만, 보고 듣고 경험한 건 꽤 많다고 자부한다.

그런 나조차도 이런 화려한 문명을 쌓은 종족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추 1시간 20분이지.”

안전을 위해 속도를 조절했다고 쳐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 말인즉슨.

“헤파이토 씨가 봤다는 호수가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건데.”

헤파이토 씨의 술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적당하게 취하면 곧잘 자신이 겪었던 모험담을 얘기해주곤 한다.

워낙 말재주가 좋은지라 헤파이토 씨가 산맥들 돌아다니며 보고 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빠짐없이 들었으며, 어느 날은 신기한 호수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정말 끝도 없이 펼쳐진 호수라고 했었지.

딱 이야기만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바다였다.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그 규모가 엄청났으니 자연히 바다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는 이곳이야말로 헤파이토 씨가 우연히 봤다는 그 호수.

아니, 바다가 아닐까, 싶었다.

그것도 바다의 가장 깊숙한 곳이자, 지구에서도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 일컫는 곳.

심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도 수중 도시에 들어왔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더라.

오로지 암흑만이 존재했으며, 수중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 말은 수면에서 상당히 떨어진, 햇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위치라는 의미였다.

어쩌면 데커드 할아버지나 레비아 선생님, 여행 경험이 풍부한 헤파이토 씨조차도 수중 도시의 존재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 보는 종족과 처음 보는 문명.

나는 이곳에 살아가는 종족들과 가능한 좋은 관계를 쌓고 싶었다.

뭐, 언제라도 탈출할 자신이 있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만.

고민이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던 중이었다.

돌연 퉁, 짤랑, 퉁, 짤랑, 퉁, 짤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철창 바깥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른 남자 인어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남자 인어였는데, 나이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거기다 삼지창만 든 경비병과는 달리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거로 봐서는 제법 높은 사람인 듯했다.

“풋.”

근엄한 얼굴로 다가오는 남자 인어를 보던 나는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수중 도시 내부다.

습도가 유달리 높은 걸 제외한다면 지상과 거의 흡사한 환경이다.

반면에 인어들은 다리가 아닌 물고기와 흡사한 하체를 지녔다.

인어들의 신체 구조상 이동을 할 때면 꼬리를 이용해 통, 통, 통 튀어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이 지긋하게 먹은 삼촌이 조카의 스카이 콩콩을 뺏어 타는 걸 보는 것 같았으니 웃음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 감상과는 달리 경비병이 무척이나 긴장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퉁, 짤랑, 퉁, 짤랑, 퉁, 짤랑.

꼬리로 바닥을 치는 소리와 장식이 부딪히는 소리가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며 점점 가까워짐을 알렸다.

안 그래도 꼿꼿한 꼬리를 더욱 곧추세운 경비병이 양손으로 삼지창을 잡아 바닥을 찍었다.

쿵!

“메, 메디르 님 오셨습니까!”

경비병의 인사에 메디르라 불린 남자 인어가 근엄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고생이 많군. 그래, 괴상한 자가 침입을 했다고 들었다. 자네 뒤에 있는 그자인가?”

“옙! 제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침입자라······.”

메디르가 손짓하자, 경비병이 통통통, 다급하게 비켜섰다.

“흐음······?”

“안녕하세요. 아이넬이라고 합니다.”

나는 철창 너머로 날 주시하는 메디르 씨를 향해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잡혀 온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밝은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자고로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까.

“아이넬? 이름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아이넬이고, 이쪽 방에 있는 건 록시. 저쪽 방은 루나요.”

“······.”

이런 내 밝은 태도가 이상했던 걸까.

메디르 씨가 헛기침했다.

“크흠. 이제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미리 경고하지만, 바른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럼요. 뭐든 물어보세요.”

이번에도 마냥 해맑은 내 대답에 메디르 씨가 볼을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묻지, 네 녀석은 로플로드에서 왔나?”

로플로드.

지하 혹은 밑.

지구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지하 세계쯤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역시 메디르 씨는 심문하기 위해서 날 찾아온 모양이다.

감옥에 이어 심문까지 받다니, 기분 참 묘하네.

까짓 심문이든 질문이든 어떠랴.

묻는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게 도리겠지.

“아뇨. 로플로드는 처음 듣는데요? 근데, 로플로드가 뭐예요?

나는 순순히 대답하는 한편,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에이, 눈치 한번 빠르시네.

은근슬쩍 질문을 던지면 무심결에라도 대답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로플로드에서 오지 않았다라. 그게 사실이라면 크레이둠에서 왔다는 이야기로군?”

메디르 씨의 시선이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레이둠이라는 단어를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로플로드가 지하 세계라면 크레이둠은 무덤이라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내가 죽은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닐 터.

그럼 크레이둠 또한 지명이라는 걸 텐데······.

왜 하필이면 무덤으로 지었나 몰라.

“정곡을 찔렸나?”

“아뇨, 아뇨. 잠깐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로플로드도, 크레이둠도 아니고 지상에서 왔는데요?”

내 말이 끝나자 메디르 씨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 날 붙잡았던 경비병처럼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였다.

지상에서 왔으니까 지상에서 왔다고 하는데, 다들 믿질 않는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했다던 대장금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무작정 거짓말로 몰아가니, 조금은 갑갑했다.

“지상에서 온 게 그렇게 못 믿을 일이에요?”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지자 메디르 씨가 픽 웃었다.

“못 믿을 일이냐고 물었나? 설마 진짜로 모르고 그런 핑계를 댄 건가?”

“네?”

“좋다, 말해주지. 똑똑히 들어라. 지상은 오래전 멸망했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

오, 별 기대 안 했는데 이번에는 대답을 해주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심해라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막이 망가지기라도 한 걸까.

방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상이 오래전에 멸망했다고요?”

“바로 들었다. 지상은 오래전에 멸망했지. 변명을 하려거든 알아보고 하도록.”

느닷없는 지상 멸망설에 당황스러운 한편, 경비병이나 메디르 씨가 내 말을 믿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딱 봐도 저들은 진심으로 지상이 멸망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외지인이 나타나서 나는 지상에서 왔노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의심부터 하겠지.

더불어 메디르 씨와의 짤막한 대화로 말미암아 이곳이 얼마나 폐쇄된 공간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

예전에 레비아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 대륙에 암운이 드리웠던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었다.

물론 레비아 선생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셨지만, 적어도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은 틀림없었다.

감히 추측건대, 메디르 씨가 말하는 멸망이 곧 암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원흉이라면 딱 하나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말해라, 네 녀석은 데모스의 추종자인가?”

내 생각이 맞다는 듯, 메디르 씨가 내 생각의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 내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반댄데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저는 데모스의 추종자가 아니라, 오히려 데모스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무렴.

나는 데모스의 추종자임이 확실한 이들의 계획. 정확히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잡았던 비스테르를 해방한 것은 물론 그들이 가장 원하는 물건인 마봉석마저 빼돌렸다.

즉 데모스 및 데모스의 추종자들에게는 철천지원수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런 내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메디르 씨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네가 데모스의 부활을 막았다고? 흐음, 그래도 말이 번지르르한 걸 보니, 로플로드에서 온 게 아니라는 건 믿을 수 있겠군.”

낌새를 보니 앞으로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 같네.

아니나 다를까.

그 후로도 메디르 씨의 심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지상에서 왔다는 말을 반복하자 그도 질렸는지, 아예 록시와 루나한테 가서 물어봤다.

“록시는 대장이랑 왔다! 록시, 배고프다! 여기서 나간다!”

“우리는 지상에서 왔어.”

그래 봐야 록시는 엉뚱한 소리만 하며, 메디르 씨의 속을 긁었고 루나는 자동 응답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결국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없었던 메디르 씨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날 쏘아봤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겠다면, 별수 없군. 솔직하게 말할 때까지 혼쭐을 내주마! 경비병.”

“옙!”

“문을 열고 이자들을 끌고 와라.”

메디르 씨의 지시에 경비병이 철창으로 다가왔다.

으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나.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는데, 당최 내 말을 믿어주질 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템페스트를 부를 준비를 함과 동시에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자세를 바꿨다.

이윽고 철창이 열리고 경비병이 손을 뻗으려던 찰나였다.

돌연 또 다른 남자 인어가 감옥으로 들이닥쳤다.

“메, 메디르 님!”

“뭐냐?”

갑작스러운 방해에 메디르 씨가 불편한 얼굴로 경비병을 쏘아봤다.

“그, 그것이······.”

“뭐냐고 물었다.”

“라, 라프린스 님이 오셨습니다!”

“뭐라? 라프린스 님이?”

“예.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경비병의 말에 메디르 씨가 당혹스러워했다.

라프린스는 또 누구기에 저러는 거지?

일단 메디르 씨가 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거로 봐선 그보다 더 높은 계급이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윽고 저 멀리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나타난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였다.

꺼이! 꺼이!

“토트리?”

아까 우리가 이곳으로 잡혀 오던 중,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던 토트리였다.

그리고 토트리의 위였다.

그곳에 인어가 앉아있었다.

나이는 얼추 10살쯤 됐을까.

몹시도 온순한 인상의 소년이었는데,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딱 봐도 저 소년이 토트리의 주인쯤 되는 것 같았다.

주인과 반려동물은 닮는다더니, 그게 마냥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가 보네.

이내 토트리가 우리 앞에서 멈췄다.

“라, 라프린스 님을 뵙습니다!”

두 경비병이 소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에 메디르 씨 또한 허둥지둥 앞으로 나서 소년을 향해 인사했다.

“라프린스 님을 뵙습니다.”

저 소년이 누구기에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런 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라프린스라 불린 소년이 살짝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라프린스 님이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이신지?”

메디르 씨가 말했다.

어째서일까.

듣기에는 무척이나 정중한 말투였는데, 왠지 모르게 꾸짖는 라프린스 씨를 꾸짖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돌연 라프란스 씨가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들었다.

“······.”

입술을 달싹거리는 게 무어라 말을 하는 듯했으나, 목소리가 너무나도 작아서 들리질 않았다.

이는 메디르 씨도 마찬가지였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외람되오나,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흐읍! 저, 저자를······ 푸,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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