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07화 (105/159)

107. 소년기(89) - #셀리오스

와삭와삭.

우걱우걱.

넓은 식당 안은 물고 뜯고 씹고 삼키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야, 진짜 잘 먹네.

나는 라프린스 씨와 아쉬르 씨, 크래든 씨, 토트리를 멀거니 쳐다봤다.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진짜 몇 달은 굶주림 사람들처럼 해물파전과 새우튀김을 흡입하고 있었다.

저런 걸 보고 게 눈 감추듯 먹는 거라고 하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게 아까 내가 만든 요리를 처음으로 맛본 크래든 씨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이런 요리라니······. 내 평생 요리를 해왔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제 딴에는 작게 중얼거린 듯했으나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외피가 잘 익은 꽃게찜처럼 붉게 달아오른 거로 봐서는 적잖이 흥분한 것 같았다.

이는 아쉬르 씨나 라프린스 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래든 씨처럼 감탄사를 연발하진 않았을지언정, 연신 내 요리를 씹어 삼키는 게 완전히 빠져버린 모양이다.

예전에 중화요리집 아들은 짜장면을 잘 먹질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제아무리 품질이 좋은 생선이라도 그걸 매일, 그것도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한다면?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야장천 군만두만 먹던 오대수랑 다를 게 없지 않을까.

해물파전과 새우튀김이 맛있다는 것도 있지만, 저들에게 있어서는 지상의 요리가 새로운 자극이자 신기한 경험으로 다가오겠지.

이렇게 또 새로운 문물을 전하는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대장······.”

록시였다.

“우우우······.”

몹시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접시를 응시했다.

아무렴.

이제껏 쫄쫄 굶은 록시다.

안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부침개가 그것도 자신의 몫이 실시간으로 줄어가고 있었으니, 침울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나는 빠른 속도로 줄어가는 해물파전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록시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아직 재료는 많이 남았으니까, 원하는 만큼 더 만들어줄게.”

“더 만들어 준다?”

“그럼. 먹고 싶은 만큼 해줄게. 자, 이번에는 다른 것도 만들어 볼까?”

“응! 나는 대장이 만든 게 좋다!”

그제야 록시는 한층 안심한 얼굴로 새우튀김을 씹어 삼켰다.

어디 보자······.

보아하니 새로이 식탁에 자리를 잡은 세 사람과 한 마리도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뭘 만드는 게 좋을까.

기왕 냄비에 기름을 채웠다. 아직 깨끗한 기름을 버리기도 뭣하니, 이번에도 튀김 쪽으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그렇지.”

튀김 요리 중에서 내가 즐겨 먹었던 게 있었지.

메뉴는 정해졌으니 바로 만들어 볼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생선들을 살펴봤다. 역시 겉모습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

“뭘 찾는 겁니까?”

내가 갈등하고 있자 크래든 씨가 다가와서 물었다.

“살이 희고, 단단한 생선을 찾고 있어요.”

“살이 희고 단단한 생선이라면, 폴라크군요.”

“폴라크?”

“이겁니다.”

크래든 씨가 폴라크라 불린 생선을 보여줬다.

“이거면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그래서 이번에는 뭘 만들려는 겁니까?”

“어묵이라는 걸 만들려고요.”

“어묵?”

“네. 간단하면서도 빠르게 만들 수 있거든요.”

어묵은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간식에 가까웠지만 말이야.

“호오호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도 괜찮겠습니까?”

“도와주신다면야 저야 고맙죠. 그럼, 이거 손질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가시랑 비늘은 모두 제거하고, 순수하게 살만 남겨주시면 되는데.”

“그 정도는 쉬운 일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답한 크래든 씨가 폴라크를 손질했다.

와우.

왕자 전속 요리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폴라크를 다루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집게 외에도 허리 쪽에 달린 얇고 긴 다리를 이용해서 폴라크를 고정시키더니 커다란 집게를 이용해서 비늘을 벗겨냈다.

촤악, 촤악.

심지어 여분의 다리를 이용해서 가시를 발라내거나 내장을 제거하는 등.

한꺼번에 다양만 부위를 손질하며 능수능란한 멀티플레이를 보여줬다.

“와. 대단하네요.”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크래든 씨가 어깨를 으쓱했다.

“크흠.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크래든 씨의 손질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크래든 씨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인간인 나에게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나한테는 집게도 여분의 다리도 없으니까.

저런 화려한 요리 스킬은 크래든 씨만의 기술이자, 그 누구도 쉬이 따라 할 수도 없으리라.

무엇보다.

아까 크래든 씨는 내 요리를 구경하겠답시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내게 좀 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니, 그대로 기름에 집게를 넣는 게 아닌가!

제 딴에는 펄펄 끓는 기름이 신기했던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아무렴.

기름의 온도는 아무리 못 잡아도 170도가 넘는다.

행여나 기름에 손을 넣었다가는 화상을 넘어 바싹바싹하게 튀겨지고도 남을 온도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크래든 씨는 멀쩡했다.

나아가 크래든 씨는 김이 펄펄 나는 해물파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삼키는 걸 보면 전신이 강철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 말인즉 갑각류와 닮은 그의 갑피는 뜨거운 기름조차도 뚫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신체구조 자체가 요리에 특화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거기다 연신 나를 힐끗거리는 게 요리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품고있는 듯했고.

어딘가 미슐레 아주머니랑 비슷한 게 둘이 함께 있으면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시면 따로 알려드릴까요?”

혹시나 싶어 묻자, 크래든 씨가 반색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 그래도 괜찮습니까?”

역시 조리 방법이 궁금했던 거구나.

“덕분에 해산물을 마음껏 쓰고 있는데요 뭐.”

“좋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알려드리지요!”

“아, 그리고······.”

나는 가방을 뒤져 조리도구를 꺼냈다.

냄비와 프라이팬, 식칼, 뒤집개 등등.

혹시나 내가 쓰던 게 망가졌을 때를 대비해서 챙겨둔 여분이었다.

“여기에······. 이것도······.”

그 외에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지상의 식자재들도 넉넉하게 챙겨줬다.

안 그래도 평소보다 많이 챙겨와서 다시 들고 가야 했는데 말이야.

더군다나 지상으로 가기 전에 이곳에서 해산물을 챙겨갈 생각이라서 짐을 줄일 필요도 있었으니, 이참에 크래든 씨에게 나눠주는 편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겠지.

“이거 받으세요.”

“이, 이걸 주시는 겁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만드는 요리는 이 도구들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거든요. 이건 여분으로 갖고 있던 거니까, 괜히 마음 쓰실 것 없어요.”

“그, 그래도······.”

“정 마음이 불편하시면, 크래든 씨도 이것저것 알려주시면 되죠.”

다른 건 몰라도 아브륄. 나아가 해산물에 대해서는 크래든 씨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을 터.

까짓 남는 도구를 주는 조건으로 이것저것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이걸 그냥 받을 순 없습니다. 아, 대신 이곳에 있는 생선이라면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아, 그래도 돼요?”

“물론입니다.”

이야, 이곳에 있는 해산물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된다니.

이거 괜히 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거기다 왕자가 먹는 식자재였으니 내가 직접 구하는 것보다 품질도 월등할 터.

이래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니까.

“고맙습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가져갈게요.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 바로 알려드릴게요.”

“예!”

크래든 씨는 명색이 왕자 전속 요리사임에도 이제 막 들어온 신입처럼 눈을 빛냈다.

“자, 먼저 어묵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발라낸 생선의 살점이랑 다진 채소를 넣고······.”

나는 크래든 씨의 이해를 돕고자 직접 요리를 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줬다.

* * *

아브륄의 중앙에 세원 커다란 성.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 내부였다.

한 여성 인어가 옥좌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름은 셀리오스였으며, 아브륄을 지배하는 나키아였다.

어째서일까.

아브륄의 지배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셀리오스는 몹시도 수척했으며,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요?”

피곤한 얼굴로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던 셀리오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애당초 그녀 혼자 있었기에 대답해주는 이 하나 없었지만, 셀리오스는 몇 번이고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렐리크가 망가지다니······. 대체 이걸 나더러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냐고.”

그렇다.

셀리오스가 이토록 고심하고, 또 피로에 찌든 이유는 고대의 유물인 렐리크가 작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사실 렐리크가 고장 나는 경우는 흔하다.

따라서 렐리크가 고장 나더라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많으며, 이는 셀리오스의 측근도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 고장 난 것은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나키아 아니, 어쩌면 아브륄의 흥망이 걸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랬기에 셀리오스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고장 났는지 밝히지 않은 채, 나키아의 모든 업무조차 내팽개쳤다.

그렇게 오롯이 렐리크 수리에 매달린 지도 벌써 2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수리를 위해 밤낮을 고심하고 또 고심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으며, 도리어 셀리오스의 건강만 나빠졌다.

“다들 걱정하고 있을 텐데······.”

셀리오스가 방에 틀어박힌 지도 어언 2개월.

그동안 대외적인 활동은 고사하고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다.

“라프린스는 괜찮을까······.”

그중에서도 자신의 동생이자 하나뿐인 혈육인 라프린스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현재 아브륄 내에서는 셀리오스가 아프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그녀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외부에서나 떠도는 소문일 뿐이며, 셀리오스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의 일이지.

애당초 셀리오스는 방에 틀어박힐 예정이 없었거니와, 내심 금방 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2개월이 흐른 뒤였다.

‘얼굴을 비추는 게 좋겠지?’

더욱이 동생인 라프린스는 아버지를 닮아 무척이나 여렸다.

혹여나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접했다면 홀로 끙끙 앓고 있을 우려가 컸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 고장이 난 거냐고.’

선대 나키아였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 것이 불과 3개월 전.

나키아의 업무에 적응하는 것조차 벅찼던 셀리오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했다.

‘일단 라프린스를 만나더라도 뭘 먹고 만나야겠지.’

가능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 동생에게도 안심일 테니까.

몸에 힘을 쭉, 뺀 셀리오스가 슬쩍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눈에 담았다.

그곳에는 요리사가 직접 준비한 요리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어떤 요리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오늘도 렐리크의 수리에 온 정신을 쏟은 탓에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요리를 보던 셀리오스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 요리를 다시 한 번만 더 먹을 수 있다면 힘이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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