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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0화 (108/159)

110. 소년기(92) - #삼겹살을 아시나요?

숨겨야만 하는 이유라. 짐작 가는 거라면 하나 있긴 하네.

“의견충돌을 걱정했던 거 아닌가요?”

“그걸 어떻게!”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구나.

“저도 이미 겪어본 일이거든요.”

“겪어보셨군요.”

그것도 불과 얼마 전이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농사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마을에서는 수시로 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주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모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도리아 아주머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숲을 탐색하는 것이 마을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던 크로든 아저씨.

두 사람을 중심으로 파가 나뉘어 하루하루, 침 튀기는 설전을 벌이곤 했다.

확실한 건 두 의견 모두 틀리지 않았으며, 마을을 위해서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었다.

단지 과정이 달랐을 뿐이지.

문제는 파가 나뉘게 되면, 그것은 곧 분열이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고, 나아가 단체로 반발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 더 심해진다면 아예 마을 자체가 토막 나거나, 심하면 마을 자체가 붕괴되는 최악의 사태까지 번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금 과장스럽게 생각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건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더불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해야 할까.

다들 안 그런 척했지만, 당시 마을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운 편이었고,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지금이야 다들 화목하게 웃으며 농사를 짓고, 또 조만간 열릴 축제에 한창 들떠있지만 말이야.

따라서 우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아브륄에 대입한다면?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파와 적극적으로 지상을 탐색하자는 파로 나뉘겠죠.”

즉 나키아는 도리아 아주머니파였고, 이에 대립하는 집단이 크로든 아저씨파고 보면 이해하기 쉬웠다.

셀리오스 씨와 선대 나키아들도 두 무리로 찢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비밀에 부쳤으리라.

“아이넬 님의 말씀대로예요. 선대 나키아는 자칫 분열이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했어요.”

“그럴 것 같더라고요. 이거, 왠지 제가 이곳에 온 게 실수인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그도 그럴 게, 셀리오스 씨가 말했듯 나키아는 분란을 원천봉쇄하려고 했다.

근데, 내가 이렇듯 지상에서 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존재이리라.

물론 내가 알고 있었다면야 굳이 언급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셀리오스 씨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셀리오스 씨가 자신의 동생을 눈에 담았다.

“저는 선대 나키아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고 싶진 않습니다.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존재하는 걸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건, 명백한 위선이고 어리석은 일이니까요.”

단호한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나 아브륄의 지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모두에게 진실을 밝힐 수가 없어요. 라프린스도, 아쉬르도 오늘 들은 내용은 비밀로 해줬으면 해.”

“······응.”

“예, 알겠습니다.”

보아하니 진실을 밝히고 싶은 의지는 있어 보이는데, 당장은 힘들단 말이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넬 님은 라프린스의 손님이잖아요? 괜한 부담은 주고 싶지 않네요.”

그런가.

알려줄 수 없다면야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좀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이곳에 온 이유를 깜빡하고 있었네요.”

“음? 이곳으로 온 이유요?”

셀리오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어, 그러니까. 토트리한테 듣기로는 셀리오스 씨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요.”

“네? 토트리가요?”

거기서부터 시작인가.

나는 아까 라프린스 씨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록시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음을 밝혔다.

“그,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글쎄요.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록시는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거든요.”

“음, 그건 그런 것 같네요.”

셀리오스 씨가 흐뭇한 눈으로 록시를 바라봤다.

“웅?”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록시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언제 챙겨왔는지 입에 새우튀김을 물고 있었다.

“맛있니?”

셀리오스 씨가 록시의 입에 묻은 기름을 닦아줬다. 이에 록시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웅! 맛있다!”

이렇게 보니 진짜로 자매 같은 느낌이 들긴 하네.

거기다 록시를 믿어주는 거야 고맙지만, 만난 지 고작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신뢰하는 것 같았고.

“저희는 슬슬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 벌써 가시는 건가요?”

셀리오스 씨가 아쉽다는 듯 물었다. 보나 마나 록시랑 헤어지는 게 아쉬운 거겠지.

“네.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셀리오스 씨가 아프다고 해서였거든요. 보니까,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이거 받으세요.”

나는 가방을 열어 자그마한 유리병을 꺼냈다.

“이건 뭐죠?”

“꿀차요. 피곤할 땐 달짝지근한 걸 먹는 것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나도 피곤하다 싶을 땐 초콜릿이나 젤리 등등. 혀가 아릴 정도로 당 충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곤 했었지.

효과는 제법 좋았지만, 그 대신 터질 듯한 허리둘레와 충치를 얻는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이런 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뭘요. 덕분에 용궁 아니, 아브륄도 구경했으니까요. 아, 그리고 잠깐만요.”

기왕 주는 선물이라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겠지.

나는 다시금 가방을 열어 새 머그잔 3개와 마나 조각기를 꺼냈다. 그리고 조각기를 이용해 머그잔에 각각 셀리오스 씨, 라프린스 씨, 아쉬르 씨의 이름을 새겼다.

나는 셀리오스 씨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저도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부탁이요?”

“네. 다름이 아니라. 렐리크요.”

“네?”

렐리크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셀리오스 씨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반응을 보니 왠지 거절당할 것 같은 느낌인데.

“어, 네. 말씀하세요. 렐리크가 왜요?”

그래도 부탁 정도는 해봐도 괜찮겠지?

나는 금세 셀리오스 씨의 이름을 새긴 머그잔을 내밀며 가볍게 운을 뗐다.

“이건 선물로 드릴게요. 아무튼,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내가 준 머그잔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셀리오스 씨가 고개를 들었네.

“네.”

“그래서 말인데······. 이 렐리크, 잠깐만 빌릴 수 있을까요?”

“렐리크를 빌리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셀리오스 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도 거절을 하려니 미안해서 그런 거겠지.

“아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자, 이건 라프린스 씨, 이건 아쉬르 씨.”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이제 슬슬 가야겠네요.”

“잠시만요.”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셀리오스 씨의 말에 다시금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렐리크를 빌려서 어디에 쓰시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디에 쓸 거냐라.

“사실 렐리크를 이용해서 뭘 한다기보다는 연구를 하고 싶어서요.”

“연구요?”

“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지상에는 마도구라는 게 있거든요?”

백문이 불이일견.

나는 허리에 찬 가죽케이스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이건 라이터인데, 방금 제가 말한 아티펙트예요. 아티펙트는 마도구 중의 하나인데. 보시면.”

라이터 스위치를 돌리자 화르륵, 불길이 치솟았다.

“그 누구라도 손쉽게 불을 피울 수 있게끔 만든 도구예요.”

“아티펙트······.”

셀리오스 씨가 멍하니 불길을 응시했다.

음?

렐리크라는 엄청난 걸 쓰는 사람치고는 이상하리만치 놀란 모습이었다.

하기야.

멸망했다고 알려진 지상에 렐리크와 비슷한 물건이 있다니, 놀랄 만도 하겠지.

“보니까, 렐리크가 아티펙트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참에 잠깐 빌려서 연구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전부예요.”

비단 렐리크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데모스의 능력이 담긴 목걸이나 가면도 이 렐리크와 무척이나 흡사하다.

즉 내가 렐리크의 원리를 파악하고, 또 직접 제작할 수 있다면?

데모스의 능력이 담긴 도구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건 몰론, 그 누구라도 대항할 수 있게끔 방어책을 쥐여줄 수 있었다.

내 말이 의외였던 걸까.

셀리오스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글쎄요. 저도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렐리크와 아티펙트.

둘 다 지구에는 없는, 신비로운 현상을 이끌어내는 도구라는 점과, 편리하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아티펙트는 마법진을 이용하고, 렐리크는 그 특유의 흐름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즉 같은 결과를 이끌어낼지언정 과정이 아예 다른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능할 것 같다고 얘기한 이유는 딱 두 가지.

먼저 나는 렐리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제아무리 실타래처럼 꼬이고 얽혔을지언정 그 출발점과 종착점은 있다.

미로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차근차근 길을 짚어간다면 결국 그 흐름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 흐름을 온전히 기억할 수 있다.

제아무리 복잡한 흐름이라도 내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이 되는 이상, 똑같이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

나의 비현실적인 기억력, 이것이 내 입에서 가능성을 말하게 한 두 번째 이유였다.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가요?”

이윽고 셀리오스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삼겹살이 뭔지 아시나요?”

잠깐만.

방금 셀리오스 씨의 입에서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나오려야 나올 리가 없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나를 대신해서 대답한 이가 있었다.

록시였다.

“삼겹살! 록시 안다! 록시 좋아한다!”

“록시는 알고 있는 거니?”

“응! 대장이 해줬다! 록시 삼겹살 좋다!”

록시의 반응에 때아닌 아빠미소가 나온 것도 잠시.

삼겹살에 신난 록시에게서 시선을 거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셀리오스 씨가 삼겹살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는 이제껏 수없이 많은 삼겹살을 구웠고, 또 많은 사람에게 대접했다.

그래서다.

나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먹었는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인어는 고사하고 그와 닮은 종족조차 없었다.

하물며 이곳은 아브륄이다.

어떻게 삼겹살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내 의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그럼······. 그 화로라는 걸 만든 분이 아이넬 님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화로까지 언급했다. 혹시 식당에서 본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작 그 화로는 크래든 씨가 따로 챙겨가는 걸 직접 봤으니까.

무럭무럭 솟는 의문들을 잠시 접어둔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네. 맞아요.”

“아! 그랬군요!”

어째서일까.

셀리오스 씨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더니, 덥썩 내 손을 잡았다.

“그랬군요! 어쩐지, 그럴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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