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4화 (112/159)

114. 소년기(96) - #악기

아브륄을 다녀온 지 어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늘 그렇듯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할 일을 찾던 중이었다.

도리아 아주머니가 날 찾는다는 말에 촌장님 댁으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레비아 선생님, 헤파이토 씨, 위즈 씨, 데커드 할아버지가 와 계셨다.

데커드 할아버지의 뒤에는 고브 형제도 함께 있었다.

“아이넬 왔구나.”

내 등장에 도리아 아주머니가 웃으며 반겨주셨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모두와 인사를 한 뒤 여타 의자보다 높게 만들어진 지정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여기 있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스카른 씨가 분주하게 차를 준비해 내 앞에 내려놨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네.

사실 스카른 씨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조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스테르들을 해방한 뒤, 고브 형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고민했다.

옛말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이를 스카른 씨가 행한 일련의 행동들에 적용한다면, 그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어야 할 터.

하지만 비스테르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질긴 사슬을 끊어버리겠다는 것처럼, 스카른 씨를 용서했다.

나아가 고통을 받았다고 똑같이 고통을 주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고브 형제의 거취는 나에게 맡겨졌다.

아무래도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왠지 마음에 걸리고 내 나름의 혹독한 벌을 주자니, 대체 어떤 벌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특히 스카른 씨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겠다는 의지가 무척이나 강하다고 했고.

그러던 중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으니 바로 데커드 할아버지였다.

나는 물론, 늘 오목과 알까기 내기를 하던 레비아 선생님도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다.

감사하게도 데커드 할아버지도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고 계셨는데, 어딘가 적적해 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나는 데커드 할아버지께 스카른 씨를 데려갔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하지만 그가 가진 속사정을 들은 데커드 할아버지는 마음을 바꾸셨고, 자신의 조수로 삼으셨다.

내 생각에는 스카른 씨가 하플링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데커드 할아버지도 하플링이었으니 알게 모르게 공감대가 형성되셨겠지.

그 후로 스카른 씨는 데커드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상주하며, 조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실 조수라기보다는 심부름꾼에 가깝지만 말이야.

더불어 시간이 날 때면 나서서 마을 사람들을 돕곤 했다.

마을 사람들의 사이에서는 부지런한 스카른 씨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아, 고맙습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닙니다!”

스카른 씨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힘차게 대답했다.

나는 스카른 씨가 건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오오. 맛있네요!”

빈말이 아니라 스카른 씨가 차를 우리는 스킬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내가 엄지를 척, 추켜들자 스카른 씨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잘 마실게요!”

“옛! 다 드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네.”

이내 스카른 씨가 물러가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신 도리아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요즘 마을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네요. 가끔은 깜짝깜짝 놀란답니다.”

“하핫! 그러게 말이요.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랑 많이 바뀌었지.”

호탕하게 웃으며 답한 헤파이토 씨가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으!”

다들 차를 마실 때 홀로 술을 마시는 호쾌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반면에 헤파이토 씨를 보던 레비아 선생님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레비아 선생님도 술을 꽤 좋아하는 편이셨지.

헤파이토 씨처럼 물 마시듯 술을 들이켠다면, 레비아 선생님은 기분 좋게 반주를 걸치는 타입이셨다.

아, 좋다.

이렇게 앉아서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지.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도리아 아주머니가 짧게 헛기침을 하셨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아이넬을 불러놓고 다른 얘기만 했네요.”

이내 도리아 아주머니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음, 실은 아이넬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단다.”

“부탁이요?”

“그래. 다름이 아니라······ 조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괜찮다면 도와줄 수 있을까?”

응?

다소 엉뚱한 부탁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 있던 레비아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셨다.

“이번에 신전을 짓기로 했잖아. 그곳에 파메르 님의 석상을 하나 세울까 했거든.”

“아하!”

그러니까, 나더러 석상 아니, 신상을 만들어달라는 거구나.

하기야.

지구에 있는 종교만 보더라도 저마다의 신상을 갖고 있긴 하지.

근데, 그걸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이유는 뭐지?

그도 그럴 게, 우리 마을에는 대장인인 헤파이토 씨가 있다. 그의 솜씨라면 신상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이런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재차 레비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파메르 님의 석상이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넬, 네가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헤파이토 씨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아아.

그랬지.

파메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인물은 바로 나다.

더불어 이 파메르를 도리아 아주머니께 얘기했고, 그로 인해서 레비아 선생님이 신도 역할을 맡아 마을에 정착하셨다.

하물며 나는 꿈에서 파메르를 만났다고 말했다.

나야 대충 둘러대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였지만, 도리아 아주머니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파메르와 가장 먼저 접점을 가진 사람이자 신의 선택을 받은, 혹은 계시를 받은 아이 정도로 생각하시겠지.

굳이 나에게 신상을 부탁하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거기다 아이넬은 손재주가 참 좋지 않니?”

“으하핫! 아이넬의 손재주가 좋다는 건 이 헤파이토가 인정한다오! 아마, 우리 듀로프들 사이에서도 아이넬의 손재주를 따라갈 자는 몇 없을 거요.”

아이고.

이제는 헤파이토 씨마저 나서서 내 칭찬에 열을 올렸다.

이렇게 되면 거절하기도 뭣한데.

아!

잠깐만.

그러고 보면 나한테도 석상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긴 있구나.

“네! 그럼 제가 파메르 님의 석상을 만들게요!”

내가 부탁을 받아들이자, 도리아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고맙구나! 아이넬 네가 직접 석상을 만든다면, 파메르 님이 가장 기뻐하실 거란다.”

파메르야 그냥 지어낸 거니까 차치하고, 도리아 아주머니나 마을 사람들이 기뻐해 준다면 까짓 신상 하나 제작하는 게 대수일까.

* * *

짧다면 짧은 회의가 끝나고, 나는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

느긋하게 숲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자니 저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흐흐흥, 흐흥.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괜스레 풋풋한 꽃향기가 맴도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이윽고 아지트이자 휴식처인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호수의 중앙에 놓인 둥그런 섬.

정확히는 토트리의 등껍질에 앉아 유유자적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셀리오스 씨를 보면서 픽 웃었다.

그나저나 셀리오스 씨의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단 말이지.

따지고 보면 이렇다 할 가사가 없는, 그저 기분 좋을 때 내는 흥얼거림에 불과했지만 말이야.

“오늘도 오셨네요?”

내가 온 것도 모른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셀리오스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셀리오스 씨가 부랴부랴 고개를 들더니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넬 님 오셨군요!”

내가 아브륄에서 마을로 돌아온 지 일주일.

내심 그곳에서 조금 더 지내고 싶었으나, 나에게도 할 일이 있거니와 걱정할 사람들이 있는지라 애써 아쉬움을 접어야만 했다.

근데, 이게 웬걸.

내가 아브륄에서 챙겨온 해산물을 손질하고자 아지트에 오니 선객이 와 있었다.

다름 아닌 셀리오스 씨였다. 심지어 그 옆에는 라프린스 씨도 함께였다.

지금도 라프린스 씨는 저 멀리 구석 호숫가에 앉아있었다.

그는 지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꼬리로는 물장구를 치면서 연신 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평생을 아브륄에 살다가 처음으로 지상에 왔으니, 길에 나뒹구는 잡초 하나도 생소하고 신기하겠지.

“라프린스 씨도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라프린스 씨가 꾸벅, 인사를 받았다.

“근데, 이렇게 매일 오셔도 괜찮은 거예요? 아브륄은요?”

내 질문에 셀리오스 씨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것도 다 아브륄을 위해서니까요.”

아브륄을 위해서라.

누가 보면 그냥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아이넬 님이 연구하시는 걸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요. 오늘도 하실 거죠?”

“네. 오늘도 해봐야죠. 아, 그전에 잠깐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해보고 싶은 거요?”

“네. 별건 아니고······.”

나는 작업대로 향해 최근 만들기 시작한 물건을 챙겼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셀리오스 씨가 두둥실 허공을 유영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건 뭐예요?”

나는 손에 들린 기다란 물건을 들었다.

“이건 틴 휘슬이라는 거예요.”

언제였던가.

나도 취미를 갖겠답시고 이것저것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접근성이 쉬운 취미가 악기였다.

왠지 기타는 너무 흔해 보였거니와 내 성격이 조금 조급한 편이라서 다른 악기를 찾아봤다.

그렇게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면서 악기란 악기의 소리는 물론, 구조나 가격대, 관리 방법 등등을 살펴본 결과.

내 관심을 끌었던 악기가 바로 틴 휘슬이었다.

가격이 비싸지도 않았고, 비교적 쉬운 악기였던데다가 휴대성도 좋았다.

특히 특유의 잔잔한 음색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더라. 그래 봐야 금세 질려서는 또 다른 악기를 찾았지만 말이야.

실제로도 내 방에는 틴 휘슬부터 시작해 칼림바, 리코더, 우쿨렐레는 기본이요. 나중에는 흔하고 배우기 어렵다고 패스했던 기타는 예사요.

그냥 장식용으로 쓰기 좋다는 이유로 구매한 것들까지.

나쁜 주인을 만나서 먼지만 쌓인 악기들이 쌓여있었다.

이래서 가장 무서운 신은 고무신과 지름신이라고들 하는 거겠지.

참 재미있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전생의 내가 하고자 했지만 포기했던 것들을 정작 이곳에서 하고 있으니, 진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그래서일까.

한편으로는 쓸데없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틴 휘슬? 이름만 들어서는 모르겠네요.”

“생소하죠? 이건 악기예요.”

“악기요?”

악기라는 말에 셀리오스 씨가 눈을 깜빡이며 반문했다.

“네.”

백문이 불여일청.

나는 셀리오스 씨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가볍게 틴 휘슬을 쥐었다.

어디 보자.

그게 좋겠네.

마우스피스를 가볍게 물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뒤이어 차근차근 손가락을 움직이며 틴 휘슬을 연주했다.

내가 선택한 곡은 내가 처음 틴 휘슬을 배우겠다고 까불었을 때 열심히 외웠던 작은 별이었다.

틴 휘슬 특유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흐흥, 흥.”

내 연주에 맞춰 셀리오스 씨가 작게 흥얼거리며, 조화를 이뤘다.

좋다.

애당초 내가 굳이 틴 휘슬을 제작한 건 셀리오스 씨의 음색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였는데,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나는 차분하게 연주를 하며 살포시 눈을 떴다.

응?

어느새 내 주변으로 크고 작은 마수들이 모여있었다. 특히 곧잘 날 찾아오던 스코에르는 폴짝, 뛰어 내 어깨에 올라왔다.

내심 당황했지만,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마수들도 내 연주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슬쩍 시선을 돌렸다.

셀리오스 씨는 물론, 저 멀리 앉아있던 라프린스 씨도 눈을 감은 채 내 연주를 듣고 있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연주였지만, 다들 경청하는 태도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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