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5화 (113/159)

115. 소년기(97) - #팔찌

연주가 끝나고, 마우스피스에서 입을 뗐다.

“아.”

눈을 감은 채 연주를 듣던 셀리오스 씨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리가 정말 예쁘네요.”

“그렇죠? 괜찮으면, 가르쳐 드릴까요?”

“정말요? 가르쳐 주신다면 배우고 싶어요!”

내 제안에 셀리오스 씨가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나는 틴 휘슬의 파지법을 알려줬다.

“일단 이렇게 잡고, 여기에 구멍 있죠? 이걸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연주를 하는 거예요.”

내 설명을 들은 셀리오스 씨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모든 구멍을 막았다.

“그걸 디라고 해요.”

“디요? 그게 뭐예요?”

역시, 거기서부터 시작인가.

솔직히 틴 휘슬이라는 악기의 난이도 자체는 별로 높지 않다.

일단 외형부터가 무척이나 단순했거니와, 구멍의 숫자도 6개밖에 되질 않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초등학생이라면 으레 배우는 리코더보다 더 쉬운 악기라고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바로 음계였다.

이곳에는 아예 음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만큼, 아예 기본 중의 기본부터 접근해야만 했다.

그래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틴 휘슬은 비교적 다루기가 쉬운 악기였고, 외워야 할 것도 적은 편해 속했으니 배우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을 터.

거기다 셀리오스 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들어보면 음악에 대한 자질도 충분해 보였으니, 금세 배울 수 있으리라.

나는 음악이라는 걸 아예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가르치듯, 차근차근 음계와 운지법을 알려줬다.

“자, 이제 불어볼까요? 호흡은 일정하게 뱉으면 돼요.”

설명이 끝나고 셀리오스 씨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그녀의 볼이 살짝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

피이이이이······.

그와 동시에 틴 휘슬에서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나와는 달리 요상한 소리가 나자 셀리오스 씨가 당황했다.

“어······. 아이넬 님이랑 다른 소리가 나는데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가를 추욱, 늘어트린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런 내 웃음소리에 셀리오스 씨가 약간은 새초롬한 눈으로 날 흘겼다. 보아하니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험. 웃어서 죄송해요. 그리고 원래 처음 배울 땐 그런 소리가 나는 게 정상이에요.”

“그래요?”

“네. 저도 처음 불 땐 이상한 소리만 났거든요.”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게 나는 살아생전 악기를 살 줄만 알았지, 이걸 만들어 본 적은 없다.

그나마 구조를 봤기에 만들 수는 있었으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틴 휘슬 특유의 맑고 청량한 소리는 고사하고, 프로기가 짝을 찾을 때 날 법한 괴성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만 했다.

틴 휘슬의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확인할 때면 옆에 록시와 루나가 있었는데, 두 비스테르도 내가 내는 소음공해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거리를 두더라.

“그렇게 어려운 악기는 아니니까, 금방 익히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건 선물로 드릴게요.”

“이 귀한 걸 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그럼요!”

뭐, 셀리오스 씨의 입장에서야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중한 물건이겠지만, 나야 언제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아, 맞다! 이거······.”

돌연 셀리오스 씨가 슬그머니 틴 휘슬을 내밀었다.

아하.

“이름 새겨 드릴까요?”

“네! 기왕이면, 아이넬 님의 이름도 함께 새겨주셨으면 해요!”

“그거야 쉽죠.”

나는 가죽케이스에서 조각기를 꺼내, 셀리오스 씨와 내 이름을 새겼다.

“여기요.”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아, 그리고 전에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저번에 말한 거라면, 혹시 마그테리움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그테리움.

의지가 깃든 광석이라는 의미로, 렐리크를 제작할 때 쓰이는 재료였다.

“아, 마그테리움도 말씀하셨었구나! 근데, 그게 아니라 아크니악을 수리하실 때 무언가 특이한 파동을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마그테리움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그랬죠.”

그러니까, 내가 아크니악의 수리를 끝낸 뒤였다.

수리하던 중에는 워낙 집중하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막상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내 감각에 무언가가 잡혔다.

위치는 왕궁의 지하였으며, 그 감각에 집중해보니 그것이 렐리크라는 걸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수리를 위해 로켓 펜던트를 벗은 건 물론, 주변의 모든 마나를 흡수했던 게 그곳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혹시나 내 마나로 인해 또 다른 렐리크가 고장이 나는 건 아닐까, 싶어 셀리오스 씨에게 그 위치를 알려줬었다.

“혹시 조사해보신 거예요?”

“네! 아이넬 님이 말씀해주신 다음 날, 직접 가서 조사를 해봤어요. 근데, 거기서 이런 걸 발견했어요.”

셀리오스 씨가 품에서 꺼낸 물건은 다름 아닌 팔찌였다.

역시나 재질은 마그테리움이었으며, 여타 렐리크와 마찬가지로 심플한 만듦새였다.

“아, 지하에 이게 있었던 거예요?”

“네. 이 팔찌만 덩그러니 있더라고요.”

“이건 무슨 기능이 있는 거예요?”

내 질문에 셀리오스 씨가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그게······ 실은 잘 모르겠어요.”

“음? 확인해보신 거 아니었어요?”

“그게, 마나를 넣어도 작동을 하질 않아서요.”

“작동을 안 한다고요?”

“아, 팔찌의 크기는 조절할 수 있었어요. 근데, 그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던데요?”

“음.”

렐리크가 작동을 하지 않는 원인이라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크니악처럼 고장이 났을 경우다.

애당초 고장이 난 시점에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하기도 했고.

다른 하나는 렐리크에 충분한 마나를 주입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방금 셀리오스 씨의 말을 빌리자면, 팔찌의 사이즈는 조절이 가능하다. 그 말은 후자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아마 셀리오스 씨가 민망해하는 것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아이넬 님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왔거든요.”

나는 셀리오스 씨가 건넨 팔찌를 받아 살펴봤다.

일단, 외관상에는 이렇다 할 파손은커녕 아예 미세한 흠집조차도 없는 거로 봐서는 상당히 귀중하게 보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팔찌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꼼꼼하게 확인했다.

“음, 아무래도 직접 마나를 주입해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겠네요. 혹시 모르니까, 조금 떨어져서 해볼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셀리오스 씨와 거리를 둔 뒤, 조심스럽게 팔찌를 착용했다.

살짝만 흔들어도 쑥, 빠질 듯 헐렁한 팔찌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팔찌가 적당한 사이즈로 줄었다.

셀리오스 씨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까지는 정상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주입하는 마나의 양을 늘렸다. 내가 지닌 마나의 10%가 지나고, 20%가 지났다.

으레 그렇듯 렐리크에서 느껴지는 흐름이 감각됐다.

다만 팔찌에서는 그 어떠한 변화가 없었다.

이번에는 마나를 주입하는 속도를 빨리했다.

순식간에 50%의 마나가 빠져나갔다. 그제야 마나의 흐름이 미세하게나마 진전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몰랐을 정도로 작게 나아갔던 흐름이 뚝, 하고 끊긴 것이다.

“뭐지, 이거?”

당장 내가 끼고 있는 반지만 하더라도, 꽤 많은 양의 마나를 주입해야만 작동한다.

심지어 비눗방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마나를 소모해야만 한다.

그러한 반지조차 내 마나의 50%면 족히 10명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비눗방울을 만들 수 있다.

이 팔찌가 대체 뭔지는 몰라도, 마나를 잡아먹는 하마라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사이에도 꾸준하게 주입한 마나가 어느덧 70%를 넘었고, 마침내 100%를 달성했다.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흐름이 진전할라치면 끊기고, 진전할라치면 끊기기를 반복했다.

“와······.”

나는 텅 비어버린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대체 이 팔찌가 뭐기에 이토록 많은 마나를 잡아먹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좋아,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나는 아크니악을 수리할 때처럼 냅다 로켓 펜던트를 벗었다.

그러자 내 몸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깜빡할 시간이 흐르자, 한 줌의 마나도 남아있질 않았던 내 몸이 금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마나를 흡수하는 족족 팔찌로 보냈다.

100%를 넘어, 200% 지나, 무려 내 총량의 500%에 이르는 마나를 주입했다.

“이건 하마 수준이 아닌데?”

제아무리 마그테리움이 다량의 마나를 머금을 수 있다고는 한들,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단언하건대, 이미 이 팔찌가 머금을 수 있는 마나의 한계는 지났다.

달리 말해서 내가 주입하는 마나보다, 팔찌가 소모하는 마나의 속도가 훨씬 아니, 압도적으로 빠르다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면 마나를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거니와, 이 팔찌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곰은 자연이 부리고 돈은 아이넬이 챙긴다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그도 그럴 것이, 내 체질은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나는 이 마나를 그저 팔찌로 보내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가히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마나를 주입할 수 있었다.

까짓 마나를 먹는 괴물이라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여주면 그만 아니겠는가!

* * *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늘 그렇듯 거나하게 저녁 식사를 챙겨 먹은 나는 곧장 목욕탕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받아 그곳에 아이넬표 입욕제를 부었다.

허브와 각종 약초를 빻아 만든 가루가 물에 녹으며 투명했던 탕이 은은한 갈색빛으로 변했다.

모락모락, 열기가 피어오르는 탕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풍덩!

거센 물보라가 일며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목욕탕이었더라면 대번에 질타를 받을 행동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이 목욕탕은 우리 거였으니 뭐라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흐, 좋다!”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목욕으로 끝을 내야 한다니까.

이제 와서 느낀 거지만, 지난 몇 년간 이 욕조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유유자적, 배영을 하며 목욕을 즐기던 나는 무심코 팔을 들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내가 이 팔찌를 착용한 게 정오 무렵이었으니까, 얼추 8시간을 착용했다.

게다가 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마나를 주입했는데, 그 양만 하더라도 아크니악을 수리하고도 열댓 번은 수리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이 정도로 마나를 주입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분명히 무언가가 잘못된 건 같은데, 당최 문제를 모르겠다.

“혹시 따로 작동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렇다 할 버튼도, 장치도 없었으니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뭐 음성인식으로······.”

잠깐만.

음성인식?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가만히 팔찌를 쳐다봤다.

“움직여라.”

반응은 없었다.

“나와라. 커져라. 줄어들어라.”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그 후로도 나는 머릿속에 든 단어란 단어는 모조리 뱉었다.

그럼 그렇지.

여기가 지구도 아닌 이상에야 음성인식이라는 기능이 존재하진 않으리라.

이렇게 쉽게 될 리가 없지,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열려라.”

별 의미 없이 던진 그 한마디에 팔찌에서 급격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돌연 내 눈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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