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16화 (114/159)

116. 소년기(98) - #여긴 어디?

느닷없는 상황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세를 낮췄다.

더불어 언제라도 목욕탕에서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시커먼 그림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커멓기에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허공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이곳은 지구의 법칙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즉 하늘에 그림자가 생길지라도 그게 상식으로 통용되는 세상이다.

다만 아무리 봐도 저건 그림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일단 그림자는 허공에 가만히 있을 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저걸 어쩐다.”

내 신조 중 하나가 만사불여튼튼이다.

마음 같아서야 천천히 알아보고 싶긴 했으나, 저대로 두자니 그것도 애매하단 말이지.

더군다나 이곳은 우리 집이다.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도 함께 있다. 나아가 마을 안이기도 했으니, 저 시커먼 그림자를 마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확인하는 쪽이 낫겠지.

목욕탕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나는 아까 입욕제를 넣었던 통을 주웠다.

그리고는 냅다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어?”

꿀렁!

놀랍게도 내가 던진 통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시커먼 그림자가 내가 던진 통을 그대로 집어삼킨 것이다.

방금 통을 집어삼켰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연신 꿀렁거리는 모양새가 꼭 액체를 연상케 한다고 해야 할까.

왠지 손으로 만지면 시커먼 기름 같은 게 묻어나올 것만 같았다.

혹시나 싶어 슬그머니 뒤쪽을 살폈지만, 역시나 내가 던진 통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통을 하나 들었다. 이번에는 기다란 끈을 연결했다.

“읏차!”

나는 그림자를 향해 통을 던졌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꼬여있던 줄이 스르륵, 풀리며 통이 그림자를 통과했다.

이윽고 끈이 팽팽해지더니 툭,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팽팽해졌던 끈이 살짝 느슨해지며 곡선을 그렸다.

“빨아들이는 건 아니구나.”

만약 구멍 너머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긴다거나, 아예 바닥에 없어 밑으로 떨어졌다면 줄이 느슨해질 리가 없었으니까.

달리 말해서 저 구멍 너머도 지상이며, 통은 그 위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천천히 끈을 잡아당겼다.

“맞네.”

내 예상대로였다.

줄은 물론이고, 끝에 매달려 있던 통도 그대로 딸려나왔다. 더불어 통은 던졌을 때와 똑같은 상태였다.

이래선 구멍이라기보다는 통로라고 표현해야 될 것 같았다.

“허공에 생긴 통로라.”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겠냐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따지고 보면 허공에 생기는 그림자나, 허공에 뚫린 구멍이나 그게 그거기도 했고.

나는 시커먼 구멍과 팔찌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렐리크를 보았고, 또 사용해봤다.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렐리크는 나쁜 의도로 제작된 건 아니라는 거지.”

물론 도구라는 건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일례로 우리가 즐겨 쓰는 식칼만 해도 그렇다.

엄마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식칼을 들고, 요리사는 자신의 요리를 좋아하고 이를 업으로 삼기에 식칼을 든다.

반면에 이 식칼로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드는, 본래 생겨난 의의를 무시한 채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비단 식칼만이 아니라, 그 어떤 도구라도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곧 흉기가 되곤 한다.

하물며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도 초월한,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는 마법이라면?

그리고 마법사가 아닐지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아티펙트라면?

한발 더 나아가 아티펙트보다 더 큰 힘을 내는 렐리크라면?

굳이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데모스를 통해 확인했으니까.

그는 렐리크와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으며, 동시에 악인이다.

물론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선한 존재일지언정 데모스로 인해 모든 종족이 위협을 받는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맹점은 그거다.

현재 데모스는 봉인됐으며,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끝일까?

아니다.

악의 우두머리가 봉인되었다고 한들 그가 제작한, 소위 저주받은 물건들은 곳곳에 남아있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도구 혹은 힘, 기술이라는 건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불러오기도 하고, 반대로 멸망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나야 렐리크가 누구의 손을 거쳐왔고 어떤 사람들이 사용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의도가 선했으리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저걸 저대로 둘 수도 없으니까.”

아예 생기지 않았다면야 모를까.

이미 생긴 이상 직접 확인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좋아.”

자고로 생각은 깊고 행동은 빨라야 하는 법. 나는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부랴부랴 옷을 걸쳤다.

더불어 만에 하나의 일을 대비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통에 묶은 것처럼 내 허리를 끈으로 고정했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

나는 오른손에 템페스트를 꽉 쥔 나는 보무도 당당하게 구멍 앞으로 향했다.

“······어우.”

막상 들어가려니, 긴장되네.

애당초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몰랐으니, 떨리는 게 당연했지만 말이야.

나는 뺨을 툭툭, 두드려 치미는 긴장을 날렸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더랬지.

“가자.”

괜스레 힘껏 외친 나는 곧장 통로인지, 구멍인지 모를 어둠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순식간에 시야가 암전됐다.

“어우, 씨.”

분명히 눈을 뜨고 있는데, 눈을 감은 듯한 느낌이랄까.

진짜 한 치의 앞도 보이질 않는 게 진정한 의미의 암흑 그 자체였다.

그저 내 발에 닿은 단단한 감촉을 통해 내가 지금 지상에 발을 디뎠구나, 라는 것 하나만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더듬더듬.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 휴대용 마등을 집었다.

딸칵.

스위치를 돌리자 전방을 향해 밝은 빛이 뿜어졌다.

“휴우, 다행이네.”

혹여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사방이 워낙 컴컴해서 그런 걸까.

휴대용 마등을 켰음에도,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들어온 입구 또한 까매서 보이질 않았다.

자칫 내 허리에 묶은 끈이 풀리기라도 하는 날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허리에 묶은 끈을 점검한 뒤, 그곳에 여분으로 가져온 마등을 내려놔 입구임을 표시했다.

마음 같아서야 대형 마등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고, 아예 마법진을 그려서 대낮처럼 환하게 하고 싶었다.

근데, 혹여나 대량의 마나를 사용했다가 마그테리움이 반응할 우려도 있었으니, 당장은 이렇게 표시만 해두는 게 좋겠지.

“자, 이제부터 탐색해볼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닥이었다. 무언가 걸리는 게 없는 걸로 봐서 숲은 아니었다.

“음, 일단 바닥은 평범한 돌······. 어라?”

휴대용 마등으로 유심히 바닥을 살펴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게, 바닥의 재질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이거, 마그테리움이잖아?”

안 그래도 나는 셀리오스 씨한테 여분의 마그테리움이 있는지 물어봤다.

흐름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렐리크를 복제하기 위해서 마그테리움이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브륄에는 여분의 마그테리움이 없다고 셀리오스 씨는 말했다.

그래서 혹시 구할 수 있는 곳을 아냐고 물어봤으나, 정작 셀리오스 씨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즉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마그테리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셈이었다.

“이야. 설마하니, 이곳에서 마그테리움을 발견할 줄이야.”

마치 깜빡 잊었던 돈을 찾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소득에 기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디딘 이 마그테리움이 렐리크인지 아닌지가 관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렐리크로 제작된 마그테리움은 재활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중에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이 어디냐였다.

이내 지상에서 시선을 거둔 뒤 주변의 탐색을 시작했다.

휴대용 마등에 의지해 주변을 탐색한 지 어언 30분쯤 흘렀을까.

“뭐 이렇게 넓어?”

내가 탐색하는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그동안 쉬지 않고 탐색했다.

그런데도 다른 구조물은커녕 마그테리움으로 만든 바닥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아닐 텐데.

아직 시간의 여유는 있으니까, 조금만 더 탐색해보는 게 낫겠지.

다시금 시간이 흘러 탐색 1시간 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마침내 나는 구조물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구조물에 휴대용 마등을 비췄다.

구조물의 크기가 상당히 큰 탓에 일부분만 보였다.

“이게 대체 뭐지?”

처음으로 맞이한 구조물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중이었다.

언뜻 새의 날개로 추정되는 부분이 보였다.

“아, 이거 새네.”

그것도 엄청나게 커다란 새였다.

심지어 로토가 동네 비둘기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새였다.

당연하게도 살아있는 게 아닌 바닥과 마찬가지로 마그테리움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었다.

“으음.”

이상하네.

어째서 이곳에 새의 조각상이 있는 걸까.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이 새를 좋아해서?

그런 것치고는 달랑 새 조각상 하나만 뒀다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

“으음, 역시 마나를 주입하는 방법밖엔 없는 건가.”

사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방법이기도 했고.

단지 선뜻 시도하지 않았던 건 앞서 말했듯 이 공간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해보자.”

기껏 용기를 내서 이곳까지 들어왔다.

1시간이나 소모해서 탐색해서 찾은 게 고작 조각상 하나. 어쩐지 허무하기도 하고, 이대로 돌아가자니 내 모험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한 손에는 템페스트를 쥔 나는 곧바로 조각상에 손을 얹어 마나를 주입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돌연 눈앞에 시뻘건 빛이 떠올랐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마나를 흡수한 조각상이 진동하는가 싶더니, 날개로 추정되는 부분이 거세게 요동쳤다.

“윽!”

갑작스러운 조각상의 움직임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어찌나 거셌던지, 내 몸이 후우욱,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재빨리 조각상에서 손을 떼며 후다다닥, 뒤로 물러섰다.

“이거, 잘못 건드린 건 아니겠지.”

후회는 늘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나는 혹시나 모를 공격에 대비하여 템페스트로 전방을 겨눴다.

-캬아아아아아아!

갑작스럽게 내 고막을 강타한 괴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내 시야는 붉은 빛을 따라갔다.

이윽고 한곳에 고정되어 있던 붉은 빛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더니, 뚝 멈췄다.

틀림없다.

저건 조각상의 눈동자다.

그리고 눈동자는 마치 내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 이쪽으로 향해있었다.

-······.

응?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이런 내 상념도 잠시였다.

삽시간에 주변이 밝아지며, 어둠에 적응되었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찰나의 시간, 오롯이 하얀 빛으로 가득했던 세상이 밀려나며 본래의 색감을 되찾았을 때.

내 눈앞에는 한 사람이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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