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소년기(114) - #축제는 순조로움!
한가로운 어느 날이었다.
늘 조용하던 산맥이 오늘따라 유독 시끄러웠다.
푸드드득!
캬아아!
지금쯤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어야 할 마수들도 어수선함에 저마다 자리를 피했다.
숲이 이토록 소란스러운 이유는 단순했다.
쿵, 쿵, 쿵, 쿵.
얼추 400여 명은 넘어 보이는 대인원이 숲을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오크르, 젠트리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옆에서 유유자적 경치를 감상하던 머크바가 물었다.
“췩, 뭔가 이상한가?”
머크바의 질문에 젠트리가 손에 들린 가죽 조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죽 조각은 이전에 아이넬에게 직접 받은 초대장이었다.
머크바의 말에 젠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췩, 길이 여기서 끊겼다.”
“췩? 길이 끊겼다고? 그 초대장이 있으면 췩,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췩, 맞다. 이 초대장만 있으면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췩, 보아하니 초대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췩, 그럼 어떻게 하나? 췩, 여기서 그냥 돌아가야 하는 건가?”
“췩, 그건 아니다. 그때, 아이넬은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이 초대장을 찢으라고 했다. 췩.”
“그럼 췩, 빨리 찢어라.”
머크바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젠트리가 초대장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과감하게 초대장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질긴 가죽이 늘어나더니, 끝끝내 반으로 찢어졌다.
그러자 찢어진 초대장에서 옅은 빛이 뿜어지더니, 금세 가루로 화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두 오르크가 놀라기도 잠시.
“췩?”
정작 그 어떠한 변화도 없자 두 오크르가 서로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췩, 초대장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
“췩, 그런 것 같다.”
초대장에 문제가 있다.
그 외에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젠트리가 씁쓸하게 웃더니 뒤쪽을 쳐다봤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래 봐야 목적지인 아이넬의 마을까지는 반의반도 채 지나지 못했다.
즉 초대장이 없는 이상 그곳까지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꼭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오르크 최고의 미식가인 만큼, 축제에 나올 음식이 기대됐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친구가 자신을 초대했다는 게 가장 기뻤던 젠트리다.
‘아쉽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이내 젠트리가 몸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머크바가 허둥지둥 젠트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췩, 저거. 저걸 봐라!”
“췩, 무슨 일······ 췩!?”
머크바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본 젠트리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두 오르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특이한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만 같았다. 뒤이어 허공에 시커먼 구멍이 생겨났다.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한 젠트리가 무어라 지시를 내리려던 차였다.
일그러진 공간 너머로 무언가가 쑥, 튀어나왔다.
“아! 안녕하세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라빗트라 불리는 마수처럼 길쭉한 귀를 지닌 사람이었다.
“췩······?”
머리만 쏙 내민, 어딘가 기괴한 모습과는 달리 몹시도 경쾌한 인사에 젠트리는 물론,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던 오르크들이 멍한 얼굴이 되었다.
갑자기 시커먼 구멍이 생긴 것도 놀라운데, 거기서 사람의 얼굴이 튀어나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웃차!”
라빗트의 귀를 지닌 사람이 구멍을 완전히 빠져나오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녀의 복장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색감은 옅은 파스텔 톤에 어딘가 하늘거리는 재질이었다. 그중에서도 사선으로 찬 띠가 유독 눈에 띄었다.
띠에는 축제의 안전 및 안내 보조 요원이라는 글자와 함께, 라피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축제의 안내 및 안내 보조를 맡은 라피라고 합니다! 어······. 그러니까, 젠트리 씨?”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퍼뜩 정신을 차린 젠트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췩, 내가 젠트리요. 그쪽은 어디서 온 누구요?”
“아! 저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안내랑 보조를 맡은 라피라고 해요! 아이넬 님의 지시를 받아 축제에 참가하는 분들의 안내를 하고 있어요!”
“췩, 안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어떻······ 췩!”
젠트리가 텅 비어버린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방금 전 가루로 화해 사라진 초대장이 떠오른 것이다.
“네! 초대장을 찢으셨기에 제가 온 거예요!”
라피의 말에 한결 마음이 놓였는지, 젠트리가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췩, 그렇군. 안 그래도 초대장이 잘못된 거 같아서 난감하던 차였소. 혹시 췩, 여분의 초대장이 있으면 받고 싶소만!”
“아, 그것 말인데요! 잠시만요!”
젠트리에게 양해를 구한 라피가 허리춤에 걸어둔 무전기를 꺼냈다.
“아아, 여기는 라피! 라피! 본부 들리나요? 오바!”
“췩?”
이상한 도구를 들고 혼잣말을 하는 라피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는 본부. 라피라면, 젠트리 씨가 계신 곳으로 향했구나. 상황은 어떤가, 오바.
하지만 이내 도구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젠트리가 헛숨을 들이켰다.
젠트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무전기를 잠시 내린 라피가 오르크 무리를 살펴봤다.
“어······. 젠트리 씨, 실례지만 현재 인원이 몇 명인지 알 수 있을까요?”
“췩? 아! 421명이오.”
“네! 여기는 라피, 총 421명이라고 합니다. 오바!”
-여기는 본부. 421명. 알았다. 그럼 지금부터 곧바로 마을로 안내하도록. 오바.
“알겠습니다, 오바!”
이내 무전을 끝낸 라피가 젠트리를 불렀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문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췩, 문? 문이라면 혹시 저걸 말하는 거요?”
젠트리가 시커먼 구멍을 가리켰다.
“네! 맞아요!”
라피의 긍정에 젠트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게 문이라고?’
아까 라피가 그곳에서 나오는 걸 직접 목격했으니. 그녀가 말하는 문이 저 구멍이라는 건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젠트리에게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가 알고 있는 문이란 건물의 출입구지 저런 구멍이 아니다. 제아무리 직접 봤다고 한들 저게 문이라는 라피의 말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넬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지.’
젠트리에게 아이넬이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드는 도구들은 늘 자신을 놀라게 했으며, 그가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와 행동은 편협했던 자신의 시야를 트이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췩, 그렇군.”
왠지 아이넬이라면 저런 문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흡사 광신도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믿음이 젠트리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일단 문을 여는 데에도 제한이 있어서요. 지금부터 바로 이동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췩, 나부터 가겠소.”
담담하게 대꾸한 젠트리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젠트리가 라피의 안내에 따라 시커먼 구멍 앞에 섰다.
“너무 긴장하실 건 없어요. 그냥 저 문을 통과하시면 끝이에요.”
“췩, 알겠소.”
라피의 격려에 마음을 굳힌 젠트리가 성큼, 발을 내디뎠다. 이윽고 젠트리가 시커먼 구멍에 몸을 들이밀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컴컴해지더니, 금세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췩, 여기는······.”
젠트리가 황망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방금 자신은 울창한 숲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널따란 초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귓가를 파고든 인사에 젠트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웬 커다란 구조물과 함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녀 또한 비스테르였으며, 축 처진 귀와 복슬복슬한 꼬리가 특징인 리트레브 부족의 소녀였다.
“저는 여러분을 이로나스 마을까지 안내할 안내원, 로니아라고 합니다.”
“췩, 젠트리라고 하오. 그래서, 여기는?”
“이곳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초원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버스를 탄 뒤, 호텔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췩, 버스? 호텔?”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단어의 나열에 젠트리가 벅벅, 머리를 긁었다.
그도 나름 식견이 많은 편에 속하건만, 버스랑 호텔은 그 어디에서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다.
“예. 먼저, 버스는 이걸 말하는 겁니다.”
로니아가 옆에 세워진 구조물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구조물은 하나가 아닌 수십 개였으며,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이었다.
“췩? 그게 버스라는 거요?”
“예. 이건 손님들을 마을까지 모실 버스. 쉽게 말해서 탈것입니다.”
“췩, 탈것이라.”
내심 저 구조물의 어딜 봐서 탈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다시금 아이넬이 떠오른 젠트리가 말을 삼켰다.
“그리고 호텔이라는 건 축제 기간 동안 손님들이 머무르게 될 숙소를 뜻합니다. 자세한 건 가는 길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젠트리와 로니아가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갖는 사이, 오르크들이 차근차근 문을 통과했다.
마침내 400명이 넘는 대인원이 숲에서 초원으로의 이동을 끝마쳤다.
비단 초원에 도착한 것은 오르크만이 아니었다.
아이넬에게 초대장을 받은 이들이 속속들이 초원에 도착했다.
“오, 이게 누구야! 젠트리 아니야?”
“췩? 헤로도? 췩, 자네가 여기 있다는 건. 혹시 췩, 자네도 초대장을 찢은 건가?”
“자네도 초대장이 이상했었나 보군! 이야, 그나저나 이거 참 신기하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뭐, 아이넬의 작품이라면 납득은 가지만 말이야.”
헤로도의 말에 젠트리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경련했다.
그도 그럴 게, 방금 헤로도가 너스레를 떨며 뱉었던 말.
아이넬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는 말은 문을 통과하기 전, 본인이 했었던 생각이기도 했으니까.
“자, 그럼 손님들은 요원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탑승하겠습니다!”
로니아의 지시가 끝나자, 각각 손님들을 데리고 온 요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모두의 탑승을 도왔다.
다만, 오르크의 경우는 워낙 대인원이라서 버스를 나눠서 탈 필요가 있었다.
“호오.”
엉겁결에 버스에 오른 젠트리가 기묘한 시선으로 버스 내부를 살펴봤다.
“이동 중에는 버스가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안전벨트는 이렇게······.”
라피의 설명에 따라 모든 오르크가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힘차게 외친 라피가 버스의 운전석에 앉더니, 대뜸 커다란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버스의 문이 닫히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췩, 알아서 움직이는 탈것이라니.”
창밖을 보던 젠트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오호, 젠트리 씨도 도착했구나.”
아르젠 씨의 등에 올라탄 채 지상을 내려다보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살갗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에 서둘러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어디 보자······. 아, 이건 델린 씨구나.”
보아하니 델린 씨도 초대장을 찢은 모양이다.
“아아, 여기는 아이넬. 지금 바로 문을 열 테니까 그쪽으로 요원을 보내주세요. 손님의 이름은 델린이에요. 오바.”
-여기는 본부. 알겠습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곧바로 요원을 보내겠습니다. 오바.
오케이.
본부에서 연락을 받은 나는 곧장 백색 초대장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저 멀리, 버스가 세워진 지점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게 보였다.
아울러 미리 대기하고 있던 요원이 문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쭈우욱, 기지개를 켰다.
“역시 이렇게 하는 게 조금은 더 안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