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IY천재의 힐링생활백서-139화 (137/159)

139. 소년기(121) - #노인

안내방송이 끝나고, 잠시 후였다.

스피커를 통해서 미리 녹음해둔 음악이 놀이공원 곳곳에 울려 퍼졌다.

시작은 틴 휘슬이었다.

마치 피톤치드가 넘실거리는 숲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틴 휘슬 특유의 청량하면서도 싱그러운 음률은 아침을 알리는 새의 지저귐처럼, 날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나저나 스피커로 증폭을 했는데도 이 정도의 퀄리티라니.

걱정해서 손해 봤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들려오는 곡은 일종의 MR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즉석에서 연주하면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아무렴.

악기라는 게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거니와, 이를 가르쳐주기엔 다소 일정이 빡빡했다.

거기다 아직은 내가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지.

하물며 수십 년을 연주한 사람도 긴장한다는 라이브 공연이다. 그걸 초심자에게 맡긴다는 건 상당히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차선책으로 반주를 녹음해두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셀리오스 씨와 함께 녹음 작업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는 총 5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여러모로 허술한 면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으나 근데 막상 녹음본을 완성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도 들긴 하더라.

렐리크의 놀라운 재현력 덕분에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듯한 퀄리티의 MR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더불어 렐리크에 녹음을 해둔다면 두고두고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호오, 이 소리는 대체 뭐지?”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구만.”

놀이동산을 거니는 사람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제자리에 멈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음악은 인종과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니까.

그래도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다.

그도 그럴 게, 이 공연의 주인공.

즉 셀리오스 씨의 노래는 아직 시작조차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모두와 함께 반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어느덧 도입부가 지났다.

이제 슬슬 시작하는 건가.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모두의 귀를 홀린 반주에 셀리오스 씨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시작은 가벼운 흥얼거림이었다.

이는 원래 있는 파트가 아닌, 노래를 시작하기 전 셀리오스 씨가 하던 습관이었다.

단순한 허밍이었지만 이 또한 반주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마침내 허밍으로 목을 푼 셀리오스 씨가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캬.

드디어 시작이구나.

지금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곡은 지구에서도 꽤 유명한 곡 중 하나다.

그것도 발라드였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솔직히 이 노래를 선택한 것부터가 내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들어간 거지만 말이야.

역시 믿고 듣는 셀리오스 씨라고 해야 할까.

본래 노래라는 건 원곡자가 있다.

그리고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서,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면 자연스레 원곡자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셀리오스 씨가 부르면 왠지 원곡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원래 셀리오스 씨를 위해서 만들어진 곡이었나, 라는 생각부터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마침내 첫 번째 곡이 끝을 맺었다.

노래는 길어봐야 4분 안팎.

인생을 통틀어 4분이라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셀리오스 씨의 노래는 그 창졸지간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건 안 되겠다. 이봐, 공연은 어디서 볼 수 있다고 했지?”

“어······? 아! 공연장은 여기서 저쪽으로 쭉 가면 나온다고 하던데?”

“저쪽이란 말이지.”

“어이, 자네 어딜 가는 거야?”

“어딜 가긴 어딜 가! 자네는 이 노래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단 말이야? 나는 직접 이 노래를 듣고야 말겠네!”

“거, 누가 안 간다고 했어? 같이 가자는 얘기지!”

몇몇.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셀리오스 씨의 노래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곧바로 공연장을 향해 달려갔다.

“훗국”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담당 연예인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매니저의 마음이 이러할까.

셀리오스 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게 내 일처럼 기뻤다.

거기다 나와 셀리오스 씨는 친구다.

즉 언제 어느 때라도 셀리오스 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실제로도 셀리오스 씨는 곧잘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곤 했고.

나도 사람인지라, 이럴 때면 정말 잘 나가는 연예인과 친구가 된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해진단 말이지.

“흐음. 이거, 아예 드라고스 산맥의 아이돌로 만들어버릴까?”

비단 셀리오스 씨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마을에 살아가는 종족들 중, 가무에 능한 이들이 꽤 많다.

비스테르만 하더라도 운동신경이 뛰어나니까, 춤도 금방 배울 수 있을 터.

“흐음. 백색 마나만 있으면, 까짓 방송도 할 수 있으니까.”

지구도 아닌 이세계에서 방송이 웬 말이겠냐만, 대략적으로나마 그림을 그려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한번 생각의 물꼬가 트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샘솟았다.

“나쁘지 않겠는데.”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서 방송을 보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자니, 공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부랴부랴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남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홀로 흐뭇해하던 중이었다.

“대장! 대장!”

때마침 록시가 우다다다다, 달려왔다.

“언니다! 셀리오스 언니다!”

록시가 신기하다는 듯,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허공에 뜬 스크린을 가리켰다.

“응. 셀리 노래 잘하네. 그치?”

“응응! 셀리오스 언니 노래 좋다! 잘한다!”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록시가 귀여웠던 나는 무심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바이킹은 다 타고 온 거야?”

“으응! 루나가 그만 타자고 했다! 대장 기다린다고 했다!”

록시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간을 봤을 때 족히 3번은 더 탔을 텐데, 그걸로도 부족하다니.

하여간, 록시도 뭐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타입이라니까.

“놀이공원은 항상 열려있으니까, 나중에 또 오면 되지.”

축제가 끝난다고 한들 놀이공원은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나아가 우리 마을 사람만이 이용할 게 아니라, 저 멀리서도 쉽게 놀러 올 수 있게끔 게이트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긴 했지만 말이야.

“뭐, 그건 축제가 끝난 뒤에 생각하기로 할까.”

“으응?”

내 혼잣말에 록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혼잣말이야. 아, 저기 두 사람도 오네.”

이윽고 루나와 라프린스 씨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자, 그럼 다시 놀러 가볼까?”

바이킹을 이렇게나 많이 탈 줄은 몰랐지만, 아무렴 어떠랴.

축제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우리가 놀 시간은 많이 남았다.

“응응! 간다!”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놀이공원 내부에 마련된 오락실이었다.

말 그대로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때려 박은 곳이었다.

“아이스크림이다! 대장, 대장!”

저 멀리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한 록시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래, 그래. 어떤 맛이 좋아?”

“으응! 맛있는 게 좋다!”

맛있는 거라니.

세상에 맛있는 맛이라는 건 없단다.

뭐, 록시가 좋아하는 거야 알고 있으니까 그중 하나 골라주면 되겠지.

“루나랑 라프린스 씨는요?”

내 말에 두 사람 또한 아무거나 괜찮다고 말했다.

하여간, 뭘 먹겠느냐는 말에 아무거나로 대답하는 상황은 어딜 가더라도 존재하는구나.

록시의 기대 어린 시선을 등에 받으며, 나와 록시, 루나, 라프린스 씨의 아이스크림을 받아왔다.

그렇게 각자 취향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든 우리는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며 오락실로 향하던 중이었다.

문득 내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이 있었다.

“대장?”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내가 걸음을 멈추자, 록시와 루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

말을 멈춘 나는 록시와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잠깐, 먼저 가 있을래? 오락실은 저기, 저쪽이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루나, 안내 부탁할게.”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루나가 록시와 라프린스 씨를 이끌고 오락실 쪽으로 향했다.

홀로 남은 나는 지금도 연신 내 신경을 콕콕 건드리는 사람을 쳐다봤다.

펑퍼짐한 로브를 걸치고 있어 종족도,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아울러 그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치 사람을 구경하던 나를 보는 듯했다.

단순히 풍기는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가보는 게 맞겠지?”

왠지 이대로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가는 찜찜함이 남을 터.

그래, 이렇게 고민하느니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미련도 남질 않는 법이다.

나는 애써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한 채 터벅터벅, 걸었다.

의문의 인물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에 뜬 물음표도 점점 커져만 갔다.

“안녕하세요?”

“흐음? 호오, 안녕하신가.”

어딘가 털털하면서도 푸근한 목소리였다.

더불어 로브 아래로 살짝 드러난 얼굴에는 눈처럼 새하얀 수염이 풍성하게 자라나 있어, 노인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으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일까.

내 기억에 따르면 분명히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근데,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으음, 이상하네.

어디에서 마주쳤으면 기억에 있어야 정상이란 말이지.

“그래, 어린 친구가 나에게 볼일이라도 있는 겐가?”

“어, 아니요! 그냥 주변을 둘러보시길래, 길을 잃으신 건가 싶어서요!”

“허허헛,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는가?”

음?

길을 잃은 게 아닌 건가?

다소 모호한 대답에 눈을 꿈뻑였다.

“혹시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내 말에 노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허헛, 친절한 친구로군. 그래, 듣자 하니 이곳에 신전이 있다고 들었네.”

“아, 신전을 찾고 계셨구나! 신전은 저쪽으로 쭈욱, 가면 나오거든요. 길이 조금 헷갈릴 수도 있는데, 제가 직접 안내해드릴까요?”

내 제안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허헛, 아닐세. 내가 길눈은 밝은 편이야. 그래, 덕분에 신전을 찾아갈 수 있게 됐군. 고맙네, 어린 친구.”

노인이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부디 어린 친구의 앞길에 무한한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문인 듯하면서도 혼잣말인 듯한 말을 끝낸 노인이 몸을 돌렸다.

나는 무심코 노인에게 물었다.

“저기, 실례지만 성함을 여쭤봐도 될까요?”

내 말에 노인이 허허허, 웃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노인이 휘적휘적,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친구는 참으로 오랜만이군. 아쉽지만 나도 내 이름을 모른다네. 너무 많거든.”

이름이 너무 많다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잠시였다.

“그래도 근래에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이름이 생겼다네.”

노인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덩달아 목소리도 작아졌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요?”

노인이 듣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질문을 던지듯 말했다.

“······.”

그리고 아주 작게 들려온 이름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틀림없다.

분명히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파메르.”

라고.

"서로 나누는 삶. 앞으로도 잘 지켜보겠네."

퍼뜩 고개를 들었을 때,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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