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소년기(135) - #탕!
백날 화살을 쏴봐야 정작 앞 유리에는 미세한 흠집조차 안 생기는데 말이야.
티티티팅!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에프렐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댔다.
그건 그렇고.
이래서는 끝이 나질 않겠는데.
“그건 그렇고. 여기가 에프렐의 구역이 맞는 거죠?”
이미 화살이 날아오는 시점부터 명확했지만, 혹시나 싶어 물었다.
이에 엘리니아 씨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마, 맞아요! 저기, 저쪽에 보이는 봉우리요!”
나는 엘리니아 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녀의 말대로 그곳에는 볼록 솟은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아울러 봉우리의 위에는 웬 건물이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다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정확한 생김새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알 수 있는 특징이라면 일단 색깔이 붉었으며, 약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뭐, 가서 직접 보면 알겠지.
“저 봉우리에 에프렐이 살고 있는 거예요?”
“어······. 저기에 에프렐의 장로가 있어요.”
“아하.”
저 봉우리에 에프렐의 대표라고도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거구나. 그리고 그 대표라는 인물은 웰버른 씨겠지.
어디 보자······.
현재 위치를 가늠해봤을 때 네크론의 초입이다. 그리고 현재 속도라면 적어도 1시간은 더 들어가야 할 터.
그 말은 앞으로 1시간은 더 이런 상황을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야 안전하다는 걸 알아서 이렇다 할 감흥은 없지만, 함께 탄 두 사람은 아니었으니 수를 쓰긴 써야겠지.
나는 핸들을 꽉 쥐었다.
“어디 맞출 수 있으면 맞춰보라지.”
퉁!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캐치한 나는 슬쩍 핸들을 틀었다.
그러자 트럭의 동체가 급격하게 틀어지며 화살을 피했다.
“쉽구만.”
물론 말은 쉽다고 했지만,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산속을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한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일.
그러나 내 비상식적인 동체 시력은 화살들의 경로를 꿰뚫어 본다.
거기다 예민한 감각들로 말미암아 피해야 할 방향과 위치까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운전대를 꽉 쥔 나는 이른바 곡예주행을 하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조리 피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에프렐들이 당황했는지, 갈수록 쏘아지는 화살의 양도 늘어났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트럭을 향해 쏘아지던 화살은 목표를 잃은 채 엄한 바닥만 때려댔다.
그럼 달려볼까.
나는 그대로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일반적인 자동차와는 달리 순식간에 가속이 붙더니, 주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속도가 높아지자 옆에 앉아있던 엘리니아 씨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저건 비명이 아니구나.
그도 그럴 게, 누가 봐도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속도를 즐기는 듯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관심을 보이던데.
낌새를 보아하니 나중에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서 찾아올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다고들 하는 거겠지.
운전하니까, 요즘에 마을의 명물이 된 게 생각난다.
그건 다름 아닌 버스였다.
본래 버스는 축제에 참가한 인원의 이동을 돕기 위해서 만들었다.
다수의 인원을 한꺼번에 이동하는데 버스만큼 편리한 게 없기도 했고.
근데, 축제가 끝난 지금도 버스는 꾸준하게 운행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축제가 끝난 후 마을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말했듯, 우리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리고 도리아 아주머니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입주자들을 위한 사무소를 만들었다.
소문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게······ 우리가 입주자를 받겠다고 나서자마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진짜 축제가 다시 열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입주자가 늘어날수록 마을의 확장은 필수 불가결했고, 점차 마을의 규모가 커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심지어 이젠 따로 정류장까지 만들어서 마을버스를 운행하고 있었고, 마을에 사는 이들은 모두 버스를 애용한다.
버스야말로 우리 마을에 오면 꼭 타봐야 하는 명물이자, 일종의 관광 상품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아가 버스는 렐리크이기에 무인으로도 별문제 없이 운용하는 게 가능했지만,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직접 운전을 가르쳐준 사람도 몇몇 있다.
이따금씩은 운전을 배우고 싶다면서 날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고.
특히 알코른 아저씨가 운전을 배우겠답시고 코를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찾아왔을 땐 식겁했지.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 조만간 면허 시스템도 도입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아차, 지금은 이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하물며 면허 어쩌고 하면서 정작 내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버리니, 큰일이네.
아무래도 워낙 할 게 많다 보니 툭 하면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단 말이야.
잡념을 털어낸 나는 어느덧 코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쳐다봤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건물도 또렷하게 보였다.
“뭐지, 저건?”
아까 건물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에 단순히 착시현상이겠거니, 했는데······.
이제 보니 평범한 건물이 아니었다.
정정한다.
애당초 저걸 건물이라고 봐야 할지도 애매했다.
흡사 나무처럼 생긴 구조물이었는데, 녹색 나뭇잎이 아닌 검붉게 타오르는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언뜻 보면 조금 커다란 횃불처럼 보이기도 했다.
“······.”
이상하네.
어째선지 저 화염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내 기분 탓일까?
내가 멀거니 불길을 쳐다보고 있자, 엘리니아 입을 열었다.
“저 불길은 장로님과 맹약을 맺은 정령인 라그나 때문이에요. 과거부터 쭉 함께 해오던 정령인 라그나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장소고요.”
“라그나라면······.”
그러고 보니 엘리니아 씨가 쫓기던 당시에 들어본 적이 있었지.
에프렐과 불의 정령이라.
왠지 에프렐하면 푸르른 녹음이 떠올라서 그런지, 썩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것도 다 편견이겠지.
드디어 웰버른 씨를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하기도 잠시.
거침없이 질주하며 봉우리를 올라가던 중이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십 명의 에프렐이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모두 활을 들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우리 쪽을 겨누고 있었다.
다들 안 그런 척하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에프렐은 자신들의 구역으로 누군가가 침입하는 걸 상당히 싫어한다고 들었다.
실제로도 우리가 네크론에 진입하기 전부터 에프렐들을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오기도 했고.
돌아가긴커녕 빠른 속도로 에프렐의 구역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심지어 이곳이 어딘가.
에프렐의 우두머리인 장로가 사는 곳이다.
우리가 이곳까지 들이닥쳤다는 것부터가 그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겠지.
게다가 우리의 목표가 장로라는 걸 몰랐을 에프렐이다.
근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는 건 저들이 본래부터 이곳을 지키는 인원이라는 말.
“하여간······.”
나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늦췄고, 약 10미터 거리를 둔 채 차를 멈췄다.
차가 완전히 멈추자 돌연 에프렐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어, 저 사람은 그때 그 에프렐이네요? 이름이 크나프였죠?”
“네. 맞아요. 크나프 님이네요.”
엘리니아 씨의 긍정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정면을 응시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우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나는 문을 열었다.
“어, 나가시게요?”
엘리니아 씨의 걱정 어린 물음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서는 끝까지 저기서 버티고 서 있을 것 같아서요.”
제아무리 에프렐이 괘씸하다고 한들 이대로 치고 지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으음······.”
엘리니아 씨는 좀처럼 걱정을 떨칠 수 없었는지, 습관처럼 손톱을 깨물었다.
“걱정할 거 없어요. 그리고 목적지도 코앞이니까, 어차피 곧 내렸어야 할 거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엘리니아 씨랑 나르비 씨는 차 안에 계세요.”
“그, 그래도······.”
“자자, 너무 걱정할 거 없어요.”
엘리니아 씨에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바깥으로 껑충, 뛰어내렸다.
“웃차!”
가볍게 지상에 착지한 나는 유유자적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몇몇 에프렐이 나에게로 활을 겨눴다.
모든 에프렐이 날 겨냥하지 않는 건 나보다 이 자동차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이네요.”
“네, 네놈은······?”
반응을 보아하니 크나프 씨도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다.
“네 녀석······! 지난번에 우리의 일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감히 에프렐의 구역에 멋대로 침입하다니. 정녕 혼쭐이 나고 싶은 거구나!”
혼쭐이라.
그건 오히려 내가 해줘야 할 말인데.
“장로라는 사람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크나프 씨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을 텐데, 이러지 말고 길 좀 터주시면 좋겠는데요.”
“장로님을 뵙겠다고? 웃기는 소리 말아라!”
역시 쉽사리 길을 내주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렇게 나오시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거든요. 좋은 말로 할 때 비켜주시면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후하하핫! 그래, 안 그래도 네놈을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지.”
“저를요?”
“그래. 하루, 하루 네 놈을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근데, 이렇게 우리의 구역에 친히 와 줄 줄이야.”
씨익,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크나프 씨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활을 겨누고 있던 에프렐들이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오며 포위망을 좁혔다.
“몸에 바람구멍이 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포박당하는 게 좋을 거다.”
“싫은데요?”
나는 씨익 웃으며 성큼, 한 발 내디뎠다. 이에 도리어 놀란 쪽은 에프렐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걸음을 내디딤과 동시에 흠칫하더니, 다급하게 크나프 씨를 쳐다봤다.
터벅, 터벅.
큐우와 함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에프렐들을 향해 다가가자, 크나프 씨가 주먹을 쥐었다.
“이익······! 다리를 쏴라!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
크나프 씨의 명령이 떨어지자, 에프렐들이 힘껏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투투투투퉁!
동시다발적으로 쏘아지는 화살을 보던 나는 가볍게 뛰어올랐다.
파파파파파파팍!
수십 발의 화살이 지상에 꽂혔다.
놀라운 건 화살들의 간격이 일정했으며, 모두 내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와우!
누가 에프렐 아니랄까 봐, 활 하나는 진짜 잘 다루네.
내가 잠시 감탄하는 사이에 또다시 화살비가 쏟아졌다.
“뭘 하는 거냐! 다리를 맞추란 말이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화살을 피하자 크나프 씨가 성을 냈다.
슬슬 나도 그걸 써볼까.
여유롭게 화살을 피하던 나는 슬그머니 허리춤에 걸린 그것을 잡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자, 다들 귀 조심하세요!”
“뭐······?”
크나프 씨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철컥, 잠금장치를 푼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에프렐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장전되어 있던 총알이 허공을 찢었다.
퍼억!
“으아악!”
에프렐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자빠졌다.
좋아.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속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탕!
리드미컬한 총성과 함께,
“으악!”
“아아악!”
에프렐들의 비명이 적막한 숲을 울렸다.
“휴우, 끝인가.”
순식간에 40발이 넘는 사격을 끝낸 나는 흐트러진 옷을 툭툭, 털어 정리하고는 전방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에프렐들이 있었다.
그렇다.
비명만 들으면 총에 맞은 줄 알겠지만, 정작 내가 맞춘 것은 에프렐이 아닌 그들이 들고 있던 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