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27화 (27/212)

5. 다키스트 에이지 - 세력 확장 (4)

파아앗!

땅을 박찬 단천의 몸이 가속했다. 운이 좋다면 슈고란이 북을 치기 전에 놈을 공격할 수 있을 터다.

둥!

하지만 놈의 무기는 인간의 피부로 만든 북이다. 거문고나 적처럼 음색을 내는 과정이 복잡하지 않다. 단순히 후려 갈기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북을 상대로는 기습이 통하기 힘들다.

앞으로 달려들던 단천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파아악!

단천이 방금까지 달려들던 곳의 바닥이 뭔가로 후려갈긴 것처럼 패였다.

둥!둥!

슈고란이 북을 칠 때마다 몸을 저릿저릿하게 하는 음파가 쏘아져 나온다. 단천은 슈고란의 동작을 보며 계속해서 공격을 피해냈다.

> 슈고란 패턴 역겹지 않냐?

> 공격 모션 안 보이는건 좀 선 넘었지 ㅇㅈ

> 그래도 데미지가 크진 않잖음. 맞으면서 패면 할만함

> 천마 체력 10임

> 한방 맞으면 사망 ㅋㅋㅋ

공격 한번한번이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다. 단천의 지금 체력으로는 한 방을 제대로 격중당한다면 그대로 죽는다는 것이 문제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릴 만큼 위험한 상황.

하지만 단천은 여유로웠다.

[미션맨 님이 6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지난번에 못 준 미션금 들고왔습니다!]

까딱.

반쯤 잊고 있었던 미션금에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할 만큼.

> 미션맨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판 ㅋㅋㅋ

> 이걸 약속을 지키네;;

[미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지금 슈고란 상대임? 미션 검! 5분 내에 처치하면 10만원!]

> ?

> 뭔 5분이여 ㅋㅋㅋ

> 스트리머가 1분 컷 이야기했는데 5분 ㅋㅋㅋ

> 거저 주는 미션인가요

방금 도착한 미션맨의 후원에 채팅창에 ㅋ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미션맨 님이 1,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 드립니다··· 슈고란 상대로 1분 내에 이기면 10만원···.]

> 미션맨 급쭈굴···

> 평범하게 미션을 주려고 했을 뿐인데

> 상대가 나빴다 ㅠㅠ

‘음공을 상대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군.’

음공의 약점에 대해서는 단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슈고란의 공격이 단순히 「다키스트 에이지」라는 판타지 게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음공과 슈고란의 공격이 다를 수도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지.’

이 게임을 만든 자는 무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다. 그렇다면 슈고란도 무림의 음공과 닮아 있도록 만들었을 터다.

생각을 마친 단천의 몸이 슈고란을 향해 다시 한 번 가속했다.

파아앗!

바로 슈고란의 반응이 이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북소리. 다시 공격 궤도를 이탈하는 단천의 몸.

이전과 완전히 동일해 보이는 일련의 시퀀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궤도를 이탈한 단천이 쉬지 않고 바로 슈고란을 향해 가속했다는 점이다.

음공의 약점 첫 번째는 악기를 연주할 때만 음공을 시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허초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격이 뻔한 만큼 허초를 걱정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단천의 몸이 슈고란을 향해 짓이겨들었다.

“이런 버러지가!”

그르렁거리는 돼지 울음소리같은 슈고란의 노호가 터져올랐다. 북을 두드리는 박자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두두두두둥!

하지만 슈고란의 공격들은 단천을 모조리 스쳐지나갔다.

음공의 약점 두 번째는, 이미 쏘아진 음파의 궤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

같은 비행 무기인 당가의 암기는 쥐는 방식을 바꾸고, 투척 방식을 바꾸고, 암기에 암기를 맞추는 등, 여러 방식을 통해 그 궤도를 수정한다.

하지만 음공은 소리를 쏜다.

그렇기에 궤도를 바꿀 수 없다.

“뻔하군.”

세 걸음도 남지 않은 둘간의 거리. 단천의 발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하하!”

슈고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올랐다. 공중에서는 제깟 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이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슈고란은 단천을 향해 음파를 조준하고 북을 두드렸다.

아니, 두드리려 했다.

하지만 북채를 아무리 휘저어도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았다.

“?!”

슈고란의 시선이 아래. 자신의 북으로 향했다. 자신의 북을 바라본 슈고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눈 앞에 있는 인간이 방금까지 들고 있었던 반으로 조각난 검이.

북에 박혀 있었다.

음공이 가지는 약점의 마지막은.

“악기란 것 자체가 너무 부서지기 쉽다는 거지.”

단천의 몸이 슈고란의 북 위에 올라탔다. 뱀처럼 슈고란의 몸을 타오른 단천은 북에 박혀든 부러진 직검을 회수하고.

슈고란의 머리를 찍어내렸다.

콰드득!

“말도··· 말도··· 쿠워어어.”

쿠웅!

거대한 슈고란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미션맨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내 통장···잔액··· 어디···?]

> 미션맨 10만원짜리 미션 30초컷 ㅋㅋㅋㅋ

> 아니 팝콘 튀겨왔는데 벌써 끝났냐;

> 이거 사람 아님 내가 봄

> 근데 왜 점프한 거임?

질문이 올라왔지만 단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의 질문에도 단천의 대답이 없자 후원이 올라왔다.

[질문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근데 왜 점프한 거임?]

“···내가 뛰어올라야 놈이 나를 조준할 테고, 그래야 북이 찢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테니까.”

> 돈 받아야 대답해주네 ㄷㄷ;

> 프로 돈미새;

“누구나 알 법한 간단한 것이라 대답하지 않은 것뿐이다.”

> 세상에 이게 대체 어떻게 간단한 거에요

> 밥 아저씨세요? 이걸 어떻게 누구나 알아요

이것도 모르면 숨 쉬는 것부터 알려줘야 하는 건가. 단천은 그렇게 생각하며 슈고란의 머리를 베었다.

검을 뽑아낸 단천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의 형세는 난장판이었다. 몬스터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라파엘로는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버텨라! 우리들의 죽음으로 천사가 슈고란을 처치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무슨 죽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나.”

“···?”

라파엘로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천사.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여기에 있지 말고 슈고란을 처치해야···.”

“슈고란은 죽었다.”

데구르르. 툭.

슈고란의 머리가 바닥을 볼품없이 굴렀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데골데골 구르던 라파엘로의 눈이 단천 너머에 있는 거대한 사체에 꽂혔다.

“정말로, 그 몇 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슈고란을 죽인 거요?”

“그래. 1분만 버티라고 했으니까. 약속은 지켰다.”

“슈고란이···슈고란이 죽었다!”

“우와아아아!”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함성.

[파멸의 슈고란을 처치하셨습니다!]

[인간 측의 사기가 폭발적으로 올라갑니다!]

“창대에 슈고란의 머리를 달도록.”

“아, 알겠소!”

기다란 창대 위에 슈고란의 머리가 꽂혔다.

크웨에엑!

그워어어!

슈고란의 머리가 흔들리자 몬스터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규합되어 있는 몬스터들은 힘과 폭력에 의해서 모여들어 있다. 그들을 규합하고 모으고 있던 것은 모두 슈고란이 가지고 있던 힘과 놈이 두드리던 북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지휘가 붕괴한 지금.

놈들은 이제 군단이 아니라 그저 한 마리 한 마리의 몬스터들일 뿐이었다.

끼에에엑!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 잡는 몬스터들, 상황파악이 빠르게 돼서 도망치는 놈들, 지휘가 사라지자 갈피를 못 잡고 주변을 공격하기 시작한 몬스터들까지.

동족 포식이 시작되자 그 많던 몬스터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와아아아!”

“천사님이 세상에 오셨다!”

“인간은 승리할 것이다아아!”

미카엘 성으로 돌아오자 주변에서 환호성이 끝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천사가 아니라 천마라고.”

단천의 조그마한 투덜거림이 주변에 들리지 못했다는 소소한 불행을 제외한다면, 인간들의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였다.

[전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미카엘 성이 몬스터들의 공격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몬스터들의 공격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끝난 것 같군. 이제 떠나도록 하겠다.”

“천사여! 어디를 떠난다는 말인가!”

“라인하르트 성으로 가야지.”

라인하르트 성에서의 승리 메시지는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보스가 잡히지 않았다는 의미.

운이 좋다면 기사들을 물리고 보스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라인하르트 성까지 거리 먼데 괜찮음?

> 도착하면 전투 다 끝나 있을 듯

> 걍 여기서 놀고먹기나 하죠?

채팅창의 분위기에 단천의 눈이 샐쭉해졌다. 안 그래도 슈고란과의 보스전이 순식간에 끝나서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여기서 쉬라니. 절대 안 될 말이다.

단천은 타고 왔던 스컬 윙을 발로 건드렸다. 하지만 스컬 윙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군.”

혹시나 스컬 윙을 타고 돌아갈 수 있을까 해서 성까지 돌아와 본 건데.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다.

스컬 윙은 마나로 일시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언데드다. 단천을 미카엘 성으로 데려간다는 브라딘의 명령을 수행한 지금. 더 이상은 이동수단이 아닌 뼈무더기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걸어서 라인하르트 성으로 가는 수밖에.

그렇게 걸음걸이를 옮기려는 단천의 앞을, 라파엘로가 막아섰다.

“천사여.”

“갈 길 바쁘니 비켜라.”

“아니. 해야 할 말이 있다.”

단천의 눈이 라파엘로로, 라파엘로에서 주변의 가신들로, 주변의 가신들에서 주변 모든 사람들의 얼굴로 옮겨갔다.

그들의 눈에는 열망과 희망이 있었다. 저 희망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서 트롤을 죽이고, 전장을 돌파에 슈고란을 죽인 존재에게서 희망을 찾는 것이다.

“라단 성의 성주이자 천사인 그대를. 본 미카엘 성의 성주가 왕으로 추대하고 싶다.”

[퀘스트 : 왕위 추대]

[미카엘 성에서의 당신의 우호도가 최고치입니다!]

[미카엘 성의 성주인 라파엘로가 당신을 왕으로 추대하기를 원합니다!]

[※ 필수 퀘스트가 아닙니다. 거절해도 스토리 진행에는 변동이 없습니다.]

> 왕?

> 다키스트 에이지에 왕이 있었냐?

> 예전엔 있었지 나라 이 꼬라지 나기 전에는

[인간들의 시대가 몰락하기 전의 과거에는 왕이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수가 불어나면서 국가는 사라졌다. 인간들의 수가 줄어들며 각각의 성들은 고립된 섬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왕은 사라졌다.]

단천은 풀창고의 설정집에 있던 문구를 떠올렸다. 요컨데 라파엘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단천이 한 문파의 문주를 넘어서서 맹盟의 군주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 왕 드가자ㅏㅏㅏㅏ

> 아니 왕은 못참지 ㅋㅋㅋㅋㅋ

> 당장수락해당장수락해당장수락해당장수락해당장수락해

‘내가 미쳤냐.’

책임져야 하는 인간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게임에서 할 거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단천은 보스전 이외의 쓰잘데기 없는 일들이 게임에서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영지 경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 단천은 그런 것과는 취미가 영 멀었다.

퀘스트 메시지에서도 딱히 디메리트가 없다고 하니. 굳이 이런 완장을 달 필요따위는 없는 것이다.

“안 한다. 이런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

[수락시 보상으로 ‘탈 것 : 스컬 윙’을 얻습니다.]

“왕 자리. 수락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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