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68화 (68/212)

17. 쇼케이스 (1)

소드아트의 쇼케이스가 진행되는 서울 사이버 드래곤 홀은 홀이 열리기 한참 전의 시간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크흑···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다키스트 에이지 2가 진짜 뜰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냐.”

“그보다 오늘 진짜 플레이는 못 해 보는거 맞냐?”

이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물론 다키스트 에이지 2의 쇼케이스를 보기 위함이었다.

쇼케이스에 보여지기로 예정된 게임은 그저 다키스트 에이지 2 하나뿐인 상황. 심지어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꽉꽉 모여들어 있었다.

다키스트 에이지가 아무리 충성도가 높은 게임이라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어 있는 이유는 하나.

“오늘 BJ천마 컨트롤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거지?”

“진짜 재능충중의 재능충이라니까.”

“나도 다키스트 에이지에 미쳐 살았는데, BJ천마는 말이 안 돼.”

BJ천마에 대한 관심도였다.

다키스트 에이지를 진행하면서 BJ천마가 보여준 믿지 못할 정도의 신위와 컨트롤은 다키스트 에이지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런 컨트롤을 다키스트 에이지에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키스트 에이지 유저들에게 새로운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경외감또한 불러일으켰다.

이 경외감과 갈망은 게임 유저의 증가와 스트리밍 방송의 증가로 이어졌다. 거의 다 망해가던 다키스트 에이지 시청자층과 유저층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인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신규 유저층 유입과 방송의 흥행인 법.

이 둘 모두를 해 낸 BJ천마의 입지는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거의 신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그런 인파 사이로. 평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옷차림은 평범했지만 그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는 평범하지 않았다.

“···저거. BJ천마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진짜? 진짜 천마님이야?”

“천마다! 천마가 나타났다!”

“싸인! 싸인 좀 해 주세요!”

“지금은 좀 힘듭니다.”

단천을 향해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그냥 간단하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자신에 대한 관심도가 너무 컸다.

‘마스크라도 쓰고 나올 걸 그랬나.’

관심은 고맙지만 여기서 싸인을 해 주고 있다가는 약속 시간에 늦는다. 게다가 먹을 갈고 붓을 준비할 제로콜도 부르지 않은 상황.

“어깨 좀 빌리겠습니다.”

단천은 옆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짚어올린 다음 발로 남자의 어깨를 밟았다.

공중으로 일 장 이상을 도약한 단천의 몸이 가까운 가로등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번의 도약.

파아악! 가로등의 기둥을 차고 재차 도약한 단천의 몸이 드래곤 홀의 2층으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와. 뭐야!”

“저거 그 파쿠른가 뭔가 하는 거 맞아?”

“와. 실제로도 몸 엄청 잘 쓰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더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번에는 인피면구라도 준비해야 하나.”

아니. 사실 스트리머 입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고 좋아해주는 것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그보다 바쁜 일이 있어서 자리를 잠시 피했을 뿐.

“다음 번에는 제로콜을 데려와야겠군.”

그랬다면 싸인 몇 장 정도는 해 줄 시간이 있었을 텐데. 아쉽다.

단천은 뒤에서 들리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덩치가 좀 있는 시큐리티들이 많은 곳을 따라가면 되었으니까.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시큐리티들을 따라가자 관계자 출입 금지라고 쓰여진 판넬이 보였다.

“여기가 관계자실 맞습니까?”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그보다 아직 입구가 개방이 안 됐는데.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2층으로 들어왔습니다. 보안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군요.”

“네?”

“BJ천마입니다.”

“아. 천마님이시군요. 따로 연락은 못 받았는데. 연락 해 보겠습니다.”

잠시간의 소란이 끝나자, 한 남자가 안에서 걸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천마님의 안내를 맡은 총괄 개발자 정선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과 무게중심의 독특한 이동. 저런 움직임은 근대 이후의 무술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들이다.

그렇다는 것은···.

‘무공을 배웠군.’

정선우라는 인물은 무공을 알고 있다. 물론 무공을 배웠다고 해서 그 수위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절대고수는 어림도 없고, 고수의 영역에도 한참을 모자란다.

기껏해야 삼류에서 이류 사이. 어쩌면 그 아래.

단천은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처음 만나는 무림인의 수위가 이 정도라니.

이 정도면 바로 제압해서 정보를 뜯어내려고 했던 생각조차 식어 버린다.

단천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인사에 답했다.

“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실까요?”

정선우가 단천을 데려간 곳은 꽤나 방음 시설이 잘 완비된 방이었다.

단천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다리를 꼬아 앉았다.

“알고 있는 정보들. 모조리 뱉어내도록.”

“···역시나. 오만하시군요. 제가 알고 있는 정보대로요.”

정선우가 머리를 긁었다.

“제 입장에서도 천마님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지만. 그다지 알려주시진 않으시겠죠?”

“굳이 알려줄 이유가 없다 싶은데.”

단천은 몸에서 기를 뿜어냈다. 고수가 뿜어내는 기운은 평범한 사람보다 어중간하게 무공을 배운 자에게 훨씬 더 강하게 먹히는 법. 정선우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으. 자, 잠시. 말 좀···.”

단천이 기를 다시 갈무리하자 정선우가 몇 번 콜록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콜록. 콜록. 역시 무림인들은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로군요.”

“너는 무림인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어. 실제로 무림인이 아니니까요.”

단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림인이 아니다?”

“음, 뭐랄까. 저는 그냥 평범한 개발자입니다. 무공에 대해서 조금은 아는 사람. 그러니까 스큅이라고나 할까요.”

‘스큅이 뭔데. 너 혼자만 아는 설정 들이대지 마.’ 라는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지만 단천은 굳이 입 밖에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맥락으로 미뤄 보건데 무공을 연구하는 무학승과 비슷한 종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일 터.

“하지만 무학승또한 무림인이다.”

“···왜 제 다리를 보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팔을 부러트리면 뛰는 데는 지장이 없지.”

정선우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정선우는 BJ천마의 방송을 꽤 모니터링을 해 왔다. 마이페이스 그 자체인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소 말이 안 통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처음에 본좌는 다키스트 에이지의 개발자란 놈을 만나면, 점혈을 한 다음 정보를 모조리 쥐어짜려고 생각했다.”

“···분골착근이라도 하실 셈이었습니까?”

“하지만 네 무공 수위를 보니 그럴 생각이 식어 버렸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도록. 묻는 말에 제대로만 대답한다면 사지 중 하나는 멀쩡한 채 방을 나갈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질문부터 하지. 어떻게 매화검법을 비롯한 무공들을 게임에 넣은 거지?”

“매화검법이라면···.”

말을 흐리는 정선우의 모습을 단천은 노려봤다. 호흡도 동공도 그대로다.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매화검법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모르는 것일 터.

“종언의 시종이 쓰던 촉수의 움직임 말이다.”

“그게 매화검법이었군요.”

“그 외에도 여러 무공들이 게임 안에 들어가 있었지.”

“그렇다는 건 실제로 다키스트 에이지에 있는 보스몹들 대부분은···.”

“무공을 따라하는 것이지.”

“역시 그랬군요.”

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난이도 높은 보스 몬스터 대부분은 저희가 만든 게 아닙니다.”

“너희가 만든 게 아니라고?”

“네. 아실지 모르겠지만 VR게임에서 전투패턴을 만드는 건 매우 난이도가 높은 일입니다. 제대로 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게 워낙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렇지. 실제로 하인라인 사도 모델링을 잡는 데 크게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었으니까.

“저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키스트 에이지를 해 보셔서 알겠지만, 각종 기괴하고 특이한 몬스터들이 꽤 나오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된 전투 패턴을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죠. 초창기에 자본이 많이 부족하던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더더욱 모델링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대로 모델링을 구현한거지?”

“···어느 날 익명의 이름으로 USB가 도착했거든요.”

“그 익명이라는 거. 혹시 육도천이라는 이름이었나.”

“···맞습니다.”

육도천.

파일로드에게 왔었던 익명의 USB를 보내온 자의 익명이다.

“그 안에는 꽤 많은 종류의 모델링과 공격 패턴이 들어있었습니다. 실로 아름다울 정도의 완성도였죠. 저희는 이 모델링을 사용해 다키스트 에이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대박을 칠 수 있었던 거군.”

“저희 게임 자체가 완성도가 높기는 했지만, 게임의 난이도라는 화룡점정을 완성해 준 건 확실히 육도천 덕분입니다.”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곳에서도 그 ‘육도천’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다키스트 에이지 2의 발매가 늦어지게 된 것도 그 USB에 담겨 있는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메시지?”

“다키스트 에이지의 원초의 망령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혈마제 여승현의 검을 그대로 흉내내던 다키스트 에이지의 마지막 보스.

“이 히든 보스가 제대로 클리어되고 나야 다음 ‘무공’ 모델링을 보내 주겠다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랬나.”

다키스트 에이지 2의 게임은 거의 다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완성도의 몬스터들이 없다면 게임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다키스트 에이지의 가장 큰 인기요소는 누가 뭐래도 하드하고 현실감 있는 몬스터들과의 전투였으니까.

이야기를 들은 단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육도천’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헤집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자라.’

뇌명검의 구결을 아는 자. 다키스트 에이지에 나오는 수많은 무공을 아는 자. 무공에 대한 해박하기 그지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무공을 배운 자가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파, 아니.

마도에 속한 인간.

‘···딱 떠오르는 인물은 없군.’

중원의 인간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단천 자신이 살아온 당대에는 저런 조건에 부합하는 인간이 없었다.

어쩌면 단천 자신과 다른 세대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놈이 누군지는 아직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느낌.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었다.

‘놈은 나를 부르고 있다.’

굳이 단천을 콕 찝어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도천이라는 놈은 무공을 아는 ‘강자’를 부르고 있었다.

왜 이런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지는 아직은 의문이지만.

“그보다 무공을 줄 거면 한 번에 주지. 성격 정말 이상한 놈이로군.”

“천마님이 하실 말은 아닌··· 아, 아닙니다.”

정선우가 마음 속에 떠오른 말을 하다가 단천의 눈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일단 여기서 얻은 정보들이 그래도 조금은 된다.

“놈에게 받았던 USB는?”

“···원래는 드리면 안 되는 거지만. 안 드리면···.”

“회사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거지.”

“···그냥 드리겠습니다.”

단천은 정선우의 품에서 나온 USB를 받아들었다.

“이 USB에도 인장이나 각인은 없군.”

“빡통도 아니고 USB에 자신을 추적할 뭔가를 남겨두겠습니까?”

“혈교와 포달랍궁은 그랬다.”

“···혈교와 포달랍궁. 상상 이상의 빡통들이었군요.”

사실 좀 멍청한 놈들이기는 했다. 단천 자신이 있는데도 중원통일을 하겠다며 설쳐대는 놈들이었으니까.

단천은 품 속에 USB를 집어넣었다.

이로써 해독할 수 있는 USB가 두 배로 늘었다. 강한솔과 김진표가 할 일이 두배로 늘다니. 둘도 즐거워할 게 틀림없었다.

자고로 상사의 행복은 부하직원의 행복인 법이니까.

“좋아.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네놈은 어떻게 무공을 익힌 거지?”

“으음. USB에 담긴 게 모델링만은 아니었거든요. 어찌 보면 이쪽이 모델링보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봐야겠지요. USB 안에는 게임 내부적으로 쓸 수 있는, 게임 시스템 또한 다소 포함돼 있었습니다. 게임 안에서는 ‘신성력’이라고 불리는 것 말입니다.”

“신성력이 아니라 내공이다.”

“그게 뭔지는 제대로 정보가 없어서 일단 신성력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사실 이 모든 모델링들이 무협의 것이라는 걸 추측한 것도 천마님이 나오고 나서라서요.”

“이제 무공임을 알게 됐으니 앞으로 내공이란 표현으로 통일하도록.”

“그···게임 안에서 이미 다 신성력이라고 해 놨습니다만. 1편에서도 쓰이던 용어를 2편에서 바꿀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단천은 천천히 검지손가락을 들어 눈 앞의 테이블을 눌렀다. 천천히 누르는데도 돌로 된 테이블에 쩌적거리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버린 단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내공이라고 부르도록.”

“···괄호 안에 병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병기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내공(신성력)’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고깝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무공에 대해서 잘은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 담겨 있던 내공과 네 무공은 무슨 관계가 있지?”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쇼케이스에서 직접 경험하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정선우는 흘끔 자신의 손에 있는 시계를 확인한 다음 말했다.

“곧 쇼케이스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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