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랭크 게임 (4)
[처치한 해골의 수 : 311]
“확실히 만만치 않군.”
단천은 처치한 해골의 수를 바라봤다. 단천 자신이 처치할 때만 처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아하니 아군이 처치한 해골의 수는 바로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원래의 라인으로 복귀하는 순간에 해골들의 수가 합산되는 모양이었다.
> 만만치 않으신 것 치고는 너무 많이 죽이셨는데요???
> 만만치 않군(눈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도살하며)
단천의 주변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해골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덤벼드는 해골들을 모조리 처치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군.”
처음 주어져 있던 2분이라는 시간은 이제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아쉬워하던 단천의 눈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골들을 충분히 제거했습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레벨 부스터 : 레벨에 필요한 경험치를 대폭 줄여줍니다.]
[죽음과 부패 : 무기에 ‘부패 : 상대의 치유효과를 대폭 감소시킴’효과를 부여합니다.]
[추가 시간 : 해골 폐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5분 증가시킵니다.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오오.”
> ? 해골을 얼마나 죽였으면 벌써 해골 처치 보상이 뜨냐?
> 300마리는 죽여야 뜨는 메시지 아니냐
> 300마리 벌써 죽임
> 아니 그니까 어케 죽였냐고
> 검으로 죽이던데?
> 그 말이 아니잖아 ㅅㅂ 너 다 알면서 이러는 거지
세 가지 선택지. 처음 두 가지 선택지는 명백하게 자신과 팀에 이득이 되는 선택지이다.
반면 마지막 선택지는 중립형 선택지. 동군뿐 아니라 서군에도 도움이 되는 선택지다.
하지만, 단천은 일체의 고민도 없이 마지막 선택지를 골랐다.
[추가 시간이 주어집니다!]
> 이거 맞냐
> 맞지 해골 모으는 속도만 봐도 추가 시간 고르면 한방에 게임 끝날수도 있음
> ㅇㅈ;
> 여기서 추가시간 안 고를 빡대가리들은 심해 예약자들임 ㅋㅋㅋ
> 근데 더 죽일 해골이 없는데?
> 아
> 진짜네
> 죄다 바보들밖에 없냐
> 갈!!! 자고로 무武에는 잡스러운 계산이 필요없는 것이거늘!!!
> 무가 있는 건 천마님이지 너네가 아닌데요?
채팅창의 말대로다. 실제로 단천의 주변에는 더 이상 해골이 없다. 하지만···.
“이 구역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지.”
해골로 가득했던 구역을 지나가자, 거무튀튀한 아우라(aura)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아우라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해골마와. 해골마 위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한 명의 기사.
[망령기사]
[보스 오브젝트]
“보아하니. 시간을 늘린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던 모양이로군.”
상단전은 눈 앞의 망령기사가 바로 이 게임의 ‘기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근데 망령기사를 지금 레벨에 잡을 수 있냐?
> 몰?루
> 그래도 해골들 잡으면서 폭렙업을 하기는 했을 건데
> 초반에는 그만큼 능력치도 낮으니까 잡을 수 있을지도?
해골 폐광을 플레이해본 적 있는 플레이어들이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망령기사는 팀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여서 잡는 보스 오브젝트다.
그런 보스 오브젝트를 혼자서 잡는다? 원래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그래도 야수도 박정이면 꽤 기본 스텟은 빵빵한 편이라 상대해볼만할지도?
> 거기에 컨트롤하는 사람 누구?
> ‘BJ천마’
> 쌉가능
하지만 단천이 플레이하고 있는 야수도 박정은 스킬 구성이 단촐한 대신 기본 능력치가 매우 우월한 상태. 거기에 앞 구역에서의 해골들을 모조리 잡으며 얻은 버프들의 지속 시간도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물론. 단천은 그런 것이 있건 없건 망령기사와 싸웠을 테지만.
단천은 말 위에 앉아 있는 기사를 바라봤다. 풍겨져 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말 위에 있는 싸울만한 상대를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군.’
금의위의 고수들 중에서는 말과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고수들이 꽤 됐었다.
‘금의위. 꽤 흥미로운 상대들이었지.’
─ 지존! 제바아아알 금의위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관무는 불가침하는 관계입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빕니다!
─ 황제와 지존 중에 누가 위에 있냐니요! 지존이 위에 있으시지오! 하지만! 관을 건드리면 그 분노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아아아! 제발! 제발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오오!
서윤학의 목숨을 건 만류 탓에 단천은 금의위와 정면대결을 하는 일은 아쉽게도 벌어지지 않았다.
서윤학이 내건 협박은 꽤 먹혀들었다. 단천이 금의위를 먼저 건드린다면 단천과 대련을 해 주지 않겠다는 협박이었으니까.
천하제이인과 대련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단천 입장에서는 크나큰 손실.
단천은 금의위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 수 없는 몸이 되고 만 것이다.
단천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금빛 바탕에 붉은 색으로 글자를 적어넣은 깃발을 들고 금의위 앞을 걸어다니는 것 뿐.
─ 지존. 이 깃발은 뭡니까? 특별 제작한 깃발이라고요?
─ 그보다 지금 여기 적힌 글자! 황제의 이름에 쓰이는 글자들이지 않습니까! 피휘避諱를 하셔야지요!
─ 싸움을 못 걸면 싸움을 걸어오게 만들면 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지금 이거 들고 황군 앞을 지나가실 생각이신 겁니까!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아아아아악! 팔 비틀어도 안 되는 건 안 돼! 안 된다고오오오!
결국 서윤학이 자신의 사비를 들여 금의위의 고수들이 단천과 싸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줬다. 덕분에 단천은 질릴 정도로 황군의 금의위와 싸울 수 있었다.
금의위에게 돈을 너무 부어넣은 덕분에 서윤학이 한동안 죽만 먹고 사는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결국 관무불가침은 지켜졌으니 해피 엔딩인 셈이다. 금의위는 돈을 받아서 좋고, 단천은 하고 싶던 대련을 해 봐서 좋고.
한 명이 다소간 불행한 것 같지만 1은 반올림을 하면 0. 그러니 불행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단천은 검을 들어 말을 타고 있는 적을 향해 박도를 까딱였다.
까딱.
‘한 수를 양보해 줄 테니 덤벼라.’라는 뜻의 제스쳐다.
망령기사의 퀭한 두 눈이 단천의 행동을 바라봤다. 망령기사의 창이 천천히 움직였다.
까딱.
단천과 완전히 똑같은 도발.
도발의 의미는 단천의 것과 똑같다. ‘한 수를 양보해 주는 건 나다.’라는 움직임
“호오오오오.”
도발을 본 단천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똑같은 놈들 둘이서 만났네
> 헤어진 형제 뭐 그런 거냐 ㅋㅋㅋㅋ
> 자 강 두 천 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 그래서 선공 누가 함?
> 몰?루
> 시간 부족한데 천마님이 해야지 ㅋㅋㅋㅋㅋ
뚜벅. 뚜벅.
단천의 발이 망령기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둘 간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수십 장이나 되던 거리가 20보도 채 남지 않았다.
뚜벅. 뚜벅.
창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단천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뚜벅. 뚜벅.
이번에는 단천이 쥔 박도의 사거리 안으로, 망령기사가 들어왔다.
망령기사의 창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단천의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뚜벅. 뚜벅.
이내. 단천의 몸은 망령기사가 타고 있는 안장 옆에까지 도달했다.
둘 간의 거리는 이제 제로.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수비도 시작되지 않았다.
먼저 검을 움직이는 자가 지는 승부.
자존심을 건 승부였기 때문이다.
> 뭐하냐 ㅋㅋㅋㅋ
> 치킨레이스냐 무슨ㅋㅋㅋㅋ
> 진짜 자존심 싸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 옹졸해지는 거 아니고?
> 자존심 그거 아무것도 아니잖아 ㅋㅋㅋㅋ
>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하지!!!
> 제발 지금 상황에 멋진 말 하지 말아 주세요······
보통 이 정도 거리까지 왔으면 망령기사가 움직일 법도 한데. 망령기사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공격을 참아내고 있었다.
반면 단천은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롭기 그지없는 상태.
“본래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네놈이 공격하는 것을 기다려 주겠지만. 본좌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고오오오!
단천의 몸에서 수라나찰이라도 빙의한 것 같은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움찔!
콰아아악!
망령기사의 창이 BJ천마의 투기에 반응해 움직였다. 아차하는 것 같은 흔들림이 망령기사의 창에서 느껴졌다.
“먼저 공격을 시작했군.”
수없이 전투로 다져진 몸은, 제로의 거리에서 피어오른 투기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승부는 네놈이 진 거다.”
BJ천마의 입에는 승자의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초전의 승부도 완벽히 이겼으니. 남은 것은 도살뿐이었다.
***
[시간이 완료되었습니다!]
[폐광에서 귀환합니다!]
[처치한 해골 수를 정산하고 있습니다!]
“후우···.”
폐광에서 귀환한 유혹의병뚜껑의 표정은 암울한 상태였다. 폐광에서 벌어진 소규모 교전에서 대패를 하면서 서군에서 대량의 해골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어진 추가 시간까지.
“몇 마리 잡으셨어요?”
“대충 아홉 마리 정도.”
“나는 여덟 마리.”
“죄송합니다. 다섯 마리밖에 못 잡았어요.”
“망했네.”
“한타 망했으니 어쩔 수 없죠.”
“아니 거기서 그랩이 왜 빗나가. 그랩 빗나가서 졌잖아.”
“상대방에 에어본 못 넣은 스킬샷 잘못이지 이게 내 잘못이냐?”
“별 병신 같은 게···.”
“뭐. 병신? 말 다했냐?”
팀 내부에서 분열의 조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모래알 같은 팀워크와 욕설 하기 직전의 팀원들. 당장이라도 분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팀.
거기에 정신병자 탑솔러까지. 지극히 평소대로의 AOS다.
이럴 때는 대화 주제를 바꾸는 게 필수다. 유혹의 병뚜껑은 당장의 오브젝트에 팀원들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초반이라 적도 그렇게까지 많은 해골을 처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
그러니 열심히 하면 아직 승산이 있다!
“곧 양쪽에서 거대 해골이 나옵니다. 첫 거대 해골은 수비하는 쪽으로 가죠. 탑쪽으로 이동해서···.”
[처치 해골이 모여들어 거대 해골을 만듭니다!]
콰과과과! 지하에 있던 광산에서 조각난 뼈들이 한 곳을 향해 모여들었다. 「해골 폐광」의 핵심 오브젝트인 거대 해골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각 팀의 거대 해골은 팀이 폐광에서 처치한 해골의 수에 따라 그 크기와 전투력이 달라진다.
대충 적편인 서군의 거대 해골의 전투력은 70해골에서 80해골 정도. 그리고 동군 해골의 전투력은 20에 탑신병자가 처치한 10여구 남짓한 해골의 총합. 그러니까 대충 30해골 정도···.
“···이어야 하는데.”
콰과과과과과!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파란 해골들의 행렬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트럭만하던 크기의 해골의 크기는 집채만한 크기를 넘어서 거대한 빌라만해져 있었다.
심지어 해골은 지금도 그 크기를 계속 불려나가고 있다.
“···저거. 크기 이거 맞아?”
“뭔데 저거.”
“탑솔러 혼자 살았었잖아. 걔가 해골 잡은 거 덕분 아니야?”
“아니. 말이 안 되잖아. 게임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지가 잡아 봐야 얼마나 잡았겠어?”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아군 거대 해골 전투력 : 431]
“···431···?”
“뭔데 저게?”
“버근가.”
모여 있던 동군의 네 명의 눈이 끝도 없이 커다란 거대 해골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 화답하듯 거대 해골의 입이 열렸다.
그워어어어어어어!!!
동네 뒷산과도 비견이 가능한 크기의 거대 해골이 포효를 내지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