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훈련 (2)
고수 간의 싸움은 첫 번째 수가 매우 중요하다.
AOS또한 마찬가지다. AOS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노우볼링. 집채만한 눈더미도 손톱만한 눈덩이에서 시작하는 법.
그러니 AOS에서 게임은 라인전에서 반이 넘게 결정난다는 것이 정설이며.
“또한 라인전은 레벨 1에서의 싸움에서 절반이 넘게 결정나는 법. 즉 라인전이 바로 게임의 승패의 구할 구푼을 넘게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건 너무 심한 비약 아닐까?”
“실제로 본좌는 라인전을 이긴 모든 판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냥 안 진 것 뿐이잖아.’
> 모든 게임 라인전 개쳐발랐으니까 맞는 말임
> 보다보면 틀린 말을 맞게 하는데 비상한 재주가 있음
> BJ천마의 말은 현실이 된다(공포)
모두의 입에서 반론이 터져나올뻔 했지만 말만은 틀린 것이 없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프로들도 라인전, 그리고 초반의 라인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수없이 지적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너희들의 승리 플랜은 명확하다. 라인전에서 상대를 확실하게 압살하는 것. 라인전에서 10킬, 20킬을 따 버리면 상대가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이길 방책이 없지.”
“애초에 그게 가능하면 우리가 프로 하고 있지. 오히려 팀워크를 연습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 미친 듯한 확신
> 아니 근데 프로 상대로 라인전 이기는 게 훨씬 어려워 보이는데;
> 그냥 라인전 좀 포기하고 팀플에 힘 쏟는게 낫지 않음?
채팅에서 나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단천의 표정은 단호했다.
합격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도 게임에서 프로 게이머와 일반 솔로 게이머간의 격차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바로 팀의 유기적인 플레이다.
아마추어에서 난다긴다하는 플레이어들이 프로 데뷔를 하고 상당 기간 헤메는 것도 바로 이 ‘팀플레이’를 제대로 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괜히 솔랭과 팀게임이 아예 다른 게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팀플레이는 1달간의 합숙으로 만들어진 최소한만이면 족하다.”
“···그게 최소한의 팀워크야?”
“그렇다.”
“우리 1달간 팀합 엄청 맞췄는데? 이 정도면 급조된 프로팀만큼의 팀워크는 만들어질 것 같다고 봐.”
“다시 물어보지. 팀워크의 머리가 누구라고?”
““““나!””””
> 팀합 전혀 안 맞잖아 ㅋㅋㅋㅋㅋㅋ
> 오히려 잘 맞는 거 아니냐?
> 저사람들 1달 팀게임 하는 내내 싸웠음 ㅋㅋㅋㅋ
> AOS특성상 싸우는게 당연하긴 함
다시 등장한 4두 키메라의 대답. 그제서야 뻘쭘한지 네 명이 입을 다물었다.
미묘한 침묵이 지나간 후, 토끼가면이 손을 들었다.
“···사부 말대로 팀워크가 단기간에 못 메워진다 쳐. 그러면 라인전이 중요할지도 몰라. 근데 며칠 연습하는 걸로 라인전을 잘할 수 있을까?”
“힘들다.”
“···당연히 된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본좌의 재능 정도라면 여유롭게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자들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도 재능 있거든?”
“반딧불 중에서 밝게 타는 반딧불이라고 해서 태양과는 비교할 수는 없는 법.”
“······.”
> ㅋㅋㅋㅋㅋㅋㅋ
> 와 토끼가면도 자뻑 좀 하는데 상대가 안 되네
> ㅇㅈ ㅋㅋㅋㅋㅋ
> 꼬우면 가면 벗고 증명하던가 ㅋㅋㅋㅋ
토끼가면이 BJ천마의 당당한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패닉에 잠시 빠져버린 동안 제로콜이 입을 열었다.
“근데. 그러면 틀린 거 아니에요? 단기간에 라인전을 이길 수도 없다, 팀워크도 올릴 수 없다. 그러면 못 이기는 거 아닌가?”
“누가 못 이긴다고 했지?”
“···천마 형이 방금 그랬잖아요. 닷새 해서는 라인전 못 이긴다고.”
“못 이긴다고는 안 했다. 더 잘 할 수가 없다고 했지.”
“둘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요.”
단천은 제로콜을 바라봤다.
“더 잘할 수 없다고 했지 못 이긴다고는 하지 않았다.”
“더 잘해야 이길 수 있는 거 아닌가?”
“전혀 다르다.”
원래라면 여기서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번 대회에서 철저하게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늘어놨겠지만.
이곳은 중원이 아니다.
[시청자 수 : 289,917]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서 핵심을 이야기한다면 단천의 말이 새어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상황.
누군가 그랬던가. 말로 할 수 없다면 침묵하라고.
“지금부터 라인전 특훈을 시작하겠다.”
물론 애초부터 말로 가르쳐주는 것은 뼈에 새겨지지 않는 법. 처음부터 몸으로 가르쳐줄 생각이기는 했지만.
***
[레벨 1 고정]
“···아무리 그래도 레벨 1 고정은 너무 낮지 않아?”
보통의 라인전 초반이라고 한다면 궁극기를 습득하는 6레벨 전까지를 칭한다.
그런데 지금 BJ천마가 해 놓은 설정은 레벨이 5도, 4도 아닌 1이다.
“애초에 여기에서 레벨 1을 넘어간 사람도 없다는 것을 기억은 하고 말을 했으면 좋겠군.”
“아니 그건 풀창고 오빠가 제대로 안 알려 줘서 그런 거고.”
“적의 정보를 알아야만 대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 실력이 아닌 것이지.”
불만을 터트려 봤자 BJ천마가 레벨 고정을 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냥 하자.”
가장 먼저 납득한 것은 풀창고였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BJ천마다. 그리고 풀창고는 BJ천마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뭐. 어쩔 수 없네.”
네 명 중 그나마 가장 리더에 가까운 풀창고가 나서자 세 명도 뒤따라 합류 의사를 밝혔다.
“훈련 방식은 단순하다. 1:1 라인전을 하고, 패배하면 바로 줄 가장 뒤로 간다. 그리고 본좌에게 타게팅이 아닌 일격을 맞히는 순간 바로 훈련 종료다.”
“···끝?”
“끝이다.”
“뭐 더 없어?”
“없다.”
“진짜 한 번 맞히기만 하면 훈련 종료야? 훈련 종료 후에 뭐 팔굽혀펴기 3천 개라거나, 그런 추가 지옥행같은 게 있는 거 아니고?”
“본좌를 대체 뭘로 보는 거지?”
“···악몽들의 악몽?”
“마신?”
“고통의 현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단천의 눈이 살짝 좁혀졌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말하는 뽄새까지 혈귀단과 점점 비슷해져가고 있다.
“···아무튼. 본좌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한 번 스킬을 맞히면 그대로 훈련을 종료해줄 테니, 옆에서 음료수를 빨면서 다른 인원이 훈련받는 것을 구경하던지, 잡담을 하던지 하면 된다.”
> 너무 쉬운거 아님?
> ㅋㅋㅋ 이게 쉽대 ㅋㅋㅋㅋㅋ
> BJ천마 방송 안 본 유입들 많네
채팅창의 의견은 미세하게 갈렸다. 지금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시청자들중 많은 수는 BJ천마의 방송을 오래 보지 않았던 나머지 4명의 시청자거나, 외국에서 BJ천마의 방송을 이제 처음 보기 시작한 사람들.
일종의 ‘유입’인 것이다.
[TeamButton 님이 $ 10 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 so much 쉬운 것 아닙니까? 5 min이면 미션 종료될 것이다.]
> 역시 유입들이네 ㅋㅋㅋㅋ
> 코쟁이 유입들아 잘 봐라
> ㄹㅇ ㅋㅋㅋㅋㅋㅋ
처음으로 들어온 달러 후원.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다수의 유입이 지금 방송에는 혼재하는 상황이다. 말로 한다고 해서 이해하지는 않을 터.
이 또한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 베스트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미니언이 생성됩니다!]
가장 먼저 라인에 선 것은 풀창고였다. 풀창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이전번처럼 방심해서 창을 쏘는 일이 없을 수 있도록.”
“그건 방심 아니거든?”
방심이라니! 창을 타고 인간이 날아오는 것을 예측못한 것이 어떻게 방심이라는 말인가?
BJ천마의 말대로면 바닥에 싱크 홀이 생기는 걸 예측 못 하는 것도 방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말 해봤자지만.’
이 말을 입 밖에 내뱉는다고 해도 BJ천마는 태연하게 ‘그건 당연히 방심 아닌가?’같은 말같잖은 소리를 할 게 뻔했다.
말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처럼 생기기만 했을 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는 법.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철의 대화뿐이다.
풀창고는 더 말싸움을 하는 대신 창을 움켜쥐었다.
“언제 시작하면 돼?”
“언제든지.”
쉬익!
말이 끝나자마자 풀창고의 창이 BJ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BJ천마의 발걸음이 휘청거리며 풀창고를 향해 움직였다.
기묘막측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짭팔선보에 둘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거리에 기겁한 풀창고가 창을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쉬쉬쉬쉭!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에 비해서는 실로 괄목상대할 정도로 늘어난 실력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상대가 나빴다.
BJ천마는 수십 개의 창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빈 허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뚫어낸 것이다.
푸욱!
[BJ천마가 풀창고를 처치했습니다!]
“다음.”
[TeamButton 님이 $ 100 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OMG, WTF!]
> 저것, 무엇입니까?
> 이 방송! Bug 사용하는 방송이다!
> 와 ㅅㅂ 뭐냐 방금
> 그냥 차원이 다른데?
> 엌ㅋㅋㅋㅋ
> 뭘 놀래? 스킬 다 피하는거 처음 보냐?
> 사실 우리도 이 방 오기 전엔 못 봤었어···
BJ천마의 ‘진짜’움직임을 이제야 본 시청자들에게서 반응이 터져나왔다.
[유입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분 교육방송도 하나요??? 언제 하나요???]
> 없어 그런거
> 못 배우니까 그냥 관상이나 해라
> BJ천마 따라하다가 실버5 쳐박혔다··· 질문 안받는다···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BJ천마님 퍼포먼스가 한층 더 좋아졌네요. 아마 테크니컬 하이엔드 VR캡슐인 테크니컬 지니어스를 쓴 덕분이겠죠!]
> 바이럴 ㅁㅊㄷ
> TG쓰면 나도 저런 플레이 할 수 있음?
> 속지마 사용자가 BJ천마임
> 이거맞음 나도 TG에서 비싸게 샀는데 티어 얼마 못 올림 ㅠㅠ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미션무룩···.]
“···와. 진짜. 창고 형은 이번에도 5초컷 당하네.”
“이런이런. 풀창고. 당해버린 건가요···.”
“후후···놈은 우리 사천왕 중 최약체였지···.”
“하지만 과연 우리도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을까?”
> 죽이 착착 맞네 ㅋㅋㅋㅋㅋㅋ
> 죄다 눈 반쯤 풀린 거 봐 ㅋㅋㅋㅋㅋ
BJ천마의 움직임에 벽을 느낀 제로콜들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의 난이도에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다.
‘처음 스킬 한 번만 맞히면 집에 갈 수 있다기에 기대했는데.’
하다못해 레벨이라도 있는 상황이라면 라인을 끌어안고 레벨을 올려서 뭐라도 해 보겠는데. 1레벨끼리의 맞싸움이면 그런 요행수도 바랄 수가 없다.
즉. 저 인간은 그냥 처음부터 집에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푹!
“다음.”
푹!
“다음.”
푸우욱!
“다음.”
악랄한 죄를 지은 자들이 영원히 칼에 베이며 고통받는 도산지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푸욱!
“다음!”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도산지옥과 이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들은 별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도 이곳에 끌려와 있다는 점이었지만.
또르르.
자그마한 이슬 한 방울이 풀창고의 볼을 타고.
인세에 강림한 도산지옥에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