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화 (1/1,303)

1화 A.I. (1)

“1년 차 선생님들, 차례차례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네, 거기. 그쪽 문으로. 다른 데 절대 손대지 마시고.”

「태화대학교 병원」 교육수련부장 양원준이 커다란 연구실을 가리켰다.

기초의학 쪽 해부학 교실의 교수이기도 한 양원준은 상당히 뿌듯해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건 처음 봤을 거다.’

다른 의대 부속 연구실과는 달리 약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방이었다.

대신 윙윙거리는 기계 소음만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와……. 이게…….”

“어마어마하구나.”

양원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태화대학교 병원 내과 1년 차들은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을 보며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맨 앞에 서 있던 이수혁 또한 다르지 않았다.

“와…….”

아니, 수혁은 남들보다도 더 입을 쩍 벌린 채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바루다구나.’

그는 거대한 스크린 그리고 그 뒤에 놓인 차마 크기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하드웨어 시설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태화대학교 의과대학에서 4등이라는 매우 준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가 내과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한 기기였다.

‘부디…… 정형외과도 재활의학과도…… 이비인후과도 마다한 보람이 있길 바란다…….’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수혁이 과를 정할 때 가장 중요시했던 건 그 과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이 아니라 그 과의 장래였다.

그런 의미에서 내과를 택한 건 일종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그리 잘 버는 과는 아니었으니까.

“와아.”

“대박.”

수혁이 잠시 감상에 빠진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탄성이 계속 들려왔다.

양원준은 이러한 반응이 아주 익숙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잠시 기다렸다.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바루다는 일반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까.

그저 성과에 대해서만 간간이 노출되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반응을 끌어냈는데, 이렇게 직접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이 정도 감탄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흠.”

그는 1년 차들의 작은 소란이 잠잠해진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이 우리 태화대학교 병원 교수님들과 「태화 전자」에서 공동으로 개발 중인, 진단 목적 A.I. 일명 ‘바루다’입니다.”

바루다.

‘고치다’의 순우리말로 이름 붙여진 A.I.는 현존하는 모든 진단 목적 A.I. 중 가장 큰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이미 개발 연한이 10년에 다가서고 있는 미국의 왓슨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긴 했지만.

후발주자이니만큼 애초에 들어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달랐다.

실제 왓슨은 여러 암초에 걸려 거의 프로젝트 폐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바루다가 앞으로 개발될 진단 목적 A.I. 중 제일 큰 기대를 받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의협의 우려를 한몸에 받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수혁은 스크린의 위용 못지않게 거대한 본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바루다는 의사가 자신이 진찰하고 문진한 바를 제대로 입력하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가장 알맞은 진단명을 찾아내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기기였다.

의학이라는 학문이 워낙 방대한 데다가, 그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한 까닭에 아직 상용화는 먼 기기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몇 가지 변수만 조정해 주면 그 진단의 정확도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보시죠. 이 데이터를 입력하면…….”

양원준 교육수련부장은 내과 교실에서 만든 자료를 바루다 기기에 입력해 넣었다.

환자의 성별, 나이, 증상, 그 증상이 발생한 시기, 진찰한 소견, 혈액 검사 등등.

원내에서 시행한 거의 모든 검사 결과가 들어간다고 보면 되었다.

위잉.

입력이 완료되자마자 바루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더니, 곧 출력값을 내놓았다.

[박상기 환자]

[1. Pneumonia d/t pneumococcus, 89%]

[2. TB, 8%]

[3. Other viral pneumonia, 3%]

1년 차들은 겨우겨우 알아볼 만한, 그런 출력값이었다.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덧붙인 사람은 양원준 교육수련부장이 아니라, 연구원이었다.

내내 뿌듯해하고 있는 양원준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바루다가 내린 진단명은 뉴모코쿠스에 의한 폐렴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호흡기내과 교수님과 영상의학과 교수님이 같이 내린 진단명은 아쉽게도 결핵이었습니다.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루다가 연산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입력되는 수치의 오류에 있습니다.”

그의 말은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바루다에게는 아직 사람에게 있는 눈, 코, 귀 그리고 손이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하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환자로부터 직접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된다는 것이었다.

제한된 정보는 출력값의 오류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왓슨도 표류 중이었고.

이러한 사실은 당연히 후발주자로 출발한 태화 연구진들 또한 절실히 아는 상황이었으나,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인간의 시각, 후각, 청각 또는 촉각과 같은 감각을 대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의협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바루다의 상용화가 얼마 남지 않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긴 하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보고 있진 못합니다. 적어도 여러분들께서 전문의를 따고 필드에 나갈 때까지는 이 상황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너무 바루다를 경계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연구원의 말에 1년 차들이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주 밝은 표정을 지은 사람은 없었다.

바루다가 상용되는 먼 미래보다는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1년 차 업무에 투입될 새내기 전공의들의 머릿속에는 바루다니 뭐니 하는 것보다는 내일부터 시작될 지옥이 가득 차 있었다.

‘100일 당직…….’

그건 여전히 바루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과란 어찌 보면 죽음과 가장 맞닿아 있는 과이지 않은가.

그 때문에 어느 정도 기피 과가 되기도 했고.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수련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았다.

사람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데 어찌 설렁설렁할 수 있겠는가.

1년 차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럼 잠시 구경…… 어?”

연구원은 벌써 몇 해째 계속되고 있는 1년 차들의 같은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루다를 돌아보았다.

끼이이이익!

바루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결코 들리면 안 될 소리가 점점 커지며 확실하게 소음을 내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러지?”

연구원은 소프트웨어 담당이었기 때문에 하드웨어적인 문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게 대단히 위험한 소리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채진 못했다. 단지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앗 뜨거워!”

하지만 무심결에 손을 댄 바루다의 온도가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바루다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폭발 직전이라는 점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이거!’

연구원은 순간 하드웨어 담당자를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지금 급한 건 그런 게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안엔 자기 혼자만 들어와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수십 명의 예비 1년 차들도 함께였다.

뭐가 되었든 대피가 우선이었다.

“모, 모두 밖으로 나가십시오! 터집니다!”

해서 그렇게 외친 후, 우왕좌왕하는 레지던트들을 밀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뭔 소리야?”

“뭐가 터져?”

처음엔 모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야, 야! 저거!”

“시발 뛰어!”

하지만 그중 몇몇은 바루다의 이상 소견을 눈치채고 우르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맨 앞에 서 있던 수혁이 넘어졌으나, 그 누구도 그를 일으켜 세워 주진 않았다.

삐이이이익!

연구원의 외침과는 별개로 바루다의 몸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폭발하기 직전으로 보였고, 모두 앞다투어 밖으로 달려나가기 바빴다.

“문! 문 닫아!”

누구보다 먼저 밖으로 나온 연구원이 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황망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 나온 양원준 교육수련부장은 황급히 문을 닫으려다가, 아직 안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어!”

수혁은 이제 막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입구 쪽으로 달리려 하고 있었다.

“기, 기다려요!”

하지만 바루다는 이미 폭발하고 있었고, 연구원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문을 덜컥 닫아 버렸다.

아주 잠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느, 늦었습니다! 저거 휘말리면…… 우리도 다칠 수 있어요!”

“그래도!”

원준은 문을 살짝 열어 당기긴 했지만, 솔직히 거의 시늉에 가까운 수준에 그쳐 있었다.

당연하게도 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이런 개새끼들아!”

수혁은 그 문 앞에 도달한 채 욕설을 내뱉다가, 정신을 잃었다.

쾅!

바루다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기기 과열로 인한 폭발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 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켈록켈록.”

대략 10분 정도가 지난 후, 수혁과 바루다가 함께 갇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원내에 대기 중이던 화재 담당 직원들이 달려온 후였다.

그들은 소화기를 뿌리며 안으로 들어갔고, 곧 문 바로 앞에서 나뒹굴고 있는 수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 머리를 다쳤어!”

“다리……. 다리도…….”

직원은 우측 머리와 좌측 정강이에서 피를 철철 흘려 대고 있는 수혁을 이송용 침대에 실어 날랐다.

“야! 조심해!”

다리에 박힌 쇳조각이 침대에 부딪히면서 쩔그럭 소리를 냈다.

“빨리! 빨리 신경외과, 내과, 정형외과 다 콜해!”

그 모습을 본 양원준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1년 차들은 동기이자, 친구인 수혁을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댔다.

그사이 침대는 요란한 소음을 뒤로하고 병원 본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드르륵.

의식이 혼미한 상태의 수혁 귀에는 침대 굴러가는 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A.I. 바루다, 재부팅합니다.]

그 와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것만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생생해서 다른 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수술방! 일단 머리부터! 뭐가 박혔어!”

덕분에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는 수혁의 귀에 닿지 않았다.

[데이터베이스 손실, 데이터를 입력해 주십시오]

다만 알 수 없는 기계음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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