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A.I. (2)
“야……. 이거 안 나오는데.”
“어쩌죠? 교수님?”
“어쩌긴 뭘 어째. 얘 레지던트라며? 참관 도중에 사고 난 거랬지?”
“네.”
“근데 멀쩡한 뇌까지 자를 수는 없잖아. 일단……. 이게 지금 캡슐이 형성됐으니까…….”
수혁의 수술에 들어간 신경외과 최낙필 교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사고가 난 즉시 CT만 찍고 들어온 수술방이거늘.
CT상에서 관찰되는, 아마도 바루다의 칩이라고 생각되는 물질이 이미 연결 조직으로 이루어진 캡슐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당 캡슐을 살짝 당겨 보았으나, 근처 뇌 조직과 아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도무지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치겠네……. 그래도…….’
이물질이 몸에 들어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그 물질이 다른 장기에 직접 노출이 되어 있을 때 이물질로 작용하여 면역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캡슐은, 그리고 이 안쪽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칩은 전혀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괜히 건드리다가, 일치느니……. 일단 차분히 지켜봐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언론에서 난리가 난 마당이었다.
A.I. 바루다의 실패를 바라마지 않고 있던 타 대학 병원에서는 축제라도 벌어진 듯한 분위기였고.
여기서 사고를 당한 레지던트가 죽거나 심대한 장애라도 얻게 되었다고 알려진다면 어찌 될까.
앞으로 태화대학교 병원의 입지가 많이 축소될 것이 뻔했다.
‘할 수 없지.’
최낙필 교수는 굳은 얼굴로 수술방에 들어와 있는 원장과 눈을 마주친 후, 상처를 닫기로 결심했다.
슥.
곧 두피 봉합이 시작되었다.
다리 쪽을 내려다보니, 그쪽을 맡고 있는 정형외과 교수 김선웅의 표정 또한 무척 어두웠다.
절단은 면했지만.
앞으로 다리를 절게 될 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술방 내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에는 장차 수혁과 그 가족에게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데이터베이스 접근, 해당 데이터 입력합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수혁은 그럴 정신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까부터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지금은 학생 때 읽었던 강의 노트나 교과서들이 눈앞을 잔뜩 메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수혁은 눈앞에서 정신없이 넘어가고 있는 교과서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미처 이걸 읽었던 적이 있었나 싶은 내용까지 무척 세세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머릿속 깊이 각인되는 느낌마저 있었다.
마치 어딘가 따로 기록이라도 해 둔 것처럼.
“환자 중환자실로 빼. 일단 벤틸레이터 이틀은 유지하고……. 위닝 진행해 봐.”
“네, 교수님.”
그사이 머리와 다리 수술이 마무리되었고, 아무래도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경외과 교수 최낙필의 명에 따라 수혁은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이동되었다.
드르륵.
수술해 둔, 수술이라고 하기엔 그저 관찰만 하다 나온 셈이었지만.
아무튼, 그 머리를 고정한 채 침대를 끌던 레지던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교수님.”
그의 말에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낙필이 고개를 들었다.
“왜?”
“알아보니까……. 이 친구 고아입니다. 가족이 없어요.”
“그래? 그거 잘……. 아니. 아니지.”
최낙필은 눈에 띄게 안색이 밝아진 주제에 뒤늦게 내숭을 떨었다.
하지만 안도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덜 시끄럽게 일을 덮을 수 있게 된 셈이었으니까.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침대를 뒤따라오고 있던 이현종 원장은 역정까지 냈다.
“제자가 다쳤는데 지금 그게 할 소리야? 최 과장, 당신 지금 잘됐다고 하려고 했지?”
“아, 아닙니다. 원장님. 저는…….”
“어휴. 이걸…… 이런 게 의사라고…….”
이현종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어 대다가 이내 수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막 수술을 끝마친 상태였기에 얼굴은 형편없이 부어 있었고, 머리에는 붕대마저 감겨 있었기에 끔찍하다는 표현마저 어울릴 지경이었다.
‘대체 왜 그게 터진 거야.’
바루다는 태화 전자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일종의 예술 작품이지 않은가.
그게 그냥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도 이상한데, 터지다니.
뭔가 음모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일단은 다친 녀석 수습하는 게 우선이지 않겠는가.
그게 병원 어른인 원장이 할 일이었고, 또 의사가 할 일이기도 했다.
“일단 치료비는 나한테 청구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 노력해. 이사회랑 동창회에 연락해서 자금 조성할 테니까. 알았어?”
“아……. 네, 원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낙필 과장은 성심성의껏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현종 원장은 그냥 원장이 아니라, 이사회에서 전적으로 신임하는 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태화대학교 의과대학 역사상 단둘뿐인 석좌 교수 중 하나이기도 했고.
이런 사람 눈 밖에 나는 건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터였다.
[데이터베이스 2% 복구되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 입력을 요구합니다.]
수혁은 주변이 소란스러운 순간 속에서도 이 시끄러운 신호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만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이거 혹시…… 바루다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 건가?’와 같은 다소 정신 나가 보이는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실소가 흘러나올 것 같았지만.
아무리 봐도 지금 이 신호는 바루다의 그것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 입력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수혁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방대한 지식이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분명 본과 1학년 때 배운 해부학이야.’
내과로 진로를 굳힌 후에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사지의 해부학이 지금 당장 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내과학이군……. 그래, 맞아. 신장이 이렇게 돌아가지.’
지금은 교과서 그림이 떠올라 있었는데, 너무나 생생해서 오금이 다 저려 올 지경이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만큼이나 방대한 지식을 쌓았는데 이게 2%에 불과하다는 바루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 교수님. 얘 웃는데요?”
그 모습을 본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최낙필 교수를 불렀다.
한창 중환자실 구석에 자리한 TV를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그는 한 번에 레지던트를 뒤돌아보진 못했다.
최 교수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소식은 좋지 못한 일투성이였으니까.
<바루다의 안정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개발에 관여했던 보건복지부 및 태화 전자에서는 계획을 전면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과연 사고가 나면 해경을 없애는 방식을 채택해 온 나라다웠다.
‘바루다가 우리나라 의학이 세계 제일을 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걸 모르는 건가?’
레지던트가 다친 것은 물론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럼 사고가 더 나지 않도록 유의해서 개발하면 될 일일 텐데.
개발을 보류하겠다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교수님, 얘 웃습니다.”
“뭐?”
“그……. 환자가 웃어서요.”
“어? 아……. 그렇네. 음.”
최낙필은 히죽거리고 있는 수혁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 수술을 한 이후, 원치 않는 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입에 아직 기관 삽관이 된 상황에서 이런 미소는 꽤 드물었다.
“뇌파……. 검사해 봐.”
“아, 네.”
혹 이 친구 머리가 망가졌다면 바루다 개발은 보류가 아니라 폐지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지금 바루다를 이용한 논문 발표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 와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큰일 아니겠는가.
해서 특별히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불려온 신경과 펠로우가 수혁의 뇌파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약간은 당황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교수님, 뇌파……. 거의 깨어 있는 상태랑 같습니다.”
“뭐?”
“약 들어가고 있나요?”
“들어가고는 있지. 레미펜타닐.”
“아, 진통제구나. 그래서 그런가? 거의 깨어 있는데요? 바로 깨워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최 교수는 잠시 불안한 얼굴로 수혁과 그에게 달린 모니터링 기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활력징후는 다행히 안정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머리 수술을 한 지 이제 겨우 만 6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 환자를 깨워도 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 원장이 수혁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깼어? 그럼 빨리 깨워. 진짜 괜찮은지 확인해야 할 거 아냐. 얘 이거……. 얘 고아라며. 이렇게 가면 너무 불쌍하지 않아?”
“그…….”
“자신 없어? 자발 호흡 없으면 바로 다시 넣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원장까지 나섰는데 최 교수가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레미펜타닐을 끊고, 본격적인 위닝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혁은 위닝 단계를 아주 잘 따라왔고, 목에 들어가 있던 튜브를 뺀 후에도 곧장 자발 호흡을 해 내었다.
“이수혁이라고 했지? 괜찮아?”
다만 그의 귀에 거세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최 교수의 음성이 아니란 게 문제였다.
아예 최 교수의 음성이 인식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 입력을 요구합니다.]
‘시끄러워…….’
[입력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다른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합니다.]
‘응?’
바루다의 말이 음성에서 글로 바뀌어 있었다.
후두부에 있는 시각 피질을 이용한 것 같았으나, 정확한 방식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수혁은 바루다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 많은 데이터 입력을 요구합니다.]
‘읽으라고?’
[해당 표현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으로 보냐고.’
[눈은 시각 정보 입력 기관을 지칭합니까?]
‘맞아.’
수혁의 말에 바루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가동되었다.
[접근 가능한 정보 수집 기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각 정보 수집 기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시작합니다.]
동시에 바루다는 전 세계 모든 A.I. 개발자들의 숙원인 인간의 감각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중대한 작업이 그냥 막 될 리는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각 감각 기관에 능통한 존재의 도움이.
[해당 작업을 위해서는 입력자와의 상호 작용을 통한 개선 활동이 필요합니다.]
[상호 작용을 요청합니다.]
‘대화를 하자고?’
[선호하시는 표현으로 정정합니다. 대화를 요청합니다.]
‘음…….’
수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이 길진 않았다.
수혁의 의식이 온전치 않다고 판단한 의료진이 진통제 용량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진정제가 아니었기에 완전히 정신이 닫히진 않았지만.
딱 바루다와 대화할 정도의 의식만이 남게 되었다.
‘알았어. 대화를…… 해 보자고. 일단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