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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3화 (3/1,303)

3화 A.I. (3)

“이수혁, 괜찮아? 얘 이거…… 브레인 나간 거 아니지?”

자발 호흡은 있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 벌써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수혁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과 과장 신현태의 눈에는 어두운 먹구름이 잔뜩 낄 수밖에 없었다.

수혁에 대한 걱정과 과장으로서 드는 병원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마음이 편하지…….’

비록 수혁이 다치기 전에는 이름이랑 얼굴도 잘 매치가 안 되긴 했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제자 아니던가.

이렇게 견학 갔다가 다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보니, 역시나 마음이 좋지 못했다.

‘기자들은 또 왜 이렇게 난리야.’

수혁이 쓰러져 있는 동안 이미 바루다에 대한 개발은 전면 중지된 지 오래였다.

그에 더해 각 언론은 책임자를 색출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뭔가 일이 터지면 벌 받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라도 있는 듯했다.

“으음.”

막 쇠고랑 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려는 찰나, 수혁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흔하디흔한 신음이었지만 신현태에게는 느낌이 남달랐다.

수혁이 정신을 잃은 후 이런 적이 처음이었으니까.

“어? 방금 뭐라 한 거 같은데?”

수혁은 눈을 감은 채 입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지난 5일간 바루다와 끊임없이 대화했지만.

막상 ‘진짜’ 입을 열려니 너무 어색했다.

[수혁, 상대는 신현태. 상급자입니다. 대답하길 권장합니다.]

그동안 바루다는 수혁이 그의 새로운 입력자이자, 유일한 입력자라는 것을 인지했다.

딥러닝 하는 A.I.답게 말투도 약간 변해 있었는데, 정작 그렇게 만든 수혁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비몽사몽 간에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눈 탓이었다.

“교수님.”

아무튼,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눈을 뜨자마자 신현태 과장에게 인사부터 했다.

“오, 오!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신 과장은 암울했던 미래가 싹 뒤바뀌는 듯한 기분에 뛸 듯이 기뻐했다.

수혁은 누워 있는 동안 정신까지 나간 건 아니었기에 신현태나 원장 등이 나누었던 대화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바루다가 자료화해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최낙필 그 사람은 고아라서 다행이라고 했었지.’

반면 이현종 원장과 신현태 내과 과장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모금이 여의치 않으면 둘이 사비를 털어서라도 내과 졸국까지는 시켜 주겠다고 하기도 했고.

수혁은 감동의 눈물을 몰래 삼킨 채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네, 교수님. 과장님 아니신가요?”

“그래, 그래. 야…… 얼마나 걱정했다고. 어어, 누워 있어.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

신 과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수혁의 왼쪽 다리를 바라보았다.

워낙 깊숙이 기계 조각이 박히는 바람에 신경 다발마저 끊겨 버렸다.

‘지팡이를 짚어야 할 텐데…….’

발목을 제대로 들 수 없으니 필시 그렇게 될 터였다.

수혁 또한 신 과장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왼쪽 다리를 바라보았다.

[깊은 비골 신경 손상, 영구적인 하지 위약 및 운동 범위 제한 발생이 예상됩니다.]

딱히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바루다가 무척 자세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해 주었다.

‘나도 알거든?’

쏘아붙여 보긴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모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 판단했습니다.]

‘뭐 인마?’

[수혁의 지식은 무척 얕습니다. 공부가 필요합니다.]

바루다와 나눈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니 악의가 있진 않을 거 같은데.

개새끼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무튼, 이미 좌측 다리의 손상은 며칠 전에 알았고 충분히 슬퍼했던 참이었다.

이제 와 새삼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어, 움직이지 말라니까?”

신 과장은 자신의 당부와는 달리 몸을 뒤척이는 수혁을 말렸다.

하지만 수혁은 침대에 걸터앉을 때까지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답답……해서요. 그리고 이건 좀 아프고요.”

신 과장은 그런 수혁에게 화를 내진 못했다.

소변줄이 단단히 틀어박혀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통증보다는 불편감으로 판단됩니다.]

바루다가 트집을 잡긴 했지만.

수혁은 무시하기로 했다.

“아아. 그래. 빼 줄게. 대신 오늘 하루는 잔뇨 남는지 보긴 봐야 해.”

“네. 시린지 주시면 제가 뽑겠습니다.”

“직접?”

“이거…… 좀 그래서요. 인턴들이라고 해도 제 후배들이라…… 과장님께서 해 주시는 것도 좀 이상하고…….”

“아아. 그래, 그래.”

신 과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린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곤 잠시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 으아아.”

수혁은 시린지로 방광에 고정된 풍선에서 물을 제거한 후, 기나긴 소변줄을 잡아 뺐다.

눈물이 절로 주룩주룩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후두둑.

시트에 튄 소변 방울을 보고 있자니 욕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바로 이게 통증입니다.]

거기에 바루다의 시비까지 더해 진짜 빡친다는 게 뭔지 알게 되었지만 애써 참았다.

눈앞에 내과 과장, 즉 자신의 운명을 쥔 신현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욕봤다.”

그는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 내과 의사로서의 연륜이 엿보이는 그런 미소였다.

원할 때면 언제고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과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근무는 일단 동기들한테 나도 원장님도 맡겨 놨으니까 너무 걱정 마.”

“아.”

그제야 수혁은 지금이 3월 6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동기들은 지옥이라 불리는 내과 1년 차 생활에 허덕이고 있을 터였다.

‘개새끼들.’

아무리 상황이 급했어도 그렇지.

어떻게 단 한 명도 수혁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신 과장은 남몰래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수혁을 향해 말을 이었다.

“뭐 필요한 건 없어? 규정상 반입 안 되는 물건도 넌 괜찮아.”

노트북이나 핸드폰 등을 말할 거로 생각하면서였다.

[교과서,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수혁 너무 무식합니다.]

그 말에 바루다가 정말이지 격렬하게 반응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데이터 입력이 필요하다고 해 줘.’

[A.I. 바루다는 딥러닝을 통해 행동 양식을 개선합니다. 입력자 수혁의 취향이 이쪽에 더 맞다고 판단합니다.]

‘아니거든?’

[수혁의 요구에 따라 ‘아는 게 없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정정합니다.]

‘시발.’

[해당 삽화에 맞추어 ‘시발 좆도 모르네.’라는 표현으로 정정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기껏 깨어나 놓고 화병으로 돌아가실 거 같았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날 공부시키려고 안달이 났어?’

해서 이렇게 물어보니 바루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입을 열었다.

[A.I. 바루다는 세계 최고의 진단 목적 A.I.가 되는 것이 존재 이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입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넌 A.I.로 역할을 하긴 어려울 텐데?’

머리에 박힌, 일종의 생체 이식 칩이 되어 버렸는데 무슨 놈의 A.I.란 말인가.

수혁의 의견에 바루다는 또다시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렇다면 유일한 입력자이자, 산출 대리인 이수혁을 세계 최고의 진단 목적 의사로 만드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합니다.]

‘야, 나 내과 의사거든? 내과 의사가 무슨 진단만 해, 치료도 하지.’

[현재 수준에서 가능해 보이진 않지만,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이수혁을 세계 최고의 진단 및 치료 목적 의사로 만드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합니다. 그러니 공부하십시오.]

‘아니……. 나는 딱히 그렇게까지는…….’

세계 최고의 의사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지 않는가.

인생을 쏟아붓는다고 해도 가능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바루다는 수혁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이수혁은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기를 거부합니까?]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힘든 건 좀……. 나도 내 인생이 있다고.’

[그렇다면 입력자 이수혁의 데이터를 통해 이수혁이 되고 싶은 의사의 모습을 산출합니다.]

잠시 로딩으로 생각되는 조용한 시간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수혁의 머릿속에 그의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야, 선배 얘기 들어보니까. 의사 죽었다, 죽었다 해도 아직은 나쁘지 않더라. 빨리 전문의 따고 나가서 인생 즐겨야지.

다음은 술이 좀 더 취한 다음의 수혁이었다.

- 그래! 양주만 먹고, 어? 외제 차도 좀 몰고! 좋잖아!

당시엔 별 부끄러움 없이 한 말이었지만.

바루다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부끄러웠다.

[이게 수혁이 되길 바라는 의사입니까?]

거기에 더해 이런 질문까지 듣고 있다 보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니, 이 정도는 아냐……. 저건 너무 쓰레기 같잖아.’

[해당 삽화를 토대로 이수혁에 대한 호칭을 쓰레기로 정정합니다. 쓰레기.]

‘쓰레기라니! 이 새끼는 못 하는 말이 없네?’

[새끼 대신 바루다라는 명칭으로 불러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와……. 아주 저만 알지. 나도 이수혁이라고 불러!’

[그래서 수혁이 바라는 의사상은 무엇입니까? 쓰레기? 세계 최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세계 최고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좀 이상한 사람 아니겠는가.

‘세계 최고…….’

[그럼 공부하십시오.]

이렇게 또다시 공부하라는 성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 성화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해서 수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신 과장을 향해 대꾸했다.

“교과서요.”

“응?”

당연하게도 신현태 과장은 이게 미쳤나 하는 눈빛으로 수혁을 내려다봤다.

죽다 살아난 주제에 제일 먼저 찾는 게 교과서라니.

제정신이 아니지 않은가.

“교과서랑 논문 가져다 주실 수 있으세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수혁은 진심 같았다.

그래서 더 걱정이 들었다.

“어……. 그래…… 그…… 그래. 내가 알아보마.”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적지 않은 세월을 교수로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기이한 환경에서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놈은 처음이었으니까.

도망치듯 나오는 신 과장을, 중환자실 입구에 있던 원장이 붙잡았다.

“깨어났다며? 상태 어때? 언론에 뿌려도 돼? 애 괜찮으면…… 일단 알리긴 해야지. 이사회에서 압박하는 통에 죽겠어.”

“어…….”

신현태는 잠시 수혁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일단 이거라도 보라고 건네준 포켓북을 휙휙 넘겨 대고 있었다.

저걸 언론에 뿌려?

안 될 일이었다.

“교과서를 가져다 달라고 하던데요.”

“뭐?”

“뭐 필요한 거 없냐니까, 교과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고요.”

“허.”

원장의 반응 또한 신현태 과장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이었다.

“정신과, 정신과 협진 보지.”

“아……. 네.”

“그리고 언론에는 절대 알리지 마.”

“물론이죠.”

“아예 아무도 모르게 해.”

“네. 원장님.”

원장은 그렇게 신신당부를 한 채 중환자실에 있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지금도 포켓북을 실실 웃으며 넘기고 있었다.

‘미쳤구나. 아, 진짜 돌아 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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