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화 (4/1,303)

4화 천재야? (1)

“벌써 주치의 맡고 싶다고?”

내과 과장 신현태는 상당히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수혁을 내려다보았다.

수혁은 일단 깨어나고 나서는 무척 빠른 회복 속도를 보여 온 참이었다.

이미 일반 병동으로 올라온 지도 만 5일이 다 되어 가고 있으니, 슬슬 퇴원을 생각해 볼 만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 검사상 이상은 없습니다.

- 머리에 뭐 박히긴 했는데, 경과 관찰만 하면 될 것 같아.

신경과, 신경외과에서도 위와 같은 의견을 보내 왔었고.

하지만 바로 일터에 투입하기는 아무래도 좀 불안했다.

‘이 미친놈이 그동안 책을 얼마나 본 거야…….’

신현태의 시선이 자연스레 수혁이 누운 침대 바로 옆에 놓인 책더미로 옮겨졌다.

내과학 교과서는 물론 최근 4년간 내과학 교실에서 발간한 증례 집, 논문까지 놓여 있었다.

교과서만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한데 증례집이라니.

그것도 태화 의료원에서 발간한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교과서 수준은 되었다.

그야말로 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온전히 책 읽는 데 투자했다고 봐야 했다.

죽다 살아난 놈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게 정상일까.

원장도 신 과장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 원하는 거 있으면 대강 들어주라고. 저러다 머리에 꽃 달고 나가면 끝장이야, 알지?

같은 내과 출신이자,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한 이현종 원장은 신 과장에게 이렇게 말했더랬다.

신 과장은 그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 후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런 신 과장의 눈빛을 어렵사리 마주 보았다.

[경험이 필요합니다. 수혁은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습니다.]

이제 바루다가 공부만 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것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

[조용히 하면 들어먹질 않으니까요.]

‘아오…….’

수혁은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입을 열었다.

“네, 교수님. 바로 주치의 하고 싶습니다.”

“좀 더 쉬어도 되는데.”

“아닙니다. 저 멀쩡합니다.”

수혁은 그 말을 하면서 바닥에 발을 디딘 채 콩콩 뛰었다.

비록 왼발은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오른발과 지팡이를 이용하면 걷는 데 별 지장은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거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하지만 여기서 들어주지 않으면 이 자식이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어쩌면 병원에 갇혀 있다고 SNS에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안 돼. 그래……. 내가 지켜보면 사고가 나진 않겠지.’

해서 신 과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지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오후 회진 때부터 같이 돌지.”

“아,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아니. 너무 서둘지는 말고. 오후에 보면 되는 거니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래, 이따 보자.”

신현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는 수혁의 병실을 마치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러자 복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원장이 쥐새끼처럼 다가와 물었다.

평소엔 그렇게 멋져 보이더니, 지금은 그저 얄밉기만 했다.

“뭐래? 보상 얘기는 했어? 모금한 거 얘기는 했지? 나 이번에 3천만 원 냈다. 진짜.”

차라리 돈 얘기를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미친 건가 아닌 건가 하는 걱정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신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원장을 돌아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였다.

“아뇨. 주치의 빨리 시켜 달래요.”

“일을……. 하고 싶다고?”

“네.”

“쟤 진짜 미쳤구나. 얘기 안 해 줬어? 3개월까지는 병가 처리해 준다고.”

“그랬는데 저러고 있다니까요. 선배 아직 눈 안 봤죠? 뭔가 진짜 이상해요. 무섭다니까요.”

신현태는 몸서리를 치며 병실을 돌아보았다.

이현종 원장은 신 과장이 이러는 걸 처음 보는 참이라 몸을 더더욱 깊이 숨겼다.

“뭐 해요?”

“미친놈이라며. 나 원장 임기 아직 많이 남았어.”

“그런 말이 나옵니까? 저는 지금 저놈 주치의로 두고 일하게 생겼는데.”

“네가 맡아야지! 다른 교수 줬다가 사고 나면, 네가 책임질래?”

“하아아…….”

신현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털썩 떨어져 나왔다.

“흐아아아…….”

수혁의 입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한숨이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산소 포화도는 정상입니다. 보통 숨도 충분합니다.]

‘우울해서 그래! 우울해서!’

처음 신 과장에게 3개월 병가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기분이 좋았더랬다.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주제에 그런 생각이 든 게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턴을 돌아 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갈 것이었다.

1년 차는 인턴보다도 더 힘든 과정이었으니까.

그걸 3개월 날로 먹어도 된다고 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의사가 환자 보게 된 것이 그렇게 억울합니까?]

물론 바루다의 시각은 전혀 달랐다.

‘그,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그럼 기뻐하십시오.]

‘감정에 명령어 쓰는 거 아냐…….’

[호오. 숙지하겠습니다.]

‘호오는 뭔 뜻이야.’

[제가 모르는 걸 수혁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입니다.]

‘자세하게 늘어놓으니까 더 열 받네.’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시계를 돌아보았다.

‘2시. 3시간 남았네.’

내과 오후 회진은 보통 5시에 있기 마련이었다.

교수 외래가 있는 날이라면 조금 더 늦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수혁이 알기로 신 과장 외래는 금요일이 아니었다.

[뭐 하십니까?]

바루다는 몸을 일으키는 수혁을 향해 물었다.

수혁은 대강 의사 가운을 걸치며 답했다.

‘회진 준비해야지. 일단 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호오.]

‘그 말 제발 그만해 줄래?’

[감정이 너무 격앙되어 있습니다. 지금 의견은 반영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이 새끼는 진짜…….’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데도 이렇게까지 빡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수혁은 아까의 한숨을 이어 나가며 복도를 지나쳐 병동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중간에 어쩐지 높아 보이는 사람 둘이 구석으로 사삭 숨는 것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바루다의 잔소리를 감당하는 것만 해도 버티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따닥.

따닥.

게다가 평생 안 쓰던 지팡이를 짚고 있으려니 이것도 쉽진 않았다.

‘다행히 병원비 전액 감면에……. 단독 기숙사까지 받았으니 망정이지.’

이에 더해 원장이 힘을 썼는지 어쨌는지 동문회에서도 수혁에게 1억 원에 가까운 위로금을 입금해 준 바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천애 고아인 수혁에게는 커다란 도움이었다.

‘흠.’

수혁은 그대로 스테이션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아 신현태 앞으로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12명. 꽤 많네.’

과장인 만큼 배정된 레지던트는 수혁을 제외하고도 둘이나 되었다.

2년 차가 네 명, 1년 차가 여덟 명을 맡고 있었다.

[박기태, 김진철 환자를 추천합니다.]

한참 환자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왜?’

[나머지는 진단이 되어, 치료 진행 중입니다. 연습이 되지 않습니다.]

‘난 치료도 연습해야 하거든?’

[적절한 주제 파악, 인정합니다. 그럼 이유원, 부정선 환자를 추천합니다.]

‘이 사람들은 또 왜.’

[내일 퇴원입니다.]

‘이놈은 중간을 모르네. 몰라, 다 알아는 둬야지. 누굴 맡길지 어떻게 알아.’

수혁은 그렇게 말하며 환자들의 입원 기록 및 경과 기록 그리고 검사 결과를 꼼꼼히 읽어 나갔다.

딱히 외우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바루다가 차곡차곡 데이터를 저장했으니까.

이것 하나만은 바루다가 들어와서 좋은 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나중에 할 수만 있게 되면 반드시 뽑아내리란 다짐이 절로 드는 상황이었다.

만일 신경외과 최낙필 교수가 ‘지금 뽑으면 아마 너도 죽을 거야.’란 말만 하지 않았다면 재수술이라도 감행했을 터였다.

“아, 먼저 와 있었구나.”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신현태 과장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왜인지 떨떠름해 보이는 얼굴이긴 했지만.

“아, 교수님.”

“그래……. 다른 애들은……. 그래, 저기 오네.”

신 과장은 병실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현재 그의 두 주치의를 가리켰다.

“그럼 일단 환자들 돌고, 어떻게 재분배할지 말해 보자고.”

그는 두 주치의가 합류하자마자 제일 가까운 병실로 향하며 말했다.

그의 말에 수혁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후, 뒤를 따랐다.

무턱대고 바로 병실 안으로 돌진하지는 않았다.

해당 병실 안에 있는 환자를 보고 있는 주치의가 먼저 간략히 정리하고 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즉 이런 식이었다.

“박기태 환자분,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열로 어제 응급실 통해 입원했습니다. 검사 결과 CRP 6.1, ESR 24로 크게 상승해 있으며 현재 기침, 가래 등 비특이적 증상 외에는 특별한 증상 보이지 않습니다.”

“독감은 아니야?”

“오전에 나간 검사에서는 음성 나왔습니다.”

“흠.”

아무래도 어려운 환자다 보니 2년 차가 맡고 있었고, 대답이 똑 부러졌다.

“네 임프레션(Impression: 의심되는 진단명)은 뭐야?”

“그…… 아직은 불명열(원인을 알 수 없는 발열)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진단명을 알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신현태는 딱히 실망했다는 기색을 내비치진 않았다.

하루 전에 응급실 통해 입원한 환자의 진단명을 어떻게 바로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교수도 아니고, 그냥 레지던트인데.

해서 그를 나무라는 대신 다른 1년 차 유지상과 이수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이 볼 때는 뭐 같아?”

당연하게도 일말의 기대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였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예상대로 유지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알았어도 이렇게 모르쇠 할 놈이었다.

2년 차가 모른다고 한 걸 감히 자기가 안다고 나설 놈이 아니었으니까.

의사가 아니라 정치인을 해야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더랬다.

“넌?”

신 과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 또한 기다렸다는 듯 모른다고 말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전 압니다. 어?”

[수혁은 모르지만 바루다는 압니다.]

바루다가 끼어들어서 제멋대로 말하게 되지만 않았다면.

당연하게도 신 과장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역시 미쳤구나.’

진짜 수혁이 정답을 알 거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아직 신 과장조차 추정만 하고 있는 진단을 어찌 1년 차가 알겠는가.

그것도 당장 오늘까지 병실에 누워 있던 놈이.

‘그냥 돈 더 모아서 쥐여 주고 내보내야겠어…….’

그래서 미쳐 버린 수혁을 병원에서 내보내야겠다는 자못 비장한 결심을 한 채 수혁을 향해 되물었다.

“뭔데?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 말에 수혁은 물론 답을 바로 할 수 없었다.

그는 개뿔도 아는 게 없었으니까.

‘시, 시발놈아.’

[걱정 마십시오. 제가 하는 말만 따라서 말하면 됩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