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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5화 (5/1,303)

5화 천재야? (2)

“렙토스피라, 웨일즈 증후군입니다.”

수혁은 일단 바루다가 일러주는 대로 바로 이어서 말했다.

‘이럴 거면 아예 네가 말하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하니, 바루다가 본인의 의지로는 아주 간단한 발화만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수혁,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닙니다. 생각을 좀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진짜 때릴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때려죽일 텐데.

하필이면 머릿속에 있어서 그것도 무리였다.

수혁이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는 동안에도 대화는 진행되었다.

“웨일즈 증후군?”

아주 생소한 답변을 해 낸 수혁을 신현태 과장을 비롯한 1년 차 유지상 및 2년 차 황선우까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신현태 과장과 나머지 둘 사이에는 반응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뭘 알고 말하는 건가? 아니면 책 읽다 돈 건가? 헷갈리게 만드네, 이거.’

아무래도 책을 읽기 전에 돌아 버린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웨일즈 증후군이란 병명은 멀쩡히 존재하는 병명이었다.

예전엔 대한민국에서도 꽤 중요했던 병명이기도 했고.

지금은 위생 상태가 부쩍 올라오면서 드물어졌지만, 신현태도 과거엔 자주 접했더랬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무튼, 신현태 과장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답변이었다.

공교롭게도 신 과장이 떠올리고 있던 몇몇 질환 중 렙토스피라로 인한 웨일즈 증후군도 끼어 있었다.

‘뭐야, 맞는 건가.’

제 입으로 병명을 말한 수혁 또한 과장만큼이나 놀란 상황이었다.

신현태의 눈에 돌기 시작한 호기심을 아주 조금이나마 읽어 낼 수 있었으니까.

[일단 왜 웨일즈 증후군을 의심했는지, 그 이유부터 떠올리십시오.]

‘미친놈아 그 이유는 네가 떠올려야지! 네가 의심한 거잖아!’

[아, 혹시 웨일즈 증후군이 뭔지 모르는 겁니까? 분명히 지금으로부터 47시간 12분 전에 읽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아. 아, 잠깐만.’

여느 때처럼 바루다에게 역정을 내려던 수혁은 잠시 입을 벌렸다.

바루다의 데이터 축적 작업 때문에 웨일즈 증후군에 관한 내용이 선명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밖에서 볼 땐, 수혁의 행동은 상당히 무서운 광경이었다.

‘뭐지, 시발.’

수혁이 신현태 교수와 대화하다 말고 신 교수와 유지상 사이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을 보면 뭔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두 그런 게 아니길 바랐고.

특히 신현태는 실로 오랜만에 기도까지 올렸다.

아무 신이라도 좋으니 제발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입원 기록을 보면 박기태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한 것은 발열이 있은 지 3일째입니다.”

아무튼, 수혁은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한 지 대략 1분 정도 후에야 다시 의미 있는 언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신현태 과장을 비롯해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어 하진 않았기 때문에 수혁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내원 일주일 전에는 환경 미화 작업을 위해 하수구 출입한 적이 있었고. 간호 기록을 보시면 나옵니다.”

“음, 하수구라.”

“그리고 금일 즉 발열이 발생한 지 4일째 오전에 나간 혈액 검사를 보면 빌리루빈이 상승했습니다. 어제 응급실에서 시행한 것에 비해 확연히 올라간 수치이며, 간호 기록을 보면 황달이 발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흐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현태 과장은 제법 놀랐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수혁의 추론은 베테랑 내과 의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 추론이 정신 나간 것처럼 보였던 행위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더욱더 놀라웠다.

“또 환자가 근육통을 호소한 것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환자 표현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을 보면 등, 종아리 부위에 통증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음, 그래. 더 해 봐.”

이제 신 과장은 아예 다른 두 사람에게서 몸을 돌린 채 온전히 수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원 기록이나 경과 기록 또는 간호 기록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여느 주치의나 하고 있어야 하는 기본이었으니까.

‘거기서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 내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이놈 좀 보소.’

신현태 과장이 볼 때 이 녀석은 그게 아주 익숙해 보였다.

마치 수련 과정을 이미 마치기라도 한 사람처럼.

아니, 내과 전문의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하니 바루다가 이식되었으리란 생각을 할 수는 없었으니,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미친 게 아니라 천재였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 녀석이 보여 준 이상한 행태가 그나마 이해가 가기는 갔다.

동기 중에서도 공부 제일 잘했던 놈은 아무래도 좀 이상했었으니까.

그 이상한 놈이 지금은 쓰쓰가무시병의 대가가 되어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천재였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이현종 원장도 정말 이상한 면이 많은 인간이지 않은가.

“차트 뒷면에 보시면 환자가 오늘 제출한 객담이 있습니다. 객담을 잘 보면 피가 섞여 있는데 객혈이라고 하기엔 색이 너무 붉습니다. 점막 출혈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마도 코피가 뒤로 넘어간 거로 생각됩니다.”

한편 수혁은 바루다가 일러주는 대로 말을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바루다에 대해 감복하고 있었다.

정확한 정보만 쥐여다 주면 진단 정확률이 90%가 넘어간다고 하더니.

과연 그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렇게 정리해서 보니까 모든 게 웨일즈 증후군을 가리키고 있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문서화 될 수 있는 정보를 다루는 능력은 충분히 훈련받았다고 판단합니다.]

바루다의 말은 일견 건방져 보일 수도 있었지만.

수혁으로서는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바루다의 의견을 수혁을 통해 듣게 된 신현태 과장 또한 그러했다.

“이야……. 너, 너 몇 등 졸업이냐?”

당연히 1등이겠지 하고 물었는데, 수혁의 답이 의외였다.

“4등입니다.”

“4등?”

최근 내과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4등이 지원했다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생명 다루는 게 일종의 죄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 정도가 아니던가.

앞으로 점점 전망이 어두워질 거란 얘기들도 심심치 않게 돌았고.

워낙 그런 것에 예민한 인턴들은 장래가 좋지 않을 거 같은 과에는 절대 지원하려고 들질 않았다.

그나마 수련 기간을 3년으로 줄이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무튼, 4등이면 아마 이번 기수에서는 제일 성적이 좋을 터였다.

‘4등 졸업이 웨일즈 증후군을 안다고? 우연인가?’

하지만 지금 신 과장이 느끼고 있는 수혁의 우수성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교수가 된 이래 만난 레지던트 중 제일 똑똑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음, 그래. 아무튼.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할래?”

신 과장의 질문에 수혁의 움직임이 다시 한번 멈췄다.

약간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신 과장은 천재는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의 편견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무서웠으니까.

[웨일즈 증후군의 치료는 페니실린, 암피실린, 아목시실린, 에리스로마이신이 있습니다.]

수혁은 질문을 듣는 즉시 내놓은 바루다의 답변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줄곧 보여 주는 대로 읽던 게 수혁이었던지라, 바루다가 의문을 표했다.

[설마 열거한 약품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 아냐. 그럴 리가 있냐? 기본적인 항생제인데.’

[그럼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수혁은 바루다를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지와는 상관 없이 동시에 신 과장과 나머지 둘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수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드디어 이 콧대 높은 인공지능에 한 방 먹일 수 있단 생각에 온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멍청아, 환자 항생제 지금 뭐 쓰고 있냐?’

수혁은 바루다가 정리해 둔 데이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바루다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듯 즉시 답했다.

[정맥관을 통해 아목시실린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했습니다.]

‘그래. 이미 들어가고 있다고, 그 약은.’

[그렇다면 수혁은 어떤 치료를 추천합니까?]

‘같은 페니실린 계통은 다 꽝이야. 에리스로마이신이 들어가야 해.’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황달까지 발생한 이상 최악을 염두에 둬야지. 혈액 투석도 하는 게 안전할 거야.’

[호오.]

‘그 말 하지 말라니까.’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어쩐지 아까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신현태 과장을 향해 방금 추론한 바를 얘기해 주었다.

항생제를 고르는 방법과 투석까지 염두에 두는 세심함.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 없었다.

“오……. 그래. 그래. 음.”

답을 듣고 나서야 신 과장은 조금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아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거나 하진 않았지만.

“좋아. 그럼 박기태 환자는 수혁이가 받아서 보기로 하자. 이만하면 자격이 있지.”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순간 구겨지는 2년 차의 얼굴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여겼다.

가서 ‘이건 사실 바루다가 한 겁니다.’라고 해 봐야 무슨 소리가 나오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과장한테라도 이쁨받는 게 제일이었다.

“그리고…….”

신 과장은 고개를 꾸벅이고 있는 수혁과 들고 있던 환자 명단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진짜 천재인지 아닌지 좀 보자.’

이 생각을 하면서였는데, 이미 사고만 치지 않게 해 달라는 원장의 당부는 까먹은 지 오래였다.

천상 학자인 그에겐 그저 뛰어난 제자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할 따름이었다.

물론 여전히 좀 무섭긴 했지만.

“김진철 환자도 네가 받아. 이 환자 다음 주 증례 토의에도 올라갈 환자거든? 이거까지 제대로 진단하면…… 너희 연차 100일 당직 없애 준다. 알았어?”

증례 토의에 올릴 정도로 어려운 환자를 1년 차에게 맡긴다는 것은, 이 말은 곧 불가능하다는 말을 다른 단어로 풀어서 쓴 것에 불과했다.

100일 당직을 풀어 준다는 말을 덧붙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걸 해 내면 100일 당직뿐이겠냐?’

불가능한 걸 가능케 하는 천재에겐 응당 혜택이 주어질 터였다.

이를테면 교수직이라든지 하는 자리가 확보될 것이었다.

물론 그건 앞으로 3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내과 과장의 눈에 들어 탄탄대로를 걷게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극명했다.

‘이건…… 이건 물어야 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의대를 4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독하게 살아온 사람이 수혁이었다.

신현태 과장의 속뜻을 완전히는 몰라도 대강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선례를 보인 선배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네, 교수님.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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