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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화 (6/1,303)

6화 천재야? (3)

“야.”

신현태 과장의 회진은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미 진단된 환자에게는 아직 항생제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었고.

아직 진단이 안 된 환자에게는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신 과장이 사라진 직후, 2년 차 황선우가 수혁을 불렀다.

눈치 빠른 유지상이 몰래 몸을 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넌 어딜 가. 같은 1년 차 아냐?”

“네, 죄송합니다.”

지상 또한 황선우 앞에 불러다 고개를 숙였다.

인턴 때부터 어렴풋이 들려왔던 ‘성질 더러운 내과 1년 차’가 바로 이 황선우였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수혁이 고개를 돌려 지상의 얼굴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으니까.

“2년 차가 좆으로 보이나. 눈치 없냐? 시발 내가 아직 모르겠다고 했으면 거기선 모른다고 해야지. 뭐? 전 압니다?”

수혁은 역시나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하게도 인공지능인 바루다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수혁, 이 사람은 왜 이럽니까?]

‘너 때문이잖아, 인마…….’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바루다는 올바른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모르겠으면 앞으로 내 대신 말하지 마.’

[음.]

‘음이 아니라!’

[알겠습니다.]

그리곤 바루다와 신나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게 황선우에게는 멍 때리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하, 이놈 봐라?’

수혁의 머리에 뭐가 박혔는데 제거하지 못했다거나.

깨어난 직후 공부를 해 대는 등 이상한 일을 했다는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모르는 그는 신현태 과장처럼 수혁이 두렵기는커녕 화만 치밀어 올랐다.

“이 새끼 선배가 말하는데 어디 보냐? 어?”

그는 그렇게 화를 내다가 수혁의 정강이를 걷어차기 위해 발을 들어 올렸으나, 그대로 걷어차지는 못했다.

수혁이 짚고 있는 지팡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2년 차가 1년 차를 갈굴 수 있는 게 일종의 문화라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까지 때리는 건 선을 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양심에 가책이 들었다기보다는 평판이 걱정되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교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병신 새끼라서 봐준다. 너, 아오…… 네가 대신 맞아. 새꺄.”

해서 옆에 서 있던 지상의 정강이를 깠다.

구둣발이 아니라 크룩스였기 때문에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상은 최대한 아픈 척을 했다.

“아야…….”

그래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과연 황선우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내과 의사 주제에 남의 고통을 보며 즐긴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어디 내과 의사가 한둘이란 말인가.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면 이상한 놈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야, 아프냐? 아프면 너 동기 좀 잘 가르쳐. 이래서 되겠냐? 어?”

“죄송합니다. 제가 단단히 잘 타이르겠습니다.”

지상은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고, 여태 자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우도 아닌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수혁의 고개를 강제로 숙였다.

“어쩌다 또라이가 와서. 하…….”

선우는 여전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혁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신현태 과장에게 바보 2년 차 취급을 받는 것도 서러운데.

그 와중에 들어온 지 하루 된 놈한테 밀리다니.

‘웨일즈 증후군? 하, 시발.’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2년 차인 자신도 처음 들어보는 증후군을 이 새끼는 대체 왜 아는 걸까.

이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눈앞의 수혁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봐야 할 것 같았다.

해서 물리적인 것 대신 좀 더 정신적인 충격을 주려는데,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감히 2년 차가 1년 차를 갈구고 있는데 굳이 헛기침이라니.

어떤 개념 없는 새낀지 얼굴이나 보자 하고 고개를 돌려 봤더니 원장이었다.

“어,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황선우는 강한 사람한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겐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였기에 즉각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눈치 빠른 지상도 허리를 굽혔다.

여전히 허공을 보고 있던 수혁만 한 박자 늦었다.

그 모습을 한참 전부터 바라보고 있던 원장은 심경이 아주 복잡했다.

아니, 복잡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석학으로 살아온 그조차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 선배, 근데 이수혁 그 친구 천재 같아요. 좀 이상하긴 한데, 이야…… 놀랬다니까?

신현태 과장에게 이 얘기를 듣고, 그럼 어디 얘기나 한번 나눠 볼까 하고 뛰어온 참이었다.

명색이 원장인 데다가 내과 교수이기도 했으니까.

‘이 새끼야……. 이게 조금 이상한 거니? 이게 미래면 인마…… 현태야, 이 새끼야…….’

선배한테 혼나는 와중에도 저 기이한 시선 처리와 달싹거리는 입술은 멈추질 않았다.

백방으로 뒷조사를 해 본 결과 원래 저런 녀석은 아니었다고 하니 더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사고만 안 나게 해 둬야겠지. 사고를 치면 안 돼. 사고는 안 돼…….’

보아하니 2년 차가 좀 이상해 보이는 1년 차를 교육이라도 하려던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정강이를 걷어찬 것은 좀 충격이긴 했지만.

원장이 레지던트 땐 빠따도 일상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교육자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내과 의사는 때려서라도 사람을 살리게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수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얜 미친놈이니까.

회까닥 돌면 찌를 수도 있어 보였으니까.

‘안 되지, 안 돼.’

다행히 원장은 1년 차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특별히 뭐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아는 척만 해 주면 충분했다.

그럼 알아서들 지레짐작으로 잘해 줄 터였다.

“아, 수혁이랑 잠깐 둘이 할 얘기 있는데 시간 괜찮나? 뭐 심각한 얘기 하던 건 아니지?”

“네? 어……. 네. 어……. 네, 원장님.”

“그래. 고마워. 어, 수혁아. 커피나 한잔하자. 오랜만에.”

아니나 다를까 2년 차 황선우는 얼굴이 흙빛이 된 채 뒤로 물러섰다.

동기로 보이는 유지상은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수혁과 원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흙, 흙수저 아니었나?’

태화대학교 의과대학이 아무리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이 들어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고득점자들이 몰렸고, 수혁이 들어올 때는 그냥 전국 1등부터 태화대학교 의대 정원까지 줄 세워놓으면 그게 입학자였다.

즉 태화대학교 의대 전체를 통틀어 봐도 천애 고아인 수혁만큼 가난한 친구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수혁을 원장이 따로 부른다?

그것도 커피를 오랜만에 마시자고 하면서?

‘로열…… 로열이었구나! 그래서 4등인데 내과를 들어온 거였어! 시발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유지상의 빈곤한 상상력은 이따위 결론만을 낼 뿐이었다.

물론 황선우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 망했네……. 완전 로열이었네…….’

해서 나라 잃은 얼굴로 수혁과 원장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어……. 네, 원장님.”

수혁은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일단 원장의 명이니 따르기로 했다.

더구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제 더는 황선우가 자신을 괴롭히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그……. 뭐 좀 어떤 거 같아? 주치의는?”

원장은 그렇게 수혁을 데리고 어쩐지 사람이 북적대는 카페에 들어선 이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 원장은 성격이 좀 괴상하기도 했거니와 그 직책 때문에라도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했었는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인사가 쏟아졌다.

수혁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원장과 함께 있는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내보이게 된 셈이었다.

“하루밖에 안 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수혁은 얼떨떨하다는 얼굴로 원장의 말에 답했다.

그냥 평범한 레지던트 1년 차의 모습이었지만.

원장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것 봐, 이거. 눈깔이 이상하다니까?’

컵이 테이크 아웃 잔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좀 걱정을 해야만 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원장 자리라는 게 그냥 버틴다고 올라갈 수 있는 건 아닌지라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래, 그렇지. 지팡이 쓰게 된 거 너무 낙심하지 말고. 내과 의사는 굳이 몸 안 써도 할 수 있는 분야가 많거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수혁은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동문회에서 준 돈도 있고, 내과 전문의도 책임지고 만들어 준다고 했고, 심지어 취직자리도 알아봐 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지팡이를 꼭 짚어야만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단거리 정도는 그냥 걸을 수도 있었다.

물론 빠르게 뛰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군대는 빠질 수 있을 터였다.

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건 아니지 않은가.

한쪽 다리의 활동이 불편해졌다고 해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건 아니란 뜻이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시간을 너무 뺏었네.”

원장은 이제 막 카페에 들어선 주제에 너스레를 떨었다.

수혁은 그게 자신을 겁내서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원장이 바빠서라고 생각했다.

“아, 네. 그럼 저도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누가 괴롭히면, 어…….”

원장은 ‘쑤시지 말고.’라는 말 대신 적절한 말이 뭐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내 수혁에게 그리고 그의 주변인들에게 가장 와닿을 만한 대책을 꺼내었다.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일단 내 이름을 팔아. 정 뭐하면 나한테 말해도 되고. 아니다. 그래. 신현태 과장한테 말해. 어, 그럼 되겠다.”

“아,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수혁은 진심으로 신경 써 주는 원장에게 감사한다는 의미로 입꼬리를 올리며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으로도 함께 웃어 주었다.

‘웃는다. 시발 웃잖아.’

하지만 원장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 버렸다.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혼자 남게 된 수혁의 눈앞에 바루다의 발광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수혁, 시간 낭비 하지 마십시오. 모자란 연산 능력 개선을 위한 카페인을 대량 섭취하시고, 김진철 환자를 파악하러 가야 합니다.]

‘닥쳐.’

[제가 닥치면 수혁은 영원히 김진철 환자의 진단명은 알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하.’

딱 잡아서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맞는 말 같아서 더 열불이 뻗쳤다.

[정말 닥칠까요? 아니면 지금 가시겠습니까?]

‘알았어, 간다, 가……. 이것만 마시고 가자.’

[똑딱똑딱.]

‘사람 불안하게 그런 소리 내지 마. 체하겠어,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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