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화 (7/1,303)

7화 천재래 (1)

“너희도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1년 차 이수혁이 로열이란다.”

내과 3년 차 김인수, 즉 현 치프 레지던트가 의국에 모인 인원을 향해 상당히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긴급 소집된 인원이기는 했지만, 그 수가 결코 적진 않았다.

당장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내려간 인원을 제외한 전원이 모여 있었다.

물론 당사자인 수혁은 제외된 상황이었다.

그는 바루다의 구박을 받으며 병실로 이동 중에 있었다.

“엄청난 로열 같던데요? 방금 동기한테 이수혁이랑 원장님이 같이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사진 받았습니다.”

“진짜? 원장님이랑 카페를? 어디 봐 봐.”

“여깄습니다.”

“허……. 진짜네…….”

병원은 정말 재미없는 곳이었다.

레지던트는 그 재미없는 곳에 24시간, 365일 메여 있는 몸이었고.

때문에 아주 작은 소란도 과장되어 돌아다니기 마련이었는데.

흙수저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던 이수혁이 실은 로열일지도 모른단 소문은 병원 전체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 어깨 두드린 거 맞지?”

“네. 원장님 이렇게 살가우신 분이 아닌데. 엄청 시니컬하잖아.”

“대화는 못 들었대?”

“물어보겠습니다.”

2년 차는 아주 진중한 얼굴로 카톡을 보냈다.

얼굴만 보면 무슨 환자에 관한 토론이라도 하는 듯해 보였다.

실은 그냥 가십거리에 관해 묻고 있는 주제에.

“어……. 누가 건드리면 바로 말하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세게 얘기를 하셨다고? 원장님이?”

“네.”

“이거 뭐 숨겨둔 자식 아냐? 이수혁 인적 사항 아는 친구 없어?”

실없는 소리였지만, 무려 치프의 말이었다.

그 누구도 허투루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말에 수혁의 동기인 지상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어, 너 이름이 뭐더라.”

“유지상입니다, 선생님.”

“아, 그래 미안. 아직 이름이 낯설어서. 아무튼, 어때?”

“원래는 고아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고아?”

“네. 그래서 알바도 하고, 본과 때도 과외 했었거든요. 장학금 나와도 생활비가 안 되니까.”

“흠.”

예과 때 과외 하는 경험이야 다들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태화 의료원 예과생이라고 하면 강남 엄마들도 껌뻑 죽었으니까.

가면 대접받지, 돈은 많이 받지.

안 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본과에서?

자칫 잘못하면 유급하는 마당에, 과외라니.

미친 짓이라고 보면 되었다.

“근데…… 걔 내가 알기로 4등인데?”

치프 김인수는 역시 치프답게 모든 지원자의 성적을 잘 알고 있었다.

뽑는 건 못해도 떨어뜨릴 수 있는 힘은 있는 게 치프 레지던트였기에 그랬다.

“아, 네. 4등 졸업입니다.”

“걔가 과외 하는 거 봤어?”

“네? 아, 아뇨.”

본과는 다들 자기 공부하기도 바쁜 시절이었다.

물론 몇몇은 다 내려놓고 놀기도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 유급 몇 번 당하고 중간에 군대까지 다녀오고 나면 역시나 공부만 하기 마련이었다.

“과외 하면서 4등을 어떻게 해. 말이 되냐? 걔가 뭐 아이큐 200은 된대?”

“아…….”

“아무래도 원장님 숨겨 둔 자식 맞는 거 같은데. 저 나이까지 결혼 안 하신 것도 수상하고 말이야…….”

누군가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 있었다면 ‘치프 선생님, 방금 그건 좀 너무 나가셨는데요.’라고 말을 해 주었겠지만.

심심한 병원 생활에 단비가 되어 주는 추리였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이 씨잖아!”

더구나 3년 차 약국장을 맡고 있는 김진용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당연히 대한민국에 이 씨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진 않았다.

치프와 약국장은 그야말로 현 내과의 실세 중의 실세였기 때문이었다.

시범 삼아 둘에게 거스르면 벌 당직을 얼마나 설 수 있을까 궁금한 게 아니라면 입을 다무는 게 좋았다.

“야, 너희 혹시 모르니까. 이수혁한테 시비 털지 마라. 알았지?”

“에, 선생님.”

해서 1년 차 이수혁은 원장의 숨겨 둔 아들이니 조심하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긴급 의국 회의는 종결되었다.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이제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김진철 환자가 있는 병실로 향하던 수혁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긁었다.

[수혁, 귀 파지 마십시오. 좋지 못한 버릇입니다.]

그러자 이젠 없으면 어색할 거 같은 바루다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누가 몰라서 파냐? 간지러운데 어떡해?’

[정말 알고 말씀하시는 거 맞습니까? 방금 파낸 귀지는 지방과 산으로 이루어진 물질로, 외부에서 침입한 균 또는 바이러스 등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이비인후과 A+ 맞았거든?’

[그걸 알면서 이렇게 험하게 귀를 다루다니…….]

‘뭘 또 그렇게 충격받은 척해. 내가 귀 긁든 말든 뭔 상관이야?’

[수혁은 바루다의 유일한 산출 대리인입니다. 건강을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무는 개뿔…….’

또다시 혼자 주절거리는 듯한 모양새로 걷다 보니 어느새 김진철 환자가 있는 병실 앞이었다.

“쿨럭쿨럭.”

듣기만 해도 진득한 가래가 연상되는 기침이 병실 안쪽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굳게 닫힌 병실 문에는 ‘감염 주의 병실’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마스크 끼고, 보호 장갑 착용하십시오.]

‘끼고 있잖아.’

바루다의 말을 듣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병에 걸리기는 더더욱 싫었다.

해서 병실 앞에 비치된 보호 장구를 끼고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은 원래 2인실이었으나, 비말 감염 위험 때문에 김진철 환자 한 명만 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쿨럭.”

올해 49세인 김진철은 연신 기침을 해 대는 중이었다.

[49세 남성, 내원 4일 전부터 호흡 곤란 및 기침 시작되었으며 어제 발생한 39도가량의 발열로 응급실 통해 입원하였습니다.]

[현재 아목시실린 항생제 치료 중이나 호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흉부 X-ray상, 폐렴 소견 보입니다.]

바루다는 즉각 김진철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띄워 주었다.

하지만 아직 진단까지 하는 건 무리인 모양이었다.

의심되는 진단명조차 언급하지 못했다.

“기침이 좀 더 심해지셨나요?”

수혁의 말에 옆에 있던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닐로 된 보호의와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수혁이 기억하기로 김진철 환자의 아내였다.

“네. 입원 전보다 더 힘들어해요.”

[산소포화도가 내원 당일 95%에서 90%로 떨어져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도 질병이 악화했음을 시사합니다.]

바루다 또한 산소포화도를 근거로 들며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흠……. 약은 용량에 맞게 잘 들어가고 있는데…….”

수혁은 잠시 환자의 팔뚝 정맥에 이어진 수액 라인을 살폈다.

신현태 과장이 직접 처방한 아목시실린은 별문제 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혈액 검사상 백혈구 수치 9.97×10^9이며 중성구 86.2%, 림프구 8.9%, 단핵구 4.4%입니다. 기타 염증 수치 올라가 있는 것 외에는 아직 특이사항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바루다는 혈액 검사표를 띄우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중성구가 이렇게 올랐다는 건 역시 세균성 질환은 맞다는 얘긴데…….’

[혈액 배양 검사가 응급실에서 나가긴 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평균 10일가량이 소요됩니다.]

‘그전에 어떻게 되실 거 같은데.’

내과에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은 자주 찾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10일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건장했던 사람도 충분히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이 사람은 49세로, 젊다고 말하기엔 나이가 꽤 많았다.

알맞은 항생제가 적절히 들어가지 않는다면 반드시 죽을 터였다.

‘대체 원인균이 뭐지?’

수혁은 아까 회진 때 신현태 과장이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주말 사이에 열이 잡히지 않으면 항생제를 레보플록사신으로 변경하라고.

레보플록사신은 퀴놀론 계열의 항생제로 상당히 광범위한 항생제에 속하는 약이었다.

그걸 주면 증상이 좋아질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원인을 모른 채 범위만 넓히는 건, 이를테면 폭격 같은 거라고 보면 되었다.

결국엔 원인을 찾아야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레보플록사신을 쓰면 그래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너 진짜 아예 모르겠어?’

수혁은 바루다는 왠지 알 것 같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은 채 재차 물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폐렴이라는 진단 외에는 내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다.

X-ray에서 염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던 좌측 폐 하엽 부근의 폐음이 변해 있었다.

‘청진을 해도?’

[이게 제 첫 청진입니다. 뭘 기대하는 겁니까? 데이터베이스에는 저장해 두겠습니다.]

‘이런 망할.’

놀릴 때는 거침이 없더니.

정작 환자를 앞에 두었을 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것 치고는 모든 검사 결과와 기록을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고 있긴 했지만.

“쿨럭.”

그때 수혁의 귀에 낯선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환자가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가 낸 기침이었다.

“어? 괜찮으세요?”

수혁이 보호자에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도 며칠 전부터 기침이 나네요.”

“설마……. 여기 얼마나 계신 거죠? 이거 계속 하고 계셨어요? 일단 나오시죠.”

수혁은 아무리 봐도 새것처럼 보이는 보호자의 마스크를 가리켰다.

단단히 코를 가리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간호사가 착용을 도와준 것 같기는 했다.

보호자는 수혁의 손에 이끌려 복도로 나온 후에도 연신 기침을 해 댔다.

“저 10분 됐어요. 낮에는 딸내미가…… 있었고요.”

“10분. 흠.”

그렇다면 지금 감염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좀 어려웠다.

‘집에 있을 때 옮았다고 봐야겠지?’

[내원 전에도 기침했으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딸의 증상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원성이 아주 강한 세균일 가능성이 큽니다.]

바루다의 말은 타당해 보였고, 수혁은 즉시 행동에 옮겼다.

“따님은 얼마나 같이 있었죠?”

“저희 집이 쿨럭. 지방이라…… 아프기 시작한 후에는 딸 집에 있다가 왔어요. 요 근처에서 자취하거든요. 이 병원 가 보라고 해서.”

“흠.”

계속 같이 있었다면 딸도 위험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따님은 괜찮으신가요?”

“지금…… 오고 있을 거예요. 아, 저기 오네요.”

보호자의 손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젊은 여성이 오고 있었다.

혈색이 아주 좋아서 전혀 아픈 곳이 없어 보였다.

“쿨럭쿨럭.”

그사이 보호자의 기침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와는 달리 딸은 아무 증상이 없어 보였다.

“쿨럭쿨럭.”

병실 안에서는 김진철 환자의 기침이,

“쿨럭쿨럭.”

복도에서는 보호자의 기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혁은 그 기침 소리를 배경음 삼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둘인데,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은 하나.

그저 잠복기의 차이라고 여기기엔 증상이 너무 심했다.

‘뭔가…….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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