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화 (8/1,303)

8화 천재래 (2)

대체 무엇을 놓친 걸까.

수혁의 이마에 주름이 더해져만 갔다.

그런 수혁을 상념에서 깨운 것은 여느 때처럼 바루다였다.

[수혁, 보호자의 상태도 심상치 않습니다.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평소와 같은 시비는 아니었다.

아주 유용한 조언이었다.

시기적절한 조언이기도 했고.

“아.”

덕분에 혼자 주절거림으로써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던 수혁은 그제야 보호자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쿨럭쿨럭.”

연신 기침을 해 대는 중이었는데, 가래 색도 좋지 않았다.

거의 환자와 비슷한 지경이었다.

아니, 환자복을 제외하면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 안에서 청진을 좀 해 볼까요?”

“아, 아 네.”

해서 폐 소리를 들어보니, 양측의 폐 하엽 모두에서 그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심지어 수혁의 미숙한 청진으로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소리였다.

폐렴이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진행한.

‘세균성 폐렴이 이렇게 감염이……. 빠르다고?’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사람에게 세균성 감염이 이렇게 급속도로 악화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보호자 감염에 대한 감염원이 김진철 환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그럼…… 그럼 말이 되는 거 같은데. 흠.’

[간호 기록상 특별한 여행력은 없었습니다. 감염원은 지역 사회에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뭔 놈의 지역 사회에 이런 세균이 살아. 너무 빠르잖아. 이런 거 퍼졌으면 벌써 뉴스 나왔지.’

[그건 수혁이 알아봐야 할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이 새끼는 하여간…….’

하지만 확실히 지금 급한 것은 수혁이었다.

‘이 환자만 제대로 진단해 내면…… 교수로의 길이 보일 수도 있어.’

의대 교수가 그나마 다른 과 교수들에 비해서는 흙수저들에게도 열려 있다곤 하지만.

활짝 열린 건 결코 아니었다.

엿볼 수 있는 틈새 정도나 있다고 할까.

하지만 이걸 진단해 내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동기 중에서는 가장 우위에 설 수 있을 터였다.

그게 꼭 태화 의료원 교수는 아니라 하더라도.

[세속적이군요, 수혁.]

‘너도 나처럼 어렵게 커 봐라. 어떻게 되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응원합니다.]

‘웬일이지?’

[수혁이 교수가 되는 것이 세계 최고의 진단 및 치료 목적 내과 의사가 되는 것과 일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바루다의 말처럼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가 된다면 사실 교수가 대수겠는가.

한국이 아니라 저기 미국에 가서 백지 수표 받아 가며 일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망상이었다.

지금의 수혁은 절름발이 흙수저 내과 1년 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이걸 현실화하려면 일단 이 환자부터 어떻게든 진단해야만 했다.

“보호자분.”

해서 환자의 보호자에게 먼저 말을 해 보기로 했다.

“네? 네!”

한참 공중에 대고 주절거리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보호자는 일순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수혁은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면서도 해야 할 말을 잊진 않았다.

“지금 보니, 환자분도 폐렴이 의심됩니다. 그…….”

수혁은 병실에 걸린 시계를 잠시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외래는 끝난 시간이니까, 저랑 같이 응급실로 가시죠. 접수 도와드리고 검사도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게 심각한가요?”

수혁은 너무 어두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보호자를 마주 보았다.

‘뭐라 말해야 하나.’

[죽을 수도 있다고 하십쇼.]

‘넌 조용히 해, 미친놈아.’

바루다는 누가 A.I.라고 안 할까 봐 사람 심리를 짓뭉개는 발언만 해 대고 있었다.

“일단 확인만. 확인만 해 보시죠.”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의 정신 나간 발언을 채택하진 않았다.

원장을 비롯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또라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어렵게 살아온 만큼 남을 생각할 줄 알았다.

아마 어지간한 1년 차들보다는 수혁이 훨씬 나을 터였다.

“아…… 네.”

“따님도 혹시 모르니 가 보시죠.”

“네. 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쿨럭.”

보호자는 아무리 봐도 멀쩡해 보이는 딸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남편이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져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딸까지 어떻게 되어 버린다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럼 저랑 같이 가시죠. 저녁 지난 응급실이라 좀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환자들이 확 몰리거든요. 외래 끝난 시간엔 원래 좀 바빠요.”

사실 본인이 1년 차라 끗발을 날리지 못하는 게 더 큰 이유이긴 했다.

과도 정해지지 않은 채 달마다 다른 과를 전전해야 하는 인턴보다야 한결 낫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예끼리의 비교일 뿐이었다.

조금 형편이 나은 노예라고 해 봐야 남들이 볼 땐 그냥 노예였다.

“아, 수혁아. 웬일이야.”

그런데 일단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마주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일명 털보가 너무 살갑게 수혁을 맞아주었다.

‘이 사람이 돌았나?’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냥 다들 털보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두 인턴이 되면 털보가 실은 악마와 동의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 잡고 지랄을 해 대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도 여러 차례 불려가 얼토당토않은 일로 혼난 적이 많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살폈던 게 오늘 털보가 있는지 여부였고, 있으면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였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네, 네. 선배.”

“그래. 뭐 찾는 거 있어?”

그런데 지금 태도는 마치 천사 같아 보이기만 했다.

‘앞으로 내과 노티할 일이 있을 거라 잘해 주는 건가?’

자신이 원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소문이 돈다는 건 꿈에도 모르는 수혁으로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혁은 여전히 평소와 같이, 누구에나 그러했듯이 예의 바르게 말을 이었다.

“아, 네. 이분들 제 환자분 보호자분들인데. 아무래도 감염이 의심되어서요. 혈액 검사랑 엑스레이 찍어 보려고 합니다.”

“아, 그래.”

털보는 별다른 말 없이 대답하며 묵묵히 자신의 북슬북슬한 털을 매만졌다.

성질 같았으면 벌써 미쳤냐는 말부터 튀어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방금 단톡방에 이수혁이 원장의 아들일지도 모른단 말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아무튼, 원장이 수혁의 백이라는 건 100%란 얘기가 돌았고.

그렇다면 그 또한 절대 수혁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었다.

특히 털보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미 병원에서 한바탕 개판 쳐 놓은 지 오래였으니까.

“원무과 가서 접수하고 환자 번호 말해 주면 바로 처리해 줄게.”

“아, 감사합니다. 선배.”

“아냐, 뭘. 나야 뭐 언제나 잘해 주지.”

“아……. 네…….”

수혁은 술이라도 한잔 자셨나 하는 생각과 함께, 환자들과 원무과로 향했다.

“쿨럭쿨럭.”

김진철 환자의 아내 오진경은 여전히 기침 중이었고.

딸 김세희는 여전히 멀쩡해 보이기만 했다.

노출된 시기는 비슷할 텐데, 경과는 전혀 달랐다.

‘확실히 이상해.’

[일단 검사 결과를 보시길 추천합니다.]

‘하잖아, 인마.’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을 접수하곤 털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털보는 아까 약속했던 바대로 즉시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인력을 지원해 주었다.

수혁은 오늘 털보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호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결과 뜨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네, 선생님.”

덕분에 수혁은 거의 응급실에 내려오자마자 검사를 마치고 사진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흠.’

[양측 폐 하엽에 음영이 증가해 있습니다. 폐렴에 합당합니다.]

오진경 환자의 사진은 청진했던 바대로 폐렴을 시사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엑스레이 판독에 익숙지 않은 수혁이라고 해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음영이었다.

[김세희 환자의 흉부 X-ray에는 특이사항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김세희 환자의 사진은 그저 깨끗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완전히 정상.

이후 나온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오진경 환자는 중성구가 확 떠 있어. 세균성 폐렴이 맞아.’

[김세희 환자는 완전히 정상입니다. 감염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희한하네…….’

잠복기라 해도 혈액 검사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찌 되었건 몸 안으로 세균이 들어와서 싸움이 벌어지긴 한 거니까.

하지만 김세희 환자의 혈액 검사는 평온하기만 했다.

‘환자 진술에 따르면 김세희 씨가 김진철, 오진경 환자와 접촉한 게 3일 전. 근데 감염이 안 됐어.’

[…….]

‘왜 조용히 있냐? 불안하게?’

[여러 가능성을 추론했습니다.]

‘결과가 어떤데?’

[감염원이 사람이 아닌 경우, 1차 접촉자인 김진철, 오진경 환자에게만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아.’

[추가 문진을 요청합니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었다.

수혁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오진경 환자에게 다가갔다.

“쿨럭쿨럭.”

오진경 환자는 여전히 기침 중이었다.

어째 아까보다 더 심각해 보였는데, 수혁만의 착각은 아닌 듯했다.

[빈도가 늘었습니다. 산소 공급 장치를 사용할 것을 추천합니다.]

바루다의 의견 또한 같았고, 모니터링을 해 보니 산소포화도가 93%가량으로 떨어져 있었다.

“일단 이거 코에 끼우세요.”

해서 수혁은 산소 공급 장치를 코에 끼워 준 후, 질문을 이어 나갔다.

“혹시 최근 목장이나, 동물 사육하는 곳에 방문한 적이 있으셨나요?”

“네? 아뇨. 아뇨. 그런 일은 없어요.”

“흠.”

예상이 빗나간 건가 하고 있으려니, 딸 김세희가 끼어들었다.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있잖아, 엄마.”

“그거야 뭐…… 작은 동물이잖니.”

오진경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으나, 의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환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중 결정적인 단서가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떤 동물을 키우시는데요?”

“어유, 뭐 별거 아니에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머님. 어떤 동물이죠?”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게 환자에게 중요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교수가 되는 데 중요한 건지 좀 헷갈리긴 했지만.

아무튼, 수혁의 진중한 표정이 먹혀들어 가긴 했다.

“앵무새요. 아유, 작아요.”

“앵무새?”

“네.”

앵무새.

앵무새라.

수혁은 그 후로도 잠시 앵무새란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오진경과 김세희는 아까부터 수혁이 이런 비슷한 짓을 하던 걸 보아 온 터라 그리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사이 연산을 마친 바루다와 수혁이 거의 동시에 한 가지 병을 떠올렸다.

‘앵무새병.’

[Chlamydia psittac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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