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천재래 (3)
수혁의 말에 앞에 있던 두 사람은 대체 이게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앵무새병은 무척 낯선 질환이었기 때문이었다.
앵무새와 같은 조류에게서 사람에게 감염되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심지어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병.
하지만 평생 의사로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하는 경우조차 왕왕 있을 지경이었다.
‘이거…… 맞나?’
당연하게도 본인 입으로 그 질환명을 내뱉은 수혁조차 완전한 확신을 갖진 못했다.
[99% 확신합니다.]
하지만 바루다의 의견은 달랐다.
그의 연산 능력은 이미 환자 각각의 정보를 계산하였을 뿐 아니라 역학 관계까지 담아 내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현재 가장 가능성이 큰 질환은 역시 앵무새병이었다.
‘그래……. 뭐, 믿어야지. 별수 있나.’
수혁 또한 다른 질환명을 떠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이, 바루다가 말을 이었다.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 치료를 시작할 것을 추천합니다.]
‘독시사이클린?’
[네.]
‘하긴 그래야지. 근데…….’
수혁은 항생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항생제라는 건 환자의 예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약제가 아니던가.
‘허락을 받아야 할 텐데.’
앵무새병만 해도 그랬다.
독시사이클린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망률이 15%에서 20%를 넘나들었지만.
이젠 너무 늦지 않게, 제대로 진단만 하면 사망률을 1% 미만으로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사망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는데, 진단을 놓쳐서 엉뚱한 항생제를 사용해서 그랬다.
이렇게 중요한 약제를 1년 차에게 맡기는 정신 나간 의국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음…….’
원칙상 1년 차는 2년 차에게 문의해야만 했다.
‘아, 싫은데…….’
지금 수혁을 맡고 있는 2년 차는 황선우.
아까 수혁에게 병신이라고 하고, 동기 지상의 정강이를 걷어찼던 바로 그놈이었다.
하지만 허락도 없이 바꿨다가 걸리면 진짜 뒈질 수도 있었다.
그게 옳은 결정이건 아니건 간에.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따르릉.
해서 수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황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수혁아.”
그런데 웬일인지 제법 반갑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체로 돌았나.’
수혁은 털보를 떠올리며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네, 선생님. 노티(Notification: 환자 보고) 드릴 환자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인턴 때 이놈 저놈한테 당하면서 만들어진 최적의 노티용 말투였다.
“말해 봐, 누군데?”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미쳐서 그런가 황선우의 어조는 부드럽기만 했다.
수혁은 누가 약이라도 먹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을 이었다.
“김진철 남자 49세 환자, 앵무새병 의심되어 항생제 변경 필요할 것 같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앵무새……?”
안타깝게도 황선우는 정말 공부와는 담쌓고 지내는 2년 차였다.
물론 내과 레지던트 2년 차라는 게 정말 바쁜 시절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환자를 보면서 그 환자에 해당하는 파트 정도는 공부하기 마련이었는데.
이 녀석은 그저 교수들이 회진 때 던져 주는 것 외에는 따로 공부하는 게 없었다.
“네, 선생님.”
“흠.”
당연하게도 앵무새병과 같은 생소한 병은 알지도 못했다.
‘이 시발놈이 진짜…….’
원래 모르는 거 알려 달라고 하는 놈이 제일 미운 법 아니겠는가.
성질 같아서는 전화 끊고 올라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수혁은 그냥 1년 차가 아니라 로열이었다.
그것도 원장과 과장 더블 백.
조금 전에 치프가 ‘건드리면 뒈진다’는 말까지 했었고.
이 상황에서 황선우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아직 과장님 병원 계실 시간이지.’
이제 9시가 훌쩍 넘어갔지만.
태화 의료원 정도 되는 곳에서, 그것도 내과에서 과장 노릇 하려면 집보다는 병원에 살아야 했다.
“그, 수혁아 미안한데. 내가 중환자실에 있거든? 과장님한테 직접 노티할래? 병원 계시니까, 원내 번호로 연락드리면 될 거야.”
“아…….”
1년 차에게 과장 노티를 던지다니.
수혁은 역시 이 새끼는 개새끼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을의 입장에서는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똑똑하게 노티하면 오히려 개이득이야.’
[정말 불순한 의도만 가지고 계시는군요.]
‘넌 조용히 하고.’
해서 그러마, 하고 전화를 끊고는 신현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우웅.
신현태 과장은 황선우가 예측했던 대로 병원에 있었다.
다만 그의 연구실이 아니라 원장실에 있었다.
수혁을 놓고 긴급 회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언론에는 회복됐고, 주치의 업무 시작했다고 전해 뒀어. 환자 보는 데 방해될 테니 찾아오진 말라고 했고.”
“잘하셨네요, 선배. 언론 따라붙으면 짜증 나지…….”
“어차피 바루다는 한동안 물 건너갔어. 최대한 조용히 시키고 은근슬쩍 시작해야지.”
“전자에서는 그렇게 한대요?”
“걔들이 제일 몸 달았지. 이거 만들어서 전 세계 팔아먹으려고 하는데.”
“흠.”
신현태 과장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아까 회진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근데, 걔 진짜 머리가 좋은 거 같긴 해요. 난 웨일즈 증후군 아는 1년 차는 처음 본다니까요?”
“머리가 좋긴, 또라이인 거지. 아까 보니까 계속 이상한 데만 보고 있더만.”
“아니라니까. 이 형 아직도 내 감을 모르셔.”
“형은 인마. 너랑 나랑 학번 차이가 다섯 개야.”
“이제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그리고 저 삼수했잖아요. 나이는 얼마 차이도 안 나요.”
“오냐 오냐 하니까 맞먹으려고. 야, 전화나 받아. 누구냐, 이 시간에.”
“응?”
이현종 원장의 말에 신 과장은 자신의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과연 진동이 사납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원내 번호이긴 했다.
받긴 받아야 하는 전화라는 뜻이었다.
“내과 신현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1년 차 이수혁입니다.”
무려 1년 차가 내과 과장에게 거는 전화였다.
군기가 딱 잡혀 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혁의 목소리는 원장실 전체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이봐, 이봐. 또라이잖아. 이 시간에 전화해서 소리 지르는 거 봐. 잠깐 와 보라고 하면 절대 가지 마. 너 쑤신다?”
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슬며시 뒤로 이동했다.
하지만 신 과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전화가 왔으니까.
“응, 무…… 슨 일이지?”
“노티 드릴 환자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흠, 그래. 말해 봐.”
과연 이놈 저놈한테 당하면서 만들어진 멘트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신 과장은 이것 보라고, 또라이는 아니라는 뜻으로 전화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남자 49세 김진철 환자분, 앵무새병 의심되어 현재 사용 중인 아목시실린을 테트라사이클린으로 변경해도 좋을지 문의드립니다.”
“앵무새병……?”
신현태 과장은 아까 황선우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그 병이 뭔지 몰라서는 아니었다.
그저 왜 뜬금없이 그 병이 나왔을까가 궁금해서였다.
“네, 교수님.”
“왜 그렇게 판단했지?”
내과에서 ‘왜’는 무척 중요했다.
설령 진단명이 틀리더라도 근거가 그럴싸했다면 넘어가 주기도 하는 과였으니까.
‘자, 이제부터 시작이야.’
수혁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기에.
심호흡한 후, 말을 이었다.
“환자 호흡 곤란과 함께 기침이 발생했으며, 내원 당시 시행한 검사상 좌측 폐하에 음영 증가해 있었으며, 혈액 검사상 세균성 감염 시사하는 소견 보여 세균성 폐렴에 합당합니다.”
“계속해 봐.”
신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기를 다시 한번 가리켰다.
똑 부러지는, 원장실을 가득 메우는 수혁의 노티에 원장 또한 자신도 모르게 아까보단 가까이 와 있었다.
“동시에 아목시실린과 같은 페니실린계 항생제에 전혀 반응 보이지 않는 발열 동반하고 있습니다. 즉 지역 사회에서 획득 가능한 종류의 세균은 아니란 뜻이 됩니다.”
“흠.”
아목시실린과 같은 페니실린계 항생제를 제일 먼저 쓴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러니 그게 안 들었을 땐, 지금 수혁의 말대로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 오진경 여자 49세도 환자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증상 보였다고 하여 금일 응급실에서 검사 시행하였습니다. 결과 같은 양상을 보였습니다.”
“응? 그건 어떻게 알았지?”
“따로 환자 문진하러 갔다가 보호자 기침을 들었습니다.”
“흠……. 그래서?”
“그런데 두 환자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접촉한 딸 김세희 씨는 전혀 증상도 없고 검사상 이상 소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하.”
잘 짜인 노티는 내과 의사 입장에서는 잘 만든 수사극처럼 재밌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각각의 근거들이,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근거들이 실은 단 하나의 진단명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갈 때의 즐거움이라니.
이게 바로 내과 의사를 하는 맛이었다.
신현태 과장은 어느새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지?”
“수인성 질환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김진철, 오진경 환자는 집에서 앵무새를 키우고 있습니다. 앵무새병이라면 1차 접촉자인 김진철, 오진경 환자는 병에 이환되었지만, 2차 접촉자인 김세희 씨는 이환되지 않은 점이 설명됩니다. 이에 앵무새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잠깐만.”
“네, 교수님.”
신 과장은 핸드폰을 손으로 가린 채 원장을 돌아보았다.
‘내 말이 맞지?’라는 얼굴이었는데, 원장 또한 부인할 수는 없었다.
요사이 이만한 수준의 노티는 1년 차가 아니라 3년 차 아니, 펠로우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대단하죠? 논리가 단단하잖아요?”
“우연이지 뭐.”
하지만 원장의 수혁에 대한 평가는 변화 없었다.
“다음 주 증례 토의 맡겨도 될 거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미쳤냐?”
태화 병원 증례 토의는 태화 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와서 듣는 자리였다.
일종의 작은 학회장이라고 보면 되었다.
때문에 1년 차가 발표를 하게 되는 경우는 전무했다.
발표는 어찌어찌한다고 해도, 질문받다가 초토화될 것이 뻔했으니까.
그러니 이현종 원장의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라 볼 수 있었다.
“뭐가 문제예요? 환자 파악 완벽한데. 논리도 단단하고.”
“안 돼. 그러다 실수하면 개망신이야.”
“음…….”
“안 돼.”
“알겠습니다. 뭐. 왜 그렇게 정색을 하신대.”
신 과장은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 내곤 재차 말을 이었다.
“좋아. 약 테트라사이클린으로 바꿔.”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
“네.”
“아니, 잘했다고. 내일 당직이지? 노티할 거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괜찮으니까.”
“아…….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