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당직도 잘 서? (2)
‘갑자기 뭔 소리야 인마. 지금 암으로 확정 짓고 있는 분위긴데. 지금 그딴 소리를 하면 이 양반 어떻게 나오겠어!’
수혁은 슬며시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황선우를 바라보았다.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던 그는 우측 대장 즉, 상행 결장이 있는 부위에서 멈춰 있었다.
상행 결장 주변으로는 둥글둥글해 보이는 덩이가 상당히 많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암이었다.
그리고 황선우 또한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수혁도 그 의견에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고.
그런데 바루다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영 딴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역시나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암이라고 하기엔 폐색 증상이 없습니다.]
‘장 폐색…….’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폐색이란 대장과 같은, 무언가 지나가야 하는 통로가 틀어막히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저만한 덩어리가 암이면 이미 장이 막혀야 했는데. 음, 이상하긴 한데…….’
환자는 지난 한 달간 무려 10kg의 체중 감소가 있긴 했지만 단 한 번도 밥을 못 먹은 적은 없다고 진술했더랬다.
실제로 환자의 CT를 보면 덩이가 있는 부위 뒤로도 이미 통과한 대변이 있기도 했고.
그 말은 곧 약간 좁아지기는 했을지언정 폐색은 없단 얘기였다.
‘넌 인마…… 이렇게 중요한 말이면 아까 했어야지. 이제 와서 꺼내면 어떡해 인마.’
수혁은 원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물론 바루다에게 표정이 보일 리는 없었지만.
바루다는 그의 몸 안에 있는 존재이니만큼 느낄 수는 있었다.
[따지고 보면 수혁 때문입니다.]
바루다는 어김없이 수혁의 탓을 해 대었다.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야. 뭔 내 탓을 하고 있어 이놈이.’
[제 본체를 대신하기에 수혁의 연산 능력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계산 처리 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수혁이 반박할 수 없는 말을 이어 갔고.
‘이런 망할.’
어째 대화를 이어 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수혁은 본인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마 바루다의 이 말은 사실일 터였다.
어떻게 생물체인 수혁의 뇌가 육중한 기기 안에 들어찬 바루다의 본체와 비견될 수 있겠는가.
그냥 기기도 아니고 태화 전자의 정수가 들어간 아주 거대한 기기였는데.
[아무튼, 암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혈액종양내과에 노티하는 것을 잠시 미루길 권장드립니다.]
‘하……. 시바……. 이걸 어쩌지……. 아…….’
수혁은 이미 전화기를 들고 있는 선우를 돌아보았다.
확신에 찬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환자를 전원 보낸 2차 병원에서도 당연히 환자가 암이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R/O Colon ca. rec Biopsy.’
소견서에도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장암이 의심되니까 조직 검사부터 해 달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인공지능 바루다의 의견을 묵살할 수는 없었다.
만약 다른 병인데 암이라 생각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환자의 예후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터였다.
수혁은 그런 꼴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내 첫 당직이야…….’
첫 당직에 암으로 오진한다?
‘1년 차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겠지만.
수혁은 그저 그런 1년 차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의학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래야 교수들이 주목할 테고.
그래야 더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생길 테니.
“저,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서 혼날 걸 각오하고 황선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제 막 번호를 누르려고 하고 있던 황선우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위 연차의 몸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대?
의국에 가면 버젓이 ‘위 연차는 하늘, 아래 연차는 땅’이란 문구가 붙어 있거늘.
옛날 같으면 바로 싸대기 날려도 할 말 없는 행동이었다.
물론 황선우도 위 연차에게 개기고,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안 듣긴 하지만.
원래 똥 묻은 놈은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편 아니던가.
자신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수혁은 그런 게 전혀 없어 보였다.
‘좆됐다.’
수혁은 시시각각 악귀의 형상으로 변해 가는 황선우의 얼굴을 보며 목에 힘을 주었다.
불시에 귀싸대기를 맞더라도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동시에 푸들거리는 황선우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라도 날아올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손바닥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시발, 원장 백만 아니면…….’
황선우가 어제 보았던 것과 들었던 것을 용케 떠올린 덕이었다.
여기서 때리면 어떻게 될까.
원장한테 끌려가기 전에 치프 김인수와 약국장 김진용 앞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게 될 터였다.
김인수야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이었지만.
김진용은 악명이 자자한 인간이었다.
“왜, 왜.”
해서 일단 이유나 들어보기로 했다.
“그……. 이게 암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
“암이 아니라고? 야, 그게 말이 되냐? 한 달 동안 10kg이 괜히 빠져? 나 원, 누가 1년 차 아니랄까 봐 엉뚱한 소리 하네, 이거.”
수혁의 말에 황선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질환은 몰라도.
이 케이스만큼은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1년 차는 1년 차구만.’
앵무새병이니, 웨일즈 증후군이니.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지껄여 대서 긴장했는데.
‘그럼 이 하늘 같은 2년 차께서 몸소 티칭을 해 보실까.’
황선우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되어 모니터를 탁탁 두드렸다.
정확히 CT상 관찰되는 덩이 주변이었다.
“자 보라고. 여기 보면 마진(Margin: 경계)이 짜글짜글하지? 이게 암의 특징이야.”
[짜글짜글하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암만의 특성을 보이고 있진 않습니다.]
황선우가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수혁에게는 바루다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봐. 이렇게 주르륵 몰려 있는 거. 이거 암 덩이잖아.”
[암이라고 하기엔 CT상에서도 명확한 폐색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만한 게 대장암, 즉 선암(Adenocarcinoma)이라면 반드시 폐색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바루다가 부정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그럴싸한 의견을 더해 가면서.
솔직히 황선우보다는 바루다가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거기에 체중 감소. 암이 아니면 한 달에 10kg이 말이 되냐?”
[축하드립니다, 수혁. 여기 수혁보다 무식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껏 발표된 수많은 케이스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루다는 아예 조롱해 대고 있었다.
만약 이놈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혁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바루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역시 암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럼 암이 아니라고 보는 타당한 근거를 대 봐.’
[일단 폐색의 부재가 가장 큰 증거가 될 수 있겠지요. 나머지는 대장암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그럼 고작 그게 근거야?’
[하나뿐이지만, 확실한 근거지요.]
‘흠.’
수혁은 바루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어쩐지 표정이 있다면 지금 상당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어 보였다.
[99.9%로 암은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이만한 수치까지 내보이고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폐색이 없습니다. 환자 증상도 그렇지만 영상에서도 없습니다.”
“그야…….”
황선우는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럴 수 있나? 그런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대장암의 행태가 어떤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모르는 걸 건드려 대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인간 같으면 지금까지 허송세월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겠지만.
황선우는 아쉽게도 삐뚤어진 인간이었다.
“그럼, 그럼 네 생각은 뭔데? 이게 대체 암이 아니면 뭐야?”
물론 이건 수혁도 잘 몰랐다.
순전히 바루다의 의견 때문에 황선우의 손을 잡은 것이었으니까.
수혁은 일단 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바루다를 향해 물었다.
‘그럼 뭐 같은데?’
[연산이 느려져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역시 감염 질환으로 생각됩니다.]
‘감염이라.’
하긴, 대장에 이렇게 덩이를 형성할 만한 병은, 암 말고는 감염 질환일 터였다.
“감염 질환입니다.”
해서 그렇게 말했더니, 역시 황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염내과 돈다고 또 감염이래. 말이 되니?”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수혁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바루다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황선우의 말보다는 이쪽이 아무래도 훨씬 영양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쪽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았다.
[국내 사정상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결핵입니다.]
‘결핵…… 흠.’
그럴 수 있었다. 결핵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결핵이 아주 많았으니까.
그리고 결핵은 폐만 침범하는 균이 아니었다.
대장으로 침범하게 되면 이 비슷한 모양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결핵은 이런 식으로 복벽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이건 암의 특성이죠.]
‘이 개새꺄, 방금 암이 아니라고 하더니?’
[연산 과정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죠.]
‘2년 차한테 대들었는데 신경을 쓰지 마?’
[자꾸 방해하지 마십쇼. 가뜩이나 느려져서 힘듭니다.]
‘하…….’
수혁이 한숨을 쉬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루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안에 괴사한 병변도 가지고 있고, 조영제에 인해 음영이 증강되는 정도도 다양합니다.]
‘그게 암의 특성 아니냐?’
[공부시킨 보람이 있군요.]
‘이 새꺄…….’
암이 아니라고 할 때는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더니.
막상 다른 질환명을 대라니까 주야장천 암의 특성만 대고 있었다.
황선우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음을 명확히 느끼고 있는 수혁으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
바루다고 느끼고 있을는지는 모를 일이긴 했지만.
[게다가 환자의 골반 부위를 보십시오.]
‘골반……?’
거긴 증상과 별 상관이 없는 곳인데 하고 내려보았더니 자궁 내에 뭔가 이물질이 있었다.
[자궁 내 피임 장치입니다.]
‘IUD. 이게 뭐 어쨌다고?’
[여기까지 했는데도 답을 모르는 걸 보면 역시 아직 멀었습니다.]
바루다의 어조에는 여전히 자신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뭔 소리야?’
[CT에서 암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지만, 암이 아닌 감염 질환. 그러면서도 IUD와 연관이 되어 있는 질환. 이쯤 되면 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깨 위에 그건 설마 저를 들고 다니기 위해 보관하고 계신 겁니까?]
‘이…….’
수혁은 발끈 화를 내려다 말고, 이내 입을 벌렸다.
순간, 수혁의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진단명이 있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