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3화 (13/1,303)

13화 당직도 잘 서? (4)

“허. 이거 뭐여.”

원장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금 사진을 판독하고 있는 김진실 교수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태화 의료원 영상의학과 복부 파트 제일의 실력자인 이하언 교수가 자신의 수제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이미 『라디올로지』라고 하는, 영상의학과에서 가장 큰 학술지에 논문을 세 편이나 발표하기도 했고.

이런 사람이 맞다고 하면 그냥 맞다고 보면 되었다.

원장은 수혁의 의견이 맞았다는 사실에 기함을 표했다.

“거봐요. 천재라니까? 액티노마이코시스? 이걸 진단할 수 있는 1년 차가 세상천지에 어딨어요? 내 말 안 믿더니.”

신현태는 마치 자신이 공을 세운 것처럼 원장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참……. 희한한 놈이네, 이거?”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길길이 날뛰었던 원장이 이젠 그저 고개만 털어 대고 있었다.

그것도 감탄해 마지않는다는 얼굴로.

그가 그렇게 넋이 반쯤 나가 있는 사이, 신 과장이 핸드폰을 자기 방향으로 틀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액티노마이코시스. 일리 있어. 그럼 입원시킨 후에 계획을 어떻게 짤 거야?”

이 말에 원장이 눈을 크게 뜨고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1년 차가 진단이나 제대로 했으면 될 일인데, 거기에 무려 치료 계획까지 묻느냐는 그런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이수혁이란 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해서 굳이 입을 열어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대신 수혁의 이어지는 말을 듣기 위해 핸드폰에 고개를 좀 더 가까이 댈 뿐이었다.

“일단…….”

수혁은 추임새로 잠시 시간을 번 뒤 바루다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바루다의 목적은 뭐가 어찌 되었건 수혁을 키워 내는 데 있었기 때문에 이런 요청은 거부하는 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와서 그렇지.

[약물 치료가 가능합니다. 어떤 항생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훈련하고자 하는 목적 또한 두고 있었기에 바로바로 답을 내어주진 않았다.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가 쌓아 놓은 데이터에 접근 가능했고, 병명을 알게 된 이상 치료법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페니실린 G, 아니면 아목시실린인데……. 아목시실린이 낫겠어.’

수혁은 혼자 생각하며 추측했지만 동시에 바루다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굳이 부작용을 감수할 이유는 없겠죠. 좋은 선택입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확인이 있자마자 아목시실린에 대해 말했다.

이제 신현태 과장은 수혁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하나하나에 다 놀라진 않았다.

그저 당연하게만 여겼다.

“그래. 그런데 안 들으면 어쩔 거야?”

대신 추가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원장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역시나 신현태와 수혁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진 않았다.

대신 수혁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했다.

‘진짜 천재일 수도 있겠네. 흠.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어.’

신중한 사람이니만큼 섣부르진 않았지만.

“음…….”

수혁은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이미 답변이 싹 준비되어 있음에도.

그래야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약물 치료에 반응할 확률은 90%로 알고 있습니다. 즉 10%에서는 약물에 반응을 보이지 않겠지요.”

일부러 자세한 수치를 언급함으로써 깨알 지식 자랑도 보태 주었다.

당연하게도 신현태 과장의 표정은 더더욱 푸근해졌고, 원장 또한 점점 더 판단을 달리하고 있었다.

‘이놈 봐라?’

수혁은 그렇게 이목을 끈 후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경우에는 딱 메스가 있는 부위에 한정해서 대장 부분 절제술을 해야 할 거로 생각합니다. 또 약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장에서 동결 절편 검사 또한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색을 일으키지 않아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암은 놓쳐서는 안 될 질환이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사려 깊고, 아주 자연스러운 계획이었다.

혹 진단이 빗나갔을 가능성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대개 경험이 적은 내과 의사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문의를 딴 사람도 아닌, 고작해야 3월에 1년 차가 할 수 있는 답은 아니었다.

“좋은데?”

해서 신현태 과장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이 주치의를 맡는다고 해도 딱 지금의 수혁처럼 답변했을 거 같았으니까.

이제 겨우 1년 차가 된 녀석과 같은 의견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대견할 따름이었다.

‘정답을 말한다 이거지……. 1년 차…… 그것도 3월에. 이게 말이 되나? 어쩌다 이런 녀석이 굴러들어 온 거야?’

그의 고민은 신 과장이 수혁에게 ‘자기 이름 앞으로 환자 입원시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가 월요일에 보자.’ 하고 말한 후로도 계속되었다.

“계란말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출출하다고 했던 주제에 음식이 나온 후에도 턱에 괸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눈이 조금은 풀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현태 과장은 원장이 이럴 땐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생각 중인 것이 분명했다.

‘전에는 이러다가 갑자기 논문 뚝딱 썼지. 괜히 천재가 아니야.’

내과 중에서도 순환기내과 교수인 이현종 원장의 별명은 다름 아닌 ‘월드 스타’였다.

평소 약간 나사 빠진 듯한 언행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이 커다란 태화 의료원 전체를 통틀어서 단 둘뿐인 석좌 교수인 이유이기도 했고.

‘그때 쓴 앱스트랙트(Abstract: 초록)가 아마 하행 관상 동맥도 스텐트 시술이 가능하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거 같은데. 진짜 어이없는 일이지.’

그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가 하행 관상 동맥이 막혔을 땐 무조건 가슴을 열어서 수술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을 때였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 세계가 그렇게 믿고 있었더랬다.

그걸 눈앞에 있는 이현종 원장이 뒤집어엎어 버린 것이었다.

그 논문으로 이 원장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수많은 교과서를 전부 바꿔 치워 버리고야 말았다.

해서 신현태 과장은 원장을 고대로 두고 계란말이를 반절로 툭 잘라서 김진실 교수에게 건넸다.

“거긴 뭐 수혁이처럼 괴물 같은 1년 차 없어요?”

어색하지 않기 위해 질문까지 던지면서였다.

“아뇨, 뭐……. 말 안 듣는 애들은 수두룩하죠.”

그 말에 김 교수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어 댔다.

영상의학과가 인기과이니만큼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긴 했지만.

방금 통화했던 수혁처럼 어떤 ‘수준’을 넘어서는 녀석들은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계란말이를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좀 아쉬웠는지 손을 들어 막걸리를 시켰다.

“교수님도 드실래요?”

“아, 아뇨. 전 술 마시면 공을 못 맞춰서.”

“알겠습니다.”

보통 혼자 술을 먹게 되면 그만두는 법이거늘.

김진실 교수는 그대로 막걸리를 시키더니 단숨에 비워 나가기 시작했다.

‘학생 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렸다고 하더니 이런 거였나.’

본래 술을 잘 마시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는 신현태 교수는 자기가 학번이 위라는 것에 감사를 느끼며 계란말이를 먹어 치웠다.

그렇게 맛이 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늘집들이 으레 그러하듯 깨알만 한 계란말이 하나에 2만 원이 훌쩍 넘었다.

딱히 이런 걸 아껴야 하는 집안 형편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흠.”

원장이 마침내 턱에 괸 손을 뗀 것은 신 과장이 계란말이를 다 먹고, 만 원짜리 맛대가리 없는 아이스 커피까지 쪽쪽 빨고 있을 무렵이었다.

“선배, 이제 대강 일어납시다. 공 쳐야지.”

신 과장은 원장의 어깨를 치고는 무료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캐디를 바라보았다.

캐디가 말없이 카트로 이동하려는데, 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깟 공이 중요하냐? 지금 우리 과에 어? 보기 드문 인재가 하나 들어왔는데.”

“뭔 소리예요, 갑자기. 어제는 또라이라며.”

“근데 오늘 보니까 아니잖아.”

“어? 뭉개지 말고. 일어나요.”

그리곤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신현태 과장을 애써 무시하고는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신 과장의 얼굴이 아주 묘하게 변했다.

“와……. 진짜…… 설마 이거 내기 질까 봐 이러는 건가?”

김진실이야 꼽사리로 쳐 주었지만.

이 둘은 태화 의료원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준프로 얘기 들을 수 있는 싱글 유저이니 말 다 한 셈 아니겠는가.

으레 실력자들의 골프가 그러하듯 돈이 오가기 마련이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내가 그깟 내기 때문에 이러겠어?”

“그럼 대체 왜 이러는데. 빨리 치러 가야지! 이러다 뒤 팀 오면 밀려요!”

“이 새낀 돈만 걸리면 꼭 존댓말이랑 반말 섞어 쓰더라? 인마 내가 원장이야!”

“와……. 내기 골프 파투내는 게 무슨 원장이야.”

“이놈아. 그런 게 아니라니까? 수혁이 그 친구.”

“이수혁 핑계 대지 말고.”

“아니, 아니. 잠깐 앉아 봐. 진짜 중요한 얘기야.”

“중요한 얘기는 개뿔…….”

신 과장은 그렇게 툴툴대면서도 일단 원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위와 관계없이 이현종은 신현태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그러했다.

“뭔데요.”

“이번에……. 증례 토의 있지? 태화 월말 증례 토의.”

태화 월말 증례 토의란 일종의 학회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비단 태화 의료원 내과 교실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근처 모든 내과 교실에서 참가하기 때문이었다.

토의라기보다는 거의 강의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있죠. 어……. 설마?”

“그거 발표 이수혁이 하면 어때?”

“네?”

신현태는 이게 당연히 농담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증례 토의 발표는 최하 3년 차, 보통은 펠로우가 맡아 왔기 때문이었다.

“뭘 그렇게 놀래? 네가 먼저 얘기했었잖아.”

“그땐……. 그땐 선배가 안 될 거라고 할 줄 알았으니까 한 거고.”

“아냐. 아냐.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런 애는 잘 키워야지.”

“어……. 진지하시네, 이 형.”

“그래. 내가 그…… 다른 병원 과장들한테는 연락할게.”

이현종 원장은 그렇게 말한 후, 뭔가 아주 급한 일이라도 생긴 사람처럼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멍하니 있던 신 과장은 이 원장이 그늘집을 빠져나간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어, 어디 가요! 내기는 끝까지 해야지!”

“내기가 중요해? 공놀이가 중하니? 네가 그러니까 인마, 아직도 『NEJM』(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세계 최고의 학술지 중 하나)에 논문 못 실은 거야.”

“왜 남의 아픈 곳은 후벼 파는데! 일단 서 봐요! 야!”

“월요일에 보자.”

“야! 이현종! 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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